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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활, 심판 날 및 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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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파82 7/15 10-12면

부활, 심판 날 및 배교

‘로마 가톨릭’, 정교회 및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죽은 자의 상태와 사후 생명의 희망에 관한 성서의 진리에 등을 돌렸다. 그들은 불멸의 영혼에 대한 고대의 비성경적인 신앙을 더 좋아한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신앙은 ‘바벨론’으로부터 유래하여 기원전 4세기에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에 의해 정립되었다.

그리스도교국의 신학자들은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남녀 및 어린이는 그들이 죽을 때 육신을 떠나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가르침을 수용하기 위해 그들은 임보, 연옥 및 불타는 지옥과 같은 장소들을 고안해 냈다. 이곳에는 육체에서 분리되었지만 그들이 하늘에 있다고 주장하는 “낙원”에 들어가기에 합당치 않은 영혼들이 간다고 한다.

또한, 교회들은 죽은 자들이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오히려 그들은 영혼이 계속 산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생명으로 되돌아 오는 것”이라고 정의된 부활에 대한 성서의 참 교리를 가르칠 수가 없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소위 육신의 부활이라는 것을 고안해 내서, 심판 날에는 의인과 악인의 육신들이 각기 천적 지복(至福)이나 지옥불 저주를 받고 있는 자기들의 영혼과 재결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영혼”들이 심판 날을 기다렸다가 비로소 “천당”, “지옥” 혹은 “임보”나 “연옥”같은 ‘대기실’에 지정될 필요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또한 두 가지 심판의 가르침을 고안해 냈다. 이 중 첫째 것은 ‘사 심판’이라 불린다. 이 심판은 “영혼”이 사망시에 육신을 떠난다고 하는 때에 있게 된다고 한다. 둘째 것은 ‘공 심판’이라 불린다. 이것은 육신이 “부활”될 때 있게 되며, 심판 날에 “영혼”과 재결합한다고 한다.

부활과 배교

전술한 이 모든 신학적 고안물들이 생기게 된 이유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 다음은 정교회 및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특정한 근본적인 부면들에 답습되어 그들이 부활과 그 관련된 논제들인 죽음, 인간 영혼 및 최후의 심판에 대한 성서의 명백한 가르침을 고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면의 배교는 그리스도교 역사 바로 시초에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부활되신 지 겨우 20년이 조금 넘었을 때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은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희랍 ‘고린도’의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린도 전 15:12.

‘바울’의 편지를 받은 ‘고린도’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희랍 철학의 영향을 받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보다 몇년 전에 ‘바울’은 ‘아덴’에서 희랍 철학자들에게 “예수와 부활”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하였다. 그러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을 듣고 어떤 이는 비웃었”다. (사도 17:18, 32, 새번역)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은 사후에 영혼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그들 나름의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추종한 그 외의 희랍 철학자들은 영혼불멸을 믿었다. 그들 중 아무도 성서에서 가르치는 부활을 믿지 않았다.

또한, ‘고린도’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이 10년 후에 정죄한 부활에 대한 배교적인 견해를 이미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 ‘바울’이 그 당시 아마 ‘에베소’에 있었던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 다음과 같이 경고한 사실을 상기하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일어났다, 신세]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디모데 후 2:16-18.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는 이들 배교자들의 말은 죽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부활이란 단순히 상징적이고 영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서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부활을 받은 것이라고 믿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죽은 자로부터의 장래의 부활을 부인하였다. 그러한 사상들은 일부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한 배교적 선생들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발하였다.

배교가 ‘독한 창질같이 번지다’

이 ‘후메내오’는 의문의 여지 없이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언급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알렉산더’라 하는 사람과 함께 그리스도인 회중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았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한 배교자들을 대항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훈계하였다.—디모데 전 1:18-20.

사도들이 여전히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들이 배교와 싸우는 데 본을 세웠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존재하지 않게 되어 ‘억제의 역할’을 못하게 되자, ‘바울’의 염려가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배교자들의 “말”이 ‘독한 창질같이 번지’게 된 것이다.—데살로니가 후 2:3-12; 사도 20:29, 30.

‘에베소’의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가르친 그러한 부활이 순전히 상징적이라는 개념은 후에 ‘그노시스’파에 의해 발전되었다. 기원 2세기와 3세기 초에 ‘그노시스’(“지식”을 의미하는 희랍어 ‘그노시스’에서 유래) 교도들은 희랍 철학 및 동양의 신비주의와 배교적인 그리스도교를 혼합시켰다. 그들은 만사가 다 악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구원은 구속자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비한 “지식”(‘그노시스’)을 통하여 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노시스’교가 ‘독한 창질같이 번진’ 배교의 유일한 형태는 아니었다. 4세기 무렵에 그리스도와 그분의 충실한 사도들 및 제자들이 가르친 참 그리스도교는 ‘진리에 관하여 그릇된’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부패되었다. 학술 사전인 「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은 이렇게 인정한다. “교회의 역사가 더 흐르면서, 성서 밖의 특색들, 그림들 및 사상들 다수가 낙원 개념에 흡수되었다.” 그 성서 사전은 계속하여 “영혼불멸 교리가 신약의 종말론 [인류와 세상의 최종적인 운명에 대한 연구] 및 죽은 자의 부활의 희망을 대신하여 들어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이상에서 그리고 앞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죽음의 실재성을 부인하고 이교 사상인 불멸의 영혼의 자동적인 생존 사상을 용납함으로 말미암아 ‘가톨릭’과 정교회 교회들은 부활과 심판에 관한 성서의 명백한 가르침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모독이 되는 지옥불 및 연옥 교리, 그리고 육체가 부활되어 하늘에서 떠돌아 다니거나 “지옥”에서 영원히 고초를 당한다는 부조리한 사상을 갖게 되었다.

그 “독한 창질”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후 수세기 동안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은 죽음, 부활 및 최후의 심판에 대한 자기들 나름의 비성서적인 학설들을 첨가하였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영혼의 선천적인 불멸성에 대한 ‘가톨릭’ 신조를 추종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육신의 부활” 교리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수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지옥불도 가르친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교직자들은 독창력을 발휘하여 성서에서 가르치지 않는 기타의 교리들을 날조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칼빈’주의 개혁파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영혼들의 운명은 구원으로, 또 어떤 영혼들의 운명은 영원한 저주로 미리 정하셨다고 가르친다. 다른 ‘프로테스탄트’파들은 만인 구원을 믿는데, 그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영혼이 심지어 악인들의 영혼들까지도 구원받는다는 믿음이다.

성서 진리를 고수함

부활과 관련된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배교에 대해 경고한 후에 ‘바울’은 이렇게 부언하였다.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였느니라.]”—디모데 후 2:19.

영혼, 죽음, 부활 및 최후의 심판에 관한 배교적인 사상들의 역사적인 발전을 고찰해 보았고 이 중대한 논제들에 대한 현대 신앙의 혼란을 살펴보았으므로 이제 독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설명되어 있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견고한 터”를 고수해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확신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 영혼, 죽음 및 부활에 대한 성서의 명백한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감정적인 이유로 인하여, 겉보기에는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을 드높이는 것 같지만, 실은 그분의 공의 및 악인들을 멸망시키는 그분의 권리에 대한 의문에 사로잡히게 하는 견해들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한 의문들을 해소하기 위해 다음 기사들은 하나님의 왕국 및 하나님의 심판 날과 관련된 참다운 부활의 희망에 대해 성서가 말하는 바를 살펴볼 것이다. 계속 읽어 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10면 네모]

영혼, 죽음, 부활 및 최후의 심판에 대한 성서의 말씀

인간은 영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자신이 영혼이다.—고린도 전 15:45, 신세 참조.

영혼 즉 전체 인간이 죽는다.—에스겔 18:4.

죽음은 원수이지 벗이 아니다.—고린도 전 15:26.

사후의 생명은 오로지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요한 5:28, 29.

충실성에 대한 상은 영원한 생명이다.—요한 10:27, 28.

고의적인 죄에 대한 심판은 영원한 사망이지 영원한 고초가 아니다.—로마 6:23.

[11면 네모]

그리스도교국 교회들의 공식적인 가르침

‘로마 가톨릭’, ‘영국 교회’ 및 기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아다나시오’ 신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분[예수]은 승천하셔서 아버지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 그분은 그곳으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분이 오실 때 모든 사람들은 자기 육신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 자기 행위에 대해 회계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선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고 악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영원한 불에 들어갈 것이다.”

[12면 네모]

부활에 대한 교회의 견해

“일반 부활의 타당성(합당성)은 보여 줄 수 있지만 그것이 논리적으로 입증되기는 어렵다. (ㄱ) 영혼은 선천적인 육신의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체로부터의 영혼의 영속적인 분리는 부자연스러운 것같이 보인다. (ㄴ) 육체는 영혼의 죄와 덕행에 동참하였으므로, 하나님의 공의는 육체가 영혼의 형벌과 상급에 동참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ㄷ) 육체로부터 분리된 영혼은 자연히 불완전하기 때문에, 영혼이 온갖 선으로 충만한 행복에 완전히 도달하려면 육신의 부활이 필요한 것 같다.”—「‘가톨릭’ 백과 사전」(큰 ‘고딕’체로는 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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