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89 4/15 24-27면
  • 제 7부: 기원전 1500년경 이후—힌두교—관용의 종교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제 7부: 기원전 1500년경 이후—힌두교—관용의 종교
  • 깨어라!—1989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가르침과 의식
  • 끊임없는 개혁
  • 관용—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 힌두교—해방을 찾아서
    하나님을 찾으려는 인류의 노력
  • ‘힌두’교가 당신의 영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
    깨어라!—1976
  • 이 사상이 동양 종교들에 흘러 들어간 경위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 나는 힌두교 출신이다
    깨어라!—1973
더 보기
깨어라!—1989
깨89 4/15 24-27면

과거로 비추어 본 종교의 장래

제 7부: 기원전 1500년경 이후—힌두교—관용의 종교

“누구나 자신의 종교를 따라야 한다.” 라마크리슈나, 19세기 힌두교 개혁가

관용은 일반적으로 미덕으로 간주된다. 아뭏든, 관용은 힌두교로 알려진 거대한 세계 종교를 잘 묘사하는 단어다. 1985년에 세계 인구의 13.5퍼센트인 650,000,000명 가량이 힌두교인임을 공언했다고 전해진다.

힌두교란 “많은 상이한 요소로 구성된 복합적 국민 종교”를 가리키는 말로서, 단순히 “인도의 모든 종교를 총칭하는 용어”다. 「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문제를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면서, 다음과 같이 시인한다. “힌두교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려던 시도들은 이런 저런 면에서 모두 만족스럽지 못함이 증명되었는데, 힌두교인들 자신을 포함해서, 힌두교를 연구하는 최고 수준의 인도 학자들이 각각 전체의 상이한 부면들을 강조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여하튼, 힌두교는 오래 된 종교다. 힌두교는 지금은 파키스탄의 일부인 인더스 강 유역에서 기원하였다. 아리아인으로 알려진 한 인도-유럽어족이 기원전 1500년경에 이 지역으로 이주해 들어왔다. 아리아인은 특정한 저술물들을 신성한 지식(베다)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이들의 종교는 베다교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리아인의 종교에는 오늘날 이란인의 조상들이 믿었던 종교에서 유래한 특정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종교 및 윤리 백과사전」에서 “바빌로니아와 초기 힌두 문화 사이의 여러 부면의 일치점”을 언급하면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바빌로니아(바벨론)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원래의 정착민의 종교는 이런 이국적 요소들 위에 건립된 것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서 다른 종교들이 영향력을 행사함에 따라, 신앙과 관습들을 더하거나 버렸다. 따라서, 힌두교는 많은 근원에서 유래한 무수한 요소들이 끊임없이 첨가되어 생긴 결과다.

가르침과 의식

아리아인은 힌두 카스트 제도의 기초를 놓는 일에 한몫을 하였다. 원래 네 가지이던 카스트는 나중에 수천 가지로 세분되면서 늘어났다. 네 가지 카스트는 산스크리트어 단어로 인류의 시조(始祖)와 관련해서 “사람” 혹은 “남자”를 뜻하는 푸루사의 각기 다른 신체 부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시조의 입에서 태어났다는 브라만(바라문)은 종교 지도자들이었고, 팔에서 태어났다는 크샤트리야는 군사 및 정치 지도자들이었고, 넓적다리에서 태어났다는 바이샤는 농부, 기술자, 상인들이었으며, 발에서 태어났다는 수드라는 노예들이었다. “불가촉 천민”은 종교적으로 불결한 활동과 관련된 의무 혹은 생활 방식을 영위하는,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극도로 엄격한 형태의 힌두 카스트 제도를 약 40년 전에 법으로 금하였지만, 카스트 제도의 요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동안, 동물 희생이 숭배의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승려들은 필요한 의식들을 수행해야 하였다. 브라만들이 매우 강성해진 나머지, 종교의 일파가 브라만교(바라문교)로 알려질 정도가 되었다. “승려들은 단지 의식을 변경하는 것만으로도 적들을 멸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들보다도 더한 두려움과 영예의 대상이 되었다”라고 T. W. 오르간은 말한다. 희생 의식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금욕주의 곧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일을 강조하는 추세가 시작되었다.

삼사라(윤회)가 기본 신앙이었다. 삼사라는, 가장 최근의 것이 기원전 첫 천년기의 전반부로 소급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힌두교 경전집, 우파니샤드에 나와 있었다. 사람은 죽어서 중간 단계로 하늘이나 지옥에서 머문 다음에, 전에 누렸던 것보다 높거나 낮은 수준의 생명으로, 곧 인간이나 동물로 다시 태어나는데, 이런 일은 카르마(갈마)의 법칙에 따라 된다는 것이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이었다. 인생의 목표는 모크샤를 성취하는 것, 즉 출생과 재출생의 끊임없는 순환에서 벗어나서 브라마라고 불리는 궁극적 질서의 근원으로 동화되는 것이다.

베다교에는 많은 신이 있었다. 그러나 「인도 철학의 개념」(Concepts of Indian Philosophy)이라는 책에 따르면, 베다교 신봉자들이 그런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신들은 서서히 일신교적 개념의 신성으로 변화되었다. ·⁠·⁠· 하나의 과정은 이전의 신들을 모두 일괄하여 ·⁠·⁠· 개념화된 하나의 신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브라마는 속성과 특성이 없는 비인격적 신이면서, 다양한 신으로 구현된 신이 되었다.

모크샤를 성취하려는 욕망은 역사가 윌 듀랜트가 “모든 힌두 사상에 짙게 깔린, ·⁠·⁠· 삶에 대한 반감”이라고 부른 것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음울하고 비관적인 태도는 「마이트리 우파니샤드」에 실린 다음과 같은 질문에 잘 예시되어 있다. “욕망, 분노, 탐욕, 현혹, 두려움, 실망, 질투, 바람직한 것들로부터의 유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과의 결합, 굶주림, 갈증, 노쇠, 죽음, 질병, 슬픔 및 이와 같은 종류의 것들로 인해 고통받는 현재의 몸에서, 욕망을 즐기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이런 불행한 상태를 겪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 푸라나, 곧 통용 기원 제 1세기에 정리되었을 일련의 교본에 나와 있었다. “고대의 이야기들”을 뜻하는 푸라나는 널리 보급되어서, 보통 사람의 경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가루다 푸라나」에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참다운 행복은 모든 감정을 없애는 데 있다. ·⁠·⁠· 애정이 있는 곳에는 괴로움이 있다. ·⁠·⁠· 애정을 버리면 행복해질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해결책은 그런 방법을 통해 누그러뜨리려고 의도했던 불행한 상태 못지 않게 슬픔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보다 앞서, “주의 노래”를 뜻하며 때때로 “인도에서 기록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불리는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해방을 성취하는 세 가지 길을 제안하였다. “의무의 길”은 의식상의 의무와 사회적 의무의 수행을 강조하였고, “지식의 길”은 명상과 요가의 실천을 포함하였으며, “헌신의 길”은 각자의 신에 대한 헌신을 관련시켰다. 「바가바드 기타」는 그리스도교국의 “신약”에 비견되어 왔다. 대부분의 인도인은 일부 구절을 암기하며, 그중 많은 사람은 기억한 부분을 날마다 읊는다.

「바가바드 기타」는 사실상 「마하바라타」라고 불리는 힌두 서사시의 작은 부분에 불과한 것인데, 십만 구절이 들어 있는 「마하바라타」는 단연코 세계에서 가장 긴 시다. 「바가바드 기타」를 「마하바라타」로 편입(아마 기원전 3세기경에)함에 따라, 힌두교는 마침내 베다교 및 브라만교와 구별되는 별개의 종교가 되었다.

끊임없는 개혁

처음부터, 힌두교는 끊임없는 개혁으로 특징을 이루어 왔다. 기원전 6세기의 개혁가들 가운데 으뜸가는 사람들로는 각각 불교와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와 마하비라 바르다마나가 있었다.

마하비라는 자신이 지나(정복자) 계열의 24대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이나교는 바로 지나들의 생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자이나교는 세상이 항상 존재했다고 가르치면서, 창조자를 배척하는 면에서 힌두교와 차이가 있다. 자이나교는 특히 아힘사(불살생) 교리를 강조한다. 20세기 인도의 지도자, 모한다스 간디가 인도 독립 투쟁중에 추구했던 비폭력 노선은 사실상 그 종교 교리를 정치적인 면에 적용한 것이다.

자이나교에 따르면, 바른 신앙, 바른 지식, 그리고 바른 행실이 요가의 실천과 결합할 때, 해방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동시에, 자이나교는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견해의 문제라고 단언하며, 따라서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대한 절대적 표준을 배척한다. 이런 견해는 자이나교의 모체인 힌두교의 관용적 태도를 강조한다.

약 2,000년이 지난 15세기에, 또 다른 개혁가가 일어났다. 나나크라고 이름한 이 사람은 힌두교인과 이슬람교인이 모두 받아들일 만한 종교를 집대성하려고 시도하였다. 그 결과로 생겨난 것이 시크교로서, “시크”란 “제자”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단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나나크는 열명의 구루 중에 첫 번째 인물이었는데, 열번째 구루는 1699년에 칼사(순결한 자들)라고 불린 형제단을 창설하였다. 카스트의 구분을 철폐하고 자신들이 믿음의 전사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단원들은 싱그(사자; 獅子)라는 공통의 성(姓)을 받았다. 단원들은 다음의 다섯 가지 K를 준수해야 하였는데, 다섯 가지란 머리카락과 턱수염(케시)을 자르지 말 것, 머리카락를 빗(캉가)으로 고정시켜서 터반으로 덮을 것, 흔히 긴 바지 속에 입곤 하는 짧은 바지(카치)를 입을 것, 검(키르판)을 차고 다닐 것, 그리고 쇠팔찌(카라)를 할 것 등이었다. 구루의 계열은 열명으로 끝났다. 시크교의 경전인 「구루 그란트 사히브」가 구루를 대신하였다. 이 경전은 1604년에 편찬되었으며, 일세기 후에 개정되었다.a

19세기 후반에, 캘커타의 승려인 라마크리슈나는 힌두교를 자신이 서양 종교 사상 중에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과 혼합하려고 시도하였다. 라마크리슈나는 언어마다 물을 부르는 이름이 다르듯이, “사트-치트-아난다 곧 영원한 지성의 행복은 하느님에 의해서, 알라에 의해서, 여호와에 의해서, 하리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가 하면, 또한 브라만에 의해서도 얻을 수가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더우기 “사람이 사다리나 대나무나 계단이나 밧줄 중에서 어떤 것을 이용하더라도 집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듯이, 하느님에게 나아가는 방법과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다. ·⁠·⁠· 신조의 차이는 전능자에게 도달하는 길의 차이일 뿐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관용적 태도는 힌두교 숭배에 크나큰 자유 재량의 여지를 부여한다. 일부 분파는 주로 브라마를(브라만교), 다른 분파들은 비슈누를(비슈누교), 또 다른 분파들은 시바를(시바교) 숭배할 수 있다. 토속 힌두교, 샤크티교 및 탄트라교가 나름의 방식대로 힌두교를 전파하는 것이 허용된다. 예를 들어, 탄트라교는 부족 및 토속 의식을 포함하고 여신 숭배를 강조하는데, 여신 숭배는 힌두교 역사 초기에 나타난 것이다. 인도인들은 자기 나라를 “어머니 인도”라고 부르며, 바라트 마라는 여신은 인도를 상징한다.

관용—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영국의 신학자이며 비교 종교학 강사인 제프리 패린더는, “힌두교는 끊임없이 새로운 가르침을 흡수할 수 있음을 증명해 왔다”라고 기술한다. 패린더는 이렇게 부언한다. “이러한 종교의 혼합주의 즉 뒤섞인 상태가 오늘날 힌두교 가르침의 가장 공통적인 노선일 것이다.” 많은 사람은 분명히 힌두교의 관용의 철학에 동의하면서, 이를테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방법으로 하느님을 섬기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패린더는 “모든 신앙을 똑같이 취급할” 경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종교는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나쁜 것일 수도 있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지 않은가? 나쁜 종교의 요소를 자신의 종교에 도입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오늘날, 많은 사람은 자신의 종교에 실망을 느낀다. 약 2천 5백년 전에 살았던, 지배 계급인 크샤트리야 카스트 출신의 한 힌두교인도 그러하였다. 힌두교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다. 본지의 다음 호에서, “해방을 약속한 깨달음”이라는 기사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내용을 알려 줄 것이다.

[각주]

a 1985년 현재, 약 3,300,300명의 자이나교인이 다섯 나라에 살고 있고, 약 16,000,000명의 시크교인이 19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5면 네모]

독자가 궁금하게 여길 만한 점

힌두교인은 삼사라(윤회)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바가바드 기타」는 이렇게 알려 준다. “사람이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을 입듯이, 몸 안의 거주자는 낡은 몸을 벗어 버리고 다른 새 몸으로 들어간다.” 「가루다 푸라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생물의 다음 존재의 성격은 이전 존재 내의 자아가 한 일에 의해서 결정된다. ·⁠·⁠· 사람은 인생에서 운명으로 정해진 것을 얻는데, 이런 것은 신이라도 별 도리가 없다.” 예를 들어, 「마르칸데야 푸라나」는 어떤 사람의 이러한 말을 인용한다. “나는 브라마나로, 크샤트리야로, 바이샤로, 그리고 수드라로 태어났었으며, 한편으로는 짐승으로, 벌레로, 사슴으로 그리고 새로도 태어났었다.”

힌두교인은 소를 신성시하는가? 「리그-베다」와 아베스타는 모두 소를 “죽여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윤회에 대한 신앙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 아힘사(불살생) 방침에 근거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칸데야 푸라나」는 이 법에 순종하지 않는 것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소를 죽이는 자는 세번의 내생에서 계속해서 지옥에 간다”라고 알려 준다.

힌두교인은 갠지스 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강물에서 목욕을 함으로써 정화되고, 정신을 케사바[비슈누]에게 바친 성자들은 최종적 해방을 얻는다. 사람들이 강에 관한 말을 듣고, 강을 갈구하고, 강을 바라보고, 강물을 만지고, 강물에서 목욕을 하고, 혹은 강을 찬송할 때, 신성한 강은 날마다 모든 존재를 정화한다. 그리고 백 요야나[1,400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 살더라도 ‘강가 강가’를 거듭 외치는 사람들은 세번의 전생에서 범한 죄로부터 벗어난다.”—「비슈누 푸라나」

하레 크리슈나교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헌신적 힌두교 포교 단체의 일종인 국제 크리슈나 의식 협회의 회원들이다. 창시자인 고(故) A. C. 바크티베단타 스와미 프라부파다는 1965년에 미국에 메시지를 보내 왔다. 그 협회는 힌두교 금욕주의의 특정 요소들을 계속 실행하고, 크리슈나 신의 숭배를 중심으로 하며, 하레 크리슈나 만트라(주문)를 읊는 것을 강조한다. 바크티베단타는 하느님의 이름을 암송하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얻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