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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생애 중 가장 좋았던 사십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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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생애 중 가장 좋았던 사십년간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 소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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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파77 9/1 404-408면

나의 생애 중 가장 좋았던 사십년간

내가 겨우 다섯살이었을 때, 내게는 형제 자매가 아래로 넷, 위로 여섯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해—1907년—에 돌아가셨는데 내 생각에는 아이를 연년으로 낳으신 것이 그 원인이었던 것같다.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 오신 근면한 이민인이었으며, 그 때 그는 하는 수 없이 우리 어린 것 다섯을 시골집으로 보내셨다. 그 중 제일 나이가 많은 나는 다른 아이들을 돌볼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따금 나는 회초리로 매도 맞았는데 어린 동생이 오줌을 싸는 경우와 같은 어찌할 수 없는 일 때문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일을 막아야 하였다.

아버지께서는 정기적으로 찾아 오실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불행한지를 보실 수 있었으며, 그 때마다 마음 아파하시곤 하였다. 일년쯤 후에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으며, 그리하여 가족이 함께 모이게 되었다. 상태는 나아졌으나, 초기에 겪었던 일들은 내게 깊이 영향을 주었다. 내 생각에는 그러한 일들이 나로 하여금 누구나 저지르는 것같은 거짓말이나 속이는 일과 같은 모든 하찮은 그릇된 일들에도 매우 민감하게 만든 것같다.

종교가 해결책인가?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으셨지만, 내 기억에는 그분들이 교회에 한번도 나가지 않았으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대가족을 이끌어 나가시는 일만도 아버지에게는 하실 수 있는 큰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께서 교회에 나가시지 않은 데에는 더 깊은 사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버지께서 “교직자들은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

아버지를 기분 상하게 한 한 가지 일은 그 교직자들이 마차를 타고 가다 가는 내려와서 아버지가 파는 과일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골라내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들의 집으로 그것을 날라다 주곤 하셨는데, 지하실에서 최고급 포도주 하며 없는 것 없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가리켜 “그들은 호사스럽게 살고 있다”고 늘 말씀하시곤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그러한 경험들이 아버지로 하여금 점점 더 종교로부터 멀어지게 하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의심할 바 없이 이따금 아버지께서 원칙에 벗어난 행동를 하시게 한 것은 그러한 아버지의 종교적 배경이었을 것이다. 소년 시절 나는 아버지와 함께 ‘코네티컷’ 주 ‘뉴우헤이벤’에서 청과물 장사를 하였다. 때때로 아버지는 “얘야, 가서 저것도 가지고 와라, 그거 들고 오고 또 그것도 가지고 와” 하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값을 치르지 않은 과일 상자였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성공하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을 하곤 했지만 그런 일이 내 성미에는 맞지 않았다. 그런 경우가 자주 없었던 것을 나는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이따금 왜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불공평과 부정이 있는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였다.

내가 5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가 파한 후 연로한 부부를 위해 일을 해 주었다. 어느날 집안 청소를 하고 있는데 그분들은 내게 흠정역 성서 한권과 전직 교직자 ‘차알스 치니키’가 저술한 「‘로마’ 교회 내에서의 50년」이라는 책을 주었다. 나는 그 때까지 성서를 본 일은 없지만, 종교에 관하여 뭔가 알고 싶었다.

어렸지만, 나는 대단한 흥미를 가지고 전직 교직자가 지은 그 책을 읽어 보았다. 그 책은 어린 내 마음에 혐오감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그 때부터 나는 교회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열정과 기쁨을 가지고 특히 성서를 읽고 또 읽어 보았다. 그것은 내가 애독하는 책이 되었다. 성서를 읽는 일은 나를 더욱 어른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나는 영적인 일들과 인생 문제에 더욱 깊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단’ 마귀의 초인간적인 악한 영향력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해 성서의 설명을 읽어 본 후, 그 사실은 세상에 왜 그토록 불공평이 많은가 하는 이유에 관하여 조금이나마 눈을 뜨게 해 주었다.

특히 내게 흥미있었던 것은 마태복음 4장인데, 거기서는 ‘사단’이 예수를 세번 유혹했던 일을 알려 준다. 매번 예수께서는 “기록되었으되”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마태 4:3-10; 신명 8:3; 6:16; 5:9) 이 점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만일 하나님의 완전하신 아들 예수께서 세번씩이나 ‘사단’에게 대답하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하셨다면, 그보다 더 좋은 책이 어디 있으며,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책으로 그보다 더 좋은 책이 무엇이겠는가?’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이러한 지식은 나로 하여금 성서에 대한 확고한 신자가 되게 하는 데 충분하였으며, 그리하여 나는 성서 지식에 대하여 간절한 욕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집안 식구들은 내가 성서를 읽고 있는 것을 보면, 나를 놀리며 찰짜라고 비꼬았다. 그들은 성서를 너무 많이 읽으면 사람이 미친다고 주의를 주기까지 하였다.

자립하다

집에서 가족들과의 일은 그렇게 잘 되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맏형과 둘째 누이는 집을 떠나 결혼을 하였으며, 그들은 번갈아 나를 데리고 살았다. 나는 10대초가 되었을 때 자립하였다.

나는 처음으로 가졌던 나의 정식 직업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코르셋’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 시간당 10‘센트’를 받고 하루에 열 시간씩 일하였다. 그 후 나는 땅을 파는 노동으로부터 공장에서 온갖 기계들을 다루는 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공장 작업반장, 주임 검수관, 판매 주임 등의 직위를 갖게 되었다. 나는 ‘연쇄점’의 ‘매니저’로도 일하였으며, 또한 정치 생활도 했다.

그러나 나를 괴롭히는 상황은 언제나 있었다. 종업원들은 도둑질을 하는 반면 사업 거래나 정치 활동에는 파렴치한 비행이 관련되어 있었다. 옳은 일을 하려는 사람은 항상 손해를 보는 것같고 그릇된 일을 하는 사람은 이득을 보는 것 같은 사실이 나에게 몹시 못마땅하였다. 그리하여 늘 이러한 의문이 맴돌았다: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의 미래는 어떠한 것인가?

인생의 전환점

그러는 사이에, 1925년이 이르러 나는 ‘코네티컷’ 주 ‘메리든’에서 온 ‘가톨릭’교 신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가톨릭’교에 대한 나의 견해와 내가 성서는 믿지만 성서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점을 말하였다. 결혼 생활 4년 동안 우리는 귀여운 아들 둘을 두었으며, 1935년에 아들을 또 하나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내 생애에 전환점이 된 일이 바로 그 전에 있었다.

아내가 성서 제목에 관해 쓴 몇 가지 소책자를 받은 것은 1933년이었다. 며칠 밤을 새워서 그것들을 전부 읽었고, 성서에서 모든 성귀들을 찾아보았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고대해 오던 것이었다. 아내가 와서는 지금 몇시인 줄 아느냐고 묻곤 했지만 너무나 심취해 있었기에 시간에는 여념이 없었다.

죽음과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내게는 결코 옳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있고 사람이 죽을 때 그 영혼은 육신을 떠나며, 만일 어떤 사람이 “악한” 생활을 했다면 그의 영혼이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초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내가 읽고 있던 책으로부터 성서는 영혼이 죽을 수 있으며 또 죽는다고 가르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서는 영혼이 불멸이라거나 죽은 후에도 영혼이 계속 의식을 가지고 존재한다고는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에스겔 18:4; 전도 9:5, 10.

더구나, 성서에서 “지옥”이란 인류의 일반 무덤임을 알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 점은 매우 분명하였다! 나는 ‘야곱’이 자기 아들이 죽임을 당하였다고 생각하여 애통해 하며 “내가 슬퍼하며 음부(지옥, ‘듀웨이’)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고 한 곳을 성서에서 조사해 보았다. 마찬가지로 나는 충실한 사람 ‘욥’이 고통중에서 하나님께 “주는 나를 음부(지옥, ‘듀웨이’ 역)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옵소서]” 하고 기도한 곳도 읽어 보았다. (창세 37:35; 욥기 14:13) ‘욥’이 음부 즉 지옥으로 가고자 간절히 바랐던 것을 보면, 그곳이 고초의 장소일 수 없다는 점이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나를 흥분시켰던 것은, 내가 하나님에 관하여 더욱 명백한 이해를 얻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분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름을 가지고 계시며, 나는 그 이름을 내가 가지고 있던 「흠정역 성서」에서 읽어 보았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시 83:18) 그렇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아들 즉 하나님께서 땅으로 보내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는 전혀 다른, 더 낮은 분이시다. 혼란된 삼위일체 교리 즉 예수와 하나님이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그 교리가 성서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비그리스도교 종교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말할 수 없이 기쁜 일이었다!

이러한 성서 진리는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으며, 특히 죽은 사람을 생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여호와의 목적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더욱 그러하였다. 성서는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다 같이 부활[하리라.]” (사도 24:15, 새번역) 그렇다, 나는 그제야 비로서 의로운 하늘의 다스림하에서 땅을 낙원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이 어떻게 성취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한 축복을 즐길 기회를 주실 것인가를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마태 6:9, 10; 계시 21:3, 4) 나는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해 주신 데 대하여 하나님께 대단히 감사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감사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결정

먼저, 나는 이러한 지식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 사람들—‘여호와의 증인’을 찾아 보기로 결심하였다. ‘뉴우헤이벤’에 있는 조그마한 2층 방에서 그들 25명 가량이 정기적으로 집회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집회들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으며, 곧이어 나의 가족들도 참석하였다. 이러한 일들이 내게 가져다 준 기쁨을 깨닫고, 나는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이 한 바와 같이 사람들의 가정에서 그러한 것들을 전해 주기 시작하였다.—누가 10:2-11.

30년대초는 공황기였으며, 매우 고생스러운 때였다. 은행이 파산되어 나는 돈을 잃어 버렸다. 드디어 나의 재산에 대하여 압류 처분이 시작되었다. 이 때에, 유력한 변호사였던 나의 형은 내게 장사를 다시 시작해 보라고 제안을 하며, 시골에 있는 훌륭한 집과 몇천 ‘달러’의 돈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인가 하는 정신없는 짓은 집어 치워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리스도께서 ‘사단’에게 시험받으시던 때의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실제로 결정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예수께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형에게 그의 제안을 받아 들일 수 없다고 했다. (마태 4:10) 사실상, 세상의 돈을 모두 준다 해도 나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나의 생명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1935년 5/6월 ‘워싱턴 D. C.’에서 열린 ‘여호와의 증인’의 대회는 내게 이러한 헌신을 물 침례로 표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다음 해에 나는 조그마한 ‘뉴우헤이벤’ 회중의 주임 감독자로 임명되었다. 이제 나는 또 다른 결정을 해야 하였다. 나의 나머지 생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 당시 나는 34세였으며, 사업 경험과 연줄도 가지고 있어서 편안한 생활도 붙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한 때 살던 것처럼, 하나님의 웅대한 목적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기도로 여호와께 나아가, 내가 많은 사람들을 도와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섬길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전적으로 하고 싶은 나의 진정한 욕망을 아뢰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심사숙고한 후, 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파이오니아’ 봉사라고 하는 전 시간 전파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이 활동에 바친 지난 40년이야말로 나의 생애 중 가장 좋았던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37년에 특별 ‘파이오니아’ 봉사가 시작되었으며, 그 봉사가 처음 시작될 때 뽑힌 200여명의 ‘파이오니아’ 중에 나도 들었으며, 이 일을 19년 동안 해 오고 있다.

우리는 물론 물질적으로 부한 편은 아니지만, 그 여러 해 동안 나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시간제 직업을 가지고 생활해 올 수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가장으로서 조그마한 연장 제조 공장을 운영해 왔다. 우리가 사는 검소한 형편을 보고 사람들은 “그렇게 여러 해 동안 일을 해 왔으면서도 물질적으로 가난한 형편에서 어떻게 당신은 행복할 수 있읍니까?” 하고 묻는다.

사람들을 도와 줌

그러나 생각해 보라: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물질적인 것인가? 어느 정도는 그럴지 몰라도, 분명히 부자들 가운데서 불행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예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도 20:35) 그리고 나의 지난 40년 동안을 이토록 만족스럽게 해 준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천만금을 주는 것보다도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보화를 발견하도록 무료로 그들을 도울 수 있었던 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성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바와 같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수십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도와서 말할 수 없이 가치있는 이러한 지혜와 명철을 얻게 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되어 왔다.—잠언 3:13-18.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이러한 말할 수 없이 가치있는 보화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은 데 대하여 내게 고마와한다. 1972년 2월 나는 ‘예일’ 대학교 의대생과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1970년 그는 그 대학 ‘아이비 연맹 축구 티임’의 주장이었다. 성서 연구를 한지 몇개월 후 그는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것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그의 아내될 사람도 공부해 왔다. 얼마 후 이들 둘은 자신들의 생명을 여호와 하나님께 바쳤다. 언젠가 ‘리처어드’는 내게 이런 말을 들려 주었다. “‘아파이아’ 형님, 형님은 제게 아버지보다 더하신 분입니다. 형님은 제게 참으로 많은 것을 도와 주셨읍니다.” 그와 같은 경험들은 참으로 내 생활에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비록 나는 한 평생을 ‘뉴우헤이벤’에서 살아왔지만, 여러 사람들을 왕국 전파 활동을 시작하도록 도와 주었으며, 그들이 지금 전세계 도처에서 봉사하고 있는 것을 보는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 금년 초 ‘여호와의 증인’들의 장로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인 천국 전도 학교가 ‘뉴우헤이벤’에서 개최되었다. 금년 봄 두 학급에는 내가 가정 성서 연구를 사회하였던 사람 다섯이 참석하였다.

어떤 다른 사업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유익한 변화를 가져오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이 좀더 건전한 사고 방식을 갖도록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즐거움이다. 한 예를 들어 보겠다: 1955년 나는 그리스도인 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영국 ‘런던’에 갔었다. 내가 묵고 있었던 집의 남편은 무신론자라고 주장하였다. 어느날 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잠자리로 들어간 후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게 한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 주십시오. 좀 듣고 싶습니다.”

“무슨 질문인데요?” 하고 나는 물었다.

“하나님은 어디서 생겨났읍니까?”

“아하, 그야 쉬운 질문이지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는 놀라서 나를 쳐다 보았다. “쉽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나는 성서를 펴서(그들은 흠정역 성서를 가지고 있었다), 시편 90:2을 읽어 주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내가 읽어 나아가는 동안, 그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자, 우리는 이렇게 사람과 사람으로서 마주 대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이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그러면 하나 여쭤 보겠읍니다. 만일 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어떤 질문을 했다고 합시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에게 대답을 해 주었는데 아들은 그 대답을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시다. 아들이 그 대답에 대하여 못마땅한 표정을 한다면 아버지의 기분이 좋겠읍니까?”

그는 나를 당황한 듯이 쳐다 보며, “그렇지요, 기분이 좋을 리 없지요. 그런데요?”

“제 말은 이런 뜻입니다. 저에게 ‘하나님은 어디서 생겨났느냐?’고 물으셨으므로 저는 하나님의 대답 즉 그분이 사람들을 시켜 기록하도록 영감을 주신 대답을 알려 드렸읍니다. 그런데 그 대답을 감사히 생각지 않으십니다. 아마 이해를 못하신 모양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즉 믿음이 있다면 받아 들이기 쉬운 대답입니다.”

“어째서요?” 하고 그가 물었다.

“자, 하나님께서 ‘아무개가 나를 창조하였다’고 말씀하셨다고 합시다. 그러면 또 아무개는 누가 창조하였는가를 알고 싶을 것입니다. 그 다음, 그분이 ‘아무 아무개가 아무개를 창조하였다’고 말씀했다고 가정한다면, 거기에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항상 계셔 오셨고, 또 항상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대답이 만족을 드리지 못합니다. 우리의 이 조그마한 두뇌로는 그 점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 들일 수도 없읍니다. 왜냐 하면 만물은 생성했다가는 사라지기 때문이며, 인간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항상 존재해 오셨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점은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할 점입니다. 즉 우리가 보는 경탄스러운 모든 놀라운 창조물은 영원히 존재하시는 그런 하나님에 대하여 믿음을 가질 만한 건전한 기초를 제시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자칭 무신론자라고 하는 이 사람은 그것을 수긍을 하였으며, 이제는 탁 터놓고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 “제게 성서에 관하여 좀더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고, 내가 ‘런던’을 떠날 때, 그 연구를 다른 증인에게 인계해 주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지난 사십년간 나의 생애를 가장 좋은 시절로 만들어 준 것이다.

당신은 좋은 선물을 받을 때 어떠한 기분을 느끼는가? 감사한 마음? 마찬가지로 나는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 관한 지식과 이해를 무한히 가치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 40년이 나의 생애 중 가장 좋은 시절이 되었던 한 가지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 해 온 활동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수행하셨고, 또 그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셨던 활동이라는 점이다. 이에 관한 지식은 여호와의 약속에 대한 나의 믿음과 신뢰감을 북돋아 주었다. 마치 성서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을] ···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브리 6:10)—기고.

[405면 삽입]

“이러한 지식은 나로 하여금 성서에 대한 확고한 신자가 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405면 삽입]

“죽음과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내게는 결코 옳게 생각되지 않았다.”

[406면 삽입]

“세상의 돈을 모두 준다 해도 나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407면 삽입]

“이러한 성서 진리는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408면 삽입]

“‘하나님은 어디서 생겨났느냐?’고 물으셨으셨으므로 저는 하나님의 대답을 알려 드렸읍니다.”

[406면 삽화]

생명을 주는 성서 지식을 얻도록 사람들을 돕는 일은 내게 커다란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407면 삽화]

천국 전도 학교 강사, 나 및 내가 가정 성서 연구를 사회하였던 다섯명의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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