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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가 지루하게 할 때도 어떻게 배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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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가 지루하게 할 때도 어떻게 배울 수 있는가?
  • 깨어라!—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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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6
깨86 5/15 20-22면

청소년은 묻는다 ·⁠·⁠·

교사가 지루하게 할 때도 어떻게 배울 수 있는가?

빨간 줄무늬 셔어츠를 입은 소년은 지루한 표정이다. 야단맞고 싶은 듯이, 제 손톱을 물어 뜯으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선생은 벌을 주는 것보다도 가르치는 데 더 흥미를 갖고 있다.

“‘문맥’을 이용하여 지식을 얻어낸다는 것이 무슨 뜻이죠?” 하고 그 교사는 활기차게 반 학생들에게 묻는다.

“그건 여러 다른 의미들을 이용한다는 거죠”라고 한 아이가 어림짐작으로 말한다.

“어떤 면에선 그렇지”라고 교사는 동의하며, 질문을 고쳐서 물어볼 방법을 생각하는 듯 눈살을 찌푸린다. 그는 다시 질문한다. “문맥을 이용하는 것은 미처 못본 단어들을 찾고자 무엇을 이용하는 것일까요?”

“개념들이요!” 하고 한 학생이 말한다. 다른 학생은 “꿈인가요?” 하고 질문한다. 빨간 줄무늬 셔어츠를 입은 소년도 흥미로운 관심의 기색을 보여간다.

교사는 또 다른 방식을 시도한다. “좋아요. 겨울철이라고 가정해 보죠. 내가 숲속을 걸어가다가 어떤 장소에 이르러 바위 틈새로 커다란 구멍이 난 것을 봤어요. 내가 안을 들여다 보다가 이런 소리를 들었지요. ·⁠·⁠·” (교사가 코고는 곰의 흉내를 내니까 학생들은 깔깔대며 웃는다.) “내가 방금 본 것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곰일까요, 개미일까요, 원숭이일까요?”

“곰이요” 하고 한 학생이 말한다. “곰이 굴 속에 들어가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거예요.” 이 교실의 수업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깨어라!」(국문은 「깰 때이다」) 기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왜냐하면, 이 기민한 발언을 한 학생이 다름아닌 빨간 줄무늬 셔어츠를 입은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교사는 흡족해 한다. “그래, 너는 관련된 주변의 말들을 이용하여 내가 곰을 봤으리라는 것을 헤아려 냈어. 이제 우리가 오늘 수업에서 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할까.”

훌륭한 교사는 늘 궁리해야 한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주제를 알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늘 관심을 가지는 교사이다. 그는 수업을 흥미로운 것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며 학생들이 이해하는 데 더디더라도 낭패해 하지 않는 강사이다. 그것은 당신의 선생들을 두고 하는 말같이 들리는가?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사춘기 청소년의 가족 편람」(The Family Handbook of Adolescence)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조사가 보여 주는 바에 따르면, 대다수의 사춘기 청소년 학생들은 교사들에 대해 비판적이며, 교사들이 지루하거나 유모어가 부족하다고 불평한다.”

물론, 대부분의 교사들이 적어도 적절한 자격을 갖추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조만간 당신은 ‘눈물이 날 정도로’ 그저 지루하기만 한 선생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이런 경우, 당신은 학교에서 수업받는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고자 하기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게 될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그 경우, 배우는 일은 무의미한 명분이 될 것인가?

당신의 태도가 중요하다!

배우는 일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한 최근 실험이 밝혀 주는 바에 따르면, 십대들의 집중도는 산업 예술, 체육 및 음악과 같은 수업들에 현저히 높다. 하지만, 그 집중도는 언어와 역사를 다루는 수업에서 현저히 떨어진다.

체육 또는 음악 강사들이 학문적 과목의 교사들보다 더 재능이 있어서인가?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연구원들은 비학문적 수업들이 학생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더 많이 열어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학문적 과목들에 대해 단지 부정적 태도를 갖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만일 학생들이 사전에 어떤 과목이 지루하다고 결정내린다면, 플라톤과 같은 솜씨를 가진 교사라 할지라도 학생들의 주의를 붙잡아 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정한 과목들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그 태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는가? 대수학이 당장은 쓸모있어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얼마나 잘 배우는가는 앞으로 언젠가 당신에게 시간과 훈련을 투자할 것을 고려하는 고용주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배우고 있는 것에 흥미를 갖도록 하라! 그것은 학교에 대한 권태감을 얼마간 덜어 줄 것이다.

‘좋은 선생은 ·⁠·⁠·’

하지만, 때때로 배우는 일에 흥미를 가진 학생들조차도 “나쁜” 선생을 맞이했다고 불평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도대체 “좋은” 선생이란 어떤 선생인가? 한 젊은 소녀는 「깨어라!」지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수학 선생님은 아주 재미가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선생님을 좋아해요.” 한 소년은 ‘농담을 아주 잘한다’는 이유로 자기 영어 선생을 극구 칭찬하였다.

그러나 호감을 사고 즐겁게 해주는 일이 교사의 자산이 될 수 있긴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적절한 자격을 구비하는 것에 대한 대용물이 되지는 못한다. (디모데 후 2:2) 물론, 여기서 성서는 주로 영적인 요구 조건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성귀는 분명히 좋은 교사의 한 가지 요구 조건이 그가 자신의 과목을 잘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해 준다.

유감스럽게도, 지식과 발랄한 성품이 반드시 병행하는 것은 아니다. 한 청소년의 선생은 코미디언 만큼이나 농담을 잘한다. 그렇지만, 그 청소년은 “우리는 숱한 물리학의 공부에서 제대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요”라고 시인한다. 한편, 다른 청소년은 자기 선생이 박식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런데도 그 학생은 선생님이 “끔찍할 정도로 지루해요. 선생님은 단조로운 목소리로만 말하고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굉장히 난해한 용어들만 사용한답니다”라고 말한다.

당신의 선생도 후자의 경우에 해당되는가? 만일 그렇다면, 일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사도 바울에 관해 말한 바를 기억해 볼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강사로서 탁월한 자격을 구비했었다. 그럼에도, 바울 시대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직접 대해 보면 그는 약하고 말하는 것도 별 것 없다”고 불평하였다. 바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말에는 능하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습니다.”—II 고린도 10:10; 11:6, 새번역.

만일 어떤 사람들이 바울의 말한 내용을 간과하고 연사로서의 의심이 가는 결함들만을 보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것인가? 그들은 귀중한 지식을 얻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학교에 가서도 그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재미없게 가르치는 선생을 “나쁘다”고 보아 넘기기 전에, 이렇게 자문해 보라. ‘선생님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잘 아는가? 나는 그에게서 배울 것이 있는가?’

배우는 일에 열중하라

‘그러나 배우는 것이 재미가 나지 않는다면?’ 하고 당신은 질문할지 모른다. 때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교훈들 중 일부는 참을성과 노고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다. (히브리 5:8) 경험의 형태로 배우는 것이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역시 그것은 귀중한 교훈을 배우게 해준다. 당신이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도 마찬가지로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그다지 흥미가 없게 말하는 선생에게도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선생이 강의하는 것에 주의를 계속 집중하기 위해 필기하고자 노력하라. 단조로운 교실 토론들은 집에서 가외로 공부하여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참으로 배우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당신은 지루하다고 생각되는 선생으로부터도 참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사춘기 청소년의 가족 편람」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학생들이 교사가 지닌 강력하고 적극적인 효력을 당시에 깨닫게 된다 할지라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교사의 영향력을 충분히 인지하는 일이 매우 빈번하다.”

「U.S. 뉴우스 앤드 워얼드 리포오트」지의 한 기사는 교사가 지식을 갖는 것 외에도 “그 지식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교사들은 의사 소통을 소홀히 하는 일이 있다. 하지만, 잠언 20:5에 기술된 원칙에 유의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찌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내느니라.” 그렇다. 때때로 당신이 선생으로부터 길어낼 줄도 알아야 한다.

‘교사로 하여금 가르치게 하라’

「고교 생활을 위한 지침」(The High School Survival Guide)이란 저서에서, 자신이 교사이기도 한 바바라 메이어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다 기억할 정도로 누차 동일한 과들을 되풀이해 온 교사들은 필경 타성에 젖어 그저 과거에 해왔던 대로 학과 자료를 제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만일 어떤 논제가 너무 가볍게 얼버무려지거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손을 들고는 더 많은 설명을 요청하도록 하라. ·⁠·⁠· 실제로 교사가 알고 있는 바를 다 말하게 하라.” 교사는 그렇게 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할 것인가? 당신이 존경심을 지니고 그렇게 한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골로새 4:6)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가? 메이어는 이렇게 말한다. “다음번에는 그저 피상적인 지식 이상의 것을 좀더 많이 준비하여 수업에 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열정은 전염되며, 배우고자 하는 당신의 욕망은 틀림없이 교사에게 얼마의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철두 철미 변모되리라고 기대하지는 말라. 당신이 한동안은 그저 씩 웃으며 참고 넘겨야만 하는 수업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잘 듣는 사람이고 수업의 진행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다면, 당신은 여전히 배울 수 있다. 그것이 학교가 의미하는 것이지 않은가?

[21면 삽화]

때때로 사람은 진정한 노력을 기울여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22면 삽화]

유능한 교사가 반드시 코미디언이나 연예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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