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적’의 배경은 무엇인가?
일본의 학교 운동장과 공장 대문에는 보통 등에 나무를 한짐지고 손에 책을 든 어린 소년의 상이 있다. ‘니노미야 손토쿠’라는 이 소년은 19세기의 “일본 농부 현인”이다. 가난한 농부의 가정에서 태어나, 그는 스스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자기 가정의 농장을 성공으로 이끈 뒤에, 그는 농장과 재정을 관리하는 방법과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열심히 일하고 협조하여 얻는 성공의 상징이 되었다.
물론, 다른 나라들에도 가난한 소년이 훌륭한 영웅이 된 그들 나름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아마 그 어느 것도 일본인의 문화와 사회 가치 기준—그들의 가차없는 작업 윤리, 가장 혹독한 제한을 참는 능력 및 전체의 유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 개인을 희생하는 그들의 자진성—형성에 ‘니노미야’가 미친 영향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 다른 어느 것보다도 ‘니노미야’의 정신에서, 우리는 오늘날 일본의 기적의 배경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 틀잡는 일
가정에서부터, 일본 가정의 각 성원은 경계가 분명한 위치가 있다. 동생은 손위 형이나 누이를 부를 때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형”이나 “누나” 또는 “언니”라고 부른다. “형, 이 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대하여, 형은 동생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예의를 덜 갖춘 친숙한 형태의 “너”라는 말로 동생들에게 말을 낮추어 대답한다. 남편이 자기 아내를 가리킬 때 선택할 수 있는 어휘들은 매우 다양하며, 그 어느 것도 서양 사람들의 귀에는 아첨하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아내가 남편을 가리킬 때는 존경을 나타내어 “내 주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부터, 집단 내에서 누구나 자기의 위치를 인정하게 만들며, 자기에게 할당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전체의 복지에 기여할 것이 기대된다.
순응 속에서 교육
이 개념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때 강화된다. 여기에서 다시, 순응과 집단의 가치 기준이 강조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교복을 입는다. 집단 의식을 배양하기 위하여, 학생들의 임무에는 교실, 낭하 및 운동장을 깨끗이 정돈하는 것이 포함된다. 일본의 학교 제도는 엄하고 강압적인 표준들을 요구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교과 과정에서 선택 과목은 거의 없다. 반에 있는 모두는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의 최선을 다할 것이 기대된다. 일본인의 기본 교육관에는, 대부분 기계적으로, 선생이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이 관련된다고 자주 지적되어 왔다. 개성과 독창적인 생각은 장려되지 않는다.
9년간의 국민학교와 중학교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본인 사이의 일반 여론은, 적절한 고등학교와 적절한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좋은 직업과 안전 및 성공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인생에서의 성공의 상당 부분이 어느 대학교에 들어가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은 꼭 지녀야 할 수단이며, 그것을 얻기 위한 경주는 인생의 초반에 시작된다”고 한 학교의 교감은 말하였다.
그 “경주”는 일류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입학 시험을 통과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결국 그것은 훌륭한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더욱더 치열한 시험을 치를 준비를 하게 해줄 것이다. 이러한 시험들은 너무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이미 긴 수업일 수—미국이 겨우 180일인 데 비해 240일—에 더하여 절반 이상의 국민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은 방과 후에 주입식 학원에 등록하여 다닌다. 긴 시간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개인적으로 희생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계속하여 매 단계에서 기대되는 일들을 자녀들이 잘하는지를 보살피는 일은 주로 어머니에게 맡겨지며, 어머니의 역할은 자녀들을 강요, 설득, 훈계 혹은 심지어 위협하기까지 하여 그들의 코를 교육의 맷돌에 매어 놓는 것이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어머니는 애정어린 표현으로 ‘쿄이쿠 마마’(교육 엄마)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는 부모에게 관찰이 허락된 시간에 학교에 가서 교사들과 자기 자녀들의 발전에 관하여 의논하고, 시험 결과와 성적표를 조사하며, 자녀들이 아플 때에는 대신 반에 앉아 있기까지 한다. 이 모든 일은 자기 자녀들이 경쟁이 심한 시험에서 잘할 것이 보장되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학생이 기대되는 만큼 해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아 비판을 해야 한다. 그것은 작문이나 반에서의 연설 형식으로 행해질 수 있다. 실패와 그 이유 및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일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기적으로,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방과 후에 하는 일, 그들의 식사 습관과 장단점 및 기타 가정 생활에 관한 개인적인 문제들에 관한 질문서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개방 상태는 불순응하려는 어떤 경향과 싸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결국, 이것은 나중에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협조하는 일을 더 쉬운 일이 되게 해줄 것이다.
그런 엄한 제도에는 분명히 장점도 있고 약점도 있다. 장점으로서, 그것은 젊은이들이 읽기와 쓰기와 수학 및 기타 기본 기술에 있어서 높은 수준의 능력을 갖게 해준다. 일본의 “교육 제도는 많은 수의 인구의 지식의 질을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얻을 수 없는 수준으로 올려 놓았다”고 「극동 경제 평론」(Far Eastern Economic Review)지는 말하며, 이 “인적 자원의 뛰어난 질”이 제 2차 세계 대전 후의 경제적 성공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반대로, 순응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압은 선천적인 재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심한 압력을 느끼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갇힌 욕구 불만은 자살과 교내 폭력의 폭발 원인이 되었다. 때때로 그러한 일들이 신문 표제들을 끔찍하게 장식하였다.
대학교와 그 이후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단 대학교에 들어가면 압력은 사라진다. 대부분의 마음에 드는 고용주들—명망있는 정부 기관과 큰 회사들—은 보통, 그들이 졸업을 하는 한, 대학 시절에 어떻게 하였는가가 아니라 어느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는가에 따라 응모자들을 평가한다. 일단 모집이 되면, 그들은 그 회사의 목적에 따라 개조되고, 재훈련받고, 재교육받아야 할 신입생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재교육은 신입 사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기술 분야에서의 급속한 변화에 깨어, 큰 회사들은 일생을 통하여 고용인들에게 계속적인 교육을 베풀기 위하여 많은 투자를 한다. 고용인들은 회사에 더욱 유용하게 되며, 회사는 발전하는 기술의 첨단에 항상 머물러 있도록 경영한다.
이 점은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평생을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준다. 만일 그만두면, 갈 곳이라고는 거의 없다. 신입 사원들은 다른 회사에서가 아니라 대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모집이 된다. 평생 고용되어 일하기를 열망하는 참신한 지원자들이 많은데 중단자를 고용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일본에서는, 현재의 직업이 아무리 불만족스럽다 하더라도, 직업을 바꾸어 처지가 개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 나라에서, 중단자의 생활은 비참하다. 용납되는 방식은 한 고등학교, 한 대학교, 한 회사이다.
그 모든 성공의 원인이 일본의 경제 제도에 있으므로, 그 제도하에서 일하며 생활하는 것은 어떠한가? 큰 회사와 평생 고용이 매력있고 안전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기적 생산 기계 속에서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는 것이 참다운 행복과 만족의 종착역인가? 일본에 있는 큰 회사에서의 생활이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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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제도는 강압적인 표준들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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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순응과 집단의 가치 기준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