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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먼—잔존한 아프리카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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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먼—잔존한 아프리카의 주인
  • 깨어라!—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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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5
깨85 11/15 13-16면

부시먼—잔존한 아프리카의 주인

「깨어라!」 남아프리카 통신원 기

“마지막 부시먼”. 「스타아 투데이!」지 1983년 10월 26일자의 선언이었다. 「스타아」지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한 때, 수백만명의 산지 부시먼들이 케이프, 나탈 및 트랜스바알 산지를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한때 당당하던 이 민족의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자피에 마빈데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노인뿐인 것 같다.

그러나, 자피에 마빈데 혈통에 속한 수만명은 이웃 칼라하리 사막에 아직 살고 있다. 난관과 종족 말살을 살아남은 그들의 모험담을 돌이켜 보는 것은 감동적인 일이다.

흑인 및 백인과의 전쟁

아프리카의 흑인 부족들이 남아프리카를 침입하기 시작하였을 때, 그들은 부시먼들—평균 신장이 1.47미터밖에 되지 않는 유달리 몸집이 작은 민족—이 이미 그 지방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과는 달리 부시먼들의 피부는 엷은 황색이다.

흑인들과 황색 원주민들은 한 동안 평화롭게 같은 땅에서 살 수 있었다. 흑인 부족들은 부시먼들이 그 땅과 그 땅의 야생동물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존경할 줄 알게 되었다. “부시먼은 선생님이다”라는 옛 세소토 격언까지 있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공존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17세기에, 백인 정착자들이 도착하여 부시먼들의 소중한 식량인 야생 사냥감을 사살하고 몰아냈다. 부시먼들은 그 보복으로 가축을 훔쳤다. 그 결과는? 거의 200년간 계속된 부시먼과 백인 정착자 사이의 처참한 전쟁이었다! 그러다가 1802년에 기근이 있게 되어 흑인 부족들 사이에 전쟁을 하게 되었다. 땅과 식량의 부족은 필연적으로 부시먼들과의 충돌로 몰고 갔다. 얼마 안 되어 이 몸집이 작은 사냥꾼들은 자신들이 드라켄즈버어그와 레소토 산지에 제한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흑인 및 백인 적대자들과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부시먼은 남아 있는 자기 소유의 땅을 필사적인 전술 즉 살인, 도둑질, 만행 등으로 방어하였다. 그러나 총을 가졌고 수가 많은 쪽이 결국 이 작은 사냥꾼들보다 우세하였으며, 1869년에는 영국의 식민 당국의 명령으로 산지 부시먼들의 조직된 마지막 무리가 일소되었다. 단지 몇 안 되는 격리된 집단만이 20세기로 살아 넘어 왔다.

이러한 종족 말살을 슬퍼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1897년에, 케이프에 있는 식민 정부의 이전 대표 조오지 데알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들이 살던 토착 광야에서 멸절된 이들과 같은 야만인들에 대해 동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수준 높은 민족이 살 장소를 만들어 주는 것은 세상에 유익이 되기 때문에 ·⁠·⁠· 야만인이 사라지는 것을 슬퍼할 이유는 별로 없다.”a

칼라하리 부시먼들

하지만 부시먼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원래 흑인과 백인 목자들이 모두 멀리했던 광대하고 메마른 땅, 칼라하리에 수만명이 살아 남았다. 그곳은 지표수가 전혀 없는 땅이다. 여름에 약간의 비가 내려도 금방 말라버리기 때문에, 농사는 물론 목축에도 적합하지 않은 땅이다. 그러나 부시먼들은 이겨내는 교묘한 방법을 개발하였다. 예를 들어, 그들은 야생 멜론과 구근을 구해 그것을 갈아서 흐물흐물하게 만든다. 그 흐물흐물한 것에서 그들은 귀한 액체를 한방울씩 짜낸다. 혹은 사막 모래 밑에 숨겨있는 물을 찾아내어 속이 빈 긴 갈대로 그것을 빨아 먹는다.

또한 그 땅에서 살아나가는 일은 그들로 하여금 노련한 식물학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 지금까지도, 부시먼 소녀는 여덟살이 되기 이전에 75가지 식물을 식별할 수 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그는 약 300종의 식물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게 된다. 한 부시먼 여인은 숙달된 식물학자인 브라이언 매귀어를 놀라게 하였는데, 그는 이 “전문가”가 똑같은 식물이라고 생각한 두 가지 식물을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독일 과학자인 H. J. 헤인쯔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현대 식물학은 주로 모양을 보고 종을 구별한다. ·⁠·⁠· [반면에 부시먼들은] 냄새, 감촉, 결, 맛 그리고 모양으로 평가한다.”

부시먼은 또한 만만찮은 사냥꾼이다. 먼저 그는 짐승 떼를 추적하여 사냥물을 선택한다. 팔꿈치와 무릎으로 기어 가능한 한 가까이 가서 독이 묻은 활을 쏜다. 즉시 짐승들은 달아나지만, 부시먼은 악착같이 사냥물을 쫓아간다. 몇 차례의 사냥을 목격한 뒤에, 알프 워넨버어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모든 점이 주목되며 고려되고 검토된다. 짓밟은 풀잎의 비틀림, 수풀의 가지가 꺾여진 방향, 짐승들이 밟은 자국의 깊이, 크기, 모양 및 배열, 이 모두는 짐승이나 짐승 떼의 상태 즉 이동 방향, 달리는 속도 및 앞으로 얼마나 움직일 것인지에 관하여 알려 준다.” 독이 온전한 효과를 낼 때까지는 하루가 더 걸릴 때도 있지만, 결국 상처를 입은 동물은 뒤로 처져 잡히고 만다.

자연 보호자이며 화학자

땅이 그들에게는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부시먼들은 땅에 대한 건전한 존경심을 발전시켜 왔다. 식품을 모을 때, 그들은 한 지역을 완전히 박탈하기 전에 다른 지역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한다. 불필요하게 동물을 죽이면 창조주께서 그들을 벌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오락삼아 사냥을 하지 않는다. 한번은 한 부시먼 집단이 우연히 타조알 둥지를 발견하였다. 타조알은 식품으로서 그리고 물을 담는 도구로서 그들 사이에 높이 평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암타조가 알을 다 낳았는지 확인될 때까지 그 둥지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 다음에 그들은 각 알을 조사하여 주의깊이 흔들어 보고, 새끼로 발전한 것들은 도로 둥지에 갖다 두었다. 어떤 사람들이 부시먼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환경 보호자”라고 평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부시먼들은 또한 “화학” 분야에서도 놀라운 솜씨를 개발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유명한 암벽화를 그릴 양질의 페인트를 섞는 방법을 알았는데, 일부 사람들에 의하면, 그것은 “그들의 정확하고 성실한 관찰력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원시 미술로 평가”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그림들은 여러 세기에 걸친 비바람에도 잘 견디어 온 것이다! 디암피디아와 폴리클라다 딱정벌레의 애벌레에서 그들은 또한 강력한 독을 개발하여 그것을 화살에 칠한다. 일단 이 독이 혈류에 들어가게 되면 인간이나 짐승이나 틀림없이 죽게 된다.—해독제가 없다.

남아프리카 부시먼들은 뱀에게 물렸을 때 “해독”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그들은 죽은 뱀의 머리를 거꾸로 들고, 뱀의 독아(毒牙)로 부드럽게 그들의 팔을 문지른다. 그러면 독아에서 독이 한 방울 나오는데 그것을 상처에 바른다. 그들은 검은 갈기의 남아프리카 사자를 대항하는 데에도 어떤 화학 혼합물을 사용하였으며, 그것도 동일하게 영리한 처사였다. 백인 정착자들은 결국 이 괴물 사자들을 전멸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부시먼들은 여러 세기 동안 용케도 그들과 함께 살았다. 비결은? 모닥불에다 어떤 물질을 태웠는데, 그것은 사자가 몹시 싫어하는 것이었다!

앞으로의 생존 전망

오늘날 약 55,000명의 부시먼들이 칼라하리와 그 인근에 살고 있다. 그러나 사냥꾼과 채집꾼으로서의 그들의 생활 방식이 위협을 받고 있다. 목축에 소요되는 물을 얻기 위하여 구멍을 팠다. 부시먼들 역시 이들 영구적인 수원을 환영하였다. 그러나 불리한 점들도 있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부시먼들은 유럽인들과 반투 목축인들에게 그들의 구역을 빼앗기고 있다. 목축인들의 침입은 사냥감 동물들과 [식용] 식물들의 공급을 감소시켜 놓았다.”

한때 부시먼들을 살 수 있게 해주었던 칼라하리는 신속히 사막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전에는 사막이 아니었읍니다” 하고 유명한 작가이며 탐험가인 라우렌스 반 데르 포스트경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우리가 그것을 사막이라고 부른 유일한 이유는 지표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독특한 동식물로 가득차 있읍니다.” 그러므로 반 데르 포스트가 이러한 부시먼의 곤경을 한탄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결핍된 바로 그 면에 있어서 그들은 풍요하였기 때문이다. ·⁠·⁠· 그들은 자연 속에 동화되었다. 자연은 그들의 적이 아니었다.” 그렇다. 한때 그는 부시먼들을 야만인으로 멸시하였었지만, 이제와서 현대인은 이들 두려움을 모르는 잔존자들에게서 배울 것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부시먼들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그들의 존재에 대한 또 다른 위협 즉 서양 문명에의 동화라는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들이 남아 있는 한 어느 정도까지는 본래 대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것은 잔존한 아프리카의 주인에게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각주]

a 1875년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부시먼들을 “타락한” 그리고 “현존하는 인류 가운데서 가장 수준 낮은 민족”으로 평하였다.

[14면 네모]

부시먼의 기원

부시먼의 민속은 지구가 물로 덮였던 때에 관하여 그리고 어떻게 “초기 인종에 속한” 한 사람이 생존하였는지에 관하여 말해 준다. 만티스라는 이름의 이 영웅은 무지개와 관련되어 있으며, 첫 부시먼은 그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 전설은 ‘노아 홍수’에 관한 성서 기록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창세 7:6, 7; 9:8-16.

[16면 네모와 삽화]

“꼭 그렇게 되어야지요”

‘여호와의 증인’은 하나님의 인도 아래 있을 의로운 ‘새 질서’에 관한 그들의 희망을 남아프리카에 있는 부시먼 이웃들에게 전해 주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계시 21:3, 4) 적어도 요한네스라는 부시먼 한명이 증인들의 소식에 반응을 보였다.—그는 나중에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하지만, 왼쪽에 보이는 “마지막” 산지 부시먼인 자피에 마빈데 역시 성서의 소식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1984년 초에 ‘여호와의 증인’이 그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는 줄루어 성서로 요한 복음 5:28, 29을 보게 되었고, 죽어 있는 그의 민족 성원들이 부활로 돌아와 다시 만나게 될 전망에 관하여 들었다. “성서에서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저는 매우 행복합니다”라고 마빈데씨는 말하였다. 그는 언젠가 지구상에 편만하게 될 것이라고 성서가 예언하는 낙원 상태에 관한 어느 화가의 그림을 보고 특히 기뻐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옳습니다, 꼭 그렇게 되어야지요.”

[15면 삽화]

한 부시먼 가족이 칼라하리 사막에 있는 자기들 집 모닥불 주위에 앉아 있다

[자료 제공]

By courtesy of the Africana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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