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확실한 희망이 가져오는 차이
‘놀라운 일이었읍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확신에 차 있었고 명랑하였읍니다.’ 이것은 ‘아니타 브라운’이 사내아이를 낳은 후 암으로 사망했을 때 그에 대해 한 말이다.
‘에스페란자’ 병원에서 담당 의사들 중의 한 사람인 ‘론 라핀’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약 36‘킬로그램’ 밖에 안나가는 이 병약자의 믿음과 여호와의 증인들이 나타내는 태도는 내게 참으로 깊은 감명을 주었읍니다. 그는 병원의 전 의료진에게 진정한 정신 앙양제—작은 원동기와도 같았읍니다.”
죽어 가면서 어디에서 그런 용기와 낙관적 견해가 나오는가? 이것은 의사가 말한 ‘아니타’의 믿음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이 점은 간호원 보조인 ‘체릴 더글라스’의 말로 더 명백해 진다. 이 간호원은 ‘아니타’의 죽음의 충격에 자기가 대처하는 것이 ‘아니타’의 가족이 대처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고 말하였다. 왜 그러하였는가?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들이 나보다 훨씬 더 잘 견딘 것은 그들은 모두 ‘여호와의 증인’이었고 나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크게 도움이 되고 있읍니다.”
희망을 유지함
필요한 때에 ‘아니타’와 그 가족에게 힘을 강화시켜 준 믿음은 과연 어떠한 것이었는가? 그들의 믿음 가운데에는 언젠가는 질병, 슬픔, 고통 및 죽음까지도 더는 없게 될, 하나님께서 만드실 새 질서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내포되어 있다. 그 새 질서에서는 죽은 자까지도 부활을 통해 생명으로 돌아 올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감받은 말씀인 성서에 기록시키신 놀라운 약속들 중 몇 가지다. 창조주의 약속은 결코 실패할 수 없으므로, 성서는 간단히 이렇게 선언한다.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다 같이 부활[할 것입니다]” (사도 24:15 새번역) ‘아니타’는 성서가 죽음을 일시적인 깊은 잠에 비유하며 자신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깨어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전도 9:5; 요한 11:11-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계셨을 때,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사실상, 그분은 죽었던 사람을 생명으로 돌아오게 하심으로써 부활을 실제로 보여주셨다! 예를 들어, 성서 기록은 예수께서 과부의 외아들을 부활시키셨을 때 “그를 어미에게 주”셨다고 말한다. (누가 7:11-17) 이와 비슷하게 ‘아니타’는 자기도, 자신이 죽기 직전의 그 귀중한 몇 시간 동안 밖에 같이 지낼 수 없었던, 자기 아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또 다른 경우에 예수께서는 어린 소녀를 부활시키셨다. 그 결과 그 소녀의 부모와 거기 있던 다른 “사람들이 크게 놀라고 놀”랐다 (마가 5:42)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도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덤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고 놀랄 것이다.—요한 11:1-45.
하나님의 인도하의 그 새 질서에서는, 현재 살아 있는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평화, 만족 및 행복을 즐기게 될 새로운 인간 사회가 전개될 것이다. 그 약속은 이러하다. “하나님이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나쁜]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시 21:3, 4.
오늘날의 슬프게 하는 모든 상태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이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그리고 이러한 즐거움은 단지 일시적이 아닐 것이다. 성서는 이렇게 부언하기 때문이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시 37:11, 29.
바로 이 땅위의 새 질서에서의 삶에 대한 확실한 희망에는 부활의 희망이 내포되어 있으며, 바로 이 희망이 하나님께 올바른 믿음을 둔 사람들을 유지시켜 주는 강력한 힘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새 질서가 먼 훗날의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한층 더 강화된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현 악한 제도는 그 “마지막 날”에 처해 있으며, 매우 가까운 장래에 하나님에 의해 분쇄되어 존재가 없어질 것임을 성서 예언이 명백히 알려주기 때문이다.—디모데 후 3:1-5, 새번역 참조; 다니엘 2:44.
그러므로, 이러한 희망은 사람들이 비극을 당할 때에 크게 낙관적이 되고 힘을 낼 수 있게 해 준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 하노니 이는 소망[희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 전 4:13) 그러므로 이러한 확실한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사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슬픔을 겪게 될 때에도, 과도하게 슬퍼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활에서 모든 즐거움이 짓밟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이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유익을 받기 위해 생명으로 돌아 올 수 있는 “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다른 강력한 도움
이에 더하여, 참다운 믿음을 가진 사람은 생명을 회복시키실 하나님께서 현재에도 그분을 의뢰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도움을 베푸실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떻게 도와 주시는가? 자신의 활동력인, 성령을 통하여 도와주신다. 그 성령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창세 1:2; 이사야 40:28, 29.
성서는 진실한 사람들이 필요한 때에 이 힘을 “구”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누가 11:13) 그 영이 진실한 하나님의 숭배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한 이유에서 성서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주는 힘을 “능력의 심히 큰 것”이라고 부른다. (고린도 후 4:7) 바로 이것이 ‘아니타 브라운’과 그의 가족을 도와 준 강력한 도움이었다.—요한 1서 5:14.
이처럼 새 질서와 부활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갖는 것은 사망에 대처하는 데 큰 차이를 가져온다. 그리고 하나님의 강력한 활동력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을 유지시켜주는 강력한 힘이 된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성서의 교훈이 참됨을 인식하고 있으며, 또 실제로 체험해 왔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33면 삽화]
예수께서 죽은 자들을 생명으로 돌아 오게 하신 성서 기록들을 읽는 것은 다가 오는 부활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강화시켜 주며, 현재에도 사망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