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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 편견의 감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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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 편견의 감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 깨어라!—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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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은 묻는다 ·⁠·⁠·

인종 편견의 감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조사자들은 9-13세의, 다인종 그룹의 어린이들에게 설문지를 주면서, 다른 인종의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게 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백인 어린이들 중 일부는 소수 종족에 대한 편견을 나타냈지만, “온갖 종족 그룹 출신의 어린이들도 자신들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린이들만큼이나, 때로는 그보다 심하게, 다른 종족 그룹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냈다.”—「심리학지」(The Journal of Psychology).

청소년이라고 해서 인종 편견에 물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17세의 루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학교에서 백인 학생들 대부분은 한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모든 흑인 학생들은 다른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합니다.”

다른 인종의 사람들에 대한 당신의 감정은 과연 어떠한가? 마음으로는 편견이 어리석고, 부당하며 진부한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여전히 다소 뒤섞인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연구가들인 제인 노먼과 철학 박사 마이런 W. 해리스가 이렇게 논평한 바와 같다. “백인이든 백인이 아니든 간에 십대의 ·⁠·⁠· 절대 다수는 편견을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종종 불신한다. 그들은 또한 자신이 인종적 경계를 넘어서 밀접한 교제를 해나갈 경우 친구와 부모가 반대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알고 있다.” 많은 나라들에서 이와 유사한 인종적 긴장감이 존재한다.

편견은 나쁜 것이라고 교육받은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은 다른 인종의 사람들 주위에 있을 때 느끼는 불편한 감정으로 인하여 또한 괴로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들은 다른 인종과의 접촉이 제한된 지역이나 인종적 긴장감이 고조되어 있는 지역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종적 선입관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인종적 편견의 작용

편견을 갖는다는 것은 미리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종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시험도 해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한다. 그는, 특정 인종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으례 바람직하지 못한 특정한 습관, 특성 혹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단정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는 명백히 반대되는 사실에 직면해서도 그러한 선입관을 키워 나간다. 예를 들면, 그는 특정 그룹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게으르’거나 ‘우둔한’ 사람들로 믿고 있을지 모른다. 그 그룹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부지런한—혹은 명석하기까지 한—사람을 대하게 될 때는, 그러한 사람은 “예외”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개인적 특성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편견이란 타고난 것이 아니다. 「인간 행동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세계적으로 행해진 관찰 결과, 어린이들은 다른 민족 그룹의 성원들과 차별없이 놀며, 뚜렷한 신체적 차이점을 깨닫지 못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백과사전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편견이란 ·⁠·⁠· 전적으로 학습에 기인한 것이며, 주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하여 얻어진다.” 부모, 교사 및 동배들을 통하여 인종적 선입관이 전달되는 것 같다. 때때로,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의 불쾌한 충돌은 그러한 편견을 더욱 강하게 갖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 중 상당수는 부지중에 편견있는 태도와 견해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점에 관한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직시하려면 흔히 얼마간의 실제적인 자기 분석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당신에게는 다른 인종에 속한 친구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없는 데서 깔보는 투로 인종 위주의 말을 하는가? 그러한 친구들과 대화할 때, 아마 항상 인종적 차이점을 되뇌거나, 품위 없고 얕잡아 보는 농담을 함으로써 인종 문제를 부각시키는가? 「편견의 본질」(The Nature of Prejudice)이라는 책은 이렇게 논평한다. “비록 농담이 우정적인 것처럼 보일 때에도, 때때로 그러한 농담 배후에는 진짜 적의가 숨어 있을 수 있다.” 더우기, 사람들이 보는 데서 다른 인종의 친구들과 함께 있는 일을 거북하고 불편하게 느끼는가? 다른 인종의 사람들은 특정한 재능—혹은 결점—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으례 간주하는가?

자신의 편견을 정직하게 직시한 한 청년은 이렇게 한탄하였다. “내 자신이 그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매우 화가 나지만, 아무리 해도 그러한 감정을 억제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인종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

그러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은 문제에 맞붙어 싸우기 위해 큰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상이한 인종들을 어떻게 보시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과거 제 1세기에 벌어졌던 상황을 고려해 보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고질적인 인종적 긴장감은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문제거리가 되었다. 한 경우에 사도 베드로는 동배의 압력에 굴복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서 “떠나 물러”갔으며, 그들과 함께 먹는 것조차 거절하였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았을 때, 베드로를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책망할 일이 있기로 ·⁠·⁠· 저를 면책”하였다. 그리스도인들간에 인종적 편견은 용납될 수 없었다! 바울의 말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신다.—갈라디아 2:6, 11-14.

사도 행전 10:34, 35(신세)에서는, “하나님은 편파적이 아니시고, 각 나라 중 그분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분이 받아들이”신다고 부언한다. 특정한 인종이 피부색, 용모상의 특징 및 머리 결에 있어서 당신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인종간의 놀라운 다양성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사도 17:26) 더우기, 하나님께서는 인종마다 다른, 모든 식품, 음악, 의복 형태, 언어 및 예절을 정죄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비유대인들 가운데서 일했을 때, 자신이 유대식으로 양육받은 것과 상반되는 점이 틀림없이 많았겠지만, 그들의 습관을 얕잡아 보지 않았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율법 없는 자[비유대인들]에게는 내가 ·⁠·⁠· 율법 없는 [그들의 관습에 존경심을 나타내는] 자와 같이 [되었느니라.]”—고린도 전 9:21.

그러므로, 다른 인종의 사람들에게 증오나 경멸감을 품는 사람은 하나님을 전혀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인종 편견의 감정을 극복함

하지만, 오래 묵은 감정을 깨끗이 제거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가까운 친구나 부모와 함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일에서 “마음을 넓히라”는 성서의 교훈을 따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고린도 후 6:12, 13) 가능하다면, 당신의 교제를 인종, 문화 및 사회적 신분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국한시키지 말 것이다. 「인간 행동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사람들은 교제와 의사 소통을 통하여 서로를 알고 인식하게 될 수 있으며, 흔히 서로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바꾸게 된다.”

백인이 지배적으로 많은 읍에 살았던 크리스라는 청년은 그 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크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편견을 갖도록 양육받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중등 학교에 들어갔을 때, 늘 흑인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곤 했어요. 그들은 모두 말썽꾼들이라는 감정이 발전되어 갔죠. 그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갔읍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마을 쪽은 매우 낡았기 때문에, 흑인들은 틀림없이 모두가 게으를 것이라고 단정했어요.”

그러나, 크리스는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배우게 되자, 흑인에 대한 그 자신의 견해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크리스는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세계 본부에서 봉사하게 되었고, 여러 인종이 섞인 회중에 임명되었다. “이제 나는 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게 되었읍니다.” 그러한 접촉의 결과는 유익했다. “그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그렇다.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의 사람들이 있다. (계시 7:9) 그들 중 얼마를 알게 되는 것이 좋다.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연합하여 일해 나가는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면서, 더는 사람들을 그룹의 성원들로 볼 것이 아니라, 개인들로 알게 되는 것이 좋다. (갈라디아 6:4) 자제하고 다음과 같은 황금률을 적용하기 바란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 7:12) 만일 내적으로 우월감이 솟아난다면,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성서의 교훈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적용하고자 해야 한다.—빌립보 2:3.

물론, 당신의 부정적인 견해는 하룻밤 사이에 발전된 것이 아니며,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끈기있게 시간을 바쳐 부지런히 노력한다면, 편견의 감정을 극복할 수 있다.

[21면 네모]

흑인종은 저주받았는가?

하나님께서 흑인종을 저주하셨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편견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저주가 성서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창세기 9:25에서 이렇게 알려 주는 것은 사실이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흔히 참조되는 그 구절은 피부색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흑인종은 가나안의 형제인 구스의 후손임이 확실하다. (창세 10:6, 7;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나라를 가리켜 구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이사야 43:3에 대한, 「신세계역 참조주 성서」의 각주를 참조할 것.) 가나안의 후손들은 피부가 흑색이 아니라 백색이었음이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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