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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신의 부활? 혹은 전체 인간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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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신의 부활? 혹은 전체 인간의 부활?
  • 깨어라!—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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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2 10/15 18-20면

육신의 부활? 혹은 전체 인간의 부활?

많은 사람들은 성서가 죽은 자들의 부활을 약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한 상태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재회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확실히 그것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는 데 그들은 동의한다. 그러나 부활이란 죽기 전에 몸 안에 있던 동일한 원자들로 이루어진 동일한 육신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은, 일부 진실한 사람들로 하여금 전체 문제에 의문을 갖게 한다.

“나는 육신의 부활을 ·⁠·⁠· 믿사옵고”라는 문귀는 “희랍 정교와 ‘가톨릭’교 및 복음주의 기독교에 공통되는 띠”로 알려진 소위 사도 신경의 일부분이다. 바꾸어 말해서, 대부분의 ‘가톨릭’과 희랍 정교회 및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심판 날에 모든 인류의 육신들이 땅이나 바다로부터 일어나 천적 지복이나 지옥의 고초를 받고 있는 자기들의 “영혼”들과 다시 결합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이 인정하는 ‘아다나시어스’ 신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분[그리스도]은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분이 오실 때 모든 사람들은 자기 육신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 자기 행위에 대해 회계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선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고 악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영원한 불에 들어갈 것이다.”

기묘한 상상

이러한 신앙은 얼마의 기묘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한 ‘가톨릭’ 출판물(Our Sunday Visitor)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죽을 때, 영혼은 육신에서 분리된다. 영혼은 심판을 받으며 하늘로 가는 상을 받든지 연옥이나 지옥으로 가는 형을 선고받는다. 한편 육신은 부패하기 시작하여, 그것이 취함을 입은 흙으로 되돌아간다. ·⁠·⁠· 때때로 바다에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이 있으므로 그들은 깊은 물 속에서 분해된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며, 그들이 흙이나 재이든지 깊은 대양 속에 있든지 그들의 원소들을 함께 모으는 일은 하나님에게 아주 간단한 일임은 확실하다.” 사람들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원래의 몸을 다시 구성하기 위하여 땅과 바다에서 그리고 심지어 다른 생명체에서 날아오는 원자들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린다.

이러한 이상한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들은 육신은 악한 죄인들 및 의인들이 그들의 덕행을 증명한 도구이기 때문에 육신이 적절한 상이나 벌을 받기 위해 영혼과 결합한다는 것은 논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동일한 그 ‘가톨릭’ 출판물은 계속 이렇게 말한다.

“영혼이 하늘에서 홀로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상에서 투쟁을 하는 동안 영혼의 동반자였던 육신에게는 확실히 영원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또는 영원한 형벌이 마땅하다면 그것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는 일이 반드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모든 영광과 아름다움과 놀라움 및 광채 가운데 있는 의로운 자들의 육신의 부활과 함께, 또한 소름끼치는 악마같은 몰골을 한 저주받은 자들의 부활도 있다. 왜냐하면 일어난 악인들의 육신들은 끔찍하고 섬뜩하고 혐오감을 줄 것이며 보기에 역겨울 것이다. 그들이 무덤에서 일어나는 것은 오로지 이미 지옥에서의 영원한 형벌을 선고받은 영혼들과 결합하기 위해서이다.” 참으로 끔찍한 묘사다!

신학상의 궁지

불어판 ‘아폴로제띠끄’(변증론)와 같은 ‘가톨릭’ 참고 문헌들이 “육신의 부활”을 “신비”라고 부르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가톨릭’과 희랍 정교회 및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이러한 “신비”를 굳이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은 그들로서는 난처한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육신의 부활”을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문제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부활”이란 단어는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는 것 혹은 생명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실제로 죽는 일이 없다면 부활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교국의 주요 교회들은 모두 영혼불멸의 교리를 가르친다. 그들은 사람이 죽을 때 그는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의 “영혼”은 계속 살아있다. 따라서, 그는 ‘생명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즉 부활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교국의 신학자들은 이 궁지를 선천적 불멸(불사(不死))성으로 인한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는) 부활로 얼버무리게 되었다.

그들은 “육신의 부활”이라는 교리를 고안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리고는 그것을 신비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더라도 산 “영혼”이 육체를 입는 것을 어떻게 부활 즉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더우기, 일부 교회들이 가르치는 “육신의 부활”은 죽기 전에 그 사람이 가졌던 똑같은 몸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떻게 분해와 재순환 과정을 통하여 여러 사람의 몸의 일부가 된 원소들이 죽은 자들이 부활될 때 이 모든 사람들에게 되돌아오게 될 수 있겠는가? 또 하나의 신비이다!

마지막으로, 영물이 잠자고 먹고 마시는 것이 필요한 육체로 인해 부담을 받게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러한 몸이 또한 그리스도교국의 최후 심판 계획의 일부인 “지옥”의 “영원한 불”에서 얼마나 오랫동안이나 생존하게 될 것인가?

이러한 모든 “신비들”은 “불멸의 영혼”과 “육신의 부활”에 관한 ‘가톨릭’과 희랍 정교회 및 ‘프로테스탄트’의 교리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전체 개념에 관해 회의적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들은 또한 성서를 따르는 것이라고도 주장하기 때문에, 이제 성서 학자들과 성서 자체가 이 점에 관해 무어라 말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전체 인간의 부활

영혼-육체의 이원적 이론에 대한 아무런 성서적 확고한 기초가 없음을 시인하는 학자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다음에 몇 가지 대표적인 것들을 인용한다.

“불멸성의 개념은 희랍 사상의 산물인 반면, 부활 희망은 ‘유대’인들의 사고 방식에 속한 것이다.”—「성서 백과사전」(Dictionnaire Encyclopédique de la Bible)(1935년, ‘프로테스탄트’).

“구약에서 영혼은 사람의 일부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전부—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전체 인간을 의미한다.”—「신 ‘가톨릭’ 백과사전」(1967년).

“성서는 영혼불멸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콘사이스 유대교 백과사전」(1980년).

“신약은 사실상 ‘육신의 부활’이나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오로지 ‘죽은 자의 부활’ 혹은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만을 언급한다. 부활되는 주체는 전체 인간이다.”—「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1978년).

성서의 말씀은 “육신의 부활”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며, ‘여호와의 증인’들은 영혼이 죽을 때 실제로 죽는 것이며 고의적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죽음이지 영원한 형벌이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인간들에게 실제적인 부활 즉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희망을 제시하신다고 믿는다. (에스겔 18:4; 로마 6:23; 요한 5:28, 29; 사도 17:30, 31) 이것은 영혼 즉 전체 인간의 부활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곡식 알갱이에게 “그분이 선택하신 종류의 육체”를 주시는 분이므로 사람들을 부활시키실 때에도 그분은 그 일을 하실 것이다. (고린도 전 15:35-40, 예루살렘 성서) 이러한 희망과 사실상 그리스도교 자체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러한 희망은 삶에 참다운 목적을 부여한다. 그것은 지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웅대한 미래가 있음을 알려 준다. 사별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회하게 되리라는 전망은 헛된 꿈이 아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실제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시리라는 굳은 확신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로 강제로 하나님의 법을 범하게 하려고 시도해 온 통치자들에 의해 죽음의 위협을 당하면서까지도 하나님께 성실을 유지하게 해 주는 힘을 받아 왔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편지하였다.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린도 전 15:32) 물론, 그에게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사도 24:15) 참다운 부활 희망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언급했던 목적없는 인생 철학을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당신이 그렇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우리는 당신이 성서적인 부활 희망에 대한 증거를 조사해 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기꺼이 당신에게 그 희망을 알려 주고자 할 것이다. 그러한 지식은 인생에 대한 당신의 전체 견해를 바꾸어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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