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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침내 달성한 나의 어린 시절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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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침내 달성한 나의 어린 시절의 목표
  • 깨어라!—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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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5
깨85 7/15 13-17면

마침내 달성한 나의 어린 시절의 목표

하나님에 대해 가졌던 최초의 호기심을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어머니가 유치원에서 집으로 내 손을 잡고 걸어올 때, “엄마, 하나님은 어디서 생겼어요?”라고 나는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무도 모른단다”라고 어머니는 대답하였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 대답을 듣고 고민하였다. ‘하나님이 어디서 생겼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은 다섯살된 나의 어린 정신에 줄곧 동요를 일으켰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성서의 가르침

2년 후에 나는 부모의 허락을 받고, ‘위스콘신’ 주 ‘밀워키’의 우리 집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라신’에 살고 있는 고모 및 고모부와 함께 여름 방학의 일부를 보내게 되었다. 고모는 내게 성서에서 알려 주는 놀라운 희망—언젠가 낙원에서 살게 되리라는 희망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고모는 “낙원”이 장엄한 정원이나 공원 같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닌 곳을 의미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자기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지낼 것이며, 사자와 호랑이 같은 짐승들도 새끼 고양이처럼 온순해질 것이기 때문에 무서워하지 않고 함께 놀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결코 죽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코 그곳을 떠나게 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누가 23:43, 계시 21:3, 4; 이사야 11:6-9.

많은 사람들은 성서가 이해하기가 어려우며 또 이해하게끔 쓰여진 책이 아니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의 세부점들을 묘사한 성귀들은 고모가 내게 보여 주었을 때 조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 성귀들은 아주 쉽사리 머리에 그려볼 수 있는 인간의 경험과 일치된 것들이었다. 결코 동화 속의 이야기나 공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공상들은 생겨났다가 사라지지만, 낙원에서 살게 되리라는 성서에 근거한 이 희망은 그 후 23년 동안 나의 생애에 영향을 끼쳐왔고, 오늘날 그것은 겨우 일곱살 때 그랬던 만큼이나 실제적인 희망인 것이다.

모든 숭배가 승인받는 것은 아니다

어린 나로서도, 그토록 즐거운 생활을 제공해 주실 만큼 사람들에게 관심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은 확실히 숭배받아 마땅한 분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모는 모든 숭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 주었다. 고모는 시편 115편을 찾아 내게 보여 주었는데, 그 귀절은 잘못된 방법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에 관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 115:4-8.

이 성귀 역시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숭배에서 형상을 사용하는 것을 승인하시지 않는 것이다! 내 뇌리에서 즉각 우리가 엎드려 절하며 입을 맞추곤 했던 교회의 조상(彫像) 및 그림들 그리고 내가 침실에서 기도 올리곤 했던 예수의 그림이 스쳐 지나갔다. 희미하게나마 깨닫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의 종교, 나의 부모의 종교가 성서와 일치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부터,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숭배하는 것이 나의 최상의 욕망이 되었다.—요한 4:23, 새번역.

고모가 시편 115편과 같은 성귀들을 내게 보여준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고모는 자기의 남동생인 나의 아버지가 희랍 정교회에서 숭배에 형상을 사용할 것을 철저히 주입받아 온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제 2차 세계 대전’ 후에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왔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두 여동생과 나는 ‘밀워키’에 있는 ‘우크라이나 희랍 정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의 반대가 시작되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부모에게 내가 배운 것들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즉시, 고모가 자기 종교에 대해 내게 말해 준 것을 부모가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고민하였다. 성경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말하고 있으나, 나는 이제 두 아버지—육적 아버지와 역시 순종과 공경을 요구하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사이에서 괴로와하였다.—에베소 6:1-3.

그 다음 몇년 동안, 부모는 내가 고모와 고모부를 방문하는 것을 계속 허락해 주었다. 내가 거기에 가 있는 동안, 고모와 고모부는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집회에 나를 데리고 가곤 하였다. 한 젊은 ‘증인’이 하나님의 약속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주기 위한 호별 방문에 나를 데리고 가기까지 하였다. 증인들은 나에게 진정한 관심을 나타내고 나를 실제 인격체로 대우해 주었으며, 나도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대단히 좋아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아버지는 “너는 누구의 종교를 더 좋아하지?” 하고 묻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항상 “우리 종교요, 아빠”라고 대답하곤 하였다. 어린 소녀로서, 나는 두려워서 감히 아버지에게 진리에 관해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나는 내가 배워왔던 그 모든 점들에 관하여—숭배시에 형상과 그림들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잘못이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이제 곧 창조하실 바로 이곳 지상 낙원에서 우리가 누리게 될 훌륭한 장래에 관하여 성서로부터 아버지에게 보여 주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나는 그 당시 12살 가량되었었다. 아버지는 격노하였고, 다시 고모를 만나는 것을 금하였다. 그때부터, 우리 가정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긴장이 감돌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였는가? 어떻게 하여 나는 지금 여호와를 섬길 수 있게 되었는가? 나는 여호와께 제발 내가 그분의 종이 될 때까지는 땅에 새로운 낙원을 가져오지 말아 달라고 열렬히 기도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14살이 된 후인 어느 날, 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있었다.

인생에서의 나의 목표를 설정함

어느 날 오후 나는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면서, 무심코 침실 창 밖을 내다보았다. 길 건너편에 큰 손가방을 든 두 젊은 여자가 있었다. 나의 심장은 마구 뛰었다! 그들이 ‘증인’같아 보였던 것이다! 나는 집 밖으로 달려나가, “‘여호와의 증인’이지요?”라고 물었다.

“네”라고 그들은 대답했다.

“나도 ‘증인’이예요”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내가 자신을 ‘증인’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두 젊은 여자는 전 시간 ‘파이오니아’ 봉사자들이었다. 나는 집에서 반대가 있음을 설명했고, 그리하여 우리는 나의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함께 연구하기로 약속하였다. 우리는 불규칙하게 사년 동안이나 비밀리에 연구를 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여호와의 증인’이 성서의 진리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유일한 종교라는 사실이 점점 더 명백해졌다. 성서를 알도록 나를 도왔던 그 젊은 ‘증인’은 내게 많은 간행물들을 읽어보라고 주었다. 그 중 하나가 「여호와의 증인의 연감」이었다. 그 연감을 읽는 일을 통해 나는 여호와의 종들의 생활이 결코 단조로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 연 1회 발행되는 출판물에는 선교 경험들로 가득차 있었다. 선교인이 되어 평생 그런 종류의 흥분케하는 경험들을 하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이겠는가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것은 나의 목표가 되었다.

비록 나의 가족이 내가 ‘여호와의 증인’과 접촉을 하고 있음을 의심하기는 하였지만, 우리가 연구하는 것을 결코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그것을 암시하는 것은 바로 내 침실에서 이따금 발견되는 성서 서적들이었다. 나의 여동생들(나보다 2살 어린 쌍동이 동생들)은 서적을 찾아서 부모에게 보여 주려고 내 서랍을 뒤지거나, 침대 밑을 살펴보거나, 또는 나의 방 전체를 수색하곤 하였다. 그 수색을 피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는 옷장 속에 걸려 있는 ‘코우트’ 호주머니들이었다.

반대가 심해지다

내가 부모의 숭배 방식에 고착하기를 거절하자, 가정 생활은 점점 어려워져 갔다. 때때로 어머니는 며칠 동안이나 내게 말 한 마디도 없이 지내곤 하였으며, 심지어는 학교, 의복 다른 어느 것이든 물어보는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조차 거절하였다. 때로는, 가족 내의 다른 성원들과 같은 차를 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부모의 부추김을 받은 많은 친척들이 찾아와 나와 나의 신앙을 조롱하곤 하였다.

논쟁과 다툼, 그리고 울고 말았던 일이 숱하게 있었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나의 성장기는 불행하였다. 예수께서 자신의 가르침이 일부 가정에 “불화하게 하”리라고 하신 마태 복음 10:34-37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부모와 같은 친하고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보다도 훨씬 더 커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만일 “여호와파”에 속하게 된다면 집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늘 경고하곤 하였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그 말을 의심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1971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나는 이제 18세로서 결혼하기에 충분한 나이가 되었으므로, 내 자신의 종교를 선택하기에 충분할 만큼 나이가 든 것이며—그리고, 나는 ‘여호와의 증인’이 되기로 결단을 내렸다고 아버지에게 설명하였다. 그때, 나는 직업을 구해 놓았으며, 집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열띤 논쟁이 벌어졌긴 했지만, 아버지는 결코 한번도 나더러 나가라고 말하진 않았다. 나는 그것을 거의 믿을 수가 없었다! 여호와께서 나의 노력들을 축복해 주셨던 것이다.

가족들이 반대한 이유

부모는 신앙심이 깊은 분들이었고, 자기들의 숭배 방식이 옳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단지 부모는 내게 최상의 것을 마련해 주려 했던 것임을 나는 잘 안다. 아버지는 ‘우크라이나’에서 국민학교 교장이자 교사였고, 자기 자녀들이 미국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아 성공하는 것이 꿈이었다. 부모는 우리가 교양면에서 발전하기를 원하였고, 그리하여 우리는 유년 시절부터 악기 연주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맏딸이 대학 교육을 포함하여 그들이 원했던 모든 것들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내가 대학 교육 그 자체를 반대하였던 것은 아니었으나, 성서에 대한 나의 이해로 볼 때, 나는 현 사물의 제도가 조만간 끝나버릴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죽어가는 제도에 더 많이 관련되는 대신에 생명 구조의 전파 사업에 전념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낙원’에서의 생명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다른 어느 것보다도 더욱 중요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베드로 후 3:13.

동시에, 나는 가족으로부터의 박해 중 일부는 내 자신의 잘못 때문이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자도 알다시피, 나는 종교적 가르침에 관한 많은 사실들—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섬기는 일에는 또한 “새 성품”을 옷입는 것도 포함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였으며, 그 “새 성품”에는 평화, 온유, 오래 참음 및 자제 등과 같은 건전한 특성들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관련되었다. (에베소 4:22-24, 신세; 갈라디아 5:22, 23, 신세) 그리하여, 나의 재치의 부족으로 인해 부모의 실망은 더 커졌고, 부모가 그 반응으로 반대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여호와의 증인’이 되겠다고 아버지에게 말한 후에, 나는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72년 12월에 나는 물침례를 통해 여호와께 대한 나의 헌신을 상징하였다. 예수께서는 마가 복음 10:29, 30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곧, 예수의 말씀과 일치하게도, 나는 가족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지 못한 그 공허감을 채워 줄 수 있는 여호와의 백성 사이에서 벗들을 얻게 되었다. 어떤 분들은 내게 정말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와 자매들 같았다.

목표에 달하기 위해 진력함

나는 여전히 선교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오직 ‘파이오니아’들만이 ‘길르앗 성서 학교’에 참석할 자격이 있으며, 그 학교를 졸업한 후에야 외국 선교 임명지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그 목표에 달하기 위한 첫 단계—‘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하는 것—가 당면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부모에게 가일층 심한 타격이 될 것이었다. 부모는 보수가 좋은 비서로서의 나의 직업이 적어도 내 일생을 완전히 낭비하게 하지 않은 것을 얼마간은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나는 직장의 상관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그는 내가 그 회사에서 얼마 동안 근무하리라는 묵계하에 나를 고용하였던 것이다. 회사측이 나를 훈련시키는 데 투자한 것에 대한 보상을 다 거두기도 전에 나는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였다. 다시 나는 여호와께 이러한 단계를 밟을 수 있는 힘과 담대함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1973년 여름 어느 날,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중역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 전 시간 전파자가 되고자 하는 나의 목표를 설명하였다. 그의 이러한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라리사’, 만일 그 일이 당신의 생애에서 참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이라면, 여기에 있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될 것이요.”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 사람도, 내가 더 큰 자격으로 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싶어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 날은 더욱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 그 중역은 내게 다가와 시간제 일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나는 귀를 의심하였다. “하지만 이 회사에는 시간제 일을 위한 마련이 없는데요”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그렇지, 그건 나도 알아. 그러나, 내가 일거리를 마련해 볼 수 있지” 하고 그는 대답하였다. 그에 더하여 그는 내가 원하는 “어느 날 어느 시간이든지” 일거리를 주겠다고 제의하기까지 하였다. 여호와께서 나를 후원하고 계시다는 얼마나 명백한 증거이며, ‘먼저 그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예수의 말씀이 진리라는 얼마나 확실한 증거인가!—마태 6:33.

이렇게 하여, 나는 1973년 8월을 ‘파이오니아’ 봉사의 첫 달로 맞이하였다. 예상했던 대로, 가족은 나의 결정을 강력히 반대하였고 필연적으로 나는 집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 상황은 나를 매우 슬프게 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 내의 긴장이 줄어들었고 결국은 건전한 관계 즉 한 가족으로서 함께 웃고, 농담과 대화를 즐기게 된 것을 볼 때 나는 행복하다 아니할 수 없다.

1979년 8월, 임종하기 이전에 어머니는 미국 남부의 ‘파이오니아’ 임명지로부터 집을 방문한 나를 환영하여 주었다. 그리고, 1980년 4월 5일, 나는 나의 평생 목표에 같이 하기로 한 ‘데이빗’을 나의 남편으로 맞이하였다. 행복하게도 아버지는 우리 결혼식에 와주었고 우리에게 푸짐한 선물도 주었다. 그리하여, 비록 아버지와 여동생들이 내가 여호와를 숭배하는 일을 어떻게 느끼는지 인식하지 못하긴 하지만, 우리는 좋은 관계를 누리고 있다.

‘파이오니아’ 봉사에서 10년 이상을 섬긴 후인 1984년 1월에, ‘데이빗’과 나는 우리 생애에서 가장 뜻밖의 소식 하나를 받았다. 어느 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커다란 봉함 봉투를 발견하였다. 그 봉투 속에는 4월에 시작될 예정인 제 77기 ‘길르앗’ 반에의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 작년 9월에 우리는 그 학교를 마쳤고, 며칠 후에 중앙 ‘아메리카’, ‘온두라스’의 선교 임명지로 떠났다.

지금 나는 「여호와의 증인의 연감」을 읽으면서 항상 열렬히 기대하였던 그 감격적인 경험들 중 얼마를 즐기고 있다. 선교인으로서 봉사하고자 하는 내 어린 시절의 목표를 달성한 지금도 나는 계속하여 이 웅대한 봉사의 특권에 머물러 있고 싶다. 그럼에도, 나의 주된 목표는 여호와를 “영과 진리로” 계속 숭배하고, 마침내는 그분의 은총을 얻어 그분이 자기 종들의 마음에 원하는 것인, 낙원에서의 영원한 생명으로 보상해 주실 그 웅대한 낙원을 즐기는 것이다! (시 37:4)—‘라리사 크리쉬크’의 체험담.

[16면 삽화]

‘온두라스’의 선교 임명지에서 봉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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