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79 12월호 44-45면
  • 겸허—미덕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인가? 아니면 높이 평가되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겸허—미덕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인가? 아니면 높이 평가되는가?
  • 깨어라!—1979
  • 비슷한 자료
  • 그리스도인 겸허를 배양하는 일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 그리스도인 겸허—지혜의 증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 겸손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4
  • 겸허—평화를 증진시키는 특성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0
더 보기
깨어라!—1979
깨79 12월호 44-45면

성서의 견해 2

겸허—미덕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인가? 아니면 높이 평가되는가?

“겸허는 미덕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이며 그것이 표시하는 결함의 실토이다. 자기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자는 당연히 다른 사람에 의해 낮게 평가된다.”라고 19세기의 영국의 비평가이자 작가였던 ‘윌리엄 하즐리트’는 기록했다.

성서 필자들도 겸허에 대해 이와 같은 견해를 가졌는가? 겸허는 자기 결함의 증거이며 “미덕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이며 약함의 표시인가? 당신은 겸허한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빈번히 겸허란 말은 옷차림과 몸치장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충고에서 야한 사치를 비난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겸허와 건전한 정신으로, 신세]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디모데 전 2:9, 10)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 충고는 단정함을 반대하지는 않으나, 그리스도인의 관점으로 볼 때, 옷 차림과 몸치장에 있어서 허례허식 및 사치가 부적당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치장은 사람의 “선한 행실”이다.

“겸허”라는 말의 적용은 우리의 외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겸허라는 말이 정신과 마음의 질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는, 자신을 올바로 평가하고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겸허는 허세, 주제넘음, 허식, 자만 및 뽐냄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겸허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잠언 27:2의 충고에 따라 생활한다.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찌니라.” 당신은 이러한 특성을 나타내는 친구를 높이 평가하지 않겠는가?

겸허를 격하시키는 대신, 고대 예언자 ‘미가’는 겸허를 하나님의 요구 조건의 하나라고 천명한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 겸손히[겸허하게, 신세]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있어서 겸허를 보이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주 앞에서 자기의 지위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는 표시이다. 겸허는 자기가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하나님의 순결함 및 거룩함과 대조를 이루는 자기의 죄있는 상태를 인정하는 것에서 나온다. 부적당한 자신감을 나타내느니 보다는, 겸허한 사람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기 자신의 구원을 이룬다.—빌립보 2:12.

창조의 장엄함은 겸허한 사람의 마음에 경외감과 겸손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태도가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과학자 고 ‘알버어트 아인시타인’의 다음과 같은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신중하게 과학을 추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우주의 법에는 하나의 정신—인간의 정신보다 엄청나게 우월한 하나의 정신이 나타나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을 직면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겸허한 능력을 인정하고 겸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을 보면 ‘아인시타인’이 겸허를 “미덕 중 가장 낮은 것”으로 간주했다고 믿을 수 없다.

누군가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랑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면, 분명히 그분은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며, “우두머리 일꾼”이고, “독생자”이고 하나님의 최고 대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실 것이다. (계시 3:14, 신세; 잠언 8:30, 신세; 요한 3:16; 1:1) 그러나 겸허하게도 예수께서는 아첨하는 칭호들을 받기를 거절하셨다. 그분은 자기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시면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아무 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내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하기 때문이다.” (요한 5:30, 새번역) 자기를 가르켜 “선하신 선생님”이라고 부른 한 통치자에게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대답하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하신 이가 없다.” (누가 18:18, 19, 새번역) 당신은 예수의 이 말씀이 자기에게 결함이 있었음을 나타내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분명히 하나님께 대한 그분의 겸허한 태도는 무엇보다도 그가 완전한 인간성을 입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대인 관계에 있어서 겸허는 어떠한가?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자기에게 오라고 초대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셨다. (마태 11:28-30)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했다. “내가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로마 12:3.

겸허는 동료 인간들과의 대인 관계에 있어서 나타나야 할 바람직한 성품이라는 것이 사도 ‘바울’이 ‘고린도’ 회중에 있는 그의 동료 신자들을 대면할 때에 잘 나타났다. 겸허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염려하신다는 점을 먼저 언급하면서, 그는 이와 같이 기록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못박히신 것, 신세]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린도 전 1:26-2:5.

만약 당신이 ‘고린도’ 회중의 성원이었다면, 사도 ‘바울’이 겸손하게 대면할 때 따뜻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겠는가? 반면, 그가 자만하고, 거만하고, 허식적이고—건방진 태도를 취했더라면, 당신은 어떻게 느꼈겠는가?

그렇다, 일부 사람들은 아마 진실하게 그리스도인의 겸허의 덕을 얕잡아 보거나 조롱하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제목을 정직하게 평가해 보면,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겸허, 신세]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언 11:2.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