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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5
깨85 2/15 4-6면

편견이 작용하는 방법

한 연구가는 어떤 사람에게 특정 종족 집단에 대한 그의 견해를 질문해 보았다. “그 사람들은 까다롭고 성미가 급하지요”라고 그는 대답하였다. “그들은 원래 핏줄이 그래요.”

“그들 중 누군가를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적이 있읍니까?”라고 그는 질문받았다.

‘예, 한명 있었지요. 그는 고등학교 때 반장이었답니다.’

‘그 ‘반장’은 그 사람들에 대한 당신의 인상에 부합하던가요?’

“아니요. 그는 온화하고 상냥한 사람이었읍니다”라고 시인하였다.

‘그러면, ‘까다롭고 급한 성미’는 실제로 ‘원래 핏줄이 그’런 것이 아닐 수 있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잠시 멈추었다가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친구만은 예외였지요.”

편견을 갖는다(“미리 판단하다”)는 것은 공정히 심사받을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을 판단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아무런 증거도 없이 오직 선입관만 가지고 전혀 낯선 사람을 즉각 “게으르다”, “불량하다” 또는 “위험스럽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입관을 지닌 사람이, 개인이 아닌 집단들을 보기 때문에 야기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한 종족 집단의 성원들이 “모두 마찬가지”로서, 아무 개성도 없는 닮은꼴군(群)으로 보이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처럼, 편견을 지닌 사람은 왕왕 끝까지 자기의 선입관을 옹호하려들며, 심지어 제반 사실들이 자신의 그릇됨을 증명해 주어도 그렇게 하려든다. 「오늘의 심리학」(Psychology Today)지가 설명한 바와 같이, 편견을 지닌 사람들은 “고정 관념과 상반되는 증거는 배척하면서, [어느 한] 사람이 고정 관념에 부합하는 것같아 보이는 점들만 유의하고 기억해 두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편견은 편견이 자라게 한다. 어떤 불유쾌한 틀에 넣어진 사람들은 흔히 자부심을 상실한 나머지 실제로 낮은 수준을 기대하는 것에 부합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또는, 성서 전도서 7:7에 언급된 사태가 야기된다. “탐학[압제, 신세]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느니라.]” 압제의 피해자들은 원한에 불타게 될 수 있다. 그들은 편견에 매우 민감해져서 때때로 과대 반응을 보여 실제로는 편견이 없는 경우에도 편견을 보게 될 수 있다. 다른 인종에 속한 사람은 누구든 부당한 의혹의 눈으로 보려들고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려 드는 것이다. 이렇게, 완고한 편견은 어느 한 인종이나 민족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어떤 사람의 사고가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사람은 거의 모든 종족 집단들을 무조건 싫어하게 될 수 있다. 얼마의 대학생들에게 32개의 실존 국가 및 인종들과 3개의 가공 집단(“‘데이니어’인”, “‘피레네’인”, “‘월론’인”)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해 보도록 요청한 적이 있었다. 아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실존하는 종족 집단들에 대해 편견을 지니고 있던 학생들은 “‘데이니어’인”, “‘피레네’인”, “‘월론’인”들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표하였다.

편견—어떻게 나타나는가?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위선적이게도, ‘제일 친한 친구들 중 얼마’가 이런저런 집단에 속해 있다고 언명하면서도 그런 사람들이 이웃이나 인척 중에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움찔하는 사람들과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선입관에는 여러 정도가 있는 것이다.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실상 다른 인종에 속한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은연중에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우월감을 드러내게 될 수 있다. 그가 품위없고 인종 지향적인 말을 함으로 친구들의 참을성을 시험하게 될 수 있다. 혹은 친구들을 동등하게 대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친구로 삼는 것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인 듯이 행동함으로 선심 쓰는 체하게 될 수도 있다.

사람이 편견을 나타내는 또 다른 방법은, 별로 인정은 해주지 않으면서 어떤 사람들에게 더 높은 표준의 성과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실패하면, 그 실패의 이유를 인종에 전가시키려들 수 있다. 또는, 같은 인종에 속한 사람에게는 관용해 주는 행위를 다른 인종의 경우에는 정죄하려드는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람은 자신에게 편견이 있다는 말이라도 듣게 되면 맹렬히 분개함으로, 아주 철저한 자기 기만에 빠지는 것이다. 시편 필자가 한때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세상에 저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제 잘못을 찾아내어 고칠 생각은 꿈에도 없다.”—시 36:2, 공동번역.

“네살이 될 때까지는”

그러나, 왜 사람들은 편견을 갖게 되는가?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일찌기 편견을 품게 되는가? 「편견의 본질」(The Nature of Prejudice)이라는 권위있는 저서에서, 사회 심리 학자 ‘고오든 W. 앨포오트’는 “동류의 도움으로 사고”하려는 인간 정신의 경향에 유의하였다. 이 점은 어린 아이들에게서도 명백히 볼 수 있다. 아이들은 곧 남자와 여자, 개와 고양이, 나무와 꽃—그리고 심지어 “흑”과 “백” 사이까지 분별할 줄 알게 된다. 어린아이들은 “색맹”이리라는 관념과는 반대로, 연구가들은 다양한 인종 속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이내 “피부색, 용모상의 특징, 머리카락 형태 등등과 같은 신체적 특성상의 차이점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하며, “어린아이들이 ·⁠·⁠· 일반적으로 만 네살이 될 때까지는 인종 집단들을 온전히 의식하기에 이른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부모들」(Parents) 1981년 7월호.

그러나 아이들이 단순히 이러한 차이점들을 알아차린다고 해서 편견을 갖게 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어린이의 성장 발육」(Child Development)에 보고된 최근의 한 연구는 “유치원에 들어가는 다섯살박이 어린이들은 분명히 같은 피부색의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주장하였다. 더욱 당혹케 하는 것은 “같은 피부색의 놀이 짝을 선택하려는 아이들의 성향이 유치원 시절에 증가한다”는 관찰 보고인 것이다. (‘고딕’체로는 본지에서)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연구원들도, 어린아이들이 종종 인종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인종이라는 말에 함축된 의미까지 알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조안’이라는 네살박이 여아는 가슴 철렁케 하는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얀 사람들은 위로 올라갈 수 있어. 갈색인 사람들은 밑으로 내려가야 해.”

어떻게 아이들이 그러한 선입관을 발전시키는가는 연구가들에게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강력하게 의심받는 요인은 부모들이 끼치는 영향이다. 사실, 자기 자녀들에게 다른 인종의 아이들과 놀지 말라고 직접 명령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부모들이 다른 인종에 속한 누군가에 대해서 선입관을 갖고 있다거나 거북스러워하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면, 마찬가지로 아이 자신도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문화적 차이점들, 또래들 및 보도 매체, 그리고 기타 요인들이 병합하여 이러한 편견을 강화시킬 수 있다.

불쾌한 경험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의 편견은 불쾌한 경험에 대한 과대 반응인 것 같다. 한 젊은 독일 부인이 사업차 ‘아프리카’에 가는 남편을 따라가게 되었다. 거기서 그 부인은 여러 가지 문제들에 빠지게 되었다. 그 곳의 어떤 사람들이 자기가 여자이고 ‘유럽’인이라는 것으로 자기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또한, 이들의 어떤 태도들이 ‘유럽’식으로 살아온 그의 섬세한 감정에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단지 소수에 의해서 야기된 문제들을 계속 생각하다가 그는 모든 흑인들을 혐오하기에 이른 것이다!

20여년 전에 미국에서 살았던 서인도 출신의 한 학생의 경우도 그와 비슷하다. 산뜻하게 차려입고 품행이 방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레스토랑’에서 식사 시중을 거절당하면서 이러한 말을 들었다. “우리 식당에서는 당신 같은 사람들을 손님으로 받지 않고 있소.” 이전에 전혀 인종 차별을 겪어 보지 않았고 당시에 존재하던 인종적 긴장을 알지 못했던 그는 계속 식사 시중을 요구하였다가 즉각 체포되는 결과를 당하였다! 그 도시 시장이 그의 석방을 지시하면서 경찰을 견책하긴 하였지만 그 사건은 그를 격분케 하였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도, 그는 여전히 백인들에 대하여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편견의 본질」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타인을 끌어내리는 것이 물릴줄 모르는, 지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 같다. 그것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것이다. (로마 12:3) 인종 우월주의 신화는 또한 특정 집단에 대한 압제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발전된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악명높은 노예 무역 시절에 흑인들을 정신적으로 열등한 또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단언해버리는 일이 만연해 있었다. 노예 제도의 신랄한 비평가였던 전 미국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a 조차도 “흑인들은 ·⁠·⁠· 정신과 육체, 양쪽의 천부적 재능에 있어서 백인들보다 열등하다”는 “의심”을 표현한 바 있을 정도로 그러한 신념은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비록 과학이 그러한 관념을 부조리한 것으로 입증했는데도, 인종 차별주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연구가들이 간과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성서에 명백히 나와 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 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 5:12) 유전죄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문제를 보는 방법을 왜곡시켜 왔다. 사람들은 차이점들에 대해 흥미를 갖거나 즐거워하지는 않고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어린아이의 불완전한 마음에서도 파멸적인 편견으로 자라날 일련의 기겁할 만한 “악한 생각”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마태 15:19) 그렇다면, 과연 편견을 극복하는 것은 가능한가?

[각주]

a ‘제퍼슨’은 “만인이 동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선언한 미국 독립 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한 사람이다. 그는 노예 제도를 “잔혹 행위의 집합”이라고 불렀지만, 그 자신이 노예를 두고 있었다.

[5면 삽화]

편견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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