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의 종들”이 새로운 주인을 발견하다
말씨가 부드러운 ‘토니 바누에’와 이야기하노라면, 그처럼 점잖은 미소의 주인공이 한 때는 ‘오오토바이’ ‘갱’단의 두목이었다고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토니’는 툭 하면 싸우고 약탈하고 마약 밀매를 했었다. 그는 15년이라는 전과 기록을 갖고 있으며 교도소에서 복역한 적도 있고 앞으로도 1983년까지는 계속 집행 유예 상태로 있을 것이다.
물론 ‘토니’가 현재도 수년전의 개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 그 ‘오오토바이’ ‘갱’단 소속이었던 세명의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러하다. 한 때 그들은 세상에 대하여 너무나 분개한 나머지 정말 자기들이 살든지 죽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재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고, 장래에 대해서도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들은 진정한 벗들과 새로운 삶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토니’(그들은 “로꼬”[“광적인”]라고 불렀다.)가 15세쯤 되었을 때, 미국 서남부로부터 ‘티우아나’에 이르는 일대에 “파추코스”라 불리우는 길거리 ‘갱’들의 활동이 퍼지고 있었다. ‘티우아나’는 ‘토니’와 그의 동생 ‘루디’가 살던, ‘캘리포오니아’ 변경 바로 남쪽의 한 ‘멕시코’ 마을이다.
이 ‘갱’들은 마을들을 몇 구역으로 나누어 제각기 차지하였다. 그들은 야구 방망이, 곤봉, 쇠사슬 등을 가지고 싸움질을 벌였다. 어느 ‘갱’ 단원인가는 손등 엄지손가락 부근의 독특한 문신으로 식별할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머리카락 속에 ‘나이프, 또는 면도날을 숨기고 다녔다. “나는 십대 시절 내내 ‘파추코스’ 생활을 했읍니다. 우리 ‘갱’단은 단원이 약 25명이었읍니다”라고 ‘토니’는 말한다.
‘토니’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육군으로 징집되지 않고 그는 해군에 입대하였다. 거기서 “나는 마약에 깊이 빠지게 되었읍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렇게 계속한다. “나는 ‘마리화나’를 밀수해서 팔다가 붙잡혔읍니다. 해군은 나를 ‘하와이’ 영창에 1년간 가두어 두었읍니다. 출감 후 나는 ‘멕시코’로 돌아가서 ‘오오토바이’ ‘갱’단에 들어 갔읍니다. 나는 ‘산디에고’의 한 사무실에 침입하여 수표 책을 훔친 후 그것을 위조하여 현금으로 바꾸었읍니다. 수년 후 이 일로 인하여 체포된 나는 감옥에서 1년을 지냈읍니다. 현재도 집행 유예 상태이기 때문에 매달 나는 훔친 돈의 일부분을 배상해 주어야 합니다. 아직도 갚아야 할 돈이 385‘달러’ 남아 있읍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나는 ‘지옥의 천사’라는 ‘오오토바이’ ‘갱’ 단원들과 사귀게 되었읍니다. 우리는 “‘사단’의 종들”이라는 ‘갱’단을 다시 조직하기로 결정했읍니다. 우리는 ‘라스베가스’에서 시작하여 나중에 ‘티우아나’에 분회를 두었읍니다. 우리는 무법자 생활을 했읍니다. ‘신나게 달리고 빨리 죽자.’는 것이 좌우명이었읍니다. 우리는 감옥을 들락날락했읍니다. 나는 팔에 자상(刺傷)을 한번, 오른쪽 발에 총상을 한번 입었고, 머리는 쇠지레로 맞아 파열상을 입기도 했읍니다. 끔찍한 ‘오오토바이’ 사고도 세번이나 있었읍니다. 세번 모두 마약에 만취해 있을 때였읍니다. 우리는 ‘헤로인’ 밀수에서부터 살인 미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범죄로 고소됐지만, 돈과 변호사들 덕택으로 때때로 곤경을 모면했읍니다. ‘루디’와 ‘갱’단의 다른 성원들은 ‘헤로인’으로 인해 교도소 생활을 했읍니다.
“한편, 우리는 토끼 목장을 하나 마련하느라 많은 시간과 돈을 바쳤는데, 그 곳은 대로에서 ‘티우아나’ 동남쪽의 산맥 속으로 자동차로 약 1시간가량 들어가는 곳으로 경찰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읍니다. 말썽을 일으킨 사람들이 찾아 와서는 수개월씩 일하다가 도로 나가곤 하였읍니다. 그 토끼 목장에 온 사람들 중 다수는 끝내 감옥에 가고 말았는데, 그들 중 일부는 미국에, 일부는 ‘멕시코’에 수감되었읍니다.
“우리는 가죽옷을 입고 독일식 ‘헬멧’을 썼읍니다. 칼과 총을 가지고 다녔고, 우리 ‘클럽’의 이름을 조끼 등에 써 붙였읍니다. 손목 ‘밴드’는 금속의 대갈못이 박힌 가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팔을 사용해서 ‘나이프’를 막아 낼 수 있었읍니다.”
옛날 생활 방식을 버림
“한번은, ‘티우아나’에 사는, 우리 ‘클럽’에 가입하고 싶어한 어느 청년 미국 시민을 찾아가, 미국에 있는 어느 도박꾼에게서 얼마의 돈을 받아오도록 도움을 받으려 하였읍니다. 그런데 그는 집에 없었읍니다. 나는 기다렸지만 못 만나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인 그의 아버지 ‘프란시스코 두라조’가 내게 여호와에 관하여 말해 주었읍니다. (시 83:18) 그 때 나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들었고, 새로운 제도에 관한 그분의 약속에 대해 알게 되었읍니다. 나는 그 집을 나와 친구들을 두명 만난 후,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갔읍니다. 결국 말썽이 생겨, 우리는 치사적인 무기 사용 폭행 죄로 투옥되었읍니다. 그 후 다행히 기소는 취하되었지만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읍니다. ‘교도소에 들어가는 이러한 일은 점점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마 “프란시스코”가 말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멕시코’에 돌아오자 마자 그를 만나러 갔읍니다. 그는 내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읍니다. 즉 성서가 기록된 방법, 성서에 의하면 현 사물의 제도의 끝이 가까왔다는 사실, 하나님께서 조만간 지상의 문제거리들에 대하여 모종의 조치를 취하실 것이라는 점 등이었읍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어 보였으므로, 자기와 함께 성서를 연구할 수 있겠느냐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읍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 책을 가지고 바로 그 날 성서 연구를 시작했읍니다.
“오래지 않아 나는 배운 것을 친구들에게 말해 주기 시작했읍니다. 어떤 친구들은 받아들였고, 어떤 친구들은 거절했읍니다. 친형제인 ‘수수끼’는 ‘캘리포오니아’ ‘엔시니타스’에 살고 있었읍니다. 나는 그리로 가서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며 놀라운 일이 곧 일어날 것임을 이야기해 주었읍니다.
“‘티우아나’에 돌아오자, ‘증인’들은 우리들에게, 옛 개성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말했읍니다. 몇 달 동안 연구한 후에, ‘루디’는 옛 생활 방식을 버리기로 결정했읍니다. 그는 ‘엔시니타스’로 되돌아 가서 직장을 구하고는 침례받을 계획을 하게 되었읍니다. 나의 경우는 시간이 좀 더 걸렸읍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시작 단계에서 언제까지나 머뭇거릴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읍니다. 나는 나쁜 교제를 끊어 버리고 ‘엔시니타스’로 올라 갔읍니다. 약 두달 더 연구하고 나자 직장, 즉 ‘트럭’ 운전사 자리를 구할 수 있었읍니다. 그 때까지는 내 일생 전체를 통해서 일한 기간은 10개월도 채 안되었읍니다.”
1978년 ‘로스앤젤레스’ 지역 대회에서 침례를 받던 날, ‘토니’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이제 걱정거리가 없읍니다. 정부에서 더는 나를 주시하지 않습니다. 매일 ‘나이프’를 갖고 다닐 필요도 없읍니다. 더는 총도 필요 없읍니다. 교제할 만한 더 훌륭한 사람들, 즉 진실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발견했읍니다. 이제 나의 결심은 여호와를 섬기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수수끼’가 이야기하는 자기 체험담
‘토니’의 동생인 ‘루디’(그들은 “수수끼”라고 불렀다)는 그 변화가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이렇게 말한다.
“약 11년 동안 나는 ‘토니’ 및 ‘오오토바이’ ‘갱’단과 함께 일했읍니다. 나는 ‘헤로인’을 팔려다가 붙잡혀서 4년 동안 ‘캘리포오니아’ ‘티해차피’의 주립 교도소에서 복역하였읍니다.
“1960년대에 ‘히피’ 운동이 시작된 후, 나는 성서에 관심을 갖게 됐읍니다. 나는 그 당시 수년간 자전거에 성서를 늘 갖고 다녔읍니다. 나는 그것을 소리내어 읽곤 했읍니다. 어떤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읍니다.
“‘토니’가 하나님의 이름과 아울러, ‘티우아나’의 ‘프란시스코’와의 첫 번째 연구에서 배운 내용들을 이야기해 주었을 때, 우리는 그것에 관하여 그 날 온 종일 이야기하였읍니다. 그 주에 나는 연구를 시작하였읍니다. 몇달 연구한 후에 나는 나쁜 벗들과의 교제로 인해, 고민하게 되었읍니다. 일요일에는 집회에 참석하면서도 여전히 그 주간에 ‘마약에 취’해 있거나 우리가 배운 것과 일치하지 않는 다른 일들을 행한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때 나는 아들인 ‘아라미스’와 함께 ‘엔시니타스’로 돌아가서 용접공 직업을 구했읍니다. 그때 내 차림은 엉망이었읍니다. 그러나 ‘증인’들이 나를 도와 주었읍니다. 내 옷차림은 달라지기 시작했고, ‘증인’들과 교제하고 때때로 그들과 함께 식사하게 되었읍니다. 그것은 색다른 생활이었읍니다. 나는 매 화요일, 목요일, 일요일에 집회에 참석했으며, 또한 사람들 집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왕국 희망에 대해 그리고 성서가 인간 생활에 줄 수 있는 유익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게 되었읍니다.
“‘토니’는 진리를 사랑하였지만, 여전히 낡은 것들에 매여 있었읍니다. 우리는 그 토끼 목장을 위해 많은 돈과 수고를 바쳤읍니다. 그러나 나는 형에게, ‘그것 그만 두세요. 여호와는 단지 일요일 집회에 참석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읍니다. 여호와는 형제들과의 교제 ··· 매일 형제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말했읍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폐렴을 앓고 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읍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니? 병이 낫기만 하면 즉시 그 목장에서 내 소유물들을 빼내고는 그 곳을 잊어 버리려 한다.’ 악한 친구들이 득실대는 그 곳을 그가 떠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흐뭇한 일이었읍니다.
“성서를 알게 되자 우리들에게는 많은 유익이 있었읍니다. 나와 아들 그리고 내 환경에 유익하였읍니다. 태도가 변화되었읍니다. 내 자신이 변화되었읍니다. 모든 것이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게 해 주신 데 대하여 그분께 감사드리며 우리가 계속 그 말씀에 따라 살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읍니다.”
‘크리스탈’의 체험담
이 ‘오오토바이’ ‘갱’단과 함께 다니던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중 두명이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받아 들였고 생활에서 커다란 변화를 하였다.
‘캐들린 게일런’(그들은 “크리스탈”이라고 부른다)은, 자신이 어떻게 그러한 입장에 빠져 들게 되었는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뉴우요오크’ 시에서 태어 났읍니다. 내 나이 일곱살 때 아버지는 가족을 버렸고 나는 아주 반항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읍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읍니다. 우리는, 의사 소통이라고는 전혀 할 수가 없었읍니다. 나는 학교를 싫어했읍니다. 13세 때 가출한 나는 약 이년 동안, ‘뉴우요오크’의 길거리를 방황하면서 친구 혹은 그 무엇인가를 찾아 헤맸읍니다. 계단에서 잠을 잤읍니다. 배를 주렸읍니다. 두들겨 맞은 적도 있었읍니다. 그것은 쓰라린 경험이었읍니다. 이년 후 마침내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 보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경찰과 학교와 내가 일으키는 문제거리들을 감당할 수 없었읍니다. 15세가 되기 직전에, 어머니는 나를 ‘라스베가스’에 있는 아버지에게로 보내 거기서 살게 하였읍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내 및 이복 자매들과 함께 잘 지낼 수가 없었읍니다. 나는 어느 곳에서도 적응할 수가 없었읍니다. 나는 자살이야말로 내가 멀리 가버릴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읍니다. 그리고는 매우 주의깊이 그것을 계획하였읍니다. 아버지가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잠을 자야겠다고 말하였읍니다. 그 대신 나는 침실에 들어가 얼마 전에 빗장뼈가 부러져서 사온 알약 55정을 먹었읍니다. 다섯살 정도 밖에 안된 이복 누이 동생이 마루 위에 여러 시간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하였읍니다.
“삼일 반 동안 나는 의식 불명인채 병원에 있었읍니다. 항상 나는 죽은 자들은 어디엔가 간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눈을 떴을 때 내가 그런 곳에 와 있는 거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런데 아버지, 계모, 남동생 또한—‘뉴우요오크’에서 비행기를 타고 달려온—숙모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읍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읍니다. ‘아니, 이럴 수가! 멀리 떠나버리려고 자살했는데, 여기에도 이들이 있다니!’
“그러나 그 때, 여러 기계들, 내 코를 덮고 있는 ‘튜우브’ 그리고 병실의 다른 물건들을 보았읍니다. 나는 실패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내가 난폭하게 몸부림치면서 간호원을 때리고 싸울 듯이 발악하자 그들은 몇주 동안 나를 정신 병동에 수용하였읍니다. 난폭하게 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침대에 다리와 배와 팔 등을 꽁꽁 묶인 채 옴싹달싹 못하고 똑바로 누워 있어야 하였읍니다. 일주일 후 진정되자 병원에서는 나를 풀어주었읍니다. 정신병 의사는, 사람이 자살하려고 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였읍니다. 나는 그에게, 그 까닭은 오로지 사랑의 결핍 때문이며, 현생에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읍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창문에는 창살이 없으니까 만일 나를 내보내 주지 않으면 스스로 도망치겠노라고 말했읍니다. 아버지는 나를 퇴원시켜 주었읍니다. 그 때 아버지는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읍니다. 나는 모르겠다고, 어디엘 가나 적응이 안된다고 답변하였읍니다. 아버지는, 만일 아버지 집에서의 생활이 싫다면 언제든지 다른 곳을 찾아 가도 좋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찾아갈 곳도, 의지할 사람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실제로 느끼게 되었읍니다.
“그 때, 내 친구의 오빠 한 사람이 말했읍니다. ‘이 “오오토바이”단 친구들은 ‘티우아나’로 가는 중인데, 아마 너를 태워다 줄 수 있을 거다.’ 나는 그들을 찾아가서 ‘캘리포오니아’까지 좀 태워다 줄 수 있겠는가 하고 물었읍니다. ‘토니’는, 만일 내가 ‘티우아나’로 가서 머물러서 함께 일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대답하였읍니다.
“나는 7년 동안 ‘토니’ 및 ‘루디’와 함께 방랑 생활을 했읍니다. 나는 ‘토니’를 ‘뒤따라’ 다녔읍니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든지 어떤 곳에 가든지, 또는 앉든지 간에 나는 늘 그의 바로 뒤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뒤에서 그를 해칠 수 없었읍니다.
“어느날 ‘토니’가 내게 다가와서 ‘여호와께서 성서의 하나님이라는 걸 알고 있어?’라고 물었을 때는 내 인생이 얼마나 엄청난 변화를 하게될 것인가를 상상조차 못했읍니다. 내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그는 자기가 배우고 있는 내용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하였읍니다. 사실상 나는 일생을 통해 참다운 벗을 찾고 있었읍니다. 나는, 여호와께서 그러한 벗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나는 ‘마리화나’와 음행을 중단하였읍니다. 그러나 가장 오랫동안 싸워야 했던 것은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에 대한 격심한 증오심이었읍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호와의 도움으로 나는 변화하여 증오심을 없앨 수 있었읍니다.
“성서가 내 인생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여러분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열매는 ‘사랑, 즐거움, 평화, ··· 온유, 자제’라고 성서는 알려줍니다. 나는 여호와의 영이 나에게 베풀어 준 것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하고 있읍니다.”—갈라디아 5:22, 23.
‘바바라’의 인생이 변화되다
이 집단의 네번째 단원인 ‘바바라 바누에’도 이 ‘갱’ 단원들이 처음으로, 참석한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 그 집회가 대체 어떤건가 알아보려고 함께 참석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오오토바이’ 탈 때 입는 가죽옷을 걸치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집회 후에, 모두가 둘러서서는 미소를 지었읍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읍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그들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가족 같았으며, 그것은 참으로 내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읍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나가 본 어떤 교회에서도 그런 것을 본 적이 전혀 없었읍니다.”
‘바바라’는 말하기를 일생 동안 사람들이 싸우는 것만 들어 왔으며, 자기가 어렸을 때의 소원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싸우지 않고 모두가 형제 자매처럼 사는 곳”에 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증인’들이 성서를 펴서 바로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을 때,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읍니다.”
‘바바라’의 환경을 다소 알게 된다면, 이것이 그에게 그토록 큰 가치가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다섯살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했읍니다. 어머니는 네 명의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매일 16시간씩 일해야 했읍니다. 어머니는, 매우 엄격한 제7일 재림 교회 부인에게 우리를 약 사년간 맡기셨읍니다. 그 부인은, 자기딴엔 진실하게 우리는 죄인이며 죄인들은 지옥에 들어가 불타게 될 것이라고 말했읍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말 뜻을 못알아 듣는 조그만 꼬마의 마음속엔 참으로 깊이 박히는 사상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그분은 왜 사람들을 지옥에서 불태우려 하시는 걸까 하고 생각하곤 하였읍니다. 만일 내가 죄인이라면 헤어날 길이 없을 거고 결코 구원을 받지도 못하리라고 생각한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생활이 바르게 될 수 있다는 희망 없이 다른 모든 사람처럼 살았읍니다. 내 주위에는 내가 바라는 그러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읍니다. 아이들에게 큰 소리나 치는 가정 주부가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두번 결혼했읍니다. 두번째 남편은 교도소에 투옥되었는데, 심지어 내가 면회하러 갔을 때도 그는,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자, 나를 때리려고 하였읍니다. 마침내 이런 일에 넌더리가 났을 무렵,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루디’가 자기와 함께 지내자고 말했읍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갱’단에 들어 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오토바이’를 타고 ‘티우아나’를 휩쓸고 다니면서 우리의 능력으로 가능한 말썽은 다 일으켰으며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위협하였읍니다. 나는 정말 내가 살든지 죽든지 관계하지 않았읍니다. 항상 마약에 만취해 있었읍니다.
“그런데 성서는 내 인생에 참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읍니다! 그것은 우리의 개성을 역시 변화시킬 수 있읍니다. 성서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권고합니다. (에베소 4:22-24) 성서는, 전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 그리고 남편이나 아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성서는 내게, 딸을 양육하는 방법과 그 애에게 어떻게 참을성을 보일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읍니다. 나는 그 애가 저지르는 잘못은 엄마에게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잘못하는 것임을 납득시켜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 애는 이제 제 말 때문이 아니라 성서의 권고 때문에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있읍니다.
“진리를 알게 된 것과 그 애를 이처럼 양육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그들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
더는 자신들이 “‘사단’의 종들”이라고 뽑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종들임을 즐거워하는 이전에 ‘갱’ 단원들이었던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토니’는 ‘바바라’와 결혼하였다. ‘루디’와 ‘크리스탈’은 각기 다른 증인들과 결혼하였다. 그들 모두는,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걷게 된 결과 자신들은 물론 자녀들도 큰 유익을 받았다고 말한다. ‘루디’는 ‘네바다’ 주 ‘지인’ 교도소 내의 수감자들과 또한 한 고속도로 경찰과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다. ‘크리스탈’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오지 않으셨더라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런지 모르겠읍니다.” ‘루디’는 그들의 느낌을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는 세상을 보아왔기 때문에 되돌아갈 의향이 전혀 없읍니다.”
그들, 그리고 현재 경건한 길로 자기 인생을 틀잡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모두가 계속해서 그렇게 하기를 기도하는 바이다.
[36면 삽화]
‘토니’
‘루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