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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84 11/15 14-17면
  • 끝까지 해내야 할 나의 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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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까지 해내야 할 나의 투병
  • 깨어라!—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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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4
깨84 11/15 14-17면

끝까지 해내야 할 나의 투병

수백만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때때로 곧 회복될 전망이 없는 고질병과 같은 어려움들을 당해왔으며, 그것은 끝까지 투병해 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나는 내 경험이 그러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격려가 되어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투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모니카 지베르트’의 체험담

나는 북부 독일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아버지없이 자랐다는 사실 외에는—그분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사망하셨다—나의 어린 시절은 매우 평범하였다. 나는 태평스럽고 낙천적이며 주근깨가 많은 붉은 머리를 한 그리고 사귀기 쉬운 명랑한 기질의 소녀로 성장하였다. 때가 되자 나는 ‘파이오니아’ 전파자로서 전 시간 봉사를 시작하였다.

16년 전 5월의 어느 수요일, 한 증인의 일곱살난 아들인 ‘발터’와 나는 전도하려고 한 작은 마을을 향해 ‘라인’ 강변을 걷고 있었는데, 어린 ‘발터’가 “‘모니카’, 왜 계속 비틀거리지요? 조심하세요, 넘어지겠어요”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아무 일도 아니니까”라고 나는 웃어 넘겼다. 그러나 곧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러 주일이 지나자 내 눈이 착시 현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흐릿하여 둘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독서를 많이 한게지. 눈을 너무 혹사했거든. 아마 안경을 써야 될까봐”라고 하며 두려움을 떨쳐버렸다.

그래서 나는 검안사를 찾아가 안경을 쓰면 되겠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나 “천만에요, 안경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신경과 전문의한테 검사를 받게 해드리지요”라는 그의 말에 나는 놀랐다. 좀 이상하게 들렸지만, 일단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내 짝인 ‘한네로레’와 내가 그때 우리를 방문한 친구들을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검사를 잠시 미루기로 하였다.

병에 걸리다

며칠 뒤, 친구들과 함께 우리가 그리스도인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전기 충격과 같은 찌르는 듯한 두통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내 머리에 구멍을 뚫으려 하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자동차가 달리면서 생기는 진동을 거의 견딜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의사에게 연락하였으며, 나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는 그 날짜, 1968년 7월 5일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도 원인을 아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약물 치료는 통증을 더는 데 효과가 있었다. 뇌종양에 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들을 하였다. 확인하기 위하여 더 광범위한 검사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라인’ 강변에 위치한 독일의 수도 ‘본’의 대학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어려운 시기에 나는 내가 그 일부인 세계적인 형제 사랑을 경험할 특권을 가짐으로써 크게 힘을 얻었다. 이전에 만나본 일이 없는 그 지방 증인들이 찾아와 주었고, 많은 분들은 선물까지 가져왔다. 병이—그것이 얼마나 심각하든지 간에—나에게서 사랑의 띠를 앗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불확실한 괴로운 날들이 지나가고, 나는 지방 병원으로 다시 돌아와 아주 부드러운 말로 실제 문제가 무엇인지를 듣게 되었다. 나는 이전에 결코 들어본 일이 없는,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 병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충분히 납득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무서운 사실 곧 아직까지 치료 방법이 발견되지 않은, 불구가 되게 하는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울증 혹은 활동—어느 쪽?

다발성 경화증은 뇌, 척수, 신경계통의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경수질소, 즉 신경을 에워싸고 있는 지방과 같은 물질이 파괴되어 뇌에서부터 활동하게 되어 있는 근육에 이르는 신경 자극이 전달되는 것을 차단한다. 그 결과로 수족에 감각 상실과 더불어 부분적 마비가 오게 된다. 치료가 어려운 병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각 희생자들에게 영향을 준다. 그것은 또한 극히 예견하기가 어려우며, 예기치 못한 순간에 다시 강타할 때까지, 자주 환자들은 치료되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이 불확실하고 불규칙한 병이기 때문에 감정을 몹시 상하게 한다.

나는 물론 우울하였다. 이제 장래를 위한 나의 계획은 불확실하게 되었다. 조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나는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안 됐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였다. 나는 불구가 되게 하는 병의 결과에 나 자신을 맡겨버릴 수도, 아니면 싸울 수도 있었다. 나는 투병하는 쪽을 택하였다.

나에게는 감사할 만한 것들이 매우 많이 있었다. 나는 지금 살아 있다. 정신은 활동적이다. 그리고 아직 손을 사용할 수 있다. 손을 사용해서 편지로 하나님의 왕국의 놀라운 희망에 관해 사람들에게 알려 주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제 전하는 방법은 상당히 달라졌지만, 나는 전 시간 봉사를 계속하도록 허락받았다. 여전히, 그 일은 나에게 매달려야 할 어떤 것, 즉 계속 투병해야 할 이유를 제공해 주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 방법—매달리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여호와의 증인’이 되셨으며, 따라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호와의 방법으로 부지런히 훈련을 받았다. 7세 때부터 나는 호별 방문 전파 활동을 하시는 어머니를 정기적으로 따라 다녔다. 이것은 좋은 훈련이었고 나에게 참된 기쁨을 안겨 주었다. 하나님의 왕국 권익에 대한 어머니의 본이 되는 열심은 그같이 어렸을 때에 나에게 모든 힘을 다 바쳐 여호와를 섬기고자 하는 욕망을 심어 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 기술을 배운 뒤인 18세 때, 나는 전 시간 봉사의 천직을 택했다.

병에 걸렸을 때 이 훌륭한 봉사의 특권을 상실했더라면, 나는 마치 누군가가 내 발 밑의 깔개를 갑자기 끌어당긴 것 같은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힘은 계속 약해졌지만, 나는 여전히 여호와를 숭배하고, 그렇게 해서 온 힘을 다해 그분을 섬기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위안이 되었다.

내가 쓴 편지는 성과가 있었다. 예를 들면, 16세된 ‘클라우디아’는 부모의 반대 때문에 자기 집에서 성서를 연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편지로 연구하였다. 이 소녀는 잘 발전하여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고, 지금은 그 또한 전 시간 봉사의 대열에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의사들은 나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목욕, ‘맛사아지’, 다양한 종류의 약물 치료, 심지어 전류 치료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실제로 차도를 가져오지 못하였다.

새로운 치료법—위협적인 책략

의사들은 악화되는 병세를 늦추기로 결심하였다. 하루는, 내 침대 주위에 모인 여러 의사들과 더불어 수석 의사가 “우리는 당신에게 대량 수혈을 하기로 결정했읍니다. 일부 사람들이 이 방법으로 도움을 받았거든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뜻밖의 제안이어서 나는 단지 “안되요!”라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내가 거절하는 종교상의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사도 15:28, 29) 수석 의사는 내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부과장은 그렇지가 않았다. 적어도 하루에 두번씩 그는 수혈 거부는 내 생명을 단축시킬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재고해 보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나는 완고했다.

한 간호원은 더욱 교묘한 방법을 사용했다. 나는 독방에 있었지만 내 침대를 창가로 밀어붙여 또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내가 있는 방이 유일하게 산소 배출구가 있는 방이라고 하였다. (나중에 이것은 사실이 아님을 알았다) 죽어가는 환자를 내가 있는 방에 데려다 놓고 산소를 공급하였으며 그동안 나로 그들의 사투를 목격하지 않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두명의 환자가 사망했을 때, 그 간호원은 노골적으로 내가 계속 그 치료 방법을 거절한다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지적하였다. 병원에서 일하는 한 친절한 부인이 개입할 때까지, 이 일은 여러 날 계속되었다.

같은 기간에 한 연로한 의사가 나에게, 의사들이 그렇게도 강력히 추천하는 수혈 치료법에 관한 기사를 다룬 한 의학 신문과 책을 비밀리에 손건네 주었다. 그러나 그 기사는 수혈을 하나의 치료법으로 기술하지 않았다. 그 기사들은 그것이 단순히 연구 조사를 목적으로 하는 것임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는 한층 더 확고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그 문제는 가라앉았고, 나는 갑자기 대화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327호실 소녀의 강한 믿음”에 관한 소문은 병원 복도에 온통 퍼져 나갔다. 기도와 성서 연구를 통하여 여호와와의 나의 관계를 강화시킨 결과, 편지를 통한 “말”로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그분께 대한 나의 사랑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모른다.—요한 1서 3:18.

다시 걷기로 결심하다

나는—반복해서—서기 위해 애썼지만 번번이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집에서 손과 무릎으로 기어다니곤 하면서, 물론, 걸으려고 노력하였지만 매번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실제로 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의사의 다음 방문을 기다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의사가 방문했을 때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발을 딛고 섰으나, 금방 나는 처량한 모습으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내 의지는 강했지만 병은 그보다 더 강했다. 계속 투병할 가치가 있었는가?

나는 운동을 많이 시키는 다른 진료실에 입원했다. 내 팔은 여전히 강했기에 벽을 짚고 버틴 다음 선 자세를 취하는 훈련을 받았다. 나중에는 손으로 가로대를 잡고 그것을 따라 걸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보기에는 쉬웠으나, 처음에는 단지 두 세 걸음만 옮길 수 있었으며, 그 다음 네 걸음, 다음에는 다섯 걸음, 이렇게 천천히 그러나 틀림없이 걸어 나갔다.

내가 다시 걷기를 배우고 있어도 ‘휘일체어’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지만, 나는 계속 낙관적이었다. 내게는 무척이나 기쁘게도, 그들의 생각은 잘못이었던 것이다. 나는 1970년 6월에 퇴원하였는데 지금까지 ‘휘일체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경우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내 경우처럼 다행스런 결과가 오게 되지는 않을지 모른다.

앞으로는 어떠할 것인가?

처음 ‘라인’ 강변을 비틀거리며 걸을 때부터 16년이 경과하였다. 1984년인 지금, 아직도 나는 목다리 없이 걷는다. 친구들은 내가 계속 명랑하고 원기가 있어 보인다고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동정받지 않기 위해 내가 일부러 그렇게 시도해 왔기 때문이다. 가까운 친구들은 때때로 내가 장시간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안다. 내 병은 아직 낫지 않은 상태이며 거의 틀림없이 하나님의 새 사물의 제도에서 모든 것이 새롭게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침울한 것은 아니다. 실망스런 일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은 많은 행복한 경험들로 상쇄된다. 나는 충실하고 사랑에 찬 많은 형제들을 알고 있으며 그들의 격려는 매우 값진 것이다. 나는 힘을 모아 생활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참으며, 극미한 차도의 징후가 보이기만 해도 기뻐하는 비결을 배웠다. 여호와와의 나의 개인 관계는 투병에 있어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를 깨달음으로 강화되어 왔다. 오로지 여호와께서만이 완전히 치료해 주실 수 있으시다. 그분은 그렇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참조 이사야 33:24; 계시 21:4.

이사야 41:10, 13의 말씀과 같이, 전 시간 봉사는 계속 나를 강화시켜 준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각기 자기에게 주어진 독특한 생활 환경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디모데 전 6:12) 그러나 싸움은 같다. 그리고 언제인가 그 싸움은 끝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나는 이사야 35:5, 6의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읽을 때, 그것이 나 자신에게 의미할 바에 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라.]”—‘고딕’체로는 본지에서.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내가 여호와의 의로운 새 제도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그분의 축복을 받게 된다면, 매우 잘 뛰는 건장한 사슴이라야 나를 앞지를 수 있을 것이다!

[15면 삽입]

“나는 불구가 되게 하는 병의 결과에 나 자신을 맡겨버릴 수도, 아니면 싸울 수도 있었다. 나는 투병하는 쪽을 택하였다”

[16면 삽입]

“가까운 친구들은 때때로 내가 장시간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안다”

[17면 삽입]

‘여호와와의 관계는 투병에 있어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를 깨달음으로 강화되어 왔다. 오로지 여호와께서만이 완전히 치료해 주실 수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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