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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우리는 엄마와 나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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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우리는 엄마와 나뿐이에요”
  • 깨어라!—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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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1
깨81 07월호 36-39면

“엄마, 우리는 엄마와 나뿐이에요”

홀어버이의 자녀들: 그들은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가? 그들은 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아버지는 우리를 버렸고 어머니는 줄곧 심하게 앓고 계세요. 어머니는 이제 좀 나아지셨지만 우리 생활은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필요해요. 우리 생활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죠. 청구서나 집 수리로 대부분의 돈이 사용되기 때문에 양식이 조금 밖에 혹은 전혀 없는 때가 종종 있답니다. 난 어머니가 아주 외로워하시는 걸 볼 수가 없어요. 정말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정말 무서워요.”

이 애처러운 편지는 홀어버이의 양육을 받는 수백만 청소년들 중의 한 사람이 된 14세 소년이 보낸 절박한 탄원이었다.

그러한 상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한쪽 부모가 갑자기—아마 영원히—없어졌을 때 어린 사람의 정신이 받는 충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 때문에 한쪽 부모를 잃는 가정도 많지만, 대다수는 어느 한쪽의 유기, 이혼 혹은 별거로 인하여 반고아가 된다.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자녀들 전체의 40‘퍼센트’가 생애의 일부를 홀어버이 가정에서 보낼 것으로 추산된다. 전세계적으로 그 양상은 악화되고 있다.

한 젊은이가 “좌절, 상처 그리고 염려로 된 벽”이라고 묘사했듯이, 이러한 상태의 문제들을 극복한다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진짜 도전이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자녀가 나빠지면, 그것은 항상 부모의 잘못인가? 그러한 어린 사람은 자신의 앞날을 얼마나 틀잡을 수 있는가? 다음의 실화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도록 도와 줄 것이다.

무엇이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는가?

“그걸 못하게 하면, 아빠하고 살거에요—아빤 허락하실 거에요!” 한 십대 소년은 어머니가 징계했을 때 그처럼 협박하였다. 이러한 협박은 특이한 예가 아니다. 14세된 한 소녀는 솔직히 이렇게 인정하였다. “나는 자유도 더 많아요. 엄마보다 아빠가 더 많은 것을 하게 해주시죠. ·⁠·⁠· 엄마들은 종종 자기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키우려고 하지만, 아빠들은 보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주시거든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만족을 가져다 주는가? 많은 어린 사람들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렇다!” 하고 외칠 것이다. 그렇게 대답한 16세된 한 소년은 나중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소년의 부모는 이혼하였으며, 어머니가 그와 그의 남동생을 보호하게 되었다. 그 그리스도인 어머니는 단호하였으며 귀가 시간을 포함하여 “가정 규칙”을 정해 놓고, 아이들에게 그 규칙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16세된 그 소년은 어머니가 너무 엄격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유를 원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떠났다. 그는 아버지에게로 갔으며, 아버지는 즉시 새 자동차, 새로운 시계 그리고 그 이외 물질적 선물들을 듬뿍 안겨 주었다. 그는 원하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곧 새로이 얻게 된 그 자유가 문제를 일으켰다.

그가 전에 높이 고수했던 도덕적 원칙은 잃게 되었다. 성적으로 난잡한 생활로 인해 질투심 강한 한 남자 친구와 격렬한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재혼한 아버지의 집에서, 긴장으로 인해 여러 번 뛰쳐 나왔다. 이러한 긴장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그는 서둘러 결혼하였으며, 젊은 아내와 함께 연일 ‘파아티’를 벌이는 생활을 했다. 그들은 거의 매일 밤 여러 술집을 돌아다녔다. 그는 확실히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있었다.

어느날 밤 술집에 앉아서 그는 자신을, 즉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는 지금 무얼하고 있는거지;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정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였다. 얼마 안 되어 아내가 그를 버렸다. 그의 생활은 붕괴되었다. 어디에 안전이 있는지를 깨닫고서, 그는 어머니 집에 돌아가서 이제, 전에는 짜증을 내던 동일한 규칙에 따라 기꺼이 생활하고 있다. 그는 이제 그 규율들이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다행히도, 그는 성서 잠언(29:15)의 다음과 같은 진리를 인식하게 되었다.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진짜 아들과 딸들

‘콜롬비아’의 ‘보고타’에 사는 16세된 한 소녀는 진짜 딸임을 나타내었다. 그가 세살 때 아버지는 가정을 버렸으며, 어머니는 그 남자로부터 아무런 물질적 지원없이 어린 ‘이본느’의 신체적 정신적 필요를 돌보기 위해 애썼고, 딸에게 그리스도인 원칙을 심어 주고자 노력하였다. 13세 때 이 소녀는 마비를 일으키는 병에 걸렸다. 그러나,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회복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가 16세 되었을 때 아버지가, 이제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나타났다.

즉시, 그는 이 소녀의 보호자 권리를 얻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기 시작하였다. ‘이본느’와 그의 어머니는 법정에 호출되었으며, 그 곳에서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비난하였다. “저 여자는 내 딸의 복지와 교육을 등한히 하였읍니다!”

“제가 병에 걸려 치료를 받아야 했을 때, 아버지는 어디 계셨나요?” 하고 ‘이본느’는 온화하게 말하였다. 어머니가 자기에게 가르쳐 준 도덕 원칙들을 돌이켜 보고나서 이렇게 계속 말하였다. “어머니는 저에게 제가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베풀어 주셨읍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딸이 행복한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하고 아버지는 호소하였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딸아이는 자신이 택하는 분야의 대학 교육을 온전히 받을 수 있고, 훌륭한 의복, ‘파아티’, 사회적 접촉 등, 그 애가 성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읍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제공할 능력이 있읍니다.”

상당한 제안이었다! 확실히, 푼돈이나 버는 그의 어머니는 그와 맞설 위치에 있지 않았다. “당신 딸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당신이 거절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오!” 하고 판사는 무력한 어머니를 노려 보며 닦아 세웠다.

“이제 ‘이본느’는 다 큰 아이입니다. 자신이 결정을 내릴 수 있지요,” 하고 어머니는 대답하였다. “만일 그애가 아버지에게 가고 싶어 한다면, 난 막지 않을 것입니다.”

주저하지 않고 ‘이본느’는 이렇게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게 해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은 감사히 여깁니다. 그러나 어머니와의 생활은 이미 매우 행복하고 만족스럽답니다. 제게 참으로 필요한 물질 모두를 저는 갖고 있읍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전 시간 도와주는 자기 인생의 일을 음미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제가 갖고 있는 물질보다도, 저는 지금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갖고 있읍니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권리를 철회하고 법정을 뛰쳐 나갔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딸을 껴안았다.

미국의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한 치사적인 사고로 어느 그리스도인 미망인은 세명의 십대 소녀들을 혼자서 돌봐야 하게 되었다. 세딸 중 하나는 완전히 무력한 마비 환자였다.

18세된 딸을 손으로 먹여 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목욕을 시켜 주고, 옷을 입혀 주고, 또한 종교 집회에 데리고 다녀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전에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큰 도움이 되어 주었었다. 이제 어머니는 그 딸을 보살펴 달라고 어느 기관에 맡겨야 할 것인가?

“엄마, 우리가 돌보아 줄께요,” 하고 다른 딸들이 응답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정말 그 두 아이 덕택에 그 아이를 쉽게 보살펴 줄 수 있었읍니다.” 하고 그 어머니는 말하였다.

홀어버이의 자녀들이 집안의 힘든 일을 돌보아 실질적으로 부모를 지원한 예들은 그 외에도 많이 있다. 한 유명한 아동 심리학자인 ‘리 솔크’ 박사는 부모에게만 유익한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유익이 됨을 이렇게 보고하였다. “어떤 홀어버이들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오늘 할 일이 매우 많단다. 그러니, 네가 학교에서 돌아 온 뒤 식탁을 준비해 놓으면 큰 도움이 되겠구나 그리고 상점에 나가서 ‘토마토’, 계란, 빵을 좀 사다 놓으면 어떻겠니—그러면 내가 집에 왔을 때 일이 퍽 쉬워지겠는데’ 아이들은 그러한 종류의 일을 하기 좋아한다. 그 일은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해 준다. 부모의 생활을 좀 더 쉽게 해 주는 어떤 일을 함으로써, 그리고 그 일에 대해 감사를 받을 때 그들은 커다란 자부심을 갖게 된다.” 이리하여 자녀와 가정의 생활은 모두 향상된다.

아기로 여겨지기를 좋아하는 어린 사람은 하나도 없다. 비록 나이는 어릴지라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일에 있어서 더욱 어른스러워지고 있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흔히 홀어버이의 자녀들은 양쪽 부모가 다 있는 아이들보다 감정적으로 더욱 빨리 성장한다. 왜 그러한가? “이혼: 긍정적인 면”이라는 잡지 기사에서 저술가 ‘제인 아담스’는 이렇게 진술한다: “이혼한 부모의 자녀들은 독립심이 강해지게 마련이다—한쪽 부모로서는 양부모만큼 세심하거나 시간을 내거나 도움이 되어줄 수 없다. ·⁠·⁠· 우리 아이들은 둘 다—십대초—상당히 영양가 있는 식사를 준비할 줄 안다. 두 아이 모두 우리가 사는 집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어 청소로부터 시작해서 세탁, 자기들의 의복 다림질 및 깨진 유리창을 갈아 끼우는 일에 이르기까지 허드렛일에 달려들 줄 안다. 자기들이 해야 하기 때문에, 즉 그 일을 할 사람은 자기들 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들이 어질러 놓은 것은 모두 깨끗이 치워 놓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일에 있어서 자라감에 따라 홀어버이에게 특별한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이혼한 한 그리스도인 여자는 5남 1녀를 양육해야 하게 되었다. 재정적인 도움은 받았지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방문의 권리를 가진 아버지와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아이들에게 보다 관대하였읍니다. 나는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고 그는 시인하였다.

그러나 한 아들이 이렇게 말하여 어머니를 놀라게 하였다. “엄마, 엄만 아이들을 망쳐 놓고 있어요! 애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좀 보세요, 엄마—‘채찍’이 필요하단 말예요. 단호한 태도를 보이셔야죠. ‘그렇다’고 하시면 ‘그렇다’가 되어야 하고 ‘아니다’라고 하시면 ‘아니다’가 되어야죠.” 이런 어른스러운 충고는 즉시 이행되었으며, 그것은 이 가정에 참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잠언 22:15; 야고보 5:12.

생각과 행실에 있어서 자라감으로써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린 그러한 어린 사람들은, 훗날 반드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이러한 젊은이들 중 한 사람은 네살 때 아버지를 죽음으로 잃게 되었다. 그 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어머니가 11명이나 되는 자녀를 혼자서 키울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였다!—고린도 전 13:11.

친척들이 와서 자녀들을 나누어 맡아 돌보도록 마련하였다. “안돼요, 설사 우리가 함께 굶주린다 해도 우리는 함께 살겁니다!” 하고 다소 자존심이 강한 어머니는 말하였다.

이제는 성장한 당시의 네살짜리 한 아들은 이렇게 썼다. “내 인생의 그 때 경험을 돌이켜 보면 내게 일어난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의 하나였음을 알게 되죠. 우린 한 가족으로서 협력해 일하기 시작하였고, 그리하여 이제까지 살 수 있게 되었죠.”

처음에 그들은 ‘샌드위치’와 ‘스넥’을 만들었고, 허가를 얻은 후에는 기차 역에서 그것들을 팔았다. 결국, 어머니는 조그마한 식당을 차리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그 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식당에 들어와 계란 ‘샌드위치’를 주문하면 나는 계란 하나를 사러 뒷문을 통해 식료품점으로 가곤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제 이 그리스도인 남자는 자기 가족을 성공적으로 부양할 뿐 아니라 수백만 ‘달러’짜리 연쇄점의 설립자가 되었다. 과거를 회상해 보며 그는 이렇게 썼다. “그처럼 훌륭한 어머니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자신의 행실로 알려지게 됨

앞서 기술한 예들은 홀어버이의 자녀들이 반드시 그들의 어려운 상황의 무력한 희생물이 될 필요가 없음을 보여 준다. 의심할 바 없이 한쪽 부모를 잃는 것은 어린 아이의 인생에 극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또, 주게 되지만, 많은 어린 사람들은 이러한 잠언의 말씀에 동의한다. (20:11) “비록 아이라도 [그 부모들의 상태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동작으로[행실로, 신세]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소위 분열된 가정이 반드시 자녀의 인생을 망쳐 놓는 것은 아니다. 부모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고 그러한 부모로부터의 적절한 도덕적 지도와 징계에 순응하는 어린 사람들은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 그들은 자부심을 갖게 될 뿐 아니라,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에게서 위험할 정도로 없어지고 있는 정신의 내적 평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따뜻한 가정 생활에 기여할 수 있다. 그들의 행동을 통해 그들은 참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엄마, 우리는 엄마와 나뿐이에요,—하지만 함께라면 의의있고 뜻깊은 생활을 해나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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