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부터
어린이들을 살림 “죽어가는 수백만명의 어린이들” 기사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한국어판은 1988년 10월 1일호) 두달 된 우리 아기가 설사를 하게 되었을 때 구강 재수화 요법에 관한 지식을 사용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즉시, 변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기는 진정되어 곧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S. S., 미국
대학살 귀지의 기사에 응하여, 「과연 육백만명이 죽었는가?」라는 제목의 팜플렛을 보내 드립니다. (한국어판은 1989년 4월 15일호) 많은 수정주의 역사가들은, 대학살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며, 육백만명이라는 숫자는 적어도 천배는 과장된 것이고, 나치가 유대인을 멸절시키기 위하여 가스실을 지은 일은 결코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R. B., 캐나다
우리는 수정주의 역사가들의 견해를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천명의 생존자들—그들 중 수백명은 여호와의 증인—의 증언이 있는데, 그들은 많은 경우에 강제 수용소에서의 학살을 목격하였습니다. 대학살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정확한 숫자는 결코 알려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대학살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편집자.
2면과 3면에 나오는 사진 때문에 이 호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가 꺼려집니다. 그러한 광경은 최근에 TV 다큐멘터리에서도 방영되었는데, 그러한 다큐멘터리는 적어도 TV를 끄고서 보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인쇄된 지면이 주는 충격은 그보다 훨씬 더 크므로, 매일 보고 듣는 것으로 공포에 익숙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미리 경고를 했더라면 재치있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V. S., 영국
때때로 진실은 불유쾌하고 충격을 줍니다. 성서에서도 논제상 필요할 때는 묘사적인—때때로 두려움을 주는—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대학살이라는 제목은 틀림없이 실감나게 다루어야 합니다. 이렇듯 사진은 독자들에게 말로는 도무지 표현하지 못할 방법으로 대학살의 실제 모습과 참상에 대한 인상을 남기는 데 기여했습니다. 또한 사진은, 인간의 통치는 실패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곧 현 악한 사물의 제도를 끝내시고 하나님의 왕국 통치로 바꾸시는 일이 온전히 정당하다는 사실을 인상 깊게 해줍니다.—다니엘 2:44; 마태 6:9, 10; 베드로 후 3:13.—편집자.
귀지의 대학살에 관한 최근 기사는 완벽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 기사는 대규모의 유대인 그룹과 여호와의 증인의 소수 그룹에 너무 집중되었습니다. 그 학살은 이를테면 집시와 같이, 고통을 겪었던 다른 그룹에도 피해를 주었습니다.
A. G., 프랑스
다수의 다른 그룹들도 나치 정권하에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은 자신의 믿음을 포기했더라면 석방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단지 희생자가 아니라 순교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편집자.
동성애 귀지의 기사를 읽기 전에 나는 매우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어판은 1989년 4월 15일호) 나는 십대초에, 몇몇 친구들과 동성애를 시작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할 때까지 계속 동성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부에 아직도 잔존하는 나쁜 감정을 갖는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회중의 장로는 고사하고, 진실한 사람조차 결코 될 수 없으리라고 느끼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사에 인용된 제이슨의 말을 읽었을 때, 그가 과거에는 비슷한 문제거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는 바로 회중의 장로라는 사실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나는 현재 여호와의 조직에 속해 있다고 느낍니다.
M. M.,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