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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제도들이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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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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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2 3/15 6-9면

이 제도들이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물질적 번영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고대의 많은 희랍인과 ‘로마’인의 생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중세기 전체를 통하여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유는? 주로 종교적 이유 때문이었다.

중세 사회는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종교의 지배를 받았다.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에게는 빈곤이 하나의 미덕이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하나의 “시험”이었다. 부자가 부유하고,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것은 이른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다. 자진적인 궁핍은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고리대금”(이자를 위해 돈을 빌려 주는 일)은 교회법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나, ‘유대’인 대금업자를 저주하는 한편 ‘가톨릭’ 대성당 참사회들은 고리로 돈을 빌려 주었다. 교황 제도 그 자체가 “중세에 가장 규모가 큰 금융 기관”이 되었다. 이것이 봉건적 교회 질서가 유지되던 대부분의 기간 동안의 체제였다.

자본주의의 탄생

봉건제도의 붕괴와 함께 도시 및 도시간의 상업이 성장했다. 국가간의 상업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사상도 보다 자유로이 유포되었는데 특히 인쇄기의 발명 이후에 그러하였다. ‘가톨릭’ 교회의 영향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중세 ‘가톨릭’ 교회는 새로운 경제 제도의 발전에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중세 말경에는 ‘가톨릭’교국 바로 내부에 자본주의적인 상업, 제조 및 은행업을 수행하는 독립된 지역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이태리의 ‘베니스’, 독일의 ‘아우크스부르크’ 그리고 ‘플란더스’의 ‘안트워프’와 같은 ‘가톨릭’ 도시들에서 이런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후 16세기에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이 일어났다. 종교 개혁이 자본주의를 낳았다고 말한다면 과장이겠지만, 그것이 자본주의를 결정적으로 후원해 준 사상들을 낳았음은 사실이다. 한 예로서, ‘칼빈’주의는 합법적인 사업상의 이익에서 “고리대금”의 낙인을 벗겨 주었다. 더 나아가서, ‘프로테스탄트’ 신앙 가운데에는 열심히 일하여 인생에 성공하고 그리하여 “선민” 중에 끼어 있음을 증명하도록 사람들을 고무하는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 사업상의 성공은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생긴 부는 자기 자신의 사업 따위에 투자할 수 있는 유효 “자본”이 되었다. 이처럼, 근면과 번영을 고무한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자본주의의 확장에 기여했다.

자본주의 경제가 ‘가톨릭’ 국가들에서보다도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에서 더 빨리 발전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재빨리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자신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있는 나라들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것을 허용했으며, 그리하여 그 자체가 극도로 부유한 자본주의 조직으로 변모하게 되었다.a

자본주의가 봉건 제도에 비해 발전을 초래케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것이 노동 계급에 가져온 더 큰 자유만 해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많은 불공평을 초래하였다. 빈부의 차는 벌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최악의 경우, 그것은 착취와 계급 투쟁을 초래하였다. 최상의 경우, 그것은 일부 나라들에 물질적인 것들이 넘쳐 흐르는 풍요로운 소비 사회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영적인 공백을 가져왔으며, 참되고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

공산주의는 행복에의 길인가?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은 교황의 권력 및 특권 남용에 대한 반항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의 개혁가들이 생각지 못했던 사상의 홍수를 풀어놓았다. 이러한 사상들은 조만간 언젠가는 종교 이외의 분야에서 혁명을 일으키게 되어 있었다. ‘로마 가톨릭’에 대한 반항은 자본주의의 발달을 뒷받침했을 뿐 아니라, 과학, 기술 및 철학 분야에서의 개혁에 이바지하였으며, 이 모든 것은 무신론적인 신앙으로 인도되었다.

증기 기관과 기계의 출현과 함께 자본주의는 상업 분야에서 산업 분야로 퍼졌다. 18세기 후기와 19세기에는 농민, 장인(匠人) 및 심지어는 아이들 가운데서 모아진 대규모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거대한 공장들이 출현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사람에 의한 사람의 착취”는 노동자 운동 및 공산주의와 같은 혁명적인 철학들의 출현을 초래하였다.

이론상으로, “공산주의”란 말은 “공공 재산 또는 소득과 부의 평등한 분배에 기초한 사회 조직 체제”를 지칭한다. 근대 현실에서, 공산주의는 국가에 의한 재산 소유에 기초한 정부 제도를 말하는데 국가는 일당 정치 체제 하에서 경제를 통제한다.

전세계에 있는 수백만의 무산자들에게 공산주의는 더 나은 생활의 희망을 제공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자본주의 제도에 의해 야기된 끔찍한 사회적 불공평을 없애는 최상의 방법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은 혁명을 통하여 더 나은 생활 조건을 획득할 수만 있다면 당장의 자유의 희망을 포기할 태세까지도 갖추었다. 자유는 그 후에 오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해가 흘러갔다. 공산주의 정부 제도는 여러 나라에서 그 역량을 보일 시간을 가져왔다. 그 결과는 자유와 행복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물질적 번영에 대해서조차도 실망적인 것이었다.

서구 세계에서는 여러 해 동안 많은 젊은이들이—그리고 그리 젊지 않은 얼마의 사람들도—공산주의 이념에 매혹되었다. 그러나 많은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끊임없이 흘러 나오는 불길한 소식들과 일방적인 피난민 행렬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은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사회주의는 더 나은 방법인가?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동료”를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소시우스’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은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최초로, 그리고 그 얼마 후 ‘프랑스’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말은 영국인 ‘로버트 오웬’(1771-1858), ‘프랑스’인 ‘생시몽’(1760-1825)과 ‘샤를르 푸리에’(1772-1837)의 사회 이론에 적용되었다.

‘오웬’은 경쟁과 노동자 착취에 기초한 자본주의 산업 체제를 비난했다. 그는 남녀가 “연합과 협동의 마을”에 살면서 농업과 산업에서의 그들의 노동의 열매를 누릴 수 있는 협력적인 제도를 제창하였다. ‘오웬’주의에 입각한 몇몇 공동체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미국에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결국 붕괴되었다.

‘프랑스’에서, ‘푸리에’는 자기들의 취향에 따라 일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팔란스테리’라 칭하는 모범적인 공동체의 창설을 주창했다. 자기가 주장한 “마을들”을 세우기 위해 국가의 간섭을 용납했던 ‘오웬’과는 달리 ‘푸리에’는 자기가 주장한 제도가 전적으로 자진적인 협동을 근거로 운영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게다가, 그가 주장한 공동체의 성원들은 각자의 노력에 따라 보상을 받을 것이었으며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 허용될 것이었다. ‘푸리에’는 자기가 행복의 추구라는 인간의 선천적인 욕망에 걸맞는 사회 조직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푸리에’주의에 입각한 공동체들이 ‘유럽’과 미국에 실제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실패했다.

현대의 사회주의에 가까운 것은 ‘프랑스’인 ‘생 시몽’의 생각이었다. 그는 과학, 기술, 산업 및 금융 분야의 전문가들이 생산 수단 및 그 관리를 집단적으로 소유할 것을 주창하였다. ‘생 시몽’은 과학과 산업의 협동은, 사람들이 각자의 능력 및 자기들의 일의 양과 질에 따라 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부여받을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었다.

이들 초기의 사회주의 이념들 중 아무 것도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것들은 후기의 운동을 위한 길을 닦아 놓았다. 이것들은 현대 사회주의의 초창기적인 소리였는데 현대 사회주의는 생산의 주요 수단과 물품의 분배를 사회가 소유하고 통제하는 데 기초한 사회 제도라고 정의되어 왔다. 이것의 근본적인 목적은 공산주의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현대의 사회 민주주의는, 혁명과 일당 체제가 아닌 점진적인 개혁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 공산주의와 구별된다.

공산주의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사회주의는 세계적인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유는?

실패의 이유는?

한 가지 이유는 사회주의가 국가주의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 2 ‘인터내셔널’ 즉 1889년에 설립된 사회당들과 노동 조합들의 연맹에 관해 우리는 이러한 기록을 읽을 수 있다. 즉 사회주의가 “전쟁을 반대하는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발표를 많이 했으나 1914년에 전쟁이 터졌을 때 그것은 그 무력함을 드러냈다. 대부분의 국가 구성원들은 자기 정부 편에 섰으며 국제적인 노동자 계급 동맹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브리태니커 백과 사전」.

그 때 이래로 사회주의 운동은 계속 분열되어 왔으며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사회주의자라는 명칭은 전세계의 갖가지 정부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데, 이들 중 얼마는 진보적인 보수 정부와 별 다름이 없는 반면, 어떤 것들은 독재주의적이고 심지어는 전체주의적이다. “사회주의자”라는 단어는, 그것이 물질적인 번영과 행복이 깃든 계급없는 사회에서의 세계적인 형제 우애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성실한 사람들에게 그 의미의 태반을 상실했다.

‘프랑스’의 노동 조합 지도자 ‘에드몽 메르’가 ‘르 몽드’지에서 이렇게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노동 운동이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을 실현하는 데 실패한 역사는 ·⁠·⁠· 많은 투사들—노동자와 지식인 모두—로 하여금 장기적인 희망마저도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 젊은이들은 사회주의 희망의 이러한 약화로 인하여 특히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이처럼, 자본주의,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의 어느 방법을 통해서든, 물질적인 번영과 참된 행복을 가져올 제도를 만들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실패하였다. 미국의 사회 학자 ‘다니엘 벨’은 그 점을 이렇게 시인하고 있다. “급진적인 지식 계급에 대해서, 옛 이념들은 ‘진리’를 상실했으며 설득력도 상실했다. ‘청사진’을 그릴 수 있다고, 그리고 ‘사회 공학’을 통하여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고 있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이념의 종말」.

그러나 이처럼 물질적 번영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의 정치-경제 제도는 이것을 달성할 수 없었는가? 다음 기사에서 그러한 질문을 검토할 것이다.

[각주]

a ‘가톨릭’ 저술가 ‘니노 로 벨로’의 「바티칸 제국」 참조.

[7면 삽입]

많은 사람들은 일방 피난민 행렬로 드러난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8면 네모]

자본주의

상품(토지, 광산, 공장, 철도 등)의 생산 및 분배 수단의 전부 또는 대부분이 개인에 의해 소유되어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경제 제도, 소유자(자본가)는 무산자들(근로자들)의 노동력을 고용한다.

공산주의

모든 재산을 공동 사회 또는 국가가 소유하는 데 기초한 사회 제도. 국가는 일당 정치 체제하에서 경제를 계획하고 통제한다.

사회주의

상품의 생산 및 분배의 주요 수단을 사회가 소유하고 통제하는 데 기초한 사회 제도. 민주 사회 내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주창한다는 점에서 서구 사회 내에서 공산주의와 구별된다.

[6면 삽화]

1842년 영국의 어느 탄광에서 일하는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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