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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2 10/15 15-17면

매우 값비싼 “묘당”—‘타지 마할’

「깨어라!」 인도 통신원 기

“나는 20,000명의 남자가 쉴새 없이 일하여 22년이나 걸려 끝낸 이 거대한 공사의 시작과 완성을 목격하였읍니다. 누구나 그 비용이 엄청났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보석 상인인 ‘쟝 뱁티스트 타베르니에르’는 인도 ‘아그라’에 있는 ‘타지 마할’에 대해 그처럼 기술하였다.

‘아그라’에 새로운 도시풍의 복합 건물이 1632년경에 불쑥 솟아났다. 뛰어난 석공들이 ‘델리’와 ‘물탄’ 및 ‘바그다드’에서 모여들었다. 능숙한 ‘도움’ 건축가들이 ‘터어키’와 ‘사마르칸드’로부터 여행하여 왔다. ‘페르시야’의 ‘시라즈’에서 석서예(石書藝) 전문가들이 왔다. 수많은 석수들과 인부들은 그 지방에서 모집되었다. 그리하여 ‘타지 간지’ 즉 새로운 국제 군구(郡區)가 조성되었다.

이 건물을 짓도록 고무시킨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 계획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타지 마할’ 배후의 인물들

그 건축 계획이 시작되었을 당시 대 ‘무굴’은 ‘샤 자한’이었다. 그는 1526년에 ‘바부르’가 세운 ‘델리’ 왕가에 속한 사람이었다. ‘바부르’는 ‘사마르칸드’의 ‘타타르’인(人) ‘티무르’를 통한, 몽고의 ‘징기스칸’의 먼 후손이었다. ‘바부르’와 그의 ‘타타르’ 대군은 인도로 쳐들어 와서, ‘아그라’와 ‘델리’를 점령하고, 1526년에 자신을 ‘파드샤’ 즉 ‘델리’의 주권자로 선포하였다. ‘무굴’ 황제들인 ‘후마윤’과 ‘아크바르’와 ‘자한기르’가 그의 뒤를 이었다. 회교도 ‘무굴’들은 물질적으로 호화스럽게 통치하였고, 그들의 부, 보석류, 학문 및 예술을 장려한 일, 그리고 그들의 후궁들인 무희들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611년에 황제 ‘자한기르’는 금혼 촌수의 자기 젊은 시절의 애인의 남편을 죽이고 그와 결혼하였다. 그 새로운 황후는 자기의 권력을 구축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단기간 내에 ‘자한기르’의 세째 아들과 또 한명의 아내와의 결혼을, 즉 ‘쿠람’ 왕자와 자기의 아름다운 조카 딸인 ‘알주만드 바누 베굼’과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바누’의 아버지 ‘아사프 칸’이 그 지역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세력이 강한 귀족이었다.

그 후 5년 동안 ‘쿠람’ 왕자는 전쟁에 말려들었다. 그동안 내내, 그의 매력적인 아내는 한결같은 반려자였다. 그들의 위태로운 생활이 그들 사이의 상호 애정의 띠를 공고히 해 준 것 같다.

‘무무타즈 마할’

‘쿠람’은 그의 강력한 장인의 도움으로 왕가의 모든 경쟁자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고, 1628년에 권좌에 올랐고, ‘알주만드 바누’는 그의 왕후가 되었다. 그는 ‘샤 자한’ 즉 “세계의 왕”이란 칭호를 썼으며, 그의 왕비는 “왕궁의 선택된 자”를 의미하는 ‘무무타즈 마할’이라고 칭하였다. ‘무무타즈 마할’은 계속 ‘데칸’ 전쟁에 남편을 따라 다녔다. 사실상, ‘샤 자한’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그의 군대를 ‘부르한푸르’에 진쳤을 때, 14번째 아기를 임신한 ‘무무타즈 마할’은 그와 함께 진 안에 있었다!

따가운 북쪽 여름의 군 막사는 산모에게 적합치 않은 곳이었던 것 같다. 분명히 앞서 13명의 자녀를 급히 연이어 낳음으로 체력이 고갈된 왕비는 1631년 6월 ‘라우샤나 아라 베굼’이라는 미래의 공주를 낳은 지 몇 시간만에 사망하였다.

‘샤 자한’은 비탄에 잠겼다! 2년 동안 그는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았고, 왕복도 입지 않았고, 음악과 연회를 베풀지 않았다.

‘타지 마할’의 구상

죽은 부인의 대단히 웅장한 기념관을 구상하던 중, 황제는 숙련된 건설 기사와 건축가들로 이루어진 국제 협의회를 명하였다. 그 협의회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들의 그림들을 연구하였다. 그 다음에 나무로 모형을 만들고, 바람직한 건축 모양이 결정될 때까지 계속 연구하였다.

‘무굴’의 전통을 벗어나, 그들은 중앙에 정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같은 전경으로 4등분 된 정원, 즉 ‘카르바’를 설계하였다. 그 다음에 넓은 ‘줌마’ 강 위에 걸려 있는 ‘타지’를 세움으로 그 흰 건축물은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룰 것이었다. ‘타지 마할’ 건축 공사를 위해 최초로 풀밭을 갈아 일군 것은 1632년의 일이었다.

‘타지 마할’의 건축

황제의 재력이 ‘무무타즈’의 묘를 짓기 위해 동원되었다. 20,000명의 인부가 동원되었다. 흰 대리석은 ‘라자스탄’의 ‘마크라나’로부터 그리고 붉은 사암(砂岩)은 ‘화테푸르 시크르’ 부근으로부터 종속 국가들에 의해 바쳐졌다. 황제는 자신의 금고에서 당시 600,000‘루피’(135,000‘스털링’)에 상당하는 순금 16,000‘온스’를 물 쓰듯 썼다. 상감 장식을 위하여 벽옥은 ‘판잡’에서, ‘다이아몬드’는 ‘매드야 프라데쉬’의 ‘파나 힐즈’에서 들여 왔고, 비취와 수정은 중국에서 공급하였고, ‘튀르크와즈’는 ‘티벳’에서 가져왔고, ‘사파이어’는 ‘실론’에서 제공되었으며, ‘아라비아’는 산호와 홍옥수를 공급하였고, 얼룩 마노와 자수정은 ‘페르시아’에서 들여 왔다. ‘타지 마할’의 가구는 정교한 ‘페르시아’의 ‘카아핏’, 진주 융단, 순금으로 된 간막이와 등잔 등으로 사치스러웠다.

‘아그라’ 자체 출신의 석수장(長)인 ‘모함메드 한니프’는 월 112‘스털링’의 매우 높은 급료를 받았다. 고생하며 일하는 인부들은 길고, 무덥고 지친 하루의 끝에 단지 반 ‘페니’를 받기 위해 땀을 흘렸다. 그러나 그렇게 저임인데도 22년 계획의 총경비가 4천만 ‘루피’(17세기 당시 450만 ‘스털링’)로 추정되었다. 엄청난 국왕의 “묘당”을 위해 경비나 수고를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마침내, “왕궁의 극치”인 ‘타지 마할’이 1648년에 완공되었다. 부속 건물들을 완전히 완공하는 데는 몇년이 더 걸렸다.

‘타지’ 관광

우리는 거대한 남쪽 출입구에서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그것은 가장자리에 ‘아아치’형의 회랑들이 나 있는 고대 대상 숙박소 위에 우뚝 솟아 있다. 시원하고 거대한 ‘아아치’ 속으로 들어서면서, 우리는 검은 대리석으로 된 내부 벽널을 보았다. 그 지붕 위의 전망은, ‘아아치’형의 구조를 통해, 훤히 트여 있다.

이 거대한 “묘당”은 검고 흰 바둑 무늬의 대리석으로 된, 가로 세로가 각각 93.9‘미터’인 단 위에 세워 있다. 꼭대기가 둥근 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흰 대리석으로 만든 4개의 가느다란 3층 높이 뾰족탑이다. 흰 기념관과 대조를 이루어 서쪽에 붉은 사암 사원과 동쪽에 ‘자왑’, 즉 같은 모양의 건축물이 있어, 전체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사방 정면과 귀퉁이에는 각각, 32.4‘미터’ 위로 솟은 육중한 중앙 ‘아아치’를 둘러싸는 일련의 이중 ‘아아치’가 있다. 아마도 그것이 17세기의 ‘프랑스’인 방문객 ‘베르나르’를 감동시켜 이렇게 외치게 했을 것이다. “그것은 백 가지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배치되고 고안된, 거의 전체가 ‘아아치’ 위에 ‘아아치’로 회랑 위에 회랑으로 되어 있다.”

그 기념관에 가까이 가면서, 우리는 건축 기사를 멈추게 하고 보석 상인의 눈길을 끄는 곳을 관찰하였다. 여기가 상감 예술가들이 그들의 절묘한 기술들을 발휘한 곳이다. 모든 벽과 벽널은 여러 색의 준 보석으로 상감한 다채로운 화관과 소용돌이 무늬로 되어 있다.

높은 ‘도움’ 아래 중앙의 방 내에 있는 ‘무무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기념비는 서양 협죽도의 소용돌이 무늬를 주요 특색으로 한 대리석 상감 예술 기교의 극치를 나타낸다. 왕비의 기념비 위의 한 박편에 35점의 각기 다른 형태의 홍옥수가 박혀 있다. 진짜 무덤은 건물 안에 있지 않고 평지의 토굴속에 있다.

참으로, 이 놀라운 “묘당” ‘타지 마할’은 대리석의 경이—인간 기술과 노동의 대단한 업적이다. 인간이 죄 많고, 압제적인 통치 아래서 죽은 자들을 위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급속히 다가오는 하나님의 지상 낙원에서 인간들은 살아있는 이웃을 위해 얼마나 창조적인 감탄스러운 일들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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