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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다시 걸을 날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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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다시 걸을 날이 올 것인가?”
  • 깨어라!—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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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6
깨86 3/15 12-15면

“내가 다시 걸을 날이 올 것인가?”

1983년 9월의 월요일 아침,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봉사 가방을 집으려고 했다. 손잡이를 잡으려고 애를 썼다. ‘이거 좀 이상하군’하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손잡이가 손에서 맥없이 미끄러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손에 아무 힘도 없었다. 처음에는 아마 밤새 손에 쥐가 나서 그런 것으로, 곧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날 종일 상태는 더욱더 악화되어 갔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양다리에도 힘이 없었다. 아내 바바라의 도움을 받아 겨우 침대를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 이 때서야 비로소 의사를 찾아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뉴우펀들랜드 섬의 보트우드에 있는 조그마한 지방 병원에 도착하여, 세명의 의사에게 검사를 받았다. 진찰을 마치고 그들은 내게 다발성 신경염, 즉 ‘길랭 바레 증후군’(Guillain-Barré Syndrome) 혹은 GBS로 알려진 마비 질환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 의사들은 뉴우펀들랜드의 그랜드 폴즈라는 더 큰 도시에 있는 또 다른 병원으로 가서 확인해 보도록 나를 주선해 주었다. 거기에서 신경과 전문의가 나를 검사하였다. 간단한 검사를 하고서 그는 최초의 진단 즉, 다발성 신경염을 재확인하였다! (부속 기사인 네모 안의 “GBS란 무엇인가?” 참조) 그는 내가 점점 더 약해져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믿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나는 양말을 신는 데만도 10여분을 버둥거려야 하였다!

치료를 받기 위하여, 뉴우펀들랜드 섬의 최대 도시인 세인트 존스의 한 병원에 가기로 하였다. 바바라는 거기까지 480킬로미터나 나를 태우고 운전하였다. 가는 도중 아내가 내게 차내 라디오 방송을 다른 데로 돌리라고 요청했을 때, 내게는 그것마저 할 힘조차 없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쯤에는 나는 걸을 수도 없었다.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은 이러했다. ‘내가 다시 걸을 날이 올 것인가? 여생 동안 나를 보살펴 줄 책임을 아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꼼짝 못하는 중량품(重量品)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절망스러운 것이었으며, 끔찍스럽기까지 하였다. 여기서도 신경과 주임 전문의는 “분명합니다. 당신은 다발성 신경염 즉 GBS에 걸렸읍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밤, 나는 혼자서 식사를 해보고자 하였다. 하지만, 독자가 그런 나를 보았었더라면! 머리 위에도, 귀 뒤에도 음식이 묻었다! 나는 전혀 손과 팔을 서로 맞춰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은 말을 할 수가 있었지만, 그 다음 날 아침에는 완전히 마비가 되고 말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실제적인 고통을 느끼진 못했지만, 따끔따끔한 것을 느꼈다.

마비 현상은 이제 복부에까지 퍼져, 호흡에 영향을 주었다. 두 시간마다 호흡 검사를 받았다. 그때 고통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몹시 괴로운 고통이었다. 나의 무릎과 어깨는 엄청난 치통의 경우처럼 덜덜 떨려 왔다. 이 때가 제일 견디기 어려운 시기였었다. 그 고통은 몇 주간이나 계속되었다. 나는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도 벨을 누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간호원에게 와서 움직여 달라고 고함을 칠 수밖에 없었다. 간호원들은 뜨거운 습포 찜질을 해주곤 하였는데, 그러면 약 20분간은 고통이 가라앉곤 했다. 고통을 인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고통은 신경들이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좋은 징조라고 의사들이 설명해 주었을 때 나는 격려를 받았다.

“그는 여전히 침울해 있나요?”

무엇보다도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매일 바바라가 와서 성서 및 성서 간행물들을 읽어 줌으로 나를 영적으로 줄곧 세워 준 일이었다. 아내는 또한 내게 음식을 먹여 주었고, 내게 필요한 얼마의 물리 치료를 해주었다.

이따금 간호원들은 바바라를 불러 내어 조용히 이렇게 묻곤 하였다. “그는 여전히 침울해 있나요?” 간호원들은 이 병에 무시무시한 감정적 긴장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낙담하여 겁이 나기까지 하였으며, 이러한 생각을 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어쩌면 내 병은 나의 천직에 영향을 미칠지도 몰라. 그러면, 내가 그토록이나 즐겨온 여행하는 봉사를 포기해야만 할거야.’ 그러나, 나는 바바라 및 ‘여호와의 증인’의 지방 회중 성원들의 방문으로부터 격려를 받고, 계속 적극적으로 생각하며 싸워나갔다.

나로 인내하도록 도와 준 또 다른 것은 온수 목욕이었다. 그들은 나를 특수 의자에 싣고 목욕실로 밀고 간 다음, 즐겁게 해주는 온수 욕조 속으로 나를 밀어 넣어 주곤 하였다! 이것은 관절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알다시피, 내겐 반사 능력이 전무했지만 피부에서는 온기를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신체적 안락감에 관한 한, 이것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또한, 내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의사가 해준 말, 즉 내 경우에는 여러 달 심지어 1년 정도가 걸린다해도 완쾌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유념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를 지탱시켜 준 것 중 하나였다.

몇 주가 지난 후, 치료법의 일환으로서 나는 의자에 기댄 자세로부터 똑바로 앉아 있도록 요구받았다. 그 고통은 살을 에는 듯하였다! 처음에는 겨우 몇분간 밖에 견뎌내지를 못하였다. 이 병에 걸린 한 여인은 이러한 말로 그 고통을 정확히 표현하였다. “그 고통은 팔꿈치 척골(尺骨)의 끝을 강타했을 때 느끼는 찌릿함과 유사합니다—단지 그런 찌릿한 고통이 누그러지지 않을 뿐이지요.”

여러 날이 경과함에 따라, 나는 더 오랫동안 바로 앉아 있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아내는 나를 휘일체어에 태워 병원 주위를 밀고 다녀 줌으로 역시 GBS를 앓고 있는 두 명의 다른 환자들을 방문할 수 있게 해 주었다. GBS는 보통 50만명 중 겨우 한 사람 정도가 걸린다고 하지만, 공교롭게 내 뒤를 따라 두명의 다른 환자들이 GBS에 걸려 입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젠, 혼자 힘으로 얼마나 갈 수 있지요?”

약 삼주일간의 전신마비 후, 어느 날 아침 일어났을 때, 내 엄지손가락이 약간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나는 그 얼마나 환희에 찼었던가! 이 사실은 조기 회복이 가능하다는 의사의 이전 격려에 부가된 격려가 되었다. 서서히, 나머지 손가락들도 움직일 수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지 약 한달 후에, 간호원들은 나를 휘일체어에 태워서 약간 밀어 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젠, 혼자 힘으로 얼마나 갈 수 있지요?” 나는 아직 그처럼 강하진 못했으나, 내 손바닥으로 바퀴를 굴려 보고자 노력하였다. 나는 빈번히 멈춰 쉬어야 했지만,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그리고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복도 끝까지 갈 수 있었다! 나는 대단한 성취감을 느꼈다.

일어서 보고자 했던 최초의 시도는 참으로 끔찍스러운 것이었다! 고통이 어찌나 극심했던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순간, 다리가 몸을 뚫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매일 전날 보다 조금 더 많이 하려고 애를 썼다. 호전되어 감에 따라, 마침내 보행기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까지 되었고 그리하여 점점 더 나는 내 자신의 힘으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참는 법을 익혔던 것이다.

그후 즉시, 나는 시험삼아 다시 집에서 생활해 보도록 허락을 받아 주말을 얼마의 친구들과 보내게 되었다. 바바라는 집에서도 나를 아주 잘 돌봐 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의존하는 것이 싫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에 넘친 간호를 겸손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나는 건강이 회복되어 가고 나의 신체가 자체적으로 치유돼 가는 것을 보면서, 종종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다는 성경 귀절을 생각하곤 하였다. (시 139:14) 나는 역경을 통해서 인체를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가슴벅찬 일이었던가! ‘내가 어제 할 수 없었던 무슨 일을 오늘은 할 수 있게 될까?’

‘당신은 더 높은 능력자와 관계를 맺고 있읍니다!’

담당 의사들은 내가 비교적 빨리 회복돼 가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대부분의 경우 다시 제 발로 걷게 될 때까지에는 훨씬 더 오래 걸린다고 하였다. 한 간호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당신의 회중 성원들의 훌륭하고 사랑에 찬 지원이 당신을 빨리 회복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그 말은 내게 한 가지 귀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은 건강이 좋지 못하거나 모종의 고통을 격고 있는 이들을 방문하여 격려해 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방문객들을 기록해 두었다. 놀랍게도, 내가 회복되는 동안에만도 300명 이상이나 병문안을 왔던 것이다!

입원한 지 만 5주가 되었으며, 나는 담당 의사의 보고를 마음 조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와서 나를 살펴보더니 퇴원해도 좋다고 말하였다. 나는 특정한 때에 물리 치료와 검사를 받기 위하여 병원에 와야 하였다. 퇴원 열흘 후에, 나는 보행기를 병원에 반환하면서 다시 내 힘으로 걷기로 결심했다고 말하였다. 담당 의사에게 그 동안의 치료에 대해 감사를 표명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고맙다고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우리보다 더 높은 능력자와 관계를 맺고 있읍니다!”

집에서 계속 회복돼 가면서도 내 손에는 약간의 힘밖에 없었다. 사실상, 나는 다음 해 2월이 되어서야 제한된 범위로나마 캐나다 동부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여행하는 봉사자로서의 나의 정상적인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내가 손가락에서 봉사 가방을 떨어뜨리던 지난 9월의 월요일 이래로 실로 5개월 만의 일이었다. 나는 한 때 전신이 마비됐었지만—지금은 다시 걸어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윈스턴 피이콕의 체험담

[14면 네모]

GBS란 무엇인가?

‘길랭 바레 증후군’(그 질환을 최초로 발견한 프랑스의 신경 전문의의 이름을 딴 것임)은 과학자들에게 하나의 신비로 남아 있다. 비록 그 질환이 얼마의 사소한 바이러스 성 감염에 이어 일어 나는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보통 환자들은 얼마간 자연적으로 회복된다. 그러나, 마비 현상이 호흡기 계통까지 확대될 경우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신경 외과 간호지」(Journal of Neurosurgical Nursing)는 “이 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완전하고 정확한 간호”라고 말한다.

GBS의 경우, 감염되면 인체가 신경들의 피막—미엘란초(鞘)—을 해치는 항체를 생산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러한 해를 입은 신경들은 이제 근육 활동을 제어하는 전자들을 지휘할 수가 없다. 뒤이어 이것은 허약성과 마비를 초래한다. 회복은 신경들 자체가 막으로 다시 싸일 때 시작된다. 그러는 데는 18개월 정도나 걸릴 수 있는데, 환자들 중 3분의 1 정도는 심각한 고통을 겪는다.

로오라 배리는 「캐나다 간호학」(The Canadian Nurse)지에 GBS에 걸린 대부분의 환자들이 겪는 상태를 이렇게 기술하였다. “사람들이 이 질환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줄곧 부인하지만, 그러는 사이 점점 더 약해져간다. ·⁠·⁠·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왜 내가!?’ ·⁠·⁠· 환자가 자신의 질환을 제어할 수 없음을 절감할 때 ·⁠·⁠· 그것은 흔히 침울감으로 인도한다. 그 침울감은 ‘길랭 바레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의 경우엔 압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배리 간호원은, 확실한 회복을 위하여 간호원들과 시중드는 가족 성원 및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환자는 인정받을 정도로 병세가 호전될 수 있으며, “다행히도, 그때 쯤에는 그 병의 기세가 다하여 더 이상 악화 되지 않을 것이다.”

[15면 네모]

환자들을 잊지말라!

입원중인 친구 문병시의 유의점

● 환자가 피곤하지 않도록 짧은 동안만 머무를 것

● 단체로 병문안 갈 때는 가급적 한번에 두명씩만 병실에 들어갈 것. 더 많은 수는 지치게 할 수 있다

● 낮은 소리로 말할 것.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다른 환자들에게 지장을 줄 수 있다

● 적극적이고 세워 주는 대화를 할 것

● 환자가 필요로 하는 점을 분별하고자 노력할 것. 환자의 가족 성원들이 가능한 한 자주 환자와 함께 있도록, 그들을 위해 심부름해 줄 것이 있는지 물어 볼 것

● 필요한 교통 수단을 기꺼이 지원하고자 할 것

● 방문했을 시 환자가 잠들어 있거나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면, 당신의 방문을 알려 주는 간단한 쪽지나 카아드를 남겨 둘 것

● 부드러운 악수나 손을 잡아 주는 것은 환자의 기운을 북돋워 줄 수 있다

[13면 삽화]

나는 전신이 마비됐었지만, 지금은 다시 걸어다닐 수 있다—그것도 나의 봉사 가방을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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