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염색체를 지닌 어린 소녀—‘발레리’의 이야기
“‘축하해요! 받아쓰기가 하나도 틀리지 않았군요! 산수 실력도 좋아지고 있어요! 이렇게 발전한다면, 내년에는 한 학년을 월반할 수 있겠어요.’
“그 일이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인가요? 더구나 이미 2학년이나 처져 있는 12세된 여자아이에게 말이지요. 하지만, 아빠, 엄마, 오빠, 친구들이 모두 기뻐서 어쩔줄 몰라 하고 있군요. 저는 ‘다운’ 증후군a을 앓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족과 제 생활이 언제나 쉬운 것만은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이쯤하고 아빠가 이야기하도록 부탁하겠어요.”
1971년 2월 6일에, ‘프랑스’ ‘파리’ 서남부 교외인 ‘뫼동라포레’에 있는 한 개인 병원에서 우리는 조그마한 딸을 순산했다. 우리는 딸이 생겨 특히 기뻐했다. 이미 만 네살이 되어 가는 아들만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기는 작았고, 체중 미달이었다. 의사는 아기를 ‘파리’에 있는 한 소아과 병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이 소아과 병원의 한 의사가 나를 만나자고 불렀다. 무엇 때문이었는가? 13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다음과 같은 그의 첫마디는 아직도 내 머리에 아로새겨져 있다. “댁의 갓난 딸은 21 삼염색체증[‘다운’ 증후군] 환자라서 아마 그다지 오래 살지 못할 겁니다. 이런 아이들은 대개 생후 5년 내에 죽습니다. 결과야 여하 간에, 살아도 신체 장해자가 될 겁니다.”
우리의 반응
아내를 만나러 산부인과 병원으로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이제부터 우리 생활이 이로 인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내는 이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무슨 말로 알려 줄까? 내 조그마한 딸아이가 걸을 수라도 있을까? 내 말을 알아 들을 날이 올까? 학교 교육은 어떻게 하지? 그 애의 오빠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걱정만 늘어났다.
아내는 이 소식을 매우 담대하게 받아들였음을 말해야겠다. 하지만 우리 가족과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가 적이 염려되었다. 대개 새 아기가 태어나면, 친척, 친구, 이웃들이 제일 처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방문해서 아기를 칭찬하는 일이다. 그러면 아기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가 정말 예쁘군요!”라고 감탄하는 말을 듣고는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아기가 ‘다운’ 증후군에 걸려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어떠한가? 부모가 아기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는데,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유모차를 들여다 보며 아기를 칭찬해 주려고 하다가 ··· 그만 이해의 미소를 띠고마는 경우, 그 부모가 어떻게 느낄 것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잠깐이나마 우리가 수치감, 심지어 실패감으로 괴로와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부모가 우리에게 자기 자녀의 달라져 가는 모습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 고통은 커져만 갔다. 우리의 아기가 결코 다른 아이들과 꼭같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냉엄한 현실이 끊임없이 가정을 괴롭혔다. 하지만, 우리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는 성서 말씀을 알고 있었다. (시 127:3)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여 우리의 어린 딸 ‘발레리’를 돕고자 노력했으며, 그 아이는 참으로 “상급”임이 드러났다. 우리는 ‘발레리’의 훌륭한 특성과, 그가 우리에게 나타내 온 사랑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적응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발레리’의 출생은 우리 가족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분명히 이 때는 자기 연민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발레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모두 하려고 노력했다. 우선, 아내가 직장을 포기했다. 아내가 집에서 가외의 시간을 바치자, 우리의 두 자녀에게 분명히 축복이 되었다.
‘발레리’는, ‘다운’ 증후군 환자로서의 얼굴 특징과 아울러,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다른 특징도 가지고 있었다. 귀와 코의 통로가 매우 좁았지만, 정밀 검사를 한 후 의사들은 청력이 정상이라고 확언했다. 또 우리는 심장 질환을 염려했다. 이 증세 역시 자주 일어나는 합병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레리’의 심장은 좋았고, 우리는 그가 뛰고, 놀고, 다른 아이들처럼 운동에도 참가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발레리’가 생후 9개월이 되었을 때, 팔 다리를 거의 움직이지 못하며 혼자서 앉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우두커니 앉아 일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아내는 짧은 체조 교육을 실시하여, 아기가 일어서며 머리를 똑바로 가누도록 가르쳤다. 이것은 매우 효과가 있음이 드러났다. ‘발레리’는 똑바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으며, 생후 18개월이 되어서는 걸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발레리’에게는, 부지중에 혀를 밖으로 내미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꼬마 숙녀치고는 매력적이라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조치를 취해, 아기가 그렇게 할 때마다 턱 밑을 약간씩 때려 주었다. ‘프랑스’ 격언에는 “아름다와지려면, 고통을 겪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머지않아 단지 쳐다보기만해도, 아기는 혀를 집어넣게끔 되었다. 간단하지만, 우리의 방법은 효과적임이 드러났다. 이제는 고의적이 아니라면 혀를 밖으로 내미는 일이 없으며, 만일 고의적으로 내밀 때는 엄히 꾸중을 한다!
“꼭 해내고 말테야!”
얼마가 지나자, 체조 교육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발레리’가 균형을 잃었고 제대로 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그 아이에게는 줄넘기가 참으로 도전이었다. 해보고 또 해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는 마당 한 귀퉁이에서 그 애가 혼잣말로 “한번, 두번, 이런 틀렸네!”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곤 했다. 어떤 때는 줄넘기 줄을 땅에 팽개치고는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러다가는 다시금 집어 든 후 “꼭 해내고 말테야!”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들었다. 우리의 도움을 받아 그 애는 용기와 꾸준함을 나타내 마침내 해내고 말았다. 지금은 다른 어린 소녀들과 잘 놀며, 두명의 동무들이 돌려 주는 고무줄로 줄넘기를 즐기고 있다.
정신 운동 과정을 밟은 것은, ‘발레리’가 몸동작을 동시에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2년 후에 우리는 그 과정 대신 한 무용 학교에서 ‘발레’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여기서는 균형 감각을 발전시키도록 더 가르쳤다. ‘발레리’는 무용을 즐기고 있으며, 심지어 학년 말에 발표된 공개 무용극에서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역을 맡기도 했다. 우리도 모르게 여러 명의 의사들과 정신 의학자들이 참석하여 ‘발레리’의 묘기를 지켜 보았다.
지금 ‘발레리’는 자전거를 배우고 있으며, 잘 발전하고 있다. 또 정신 능력이 진보함에 따라 신체적 외모도 좋아지고 있다. 사실상 지금은 때때로 낯선 사람들은 ‘발레리’가 신체 장해자라는 사실을 전혀 못 느끼고 지나치는 정도이다!
학교 교육
‘발레리’를 학교에 보내야 할 때가 왔을 때, 문제가 생겼다. 그 아이를 정규 학교에 보낼 것인지, 아니면 특수 교육 기관에 보낼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어떤 전문가들은 후자를 권고하면서, 타당해 보이는 논증을 펴 자기 의견을 제시했다. ‘발레리’는 보다 나은 보살핌을 받을 것이며, 비슷하게 신체 장해자들인 급우들과 보다 잘 어울릴 것이라는 논리였다.
어떤 어린이에게는 그것이 사실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발레리’를 정규 학교에 보내기로 작정했다. 다른 청소년들처럼 신체 장해자인 우리 아이도 주위 사람들을 모방할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생각에, 정상적인 어린이들과 접촉하는 것이 ‘발레리’를 위하여 유익할 것같았으며, 사실이 그러하였다.
또한 우리는 ‘발레리’가 정규 학교에 다녀, ‘다운’ 증후군 환자인 많은 어린이들이 갖고 있는 이점 즉 훌륭한 기억력을 최대한 이용하기를 바랐다. ‘발레리’가 이름을 기억하는 힘은 놀랍다. 사실상, 어떤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면, 우리는 흔히 ‘발레리’에게 묻는다! ‘발레리’는 보통 기억해 낼 수 있으며, 심지어 그 사람을 여러 달이나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더라도 그러하다. 기억력이 뛰어난 것은 학교 생활에 큰 보탬이 되었다.
물론, 우리는 계속해서 교사들의 협조를 얻을 필요가 있었고, 이 일이 언제나 쉽지는 않았다. ‘발레리’는 두번이나 적응에 문제를 겪었고, 그로 인해 학교 교육에서 2년이 처졌다. 대체적으로, ‘발레리’의 교사들은 협조해 주었고, 이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보육 학교를 마칠 때쯤, 우리는 ‘발레리’의 교사에게 아이의 읽기 능력을 집중적으로 지도해 주면 감사하겠다고 부탁했다. 그 여교사는 정년 퇴직이 다 되어 가는 노련한 선생이었는데, 친절하게도, “최선을 다 하겠읍니다. ‘발레리’가 올해에 숙달하지 못한다면, 내년에는 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 딸이 몇달만에 읽기를 배워 자기 반의 다른 어린이들을 따라갈 수 있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교사들이 이처럼 헌신적으로 보살펴 준 데 대해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다!
돕기에는 부모가 제일 좋은 위치에 있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녀들에게 적당한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데, 부모가 최적임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운’ 증후군 병을 앓는 어린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발육이 억제된다. 시초부터 신체 장해의 정도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므로, 바로 부모들이 일찍부터 훌륭한 일반적 교육을, 다른 자녀에게 베풀듯, 그 아이에게도 베풀어야 한다. 어린이가 성장하면서, 약한 부면들이 명백해지면, 부모들은 그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 ‘발레리’의 경우, 우리는 자격있는 언어 요법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매우 유익함을 알게 되었다. 이 부인은 ‘발레리’가 단어를 정확하게 발음하며, 똑똑히 말하도록 도와 주었다. 또한 자기 생각과 감정을 글로 써보도록 도왔으며, ‘발레리’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정상적인 대화를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보기에, 특히 우리 딸은, 전문적인 기관보다도 사랑에 찬 가정을 필요로 함이 역력했다. ‘프랑스’ 「대백과사전」이 이렇게 설명하는 바와 같다. “[정신적 및 신체적 분야의] 후천적 특성들은, 그 신체 장해 어린이가 받는 보살핌과 주의에 크게 좌우된다.” 이 말은 정말 참되었다! 우리 의견으로는, 가족의 테두리야말로, 이러한 “보살핌과 주의”를 베풀 수 있는 최상의 장소이다.
가정 생활
매일 저녁 우리는 ‘발레리’가 그 날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점검하고, 산수, ‘프랑스’어 문법(특히 동사), 읽기 등에서 나타내는 발전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아주 잘하고 있다!
큰 아들인 ‘로랑’도 자기 누이 동생을 많이 도와 주었다. 네살 때부터, ‘로랑’은 ‘발레리’가 다른 어린 소녀들과 같은 반응을 나타내지 않으며, 달리 행동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그 문제를 설명해 주었고, ‘로랑’은 잘 이해했다. 이로 인해 ‘로랑’은 동생에게 한층 더 사랑을 나타내려는 마음을 굳게 다졌다.
동생이 어떤 단어를 잘못 발음하면 ‘로랑’은 얼른 정확한 발음을 일러주곤 했다. 또는 동생이 무엇인가 이해하지 못하면 아주 상세히 그 점을 설명해 주곤 했다. ‘로랑’은 항상 동생을 데리고 다른 아이들과 여럿이 놀았고, 누가 ‘발레리’를 놀리기라도 하면, 동생을 위해 즉시 시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하루는, 학교 어린이들이 ‘발레리’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가 있는 것을 놀려댔다. ‘로랑’은 즉시 그들에게 가서 자기네가 ‘발레리’ 입장이라면, 그런 대접을 받을 때 고마와하겠느냐고 설명했다. 당시 열살에 불과했지만 ‘로랑’은 학생들에게 ‘발레리’의 입장이 변화될 수 없는 것이며, “마치 흑인, 백인, 황인이 자기 피부색을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놀려대서는 안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지금은 자녀들이 나이를 먹어서, 가정 생활이 약간 쉬워진 것 같다. 집안의 허드렛일은 모두가 거든다. ‘발레리’도 자기 침대를 정돈하고, 마루 바닥을 쓸며, 식탁을 준비하는 일에 다른 식구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 심지어 ‘케이크’를 굽기도 하며, 그것도 요리법을 엄밀히 따라 그렇게 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명령하는 것처럼 성서의 훌륭한 교훈을 실행하여, 자녀들에게 아주 어릴 때부터 성서 교육을 베풀어 왔다. ‘발레리’는 어머니와 함께 정기적으로 연구를 하며, 또한 전세계의 모든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우리 가족도 매주 참석하는 그리스도인 집회들을 위하여 준비한다.—디모데 후 3:15; 히브리 10:24, 25.
그리스도인 활동
공개적인 성서 교육 사업을 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고안된 학교에 ‘발레리’도 등록되어 있다. 자기 순번이 오면, ‘발레리’는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하여, 성서 주제에 대해 5분간 대화한다. 연설이 끝나면, 한 그리스도인 장로가 그에게 도움이 되는 충고를 베풀며, 이로 인해 ‘발레리’는 자기 생각을 더 잘 표현하도록 도움을 받고 있다. ‘발레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우리와 함께 한다. (마태 24:14) 아내와 나는 현재 여러 해 동안 전 시간 봉사자로 일해 왔으며, ‘발레리’는 학교에 가지 않을 때를 이용해 정기적으로 우리를 따라 다닌다.
우리가 전파 활동을 수행한 지역 중 하나는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근처인 ‘피레네’ 산맥 지역이었다. ‘발레리’는 사람들에게 우리와 성서를 연구하도록 격려하는 일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이 ‘발레리’에게 호감을 품게 되면, 우리들 낯선 사람들에 대한 불신감도 점차 사라져 버린다. 이런 식으로 하여 우리는 생산적인 성서 연구를 많이 시작할 수 있었다. 한건은 ‘발레리’의 언어 요법사와의 연구였다. 또 하나는 학교의 한 교사와 그 가족과의 연구였다. 이 모든 사람들이 지금은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 영원히 살며, 모든 신체 장해가 없어질 때를 즐기려는 ‘발레리’의 희망에 동참하고 있다.—계시 21:3-5.
‘발레리’ 스스로가 이 그리스도인 활동을 사랑한다고 나는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발레리’의 주된 목표는 잘 배워 훌륭한 요리사가 되며, 또한 자기 어머니와 나처럼 전 시간 전파자가 되는 일이다.
13년이 지났지만, 나는 우리 딸이 장해아로 태어났음을 알았을 때, 여호와께 드린 기도를 잊은 적이 없다. 나는 필요한 힘을 주셔서, 아내에게 이 소식을 알리며 앞으로 해를 거듭함에 따라 내내 이 도전을 잘 직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여호와께서는 사랑에 찬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으셨다. 물론 그분이 기적에 의해 우리의 어린 소녀를 고쳐 주시지는 않았고, 우리도 그런 병 고침을 기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분은 언제나 우리 인도자의 역할을 해오셨다.
자녀들의 교육에 관한 한 우리는 이제 겨우 목표의 반쯤 왔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아이들은 예민한 십대의 연령에 들어서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해주신 것처럼 계속 우리를 도와 주셔서, 앞에 놓인 중요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제 ‘발레리’에게 이 이야기의 마무리를 부탁하겠다.
“아빠가 우리 이야기를 끝내셨지만, 다른 분처럼 저도 여호와의 왕국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같은 신체 장해자들이 더 이상 없으며, 우리 모두 하나님의 낙원에서 행복하게 살 그 때가 너무나 기다려져요!”—기고.
[각주]
a ‘다운’ 증후군은 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병이다. 또한 21 삼염색체증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이런 환자의 경우, 인체 내의 21번째 염색체가 다른 염색체들처럼 2개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3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운’ 증후군은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가 있고, 코는 짧고 납작하며, 머리가 작은 특이한 용모와, 중간 정도 내지 극도의 정신적 발육 부진을 특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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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의 갓난 딸은 ‘다운’ 증후군 환자라서 아마 그다지 오래 살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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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때에 ‘발레리’는 줄넘기 줄을 땅에 던지고는 울곤 했다. 그러다가는 다시금 집어 든 후, “꼭 해내고 말테야!”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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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기에, 특히 우리 딸은, 전문적인 기관보다도 사랑에 찬 가정을 필요로 함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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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의 목표는 잘 배워 훌륭한 요리사가 되며, 또한 전 시간 전파자가 되는 것이다
[15면 발레리와 그녀의 부모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