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아 구하던 위안
친애하는 ‘조안’에게
나의 이름은 ‘마리온’입니다. 나는 매우 훌륭한 젊은이인 당신의 남동생 ‘톰’을 왕국회관에서 만났읍니다. 그러므로 이제 당신은 내가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임을 아실 것입니다.
부디 이 편지를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톰’이 나에게 말해준 것을 볼 때,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있읍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저 역시 사고로 아들을 잃었읍니다. ‘마이크’는 스물 세살이었읍니다.
나의 아들 ‘마이크’가 죽었을 때, 나는 참으로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겼읍니다. 가족 내에 다른 사람들이 죽은 일이 있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나이든 사람들이었읍니다. ‘마이크’는 너무 어렸고 참으로 앞 길이 많이 남은 아이였읍니다. 나는 그 아이가 왜 죽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읍니다. 나는 당신에게 내가 어디에서 그리고 어떻게 나의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고 참다운 위안을 발견하였는지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몇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읍니다.
나는 시골 소녀였읍니다. 나는 또한 독실한 ‘가톨릭’교인이었고, ‘가톨릭’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왔었읍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분 속에 세위가 있는 삼위일체가 될 수 있는가? 와 같은 여러가지 질문들을 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수녀들에게 질문하였을 때, 그들을 언제나 “자, ‘마리온’,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란다”는 말로 대답하곤 하였읍니다.
약 27년 전에 나는 ‘마이크’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였읍니다. 나의 시어머니는 그때까지 내가 알지 못하였던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었읍니다. 우리가 일요일 저녁 식사를 위해 어머니의 집에 찾아갔을 때, 어머니는 언제나 성서에 관해 몇 마디만이라도 말씀하시려고 애쓰시곤 하셨읍니다. 나는 듣긴 하였지만, 시어머니에게 혼자있게 해달라고 말하곤 하였고, 시어머니는 그렇게 하셨읍니다.—그 후 20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그러다가 ‘마이크’가 죽었읍니다. 나는 위안을 얻기 위해 성서를 조사하였읍니다. 나는 시어머니가 나에게 주셨던 현대 영어 번역판으로 갔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랍어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며—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나는 내가 위안을 찾는 일에서 막다른 길에 도달하였다고 생각하였읍니다.
나의 어머니는 ‘마이크’가 하늘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의 어머니”에게 9일간의 기도를 드리라고 계속 나에게 말씀하셨읍니다. (‘가톨릭’교인으로서 당신도 알다시피, 어머니는 죽을 때 영혼은 연옥으로 가지만 살아남은 친구와 친척들이 그 영혼이 연옥에서 나와 하늘로 들어가도록 기도할 수 있다고 믿었읍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였읍니다. 나는 위안을 받으려고 교회를 찾아 갔읍니다. ‘마이크’를 위해 말해 주는 ‘미사’를 갖기 위해 갔지만, ‘미사’에서 이야기할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마이크’를 위한 ‘미사’는 일년에 단지 세번만 가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을 상상해 보십시오! ‘오우!’ 나는 ‘내 남은 일생을 바쳐야 하고, 내가 죽는다면 ‘마이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고 생각하였읍니다. 또다시 나는 위안을 찾는 일에서 막다른 길에 도달하였읍니다.
나의 남편은 어땠느냐구요? 나는 도저히 그에게서 위로를 구할 수 없었읍니다. 그는 ‘마이크’의 죽음으로 매우 큰 타격을 받았읍니다. 그는 너무 우울증에 빠져 내가 그를 돕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나는 위안을 발견하는 일에 관한 한 또 다시 막다른 길에 도달하였읍니다.
이 때쯤에 나는 장의장에서 시어머니에게 말한 일을 기억하였읍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왜 하나님은 ‘마이크’를 내게서 데려가셨나요? 왜 그분은 다른 사람을—거리의 부랑자나 교도소에 있는 사람을 데려가지 않으셨나요? ‘마이크’에게는 좋은 여자 친구와 좋은 직장 그리고 훌륭한 성품이 있었어요. 그 아이는 좋은 아이였었죠.”
“‘마리온’, 하나님이 네게서 ‘마이크’를 데려간 것이 아니란다” 하고 시어머니는 팔로 나를 감싸시면서 확고하게 대답하셨읍니다.
그 때 나는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다음 6개월 동안 그 말씀들이 계속 내 머리 속에 떠올랐읍니다. 나는 분노와 우울증과 고독을 겪었으며 거의 밤낮으로 기도하였읍니다. 나는 심지어 ‘마이크’와 같이 되는 것이 낫겠다고까지 생각하였읍니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읍니다. 그때, 나는 실제로 ‘여호와의 증인’을 찾아 나섰읍니다.
‘조안’, 오늘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듯이, 나의 의문들은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를 연구한 결과 모두 대답되었읍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마이크’를 내게서 데려가셨을까요? 아닙니다! 성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 5:12) 그러므로, 우리가 죽는 근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최초의 인간 부모로부터 죄와 불완전성을 유전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너무 일찍 죽는 이유에 대해, 성서는 더 나아가 이것이 “시기와 우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전도 9:11.
‘마이크’의 영혼은 연옥에서 불로 죄를 씻는 경험을 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성서에 의하면, 죽은 자는 의식이 없습니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느니라.] ···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인류의 공통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도 9:5, 10.
나는 ‘마이크’를 다시 보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나에게는 그러한 희망이 있읍니다. 성서는 대다수의 죽은 인류가 바로 이 지상의 의로운 새 사물의 질서에서 생명을 즐기기 위해 되돌아 올 것임을 약속합니다. ‘조안’, 예수의 이러한 가슴을 뭉클케 하는 말씀을 들어 보세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 (요한 11:25) 사도 ‘바울’도 그와 비슷하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있읍니다. ··· 그 희망은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다 같이 부활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24:15, 새번역) 그리고 그 때의 지상 상태를 묘사한다면 다음의 계시록 21:3, 4에서 말한 바와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언제 이러한 일이 일어날까요? ‘조안’, 나는 그때가 매우 가깝다는 것을 알고는 가슴 설레였읍니다. 성서는 오래 전에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악화 일로에 있는 세상 상태가 우리가 현 악한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에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임을 분명히 알려 주었읍니다.—디모데 후 3:1-5, 새번역.
현재 나는 인생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읍니다. 나는 내가 필요로 한 위안을 발견하였으며, 나는 이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망으로 잃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으며 그들이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있음을 성서로부터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읍니다. 나는 그들에게 놀라운 부활의 희망을 전할 수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당신도 당신의 아들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며, 그 때 당신은 함께 평화롭게 살 것이며 고통이나 슬픔이 결코 다시 없을 것입니다.
‘조안’, 그것은 조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성서를 조사해 보시고 성서가 당신에게 내가 찾아 발견한 위안을 갖게 하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성서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받기 원하신다면, 기꺼이 당신을 도와 드리겠읍니다.
이만 이야기를 끝맺고자 합니다. 시간이 있으셔서 회답을 해 주신다면 기쁘겠읍니다.
‘마리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