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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문제에 관한 성서의 견해
  • 깨어라!—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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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6
깨86 2/1 9-11면

성 문제에 관한 성서의 견해

많은 진실한 가톨릭 교인들에게는, 마리아가 남편 요셉과 성 관계를 가졌다는 생각 자체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충격일 것이다. 이것은, 성에 대한 교회의 전체 태도가 어떤 사람이 결혼 생활 내에서라도 성 관계를 가지면 참으로 거룩할 수 없다는 인상을 일반 가톨릭 교인들에게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과 거룩함은 양립할 수 없는가? 성서는 무엇을 알려 주는가?

고대 이스라엘 당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거룩할 것을 요구하셨으나, 결혼은 그들에게 합당한 것이었다. (레위 21:6, 7, 13) 그리스도인 회중 당시에, 베드로—‘가톨릭 교회’에서 초대 교황으로 간주하는—는 기혼자였으며, 사도들 대부분이 그러하였다. (마태 8:14; 고린도 전 9:5)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감독자”(가톨릭 계의 「듀웨이역」에서는 “주교”)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될 수 있었다. (디모데 전 3:2, 신세) 그리고, “장로들” (「듀웨이역」에서는 “사제들”)도 결혼할 수 있었다. (디도 1:5-8) 사실상, 제 1세기의 모든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 였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기혼자들이었다. (골로새 3:12, 18-21) 그것이 성 관계가 없는 결혼 생활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고린도 전서 7:2-5에 주어진 사도의 교훈에 명백한 모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서에 따르면, 결혼과 거룩함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결혼 관계에 불결한 어떤 점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남편”으로 언급하셨겠으며 또 성서가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인 회중의 “남편”으로 언급했겠는가?—이사야 54:5; 62:4, 5; 에베소 5:23-32; 계시 19:7; 21:2, 9.

그러므로, 처녀로서의 예수 출산 이후에 , 요셉이 마리아와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영위하여 다른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는 성서의 명백한 증언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우리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낄 필요가 없다. 이들은 마리아가 각각 낳았던, 예수의 혈육상의 이복 형제 누이들이었던 것이다. (마태 1:24, 25; 마가 3:31)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가 마리아를 거룩한 여인으로서 사랑하고 존경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사라가 이삭을 출생했다고 해서, 베드로가 사라를 고대의 “거룩한 부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예를 들지 못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베드로 전 3:5-7; 히브리 11:11, 12.

이혼과 피임

‘가톨릭 교회’가 이혼을 찬성하지 않고 낙태를 정죄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그러나, 그 교회가 어떤 이유로든 이혼을 배척하면서 “모든 결혼 행동은 각각 여전히 생명의 전달에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것은 성서의 지지를 받고 있는가?—「휴매나이 비이타이」.

원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영구적인 결합으로 제정하셨다. (창세 2:22-24) 예수께서는 이러한 표준을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 회복시키시면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부언하셨다.—마태 19:4-6, 9; 5:32.

그러므로, 성서는 성적 불충실이 이혼의 정당한 근거, 사실상 유일하게 정당한 근거임을 밝힌다. ‘가톨릭 교회’는 이 문제에 있어서 성경보다 더 엄격하게 됨으로써 교회 자신을 위해서나 수많은 교인들을 위해서나 아무 유익이 없는 일을 해 왔다. 전 역사를 걸쳐 이러한 정책이 빚은 결과들을 논평하면서,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렇게 기술한다. “엄격한 일부 일처제는 흔하고 널리 묵인된 간음과 무관하지 않는데, ‘로마 가톨릭 교회’는 간음을 이혼보다는 더욱 묵인할 만한 일로 간주하고 있다.”

산아 제한에 관하여, 탁월한 가톨릭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기원 354-430년)는 만일 임신을 막는 그 어떤 일이라도 행해진다면, 결혼 생활 내에서조차 성 관계가 죄짓는 일이라고 간주한 바 있다. 이것은 여전히 어느 정도 ‘가톨릭 교회’의 견해로서, 교황 바오로 6세가 1968년 회칙 「휴매나이 비이타이」에서 그 점을 대강 언급하였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확증하였다. 이것은 진실한 가톨릭 교인들 사이에 많은 고민을 초래한 정책이다. 그러나, 성서는 피임을 금하지 않는다. 그 점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한편, 성서는 출애굽기 20:13과 21:22, 23(신세)의 기록에서 알려 주는 바와 같이 낙태를 승인하지 않는다. 이것은 임신이 된 후에 시행되는 산아 제한 방법들을 포함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발육이 시작된 한 개체를 죽이는 것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이외에, 성서는 가족 계획 문제를 각 그리스도인 부부의 양심에 일임한다. 산아 제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계속 강요함으로써, ‘로마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한계를 넘”어 왔던 것이다.—I 고린토 4:6, 공동 번역.

성서와 독신 생활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비록 의무적인 독신 생활이 성서의 요구 조건은 아니라 하더라도, 성서는 분명히 자발적인 독신에 대하여 말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처음부터 결혼하지 못할 몸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고 또 하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받아들여라.” (마태오 19:12, 공동 번역) 이처럼 예수께서는 독신 생활이 의무적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사실상, 이미 앞에서도 지적된 바와 같이, 그분의 사도들 중 얼마는 기혼자들이었던 것이다.—마가 1:29, 30; 고린도 전 9:5.

사도 바울 역시 그리스도인 남녀들에게 자발적인 독신 생활에 관해 말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분을 속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이 아름답게 살며 딴 생각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I 고린토 7:8, 35, 38, 40, 공동번역) 성서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분명한 점은 독신이 일부 남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봉사에 더 온전히 그리고 자유롭게 전념하기 위해 발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아무 서약도 포함될 필요가 없으며, 어떤 강요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린도 전 7:28, 36.

그와는 반대로, 의무적인 독신 생활은 I 디모테오 4:1-3에서 읽을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볼 때 배교의 한 표시였다. “훗날에 사람들이 거짓된 영들의 말을 듣고 악마의 교설에 미혹되어 믿음을 버릴 때가 올 것이라고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 이런 자들은 결혼을 금[합니다.]”—공동번역.

성서의 견해에 고착하라

가톨릭 참고 문헌들을 조사해 보면, 성이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가톨릭의 교리와 정책이 이교의 신비주의적 종교들에 깊이 뿌리 박혀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결혼을 격하시켰으며, 성 문제에 관한 죄 의식의 강박 관념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진실한 가톨릭 교인들이 괴로움을 느끼게 해왔다.

다른 한편, 성서가 밝혀 주는 바에 따르면, 결혼이란 영예로운 것이며, 결혼 마련 내에서의 성 관계가 어떤 그리스도인 남자나 여자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또한,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하나님의 봉사에 사용하고 있다면 자발적인 독신은 영적으로 보람있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성서는 알려 준다.

성과 관련된 문제들을 이처럼 간단히 살펴본 것이, 고대의 바벨론적 신비주의로 되돌아간 그럴싸한 가르침으로 인해 번민해온 가톨릭 교인들과 그외 모든 사람들의 생각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토록 숱한 권위자들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그러한 것들은 성서의 가르침이 아니다. 만약 어떤 종교 단체의 교리가 성경과 조화되지 않을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그 교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한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의 보증의 말씀을 염두에 두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교회 교리들을 검토해 보도록 권장받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 32, 공동번역.

[10면 삽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하여 반드시 독신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도 베드로는 독신 생활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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