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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85 5/1 12-16면
  •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다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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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다하우’
  • 깨어라!—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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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5
깨85 5/1 12-16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다하우’

“저들을 미워하지 말아. 저들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못할 테니까. 네 자신만 해로울 뿐이야!”

이 말은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다하우’ 집단 수용소에서 인정 많은 한 여인이 어린 소녀였던 나에게 해준 말로서, 내가 생명과 건전한 정신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나는 1926년에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키에프’ 출신이고, 어머니는 ‘그루지아’ 출신이었다. 두분은 과학자로서 ‘모스크바’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1929년에 ‘러시아’에서 피신하여 ‘단찌히’(현재 ‘폴란드’의 ‘그다니스크’)에서 살았다. 나는 독일어만 사용하면서 자랐고, 친구들은 대부분 ‘유대’인이었다.

‘히틀러’가 공포의 통치를 시작하자, ‘유대’인 가족들이 이웃으로부터 특히 밤중에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던 날, 우리 가족도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겨우 몇분간의 옷입을 여유만 있었을 뿐, 모든 것을 뒤에 남겨둔 채 끌려갔던 것이다.

첫 번째 취조 막사에서, 나는 강렬한 불빛 아래 반복하여 심문을 받았고, 검푸르게 멍이 들 때까지 구타를 당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부모의 활동에 관한 그들의 질문에 내가 어차피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을 그들이 알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부모들은 서로 ‘러시아’어로 말하였고, 나는 그 언어를 전혀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트럭’으로 그 취조 본부에 이송된 이후로, 나는 아버지를 다시는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1985년인 올해까지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생사도 모르고 있다.

그 다음에 어머니와 나는 나흘 동안 가축 수송 열차에 감금되었다. 그곳은 오직 서 있어야만 하는 곳이었으며, 음식이나 물 심지어 변소 시설조차 없는 곳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지가 악명 높은 고문 및 사형 시설이 있는 ‘다하우’인 것을 전혀 몰랐다!

문신 새기는 일을 당하고 밀쳐 발로 채고 옷을 모두 벗긴 채, 곤봉을 휘두르는 친위대 대원들에게 태형을 당한 후에, 우리는 ‘샤우어’를 하고 지급받은 줄무늬진 옷을 입었다. 그때, 나는 자애롭고 아름다운 어머니와 갈라져 어린이 전용 막사로 보내졌다.

사망—매일 겪는 경험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였다. 매일 아침 성인 남자 죄수들이 어린이들의 시체를 치우곤 하였는데, 그것은 일부 어린이는 영양실조로 다른 어린이들은 고문으로 밤새 죽었고 또 일부 어린이들은 부상당한 군인들에게 수혈하기 위해 채혈당하여 죽었기 때문이다. 항상 화장을 기다리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화장로(火葬爐)들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왜 화장로의 신세를 면하였는가? 나는 의학 실험에 쓰이기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어떤 질병 주사를 맞은 다음에, 해독제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나는 그 가학성 변태 성욕적 고문자들에게 그다지 큰 흥미거리가 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소리내어 울거나 어떤 감정을 나타내는 일이 없도록 양육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주의를 다른 아이에게 돌렸다.

이러한 일들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누구도, 그런 일들이 아직 어린 아이인 우리에게 미친 영향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죽기를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몰랐다. 우리들 중 얼마는 죽음을 기꺼이 맞이할 생각을 하였지만, 어린이로서 우리는 또한 죽기를 두려워하였는데, 그것은 이전의 종교 교육자들이 가르쳐 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불타는 지옥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는 이렇게 추리하였다. “틀림없이, 지옥불이라도 여기보다 심하진 않을 꺼야!”

때때로 재소자들은 집단 ‘샤우어’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욕실에서 “물”은 ‘가스’임이 판명되었고, 그 집단 전체가 처형되곤 하였다. 지금까지도 나는 ‘샤우어’를 할 수 없다. ‘샤우어’를 하려고 하면, 갑자기 식은 땀이 나면서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따금 나는 죽기를 심히 고대하여, 실제로 남보다 먼저 ‘샤우어’장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곤 하였다. 그러나, ‘가스’가 사용될 때마다 나는 밀려나곤 했던 것 같다.

“저들을 미워하지 말아”

내가 ‘엘제’를 만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두려워할게 아무 것도 없다고 하였다. ‘엘제’는 사람이 죽으면 어떤 고초받는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잠들 뿐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자면 ‘아침에’ 깨어날 것이고, 지구는 낙원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누가 23:43; 요한 5:28, 29) 그때에는 아무 고통이나 증오 혹은 인종 차별이 없을 것이고, 어디에나 즐거움과 행복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베드로 후 3:13; 계시 21:1-4) 나는 그의 말을 믿었다! 그가 해준 말들은 어두운 내 생활에 햇빛과도 같았다.

‘엘제’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경비병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매우 조심하였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쓰레기더미 뒤에 숨어서 몇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그는 내게 성서에 나오는 놀라운 점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낙원을 열망하게 해주는 점들을 말해 주곤 하였다. 곧 나는 죽음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내가 처한 상황들을 더 잘 받아들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엘제’는 특히 나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커다란 위안이 되어 주었다. 어머니는 뛰어난 미인이어서, 거리의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였다. 이것은 친위대 대원들에게 상당한 유혹이 되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육욕을 충족시키는 데 어머니를 이용하였다. 밤마다 나는 그들이 어머니에게 가학성 변태 성욕적 욕망의 충족을 강요하는 것을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머니는 마침내 고문과 집단 난행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되고 말았다.

겨우 14세의 소녀였던, 나는 감수성이 매우 예민하였다. 당연한 반응으로 증오심이 끓어 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엘제’의 말이 아직도 내 귓가에 울려온다. “저들을 미워하지 말아. 저들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못할 테니까. 네 자신만 해로울 뿐이야!” 그것은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며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예수의 말씀과 일치되는 말이었다. (마태 5:44) 그 말씀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감정만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박해자들로서의 그들의 행동을 용서해 줌으로써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엘제’는 또한 내가 하나님에 관하여 더 명확한 견해를 갖도록 도와주었다. 친위대 대원들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쓰여있는 혁대 ‘버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하나님을 미워했었다. 나는 고문, 잠 이룰 수 없었던 숱한 밤들, 매주 살포되는 살충제를 뒤집어 쓰는 일, 피를 빨아 먹는 빈대, 밤마다 살아 있는 육체의 살을 갉아 먹으려고 오는 쥐, 더욱더 강해지는 죽음의 악취, 늘 초과 작업중인 화장로, 추위, 담요의 부족 및 우리의 비참한 생활로 다른 사람들이 얻게 되는 명백한 향락 등을 생각하곤 하였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다면, 나는 그분께 속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찬란히 빛나는 믿음과 연보라빛 삼각 표시

‘엘제’는 그러한 가학성 변태 성욕적 인간들이 자행하는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이 없다는 것을 내가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정하신 때에 계산하실 것이다. 그때, 그분은 선량한 사람들을 완전한 건강과 행복으로 회복시키시고, 그분께 희망을 두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실 것이다. ‘엘제’는 그 고문자들이 말한 신이란 참 하나님이 아니고 그들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에 불과하며, 만일 그들이 참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였다.

‘엘제’는 또한 세계가 고난에 처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으며, ‘사단’이 이 세상의 통치자라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부활되고 영광스럽게 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겨진 왕국을 사용하여 우리를 마귀에게서 풀려나게 해주실 것임을 말해 주었다. (고린도 후 4:4; 요한 14:30; 계시 20:1-6) 그 모든 말들은 내 귀에 듣기 좋은 가락처럼 들렸고, 비통했던 그 시절에 힘의 근원이 되었다. ‘엘제’의 말과 어머니같은 친절함은 나에게 참으로 격려가 되었다.

친위대 대원들은 ‘엘제’가 독일 국민이었지만 ‘나찌’의 뜻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심하게 괴롭혔다. 친위대 대원들은 그것을 개인적인 치욕으로 여기는 것 같았으며 조금의 기회도 놓치지 않고 그에게 모욕을 주었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인내로써 견디어 내었다. 나는 그의 죄수복 팔 위에 연보라빛 삼각 표시가 꿰매어져 있는 것에 유의하였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였다. ‘다하우’의 억류를 살아남은 후에, 나는 수소문 끝에 삼각 표시는 ‘여호와의 증인’만 하는 것임을 알아 내었다. 그렇다. ‘엘제’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증인이었던 것이다.—이사야 43:10-12.

가엾은 ‘엘제’! 그는 야윌대로 야위어 뼈만 앙상하게 남았었다. 그러나, 그에겐 매우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가 나에게 그렇게 친절하고 각별하긴 하였지만, 나는 그의 성이나 출신지를 끝내 알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모시고 싶은 어머니같은 분이라고 나는 생각하곤 했었다. 어머니가 살해되고 나서 얼마 후에, ‘엘제’도 사라졌고, 나는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가 해준 말이나 차분한 확신에 찬 그의 성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자유를 얻어 생명을 찾다!

‘다하우’에서 4년을 보낸 후에, 내가 석방될 때가 다가왔다. 미군이 도착하기 3일 전에, 친위대 경비원들은 우리 모두를 수용소 내에 감금시켜 놓고 사라져 버렸다. 그 수용소 주위의 철조망에는 전류가 흐르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마침내 미군이 도착하여,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이미 늦은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해 그토록 고된 투쟁을 벌인 후에 많은 사람들은 살려는 의지를 상실하고 죽음에 굴복하였던 것이다.

‘러시아’의 국적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넘겨졌다. 이제 17세가 되었으므로, 나는 사령부의 사령관과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에 나의 아버지를 잘 알던 한 대령이 자기 차 뒷 좌석의 담요 밑에 나를 숨겨 부대 막사 밖으로 몰래 빼내 주었다. 나는 ‘러시아’ 국경까지 기차로 여행하여, 어느 날 아침 동트기 직전에 경비병들이 경계를 소홀히 하는 한 장소를 찾아 내었다. 나는 거리가 수‘킬로미터’인 최전선 사이의 무인 지대를 포복하여 넘었다. 반대편의 미군들이 자기들 쪽으로 기어오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나를 맞이하여 ‘하이델베르크’행 기차를 태워 주었다. 나의 반대편에 ‘우크라이나’ 출신의 한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나는 결국 그와 결혼하였다.

‘러시아’인들이 아직도 나를 찾으려 하였으므로, 상황은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라디오’로 나의 아버지가 나를 찾고 있다는 방송을 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응답하기가 두려웠고, 그것은 술책이라고 생각하였다. 어쩌면 정말 아버지가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그 ‘라디오’ 방송에 응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나는 2명의 공산주의 형사들의 추적을 당하였다. 그래서, 나는 한 백화점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까지 올라갔다. 나는 관리인을 만나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하자, 그는 그 형사들이 가버릴 때까지 나를 자기 사무실에 숨겨 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남편과 나는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갈 것을 결정하여, 1949년 4월에 현재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새로운 인생과 되찾은 희망

그리하여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지방 사제의 방문을 받았으나, ‘유럽’에서 내가 본 종교인들의 행위 때문에 그리고 ‘엘제’가 교회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다고 알려 준 사실 때문에 나는 교회에 나가고자 하지 않았다. 나는 진리를 찾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그 지방의 모든 종교인들을 찾아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천당에” 간다고 대답하였다. 그 말이 나오면, 나는 다음 교회 집단으로 발길을 옮기곤 하였다.

기도하기 시작한 지 며칠 후에, 한 청년이 나의 문을 두드리고 「파수대」와 「깨어라!」(국문은 「깰 때이다」)를 제공하였다. “당신도 천당에 갈 건가요?”라고 나는 물었다. “아니요” 하고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땅이 낙원으로 변모될 때 이 땅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지고 있지요.” 드디어, ‘엘제’와 똑같은 사람이 온 것이다! 마침내, 그것은 내가 ‘다하우’ 시절 이래로 찾아 헤매던 진리였던 것이다. 나는 몹시 흥분하였으며, 그래서 우리는 약 2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증인’은 다음 날 나를 만나도록 자기 이모를 보내 주었고, 나는 사실상 단 이틀 만에 「낙원을 잃은 때부터 낙원을 찾을 때까지」 책을 탐독하였다. 그 다음에 나는 소위 ‘신약’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을 읽기 시작하여, 사흘 만에 그 책을 독파하였다. 이 모든 지식들은 얼마나 훌륭하였던가! 「낙원」 책과 성서의 내용은 ‘엘제’가 말해 준 내용 그대로였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끝에, 나는 그의 동료들을 만난 것이다—‘다하우’에서 석방된 지 17년이 지난 후에야!

나의 인생을 회고해 볼 때, 나는 사랑하는 ‘엘제’가 성서에 나오는 놀라운 희망을 내게 말해주던 ‘다하우’에서 보낸 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 나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질 수 있었던 것이다. (요한 5:24, 새번역) 나는 지금 시편 94:17, 18의 영감받은 이러한 말씀을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나이다.]”

그리고 장래를 바라볼 때, 이사야 41:10의 이러한 말씀은 나의 힘을 북돋워 준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랑하는 ‘엘제’의 노력의 혜택으로, 여호와께서는 ‘다하우’에서 내가 참으로 생명을 찾게끔 도와 주셨던 것이다.—기고.

[14면 삽화]

‘다하우’에 있는 ‘가스’실과 화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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