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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할례—이유는?
  • 깨어라!—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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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5
깨85 9/15 18-21면

여성 할례—이유는?

“‘런던’ 진료소가 여자에게 할례를 주다!” 얼마 전에 이러한 신문 표제가 실려 영국 및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이 있다. 독자들은, ‘런던’의 유명한 ‘하알리’ 가에 있는 의사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코 들어본 일이 없는 수술 즉 여성 할례를 행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성 할례가 일부 지역—특히 ‘아프리카’—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다. 이것은 적어도 2,000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행해진 관습으로서 한때 혹은 다른 때에 오대륙 모두가 이 습관을 행하였다. 오늘날 살아 있는 여성들 중에서 할례를 받은 여성은 7천만명 가량이나 된다.

독자가 만일 여성 할례가 행해지고 있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면, 아마 그것이 무슨 관습인지 그리고 사람들이 왜 그것을 행하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만일 독자가 사는 곳에서 그러한 일이 행해지고 있다면, 아마 ‘내 딸에게도 할례를 주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져 왔을지 모른다. 이웃, 친척 및 오랜 전통의 단순한 부담이 부모들에게 이 관습을 따르게 하는 압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수술은 위험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수술을 동의하기에 앞서, 부모들은 이 문제를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확히 무엇을 수술하는지, 수술이 가져오는 결과가 무엇인지, 어떤 위험이 내포되어 있는지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여성 할례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인가?

실제로, 그것은 틀린 명칭이다. “할례”는 “주위를 잘라내는 것”을 의미하며 남자 아이에 대한 수술에 적용된다. 여자 아이의 경우에, 그 수술은 “절제” 이상으로서, 음핵의 일부 혹은 완전한 제거, 또한 아마 음문의 내순연인 소음순의 제거를 의미한다. 생후 일주일에서 십년 혹은 그 이상의 여자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이 수술은 가벼운 형태의 여성 할례이다.

그러나 이보다 좀더 심한 수술이 있는데, 그것은 음부 봉쇄술이라는 수술이다. ‘지부티’의 한 소녀에게 행한 음부 봉쇄술에 관한 설명은 이러하다. “나이든 여자가 면도칼로 음핵을 잘라낸다. 그 다음 음부 봉쇄술이 뒤따르는데, 수술자는 면도칼로 [음문의] 소순연을 위에서 아래까지 잘라낸 다음 대순연의 내부로부터 살을 긁어내어 반반하게 만든다. ·⁠·⁠· 그 다음 풀을 바르고 ‘아카시아’ 나무로 대순연의 유착을 확실하게 한다.”(「더 이코노미스트」에 인용된 소수 권리 집단의 보고 제 47번) 상처 부분의 세포 조직은 거의 완전하게 질을 덮어 버리며, 이 소녀가 결혼하면 아마 면도날로 질을 다시 열지 않으면 안 된다.

위험한 수술

두 가지 수술 모두가 고통스럽고 위험하다. 최근에, 한 ‘말리’ 사람이 ‘프랑스’의 법정에 서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유는 그가 삼개월 된 딸에게 절제를 시행하고 난 뒤에 딸이 거의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수술로 인하여 죽는 아이들은 얼마나 되는가?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합당한 위생법에 관한 지식이 없는 여자들이 마취도 시키지 않고 이 수술을 하기 때문에 사망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신문들의 보고에 의하면, 1982년에 ‘케냐’의 ‘모이’ 대통령은 14세된 소녀들의 사망이 있은 뒤에 그 습관을 불법화하였다.

소녀가 수술을 무사히 마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위험들이 남게 된다. ‘유네스코’는 그들 중 얼마를 열거하는데 두려움으로 인한 심한 충격과 고통, 억제되지 않는 출혈, 파상풍과 기타 감염, 사춘기 때의 고통스러운 월경, 결혼 후 상처 부위가 다시 열릴 때의 감염, 출산시의 어려움들이 그것이다. 「세계 보건」지는 이렇게 부언한다. “여성 성기의 영구적인 변화, 피부양 낭종의 성장, 방광누의 발육 및 기타 병적인 상태는 ·⁠·⁠· 정상적인 성욕에 영향을 주어 결혼 관계를 해칠지 모르며, 불임이나 이혼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그렇다, 그것은 위험한 절차이다. 그런데 왜 부모들은 이 수술을 하게 하는가?

‘늘 그렇게 해왔다’

어떤 지방에서, 이 습관은 미신적인 의식을 수반한다. 그러나 각별히 그것을 행하도록 명령하는 종교는 없는 것 같다.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여러 다른 종교인들이 이 습관을 지킨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의 성적인 경향을 죽이기 위하여 혹은 참으로 여성답게 하기 위하여(음핵을 남성 같은 기관으로 간주한다). 이 수술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 ‘이집트’인 어머니는 조사원에게 그것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였다. “우리가 할례를 받고 그리고 우리의 딸들도 할례를 받게 함으로써 남자와 여자 사이의 혼합이 없게 합니다. 여자는 참으로 여성다와야 하고, 남자는 남성다와야 합니다. 성에 치우쳐 끊임없이 흥분 상태에 있지 않기 위하여, 여자라면 누구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렇게 계속하였다.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외인들이 아닙니다.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들만이 외인들입니다.”

‘코트디브와르’의 「아이버이레 디만체」지는 여성 할례가 하나의 입문 의식임을 암시하는 이러한 말을 하였다. “절제는 소녀가 여성 집단에 속하기 위해, 혹은 단순히 여자가 되기 위한 사회적인 행동이 되었다.” 여성 할례는 또한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두명의 ‘나이지리아’ 여자가 영국에 있는 의사를 찾아와 자기들에게 할례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한 여자는 임신이 불가능하였고, 또 한 여자는 제왕 절개를 통하여 아기를 낳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두 사람은 그 이유를 그들이 어렸을 때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위생상 여성 할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소녀의 순결을 보호한다고 단언한다. 또한 여자의 성기 외부가 “더럽고 추”하며, 할례는 “그 부위를 평평하게 만들어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들 말한다. 아마, 남자가 할례받지 않은 소녀와의 결혼을 원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습관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남자가 아니라 흔히 여자 쪽이다. 일반적으로, 이 수술은 어머니들이나 여자 친척들이 마련하며 지방 여자에 의하여 행해진다. 「선데이 타임즈 매거진」의 보고에 의하면, 이 수술이 불법화되어 있는 ‘수단’에서는 그것이 “여자와 여자 사이의 불법적인 모의에 의하여 행해진다.”

진리는 이러하다. 즉 여성 할례가 행해진 원래의 이유들은 잊혀진 지가 오래되었으며, 여전히 그 습관을 지키는 중요한 이유는 아마 ‘늘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부모가 딸에게 할례를 주지 않으면, 조부모들이 그렇게 하는 방도를 알아낸다. 할례받지 않은 어린 소녀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되려고 부모에게 할례를 부탁할지 모른다.

‘세계 보건 기구’와 ‘유네스코’ 같은 국제적인 조직은 강력히 여성 할례를 반대하고 있으나, 일부 사람들은 그러한 노력을 사적인 일에 대한 주제넘은 간섭으로 본다. 두 ‘아프리카’ 여자는 「더 글로브 앤드 매일」 신문에다 이러한 말을 하였다. “그것은 소녀들이 통과해야 할 의식이며 계속되어야 할 의식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이다.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제거할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입장

부모들은 여성 할례에 관한 그들의 의견을 결정할 때 이 모든 견해를 저울질해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에게는 ‘여성 할례가 성서 원칙과 일치한가’라는 또 다른 질문이 제기된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이스라엘’ 남자는 여호와와 ‘아브라함’의 자손들 사이의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받아야 하였다. (창세 17:10-14; 레위 12:2, 3) 그러나, 그리스도인 부모의 아들들에게는 할례가 요구되지 않는다. (갈라디아 5: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딸들에게도 틀림없이 절제나 음부 봉쇄술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성 할례는 단순히 양심상의 문제인가?

우선, 어떤 정부들은 그것을 금지하였다. 그러한 나라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법에 순종하여 딸들에게 할례를 주지 않아야 한다. (로마 13:1-5) 그러나 여성 할례가 습관화되어 있고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어떠한가? 여성 할례가 위험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어린 소녀들이 그 일로 인하여 죽는다. 성서에 의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일부러 무모한 위험에 처하게 만들 때, 우리는 피흘리는 죄에 참여하게 된다. (비교 역대 상 11:17-19)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의 딸들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함으로써 피흘리는 죄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시 51:14.

여성 할례는 또한 매우 고통스럽다. 이 수술로 말미암은 정신적 신체적 고통은 십대를 거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계속될 수 있다. 이것이 사랑있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대하는 올바른 방법인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인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들을 귀중히 여긴다.’ (데살로니가 전 2:7, 새번역 참조)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기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준다.’ (마태 7:11) 여성 할례가 고대 전통일지는 몰라도,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의사들은 이 수술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아무런 징후도 발견하지 못한다. 위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개인적인 청결은 그들이 드리는 숭배의 일부였는데도,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딸들에게 할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소녀의 순결을 보호하는 문제는 어떠한가? 다시금,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인 여자들에게 정숙할 것을 명하셨지만, 그렇게 하기 위하여 할례가 필요하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디모데 전 2:9) 더 나아가, 이 수술이 소녀를 더욱 여자답게 만든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사실, 그것은 여성 성기에 흉터를 남겨 모양을 추하게 만든다.

참으로, 여성 할례는 오래 계속되는 관습이다. 그리스도인 양심을 범하지 않는 한 관습들은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딸을 불필요한 고통에 내맡기는 것은 부모의 양심을 범하는 것이 아닌가? ‘아프리카’ 지역의 ‘버어키나 패소’에 있는 한 그리스도인 장로가 바로 그러한 느낌을 가졌었다.

그가 고향을 방문하였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그의 부모들은 그에게 아홉살난 딸을 그 마을로 데리고 와서 할례를 받게 하라고 권하였다. 이 증인은 친절하면서도 확고함과 용기를 가지고 이 관습을 지키지 않는 의학적인 그리고 성경적인 이유를 설명하였다. 가정 내에 어느 정도의 불화를 가져오기는 하였지만, 그는 원칙을 고수하였고 아이를 할례받는 것으로부터 보호하였다. 이 증인 가정은 동반자 없이 아이들을 그 마을로 보내는 일이 없도록 결정하여,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들이 관습에 순응하게 만들려는 압력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이 장성한 그리스도인은 깊은 사랑이 겸비된 지식이 얼마나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위하여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용기와 지혜를 부여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다른 그리스도인 부모들도 그의 본을 따르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20면 삽화]

딸을 불필요한 고통에 내맡기는 것은 부모의 양심을 범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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