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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운 증후군을 견디며 생활함
  • 깨어라!—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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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9 8/15 17-20면

다운 증후군을 견디며 생활함

출생시에 진단이 내려진 수지의 문제는 남편과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수지는 우리의 두번째 아이였다. 당시 24세였던 나는 건강했고, 임신과 진통 및 분만이 모두 정상이었다.

수지는 태어났을 때 3,300그램이었다. 수지가 출생된 지 두 시간이 채 못 되어, 소아과 의사가 들어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기는 건강해 보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다운 증후군에 걸려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는 우리 딸이 겪게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애 즉 심장의 결함, 청각과 시각의 이상, 심한 정신 발육 지연, 걸리기 쉬운 호흡기 감염, 영영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둔부 이상, 근육 운동 협조 기능의 불량, 짧은 평균 여명 등을 열거하였다. 그리고 나서 의사는 불쑥 방을 나가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의사는 울음이 나와서 그랬던 것이다.

나는 간호원에게 아기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수지를 품에 안아 본 순간,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매우 축 늘어져 있고 힘이 없는 것이 그 애 언니가 갓난아기였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렇지만 수지는 양육받고 사랑받아야 할 귀중한 생명이었다.

남편과 나는 어린 딸을 바싹 껴안고 여호와 하나님께 같이 기도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최선을 다해 수지를 돌보기로 결심했다.

병원의 직원 대다수는 우리가 수지를 어느 기관에 보내지 않고 집에 데려가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러나 소아과 의사와 산과 의사는, 다운 증후군에 걸린 어린아이들이 집에서 자랄 때 건강에 더 좋은 것 같다는 점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알려 주면서 우리를 격려하였다. 가족과 친구들은 아주 협조적이었다. 그들은 즉시 우리를 보러 왔고 수지를 위한 꽃다발과 선물도 가지고 왔다.

자극을 주는 활동

우리는 정신 발육의 지연과 다운 증후군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모든 곳에 편지를 보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유아 자극 계획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이 분야에 관한 실험적인 연구를 하고 있었으며, 많은 정보를 우리와 나누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수지에게 가능한 한 많은 신체적, 정신적 자극을 주기로 결심했다. 그저 침대에 누워 있게만 하는 대신, 활동할 수 있는 곳이면 집안 어디든지 데리고 다니곤 했다. 수지는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고, 우리와 함께 장보러도 가고 식당과 그 외의 장소에도 함께 갔다.

수지가 자기 방에 있게 될 때는 쳐다볼 수 있도록 밝은 색상의 물체를 꼭 마련해 주고 종종 라디오나 음반을 틀어 놓아 듣게 해주었다. 우리는 또한 수지가 근육 운동을 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함께 놀아 주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수지의 언니도 자주 같이 놀아 주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러한 격려 가운데서, 수지는 발전을 보였다. 11개월 되었을 때 마침내 혼자 일어나 앉았다. 3년 반 만에는 혼자 걸었다. 그러한 발전의 업적은 우리 가정에서 축하 행사가 벌어지게 하는 주요 경사였다. 수지는 자랑스러운 나머지 웃음을 머금고 좋아서 손뼉을 치곤 했다. 수지는 소리에 반응을 나타내고 여느 아기들이 내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내긴 했지만, 말을 첫마디 한 것은 여러 해가 지난 후였다.

수지가 생후 겨우 수주일 되었을 때부터, 우리는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책을 읽어 주었다. 수지는 「나의 성서 이야기 책」이라는 출판물을 좋아하였다. 매일 밤 자기 전이면, “책, 책”하고 말했고, 나는 그 옆에 앉아서 그 이야기 중 하나를 읽어 주곤 했다. 실제로 얼마나 이해하는지 잘 몰랐으나, 어느 날 저녁에 수지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그림을 가리키고는 “나빠, 나빠!”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수지는 언제나 우리의 가족 성서 연구에도 참석했는데, 제한된 참여밖에 못했지만 조용히 앉아 있었고 연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물론, 자신의 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도는 수지에게 중요했다. 예를 들면, 식탁에서 기도를 하기 전에는 먹으려 하지 않았다. 만약에 깜빡 잊어버린 사람이 있으면, 커다란 목소리로 “기도!”라고 하면서 그에게 얼굴을 찌푸림으로써 일깨워 주곤 했다.

성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이 땅에 이루어질 낙원과 언젠가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다시 완전하게 해주실 일에 관해 말해 주곤 했다. 수지도 그때에는 읽고 말하고, 달리고 뛸 것이며, 결코 다시 병들지 않으리라.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집회는 수지에게 즐거움이 되었다. 수지는 그곳의 친구들을 좋아했고, 그들도 수지를 좋아했다. 수지는 노래를 좋아해서, 회중에서 노래를 부를 때면 음악에 맞추어 양팔을 흔들면서 합세하곤 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집회 때 조용히 앉아 있는 법도 배웠다.

특수 학교

다섯살이 되어 정신 발육 지연 어린이를 위한 특수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교사들은 수지가 그렇게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다는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지가 언제나 모범적인 학생인 것은 아니었다. 수지도 다른 어린이처럼 짓궂을 수 있으며 징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우리는 일찍이 깨달았다.

수지가 영영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수지가 걸었을 때 우리는 매우 기뻤다. 학교에서는 좀더 정상적으로 걷는 법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되는 작업 요법을 받았다. 집에서 운동을 시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우리도 교육을 받았다. 수지를 위한 학교의 프로그램은 매년 교사들과 치료 전문가들이 함께 갖는 모임에서 주의 깊이 안출되었다. 부모로서, 우리도 참여할 수 있어서 진정으로 고맙게 느꼈다. 그러한 마련은 수지가 학교와 집에서 배우고 있는 내용이 연결될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주었다. 언어를 익히는 일뿐 아니라 옷입기, 식사, 몸치장, 간단한 음식 준비, 설거지, 잠자리 준비와 같은 자립 기술도 중요시되었다.

수지는 아마 읽는 법은 결코 배우지 못하겠지만, 중요한 단어들을 분간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열살이 된 수지가 몇몇 단어를 자연스럽게 알아볼 수 있었을 때는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던가!

정신 장애를 가진 어린이가 가장 배우기 힘든 것 중 하나는 어떤 과제에 끝까지 집중하는 일이다. 수지는 가장 간단한 일에도 금방 흥미를 잃곤 했는데, 심지어 인형이나 다른 장난감을 갖고 노는 일에도 그러했다. 한 가지 과제에 계속 집중하는 능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학교의 교사들과 집에 있는 우리는 단지 몇초 동안 집중할 것을 기대한 다음에 “잘했다”는 칭찬이나 간단한 음식으로 상을 주는 일부터 시작하곤 했다. 이런 식으로 수지는 성취감을 느끼곤 했다. 점진적으로, 여러 해에 걸쳐서 기대되는 집중 시간이 길어졌다.

수지가 13세였을 때, 그 애가 만 2년 된 어린이 수준 정도의 기능을 갖고 있음이 검사로 측정되었다. 그러므로 수지와 함께 무슨 일을 하는 데는 많은 참을성이 요구되었는데, 화장실 훈련과 혼자 먹고 옷입는 일을 할 때 특히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는 수지가 가능한 대로 독립적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발전이 더디긴 했지만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수지를 어떤 기관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기를 수 있다는 점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각 가정마다 사정이 다르므로 그것은 각 가정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장애를 가진 어린이 중에는 집에서 기르기가 극히 어려울 정도로 심한 문제를 가진 어린이들도 있다.

수지의 제한된 상태 때문에 가족적으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었으며, 당연한 것으로서 우리는 나머지 자녀들이 가능한 한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기를 원했다. 우리가 알게 된 점은 우리 자녀들이 어떤 면에서는 놓친 것도 있을지 모르지만, 참을성과 이해심을 배웠고 많은 사람들이 평생토록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하는 것 곧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심을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앓은 병

우리는 수지의 건강 문제 때문에 여러 해 동안 많은 걱정거리 가운데 살아왔다. 건강 문제는 정신 발육 지연보다 더 감당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수지가, 더디기는 하지만 그래도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느꼈으나, 병을 앓게 될 때는 속수 무책이었다. 건강한 상태로 유지시키려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수지는 언제나 병에 걸렸다. 적어도 한번이라도 크게 앓지 않고는 겨울을 넘기는 적이 없었다.

수지가 마지막으로 병을 앓기 시작한 것은 만 15세가 되기 전 겨울이었다.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이 무렵 수지는 간단한 몇 마디 말과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었다. 병원에 있는 수지를 보러 갔을 때 한번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오늘 학교 안 가.” 간호원과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산소 및 습기 보급 텐트(수지는 그것을 자신의 집이라고 불렀다) 속에서 폐렴으로 몹시 앓아 누워 있는 수지가, 그 와중에서도 학교에 갈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입원한 지 일주일 후에, 의사는 경과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어느 날 저녁 우리는 10시에 병원을 떠났다. 11시가 조금 넘어서, 우리가 막 잠자리에 들었을 때, 전화 벨이 울렸다. 간호원이 울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즉시 오셔야겠어요. 따님이 악화됐어요.”

우리는 가능한 대로 빨리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수지는 이미 죽어 있었다. 두명의 간호원이 그날 밤 수지를 진정시키면서 함께 있었는데 갑자기 호흡 곤란을 일으켰다고 의사들이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즉각 도움을 베풀었지만, 수지의 심장은 멈추어 버렸고, 다시 소생시킬 수가 없었다.

우리 수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었는지 우리는 정말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학교의 거의 전 직원 그리고 그 외의 친구들과 친척들이 장례식에 왔다. 우리는 거의 모르지만 수지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카드와 편지를 받았다. 그 일은 대단히 위로가 되었다.

수지가 죽은 후, 우리는 그가 살아 있었을 때보다 훨씬 더 쓰라린 슬픔을 겪었다. 때때로 나는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장 적절하지 못한 때에 왈칵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여호와께서 나의 슬픔을 끝내 주시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남편과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은 대단히 참을성 있게 나를 대해 주었으며, 이윽고 나는 하나님께 슬픔을 당장 없애 달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호와께 계속 의지한 결과, 슬픔을 견디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부활 희망

이제, 왕국 통치 아래 앞으로 가져오실 지상 낙원에 관한 여호와의 약속은 우리에게 더 깊은 의미를 띠게 되었다. 우리는 부활된 수지를 다시 볼 날을 고대하고 있다. (마태 6:9, 10; 요한 5:28, 29) 현재 수지는 죽음 가운데 잠들어 있으므로, 그토록 많은 장애를 겪었던 병든 어린 소녀인 그에게는, 그 일은 마치 하룻밤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하나님의 신세계에서 아름다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간절히 떠오르는 수지에 대한 생각은 이제, 과거의 수지가 아니라, 바로 그 회복된 낙원에 있게 될 수지의 모습이다. 수지의 관심사와 재능은 무엇일까? 음악을 좋아했으니까, 그때에는 음악을 마음껏 즐기겠지, 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과 코바늘뜨기하는 법을 배우는 일을 즐거워할까? 언니 캐리처럼 독서와 요리를 즐길까? 아빠와 동생 마크처럼 섬세한 기술과 수학 방면에 재능이 있을까?

신체적인 제한을 받지 않고 달리고 춤추며 놀 수 있을 때 수지의 가슴은 벅차 오르리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좋아하리라. 그리고 꽃들과 새들의 노랫소리, 햇빛과 푸른 하늘과 솜털 같은 구름, 호수의 반짝이는 물, 콸콸 흐르는 냇물 소리를 수지는 즐거워하리라. 생활의 이 모든 경이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수지를 지켜보면서 배우도록 도와주는 일은 우리에게 얼마나 가슴 설레는 경험일 것인가!

우리는 수지를 몹시도 그리워하고 있고, 우리와 다시 함께 할 때까지는 우리 가정에 항상 빈자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지가 우리의 인자하신 하나님의 기억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위로가 되는 일이다.

부활에 관한 약속,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도움, 우리의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과의 교제와 하나님의 말씀의 지침은 우리로 하여금 특수한 아이를 돌보는 일과 그를 잃는 고통이라는 도전을 직면할 수 있게 해주었다.—기고.

[17면 수잰과 그의 가족 사진]

[18면 삽화]

수지도 다른 어린이들처럼 짓궂을 수 있었다

[20면 삽화]

우리는 수지의 건강 문제 때문에 여러 해 동안 많은 걱정거리 가운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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