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준의료 종사자의 이야기
어느 일요일 아침 ‘캘리포오니아’ 주 ‘헌팅턴 비이치’ 소방서에 배치되어 있는 준의료 종사자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선 저편에서 대단히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와주세요! 남편이 죽어가고 있어요!” 내가 짝과 함께 도착했을 때는 ‘어파아트’의 방마다 피가 뿌려져 있었고 한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목을 감싸쥐고 있었다. 그의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동맥피가 뿜어져 나왔다. 발생한 일은 이러했다. 그는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는 자기 아내를 구타했다. 그러자 아내는 20‘센티미터’가 넘는 부엌용 칼로 그의 목을 찔렀다. 그 칼은 뇌에 피를 공급하는 경동맥 하나를 절단하였다. 그는 고통으로 온 ‘어파아트’를 뛰어다녔다.
이제는 바닥에 누워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죽어가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나는 목을 눌러주고는 양쪽 팔에 하나씩 두 군데에 IV(정맥내 영양 보급)를 시작하여 ‘링게르’ 유산염이라고 불리는 대용 혈량 증량제로 혈량을 보충하였다. 그 다음에 우리는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수술실에서 외과의를 도울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가 했다. 다리에서 떼어낸 혈관으로 경동맥을 이었다. 그는 살았다.
내가 준의료 종사자로 일하는 동안, 그러한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을 구출하는 것은 나에게 매우 보람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더욱 보람이 있는 것은 이러한 극적인 사건들이 내게 또 다른 생명을 구하는 사업에 관해 깨우쳐 주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나 자신의 생명을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관련된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이야기는 내가 다섯살 되었을 때에 시작된다. 나의 아버지는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나와 나의 두 형제들을 ‘증인’으로 훈련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6세가 되었을 때, 나는 매우 반항적이 되었다. 나에게 있어 ‘증인’의 생활은 너무 제한을 가하는 생활이었다. 그래서 나는 만 17세가 되기 직전에 더 이상 집회에 나가거나 호별 방문 전도를 하지 않겠다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꾸짖고 여호와께 대한 사랑이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성경으로부터 설명해 주었다. 그분은 내가 만일 아버지 집 지붕 아래서 살려면 집회에 참석하고 전파하는 일을 계속해야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어떻게 가족보다 이 하나님 여호와를 더 사랑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집에서 나와 고등학교 친구 집에 들어가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얻는 데 집중하였다. 또한, 고등학교에서 만난 한 여자와 계속 만났다. 19세 때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결혼할 만한 자격도 온전히 갖추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때 애인인 ‘팜’과 결혼하였다. 우리는 지난 15년간 결혼 생활을 해 왔으며 딸 둘을 낳았다. 장성하면서 나는 인생에는 현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낳은 이 두 어린 딸이 5년이나 10년 후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 것인가? 이 사물의 제도는 그들에게 무엇을 제공해 줄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
나는 많은 시간을 요하고 승진할 기회가 거의 없는 기계상에서 근무하던 직업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소방수의 직업을 구했다. 24시간 교대로 일하기 때문에 집에 하루 종일 있는 날이 많았다. 이제 나는 내가 원하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이 남는 시간을 사용해서 돈을 더 벌고 더 많은 것들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축 일에서 부업을 구하였다. 나는 24시간 교대로 소방수로 일한 다음에, 거기서 건축하는 곳으로 가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곤 하였다. 나는 집을 나간지 34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이해할 만하게도, 가족 관계가 긴장되게 되었다.
‘헌팅턴 비이치’ 소방서가 새로운 계획인, 준의료 종사자 계획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였다. 나는 그것에 가담하였으며 그 다음 여덟 달 동안 ‘캘리포오니아’ 대학 ‘어어빈’ 의료원에서 집중적인 교습을 받았다. 우리가 하루 16시간씩 배운 모든 것은 응급 약품을 다룰 준비를 갖추는 것이었다. 외상 전문 외과 의사라고 불리는 특별히 훈련받은 의사들은 우리가 살균한 병원 수술실에서가 아니라, 병원 밖의 불타버린 집에서, 파손된 자동차에서, 더러운 골목에서, 연기가 가득찬 술집에서, 공터나 어디에서든지 생명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쳤다. 나는 수없이 많은 시간 외과의들과 함께 응급 수술실에 서서, 심장 절개 수술 또는 폐 절개 수술을 하는 것을 보았으며, 또는 으스러진 몸을 원형으로 돌려놓는 일을 하였다.
이 훈련을 받는 동안 나는 생명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하나님, 즉 창조주에 관해 가르쳐 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또한, 경외감 가운데서 말한 시편 필자 ‘다윗’의 다음과 같은 말을 여러 차례 생각하였다.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시 139:14) 나는 하나님의 지혜와 그분의 창조물의 설계를 느끼기 시작하였으며, 단지 인간 몸만이 아니라 동물, 식물, 땅, 수천억개의 별들이 있는 수십억개의 은하들 가운데서 그러한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것들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많은 말씀이 되살아났다. 내가 집을 나온 후에 아버지를 필요로 한 때들이 기억났다. 아버지는 항상 사랑과 친절을 가지고 도움이 되어 주었다. 그분은 나를 결코 버리지 않으셨다. 그분은 내가 어디를 가든지 항상 「파수대」와 「깨어라!」를 받아보도록 조처해 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교훈을 배운 것이 기억난다. 즉, 자기 자녀를 결코, 포기하지 말라—결코 그러지 말라는 것이었다. 예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방탕한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나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그들은 무엇인가를 그들 내부에서 갑자기 깨달아 다시 부모에게 돌아와 여호와를 섬기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누가 15:11-24.
여덟 달 간의 준의료 종사자 과정을 마친 후에 나는 가족과 함께 두 달 간의 휴가 여행을 떠났다. 발전되었던 가족 간의 긴장이 그 두 달 동안 상당히 치유되었다. 나는 사실상 다시 아내와 완전히 사랑에 빠졌다. 나는 아내를 소홀히 생각하였음을 깨닫게 되었고, 남편이 사랑하고 지원하는 아내를 가지는 것보다 더 훌륭한 상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또한 우리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나는 우리에게 가족 성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것을 ‘여호와의 증인’이 사회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팜’은 ‘여호와의 증인’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라왔다. 그래서 아내가 쉽사리 동의했을 때 나는 놀라기도 하였고 기쁘기도 하였다.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한 해 후인 1974년에 우리는 침례를 받았다.
내가 훈련받는 동안 생명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를 깨달았음을 말했지만, 현재 준의료 종사자로서 나는 신체가 얼마나 강하게 생명에 고착하는지 그리고 매우 끔찍한 얼마의 부상을 치유하고자 얼마나 강하게 투쟁하는지를 보고 감명을 받게 되었다.
한 사람은 이 이야기 서두에서 말한 칼에 찔린 사람이었다. 거기서 말한 것처럼, 그 칼에 찔린 희생자는 살았지만, 그는 언어 능력을 일부 상실하게 되었으며 오른쪽 팔과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뇌로 들어가는 피 공급량이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회복되고 있었을 때, 나는 그를 보러 갔다. 나는 종종 내가 도왔던 사람들을 이같이 찾아갔다. 그것은 그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가지고 있는 희망에 대해 증거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현재 그가 회복되고 있는 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영구적인 회복은 왕국 통치 아래 이 땅에서 가능할 것임을 설명해 주었다. 아내와 나는 이 부부와 4개월 동안 성서를 연구했다. 그들은 마침내 헤어졌지만 최근에 우리는 그 남자가 아직도 증인과 성서를 연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다른 경우에 나는 물에 빠진 사람에 대한 도움 요청에 응했다. 짝과 내가 도착했을 때, 한 이웃 사람이 일곱살 밖에 되지 않은 한 소녀를 수영장 바닥에서 방금 건져냈다. 그 소녀의 맥박은 뛰지 않았으며 숨을 쉬고 있지도 않았다. 이 상태는 의료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임상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말하는 상태였다. 그 소녀는 생물학적으로는 아직 사망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내부에 생명의 불꽃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한개의 IV를 시작하였으며 강심제를 주사하였으며 또한 심장이 다시 박동하도록 자극하기 위해 전기 충격을 가했다.
이 때쯤해서 그 소녀의 부모가 도착했다. 두 사람은 모두 병적으로 흥분했으며 억제해야만 하였다. 우리는 그 수영장 옆에서 22분 동안이나 그 소녀에 대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한번이라도 맥박을 뛰게 하거나 스스로 호흡하게 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든 경우에 있어 본부 병원의 의사와 전화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으며, 이 경우에는 그 소녀를 포기하고 데리고 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녀를 거의 회생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의사로부터 조금 더 시도해 보라는 허락을 받았다.
우리는 CPR(심폐 회복)을 계속하였다. 나는 주사기로 흉강을 통과하여 그 여자 아이의 심장에 도달하였다. 우리는 희미한 심장 박동을 감지하였다! 우리는 계속 그에게 호흡을 시켰지만, 맥박이 좀더 강해졌을 때 그 소녀는 스스로 호흡을 시작했다. 그 소녀는 살아났다. 그는 두뇌에 약간의 손상을 입어 그의 다리가 약해졌지만, 어렸기 때문에 잘 회복하여 7년 후인 지금은 건강하다.
어느 날 나는 집집으로 왕국 소식을 전하고 있었는데, 한 여자가 나에게 매우 화를 냈다. 그는 나에게 나가라고 말하고는 심지어 길에까지 쫓아 나와서 온갖 욕을 해대는 것이었다. 거기서 나는 돌아서면서, “이 집이 6개월 전에 한 어린 아기가 호흡을 멈추어 죽었다고 생각했던 집이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그 부인의 얼굴에 완연한 놀라움의 빛이 번졌다. 조용해진 소리로 “댁에서 그걸 어떻게 아시죠?”라고 그는 물었다.
“나는 그 애의 생명을 구한 준의료 종사자입니다.”
나는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회에서 유용한 사람들이며, 그가 비난하는 것처럼 주말에 사람들을 괴롭히는 골치아픈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나를 집안으로 초대해 들였다.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하는 일과 우리가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는 이유에 관해 약 20분간 이야기하였다. 나는 그에게 「파수대」와 「깨어라!」를 전해 주었다.
나의 아내가 집집으로 왕국 소식을 전하고 있었을 때 그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아내는 한 노인에게 접근하였는데 그는 아내에게 “필요없어요! 여기서 나가요!”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때 나는 다른 집에서 전도하고 있었지만, ‘팜’과 내가 다시 만나 함께 걷고 있었을 때 아내는 나에게 그 일에 대해 말해 주었다. 우리는 그의 집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는 밖에 있었다. 나는 그를 알아 보았다. 그의 아내는 심한 발작을 일으켜 거의 죽게 되었었다. 나는 그의 요청에 응한 준의료 종사자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으며, 아내는 내 옆에 있었다. 나는 그에게 “부인께서는 요즘 어떠하신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또한 나의 아내를 그에게 소개하였다. 나는 그가 무례하게 대했던 사람이 나의 아내이며 나 또한 성서 교육 사업에 종사하고 있음을 그가 알기를 원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팜’에게 사과하였다.
또 한번은, 어떤 집을 방문하였는데, 한 여자가 나왔다. 나는 내 이름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잠깐만요!”라고 그 여자가 중단시켰다. “당신이 바로 ‘래리 마아쉬버언’이죠! 나는 댁을 기억해요! 당신은 불타고 있는 비행기에서 나의 남편을 끌어내주었어요!” 그는 계속 말했다. “당신은 나에게 매우 친절하셨어요. 남편이 살 것이라고, 그가 괜찮아질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었어요.” 그는 살았지만, 심하게 화상을 입었다. 그 여자는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우리는 좋은 대화를 나누었으며 성서 서적을 전해 주었다.
비슷한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으며, 단지 대문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시장에서, 거리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당신은 우리 어린 딸을 위해 수고하셨읍니다,” 또는 “당신은 우리 어머니를 구해 주셨읍니다”라고 말하거나 일어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였다. 그것은 보람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모든 요청들이 보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요청에 응했을 때는 여자가 나의 팔을 끌어 안고 “나는 죽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는 임상적으로는 죽었다. 짝과 나는 CPR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의 맥박을 다시 뛰게 하려고 하였으나 멈추고 말았다. 우리는 세시간 동안 노력한 끝에 마침내 그를 소생시켰다. 그가 나에게 한 첫마디는 “당신은 나를 죽게 내버려 두었어야 했어요”라는 것이었다. “오 이럴 수가!” 나는 신음했다. 그는 늙고 병들었으며 사는 것에 지쳐있었다. 우리는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의 심장은 매우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그들은 심장 박동 지속 장치를 부착해 주었다. 최근에도 그가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다른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근처의 소방서에서 나보다 먼저 온 세명의 소방수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몸짓으로 부엌을 가리켰다. 연로한 부부가 죽은 채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남자는 불구였는데 두 다리가 없었다. 그것은 깊이 생각한 살인—자살이었다. 그의 아내는 바닥에 누워 베개를 베고 얼굴을 남자에게서 돌리고 있었으며, 그는 아내의 뒤통수에 총을 쐈다. 그 다음에 그는 그 옆에 누워 아내에게 팔을 두르고 총을 자기 머리에 대고 쐈다. 자녀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그들이 서로 사랑하지만 경제와 건강 문제가 너무 커서 살기에 지쳤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죽기로 결정하였다. 너무도 애처로운 비극이었다. 소방수들이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준의료 종사자로서 봉사한 5년동안(지금은 미국 전역에 걸쳐 화재 예방에 대한 강의를 하지만 아직도 매달 몇 차례 준의료 종사자로 일한다), 70 내지 80명의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았다. 대다수는 생명에 집착하였으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나는 그러한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전복되어 화염에 싸인 자동차에 갇힌 젊은이가 눈에 선하다. 나는 창문으로 기어들어가 단지 그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으며 구해 줄 것을 간청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모르고 있던 사실—그의 하반신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으스러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를 꺼낼 수 없었다. 나는 단지 그의 머리를 잡고 그가 죽을 때까지 그와 이야기를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일을 하면서 나는 엄청난 마약 남용을 보았다. 나는, 약자로 PCP라 하며 보통 환각제라고 부르는 염산 ‘펜사이클리딘’을 사용했던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고 또 요청하고 또 요청한 것에 응한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정신을 바꾸어 놓으며 매우 거칠고 산발적인 감정의 폭발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준다.
한번 우리는 새벽 1시에 어떤 청년의 어머니로부터 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어머니는 그에게 어느 것에도 반응을 보이게 할 수 없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거실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키가 약 175‘센티미터’였으며, 매우 여위어 체중이 약 61‘킬로그램’이었다. 경찰관 두명이 거기에서 어머니로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짝과 나는 그와 이야기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그는 “몽롱”하여 환각에 빠져 있었다. 그는 눈을 움직이거나 깜박이지 않았으며, 팔과 다리를 뻣뻣하게 벌리고 있었다. 그는 그와 같이 사지를 쭉 뻗친 채로 30분 동안이나 있었다. 의자에 앉아 팔과 다리를 들고 3분 동안 있어 보라. 그리고 생각해 보라. 그는 10배나 더 오래 그렇게 하고 있었다! 우리는 중요한 증세를 검사하기 시작하였다. 혈압, 맥박 수, 호흡, 그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는 안정된 상태에 있는 것 같아 보였으며 실제 아무런 위험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정하였다. 이 때까지도 우리는 그가 어떤 마약에 취했는지 몰랐지만, 경찰관 중의 한 사람은 그것이 PCP인 것 같다고 추정하였다.
이제 구급차가 도착하여 여섯 명의 응급 요원이 있게 되었다. 우리가 그를 바퀴 달린 들것에 옮겨 놓기 위해 들기 시작했을 때 그가 갑자기 움직였다. 그는 문자 그대로 우리들 여섯명을 떨쳐버렸다. 나는, 그의 등 뒤에서 팔로 그의 목을 감아 잡았을 때 그는 간단히 손을 뒤로 뻗쳐 내 ‘셔어츠’를 잡더니 실제로 나를 머리 위로 잡아 올려 바닥에 던져버린 것을 기억한다! 나는 183‘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가 86‘킬로그램’이었지만 그는 나를 마치 2.2‘킬로그램’짜리 설탕 한 포대를 던지듯이 던져버렸다! 마침내 우리 여섯명은 그를 꼼짝 못하게 하여 수갑을 채우고 바퀴 달린 들것에 묶었다. 그는 살았다. PCP는 보통 생명을 앗아가지 않지만, 마약에 대한 특별 연구를 한 한 약리학자에 따르면, 그것을 계속 사용하면 뇌가 “고통받게” 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이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스스로 말하거나 생각할 줄 모르게 된다.
또 다른 경우에 짝과 나는 이미 현장에 도착해 있던 경찰들로부터 소란스러운 해변 ‘파아티’에 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들은 PCP에 취한 한 남자를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우리의 도움으로 경찰은 마침내 그에게 수갑을 채웠다. 경찰의 수갑은 잘 만들어진 것이며, 튼튼한 강철 사슬로 두개의 수갑이 연결되어 있다. 이제 이 젊은이는 그러한 흥분 상태에 빠져 두개의 수갑을 연결하는 쇠사슬을 끊어버렸다! 두명의 경찰관, 나 그리고 다른 준의료 종사자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오로지 그를 땅에 누이는 것 뿐이었다. 사실상 경찰관 한 사람은 그 남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결국 경찰봉을 사용해야 했다. 그 다음에 그들은 두 벌의 수갑을 채웠으며, 우리는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이 두 가지 경우는 PCP가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힘을 준다는 것을 여실히 알려 준다. 심지어 보았을지라도 여전히 믿기가 어려울 것이다.
‘헤로인’은 우리가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또 다른 마약이다. 그것은 중추 신경계를 억제하여 호흡을 멈추게 한다. 나는 한 요청에 응해 ‘헤로인’ 사용으로 쓰러진 한 남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헤로인’에 취한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바늘이 아직도 그의 팔에 꽂혀 있었다. 그는 호흡을 멈추어 창백해졌다. 나는 그에게 IV를 시작하였으며 나의 짝은 그의 목구멍에 관을 꽂아넣어 그가 숨쉬게 해 주었다. 그는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우리는 “마약 해독제”를 뜻하는 ‘나르칸’ 얼마를 투여하였다. 그것은 거의 즉시 ‘헤로인’의 영향을 제거한다. (그러나 PCP를 중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러한 약품을 사용할 수 없다.) 그 남자는 수초 내에 회생하였다. 다른 마약 중독자들이 이것을 보고 겁에 질려 우리에게서 ‘나르칸’을 빼앗아 가기를 원했다. 그들은 ‘헤로인’을 좀더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그것을 원한 것이다.
청소년들에게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하더라도, 그들이 마약 사용을 끊은 지 5년이나 10년 후까지도, 마약이 정신과 육체에 미치는 손상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그들은 믿고 싶지가 않기 때문에 믿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그들을 단 하루만이라도 데리고 ‘캘리포오니아’의 UCI 의료원에 있는 정신 건강 병동에 가서 여러 해 동안 마약 남용에 빠져온 사람들—편집성 및 긴장성 환자들—을 보게 한다면, 그들은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나는 LSD로 1,000번 이상 환각 증상에 빠진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실제에 있어서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정신은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거의 식물이나 다름없다.
준의료 종사자가 되고 또한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 되는 것은 독특한 조화이다. 준의료 종사자로서 나는 부상당한 사람이 회복되도록 돕고 있고, 심지어 일부 사람들을 임상적인 죽음으로부터 회생시키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만족스러운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왕노릇하시는 여호와의 왕국에 관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을 영적으로 치료하며, 심지어 그들이 영적으로 생명에 이르도록 돕는 것은 훨씬 더 만족스러운 일이다. 준의료 종사자로서 행한 선은 일시적인 것이다. 영적으로 행한 선은 낙원이 된 땅에서 영속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준의료 종사자로서 일하면서 나는 많은 고통을 보게 된다. ‘증인’으로서 일하면서 나는 이 고통이 어떻게 영속적인 건강과 행복 그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대치될 것인지 알려 주고 있다. 많은 슬픔과 고통과 죽음을 볼 때면 내 마음이 아프지만 여호와의 다음과 같은 약속을 생각할 때 내 마음은 즐거움으로 가득찬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겨주실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처음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계시 21:3, 4, 새번역.
내가 방탕한 아들처럼 정신을 되찾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래리 마아쉬버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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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련을 받는 동안 나는 생명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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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사기로 흉강을 통과하여 그 여자 아이의 심장에 도달하였다. 우리는 희미한 심장 박동을 감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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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이 6개월 전에 한 어린 아기가 호흡을 멈추어 죽었다고 생각했던 집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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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그의 머리를 잡고 그가 죽을 때까지 그와 이야기를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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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셔어츠’를 잡더니 실제로 나를 머리 위로 잡아올려 바닥에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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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개의 수갑을 연결하는 쇠사슬을 끊어버렸다!
[5면 삽화 ‘래리 마아쉬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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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의료 종사자로서 나는 많은 고통을 보게 된다; ‘증인’으로서 나는 이 고통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 알려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