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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란드—여호와의 증인을 접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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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0
깨90 1/1 20-25면

폴란드—여호와의 증인을 접대하다

천구백팔십구년 8월에, 국제적인 평화와 연합이 매우 주목할 만하게 전시된 행사가 폴란드에서 있었다. 그 행사는 폴란드의 포즈나니 시와 호조프 시에서 8월 4-6일에 그리고 바르샤바에서 8월 11-13일에 열린, 여호와의 증인의 “경건한 정성” 대회였다.

무엇 때문에 그 대회들이 그토록 특별하였는가? 현대에 여호와의 증인은 그보다 더 크고 더 오랫동안 계속되고 더 많은 나라 사람이 참석한 대회를 가져왔다. 그러나 166,000여 명의 사람은, 그보다 더 큰 열정을 일으켰거나, 그리스도인 연합이 그처럼 분명히 나타났거나, 자발적인 그리스도인 사랑의 표현이 그토록 많았던 것으로 특징을 이룬 대회를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신세계뿐”

적어도 37개국에서 온 대표단과 그 밖의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 성원 중 다섯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12,000여 명의 방문객이 서 유럽, 미국 및 일본으로부터 와서, 폴란드에서 여태껏 맞이해 본 적이 없었던 최대 규모의 국제 여행자 그룹이 되었다.

그 외에도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 및 기타 동 유럽 나라들로부터 수많은 사람이 왔다. 참석자들 중에는 30년 이상 증인으로 생활한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에게는 바로 이 대회가 첫 대회였다.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처음으로 대회를 가질 수 있었던 그러한 사람들의 감정은 소련, 카자흐 공화국에서 온 한 참석자가 한 다음과 같은 말로 가장 잘 요약될 수 있다.

“여러 해 동안 이 날을 기다려 오다가, 이제 이 국제 대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다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꿈같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원형 경기장에 사람들이 가득찬 것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리고 기도로 우리 모두가 움직이지 않고 연합되어 있을 때에는 감개 무량하였습니다. 매우 엄숙하게 한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이 바르샤바 대회는 너무나 훌륭하고 웅대한 행사여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신세계뿐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날들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입니다.”

대회들에서 수만명의 동료 증인을 처음 대했을 때, 이 방문객들 중 상당수는 감동을 받았음이 역력했다. 바르샤바에서 방문객들은 5분이 훨씬 넘게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 갈채를 보냈다. 서 유럽에서 온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한 때에, 날씨가 무덥다든가 의자가 딱딱하다든가 집에 가서 안락 의자에 앉을 것을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은 더 많은 교훈과 애정어린 동료 관계를 원했습니다.”

날마다 외국에서 온 참석자들로부터의 보고가 있었는데, 그들은 자국의 경험담을 말하였다. 바르샤바에서 24개의 그러한 보고들 중 마지막 것은 소련에서 온 한 참석자의 보고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있을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많이 이곳에 올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여러분으로부터 이토록 후대받은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토록 많은 형제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바입니다. 우리 중에는 태평양 연안의 블라디보스톡과 같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엿새 동안 열차를 타고 온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매우 많은 사람이 동시에 이곳에 오고 싶어하였는데, 구할 수 있는 좌석표가 그다지 넉넉치 않았기 때문에 표를 사는 데 문제가 있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도움으로 우리는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적절하게도, 통치체의 한 성원은 일요일에 폐회 연설에서, 동 유럽 정부들이 자국에 사는 매우 많은 여호와의 증인에게 대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에 대해서 감사를 나타냈다.

연합된 형제 관계

한 증인은 폴란드 대회에서 경험한 것을 묘사하면서, “그것은 마치 바벨과 정반대”였다고 말하였다. 바벨탑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들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혼란과 분열이 초래되었지만, 이곳에서는 언어 문제에도 불구하고 생각과 행실 및 행동에 있어서의 연합이 놀라울 정도로 분명히 나타났다.—창세 11:1-9.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동료 신자들 가운데서의 이러한 연합은 외부인의 눈에 띄게 마련이었다. 출판물 「스탄다르 믈로디흐」는 이렇게 논평했다. “바르샤바 공항에 도착한 항공 여객 중에서 혼란되거나 무리 중에서 길을 잃는 일이 없는 여객은 여호와의 증인뿐이었다. 동료 신자들은 여러 언어로 된 안내문과 안내소 및 표지판을 마련하였으며 대회 도시로 가는 교통편을 제공하였다.”

대회에서 노래 부르는 일은 주목할 만하였다. 수만명이 20여 가지 언어로 일제히 노래하면서, 모두가 사랑과 연합의 영으로 동일한 생각을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그램의 일부가 바르샤바에서는 16개 언어(포즈나니에서는 13개 언어 그리고 호조프에서는 15개 언어)로 통역되었다. 이러한 일은 폴란드에서 이전에 한번도 없었다.

16명의 통역자가 자신이 속한 특정 언어 그룹 바로 앞의 경기장 바닥에 서 있었다. 연사가 연단에서 연설을 하면, 통역자들은 각각 경기장의 자기 구획에 있는 청중의 언어로 통역을 하였다. 확성기는 바로 각각의 특정 언어 구획을 향하였으므로 각자가 다른 구획에서 다른 언어로 제공되는 통역으로부터 심하게 방해되는 일이 없이 자기 언어로 들을 수 있었다.

폴란드에서의 심각한 경제 문제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형제들은 수천명의 방문객에게 개인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포즈나니에서는 형제들이 16,000명에게, 바르샤바에서는 21,000명에게 그리고 호조프에서는 30,000명에게 숙소를 제공하였다. 한 가족은 18명에게 숙소를 제공하였고 21명에게 식사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146명으로 이루어진 한 회중에서는 1,276명에게 숙소를 제공하였다!

훌륭한 뉴스 보도

텔레비전, 라디오 및 신문 보도들은 대부분 사실에 입각한 것이었으며 편파적이 아니었다. “212개국에서 종교를 실천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표제를 싣고서, 폴란드 출판물 「스탄다르 믈로디흐」는 그 기사에서 “한결같음,” “질서 정연함,” “겸허,” “근면”과 같은 부제를 사용하여 여호와의 증인을 칭찬하였다. 바르샤바의 경기장에 관하여, 그 잡지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담배 꽁초나 버릇없는 어린이가 버린 휴지 조각이 단 한개도 없었다. 여호와의 증인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그들의 자녀는 버릇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신문 「지치에 바르샤비」는 대회 준비를 하는 데 꼬박 일년이 걸렸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무엇보다도, 대회가 열린 경기장들은 새 모습이 되었다”라고 기술하였다.

신문 「엑스프레스 비에초르니」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경기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질서가 모든 관찰자에게 감명을 주었다. 쓰레기를 정해진 곳에 버리는 일, 임시적인 것이지만 깨끗한 화장실, 많은 안내소—이 모든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 일을 해내기 위해서, 3,500여 명의 증인이 바르샤바 경기장을 준비하고 꾸미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였다.

또한 그 신문은 몇몇 참석자와 회견하면서, “바르샤바 대회는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였다. 폴란드의 한 증인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의 증인이 종교 단체로 공인되어 있지 않은 나라인 체코슬로바키아와 소련에서 온 형제들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소련에서 온 한 증인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다. “이 대회가 나의 생애에서 가장 큰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 생전 처음으로 세계 곳곳에서 온 매우 많은 형제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모임은 훌륭하게 조직되었습니다. 강연이 16개 언어로 통역되었으며, 폴란드 형제들이 주인 역할을 했습니다—참으로 모든 것이 훌륭했습니다.”

「지치에 바르샤비」지는 이렇게 지적하였다. “바르샤바에서 열린 여호와의 증인의 세계 대회는 이제 끝났다. ·⁠·⁠· 우리가 기억하듯이 폴란드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종교 단체—지금은 무려 80,000여 명의 신자a—가 등록된 지 불과 몇달 후에 그러한 대회 모임이 가능하였다. 이전에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이 종교 단체는 5월 12일 이후 법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여호와의 증인의 대회를 “연합의 현시”라고 부르면서, 그 신문은 “질서 정연함, 평화로움 및 깨끗함에 있어서, 대회 참석자들은 귀감이 된다”라고 기술하였다.

침례

폴란드어를 말할 수 있든 없든, 가슴 뭉클케 하는 침례 광경을 보고 모든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르샤바에서는 침례 지원자가 앉도록 연단 바로 앞 경기장 바닥에 많은 의자를 놓아 두었다. 그러나 오전 프로그램 중에, 지원자 그룹이 계속 늘어나자 안내인들이 가외의 의자를 급히 경기장 바닥으로 옮기는 흐뭇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후, 침례 연설이 시작되려 하자, 매우 많은 청중은 조용해졌다. 결코 잊지 못할 일을 곧 경험하게 될 순간이었다. 연사가 침례 지원자들을 환영하자, 경기장 전체에서 갑자기 자발적인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지원자들은 자신들을 빽빽이 에워싼 청중에게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어 답례하였는데, 사실은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되어 복받치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지원자들이 일반적으로 받게 되는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여 믿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한 소리가 분명하고도 결의에 찬 어조로 들렸는데—참으로 그들 중에는 많은 난관과 시련을 극복하면서 이러한 헌신의 단계에 이르게 된 사람이 많다. 기도에 이어서, 청중이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했네”를 부를 때, 지원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경기장을 걸어 나갔다. 형제들은 형제용 갱의실에 이르는 한 터널을 통해 경기장을 나갔고, 자매들은 자매용 갱의실로 가는 또 다른 터널을 통과했다. 안내인과 침례주는 사람들이 모두 흰 옷을 입고서 자리를 잡자, 곧 정숙한 수영복을 입은 지원자들이 다시 경기장으로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경기장에는 12개의 침례용 풀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6개는 자매용으로 경기장의 한쪽 끝에, 그리고 다른 6개는 형제용으로 경기장의 다른 쪽 끝에 있었다.

바르샤바에서 1,905명이 45분간 침례를 받을 때 계속해서 열정적인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전 주 포즈나니에서 1,525명 그리고 호조프에서 2,663명이 침례를 받아, 도합 6,093명이 침례를 받았는데, 이 수는 최고 참석자 수의 3.7퍼센트였다.) 적어도 두명의 지체 부자유한 형제가 애정어린 손길로 휠체어에서 들어올려져 침례를 받았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은 침례 연설을 듣기 위해 들것에 실려 경기장에 나왔었다.

“극치”

‘지극히 감정에 치우친 말로 들린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물론 감정이 듬뿍 담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감정은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부흥회에서 볼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폴란드 대회 참석자들의 감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정확한 지식에 근거를 둔 것이어서, 참석자들이 그후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폴란드의 증인이 수십년간 반대받은 후 마침내 이웃 나라들의 동료 신자들과 자유롭게 대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나온 감정이었다. 그것은 바로 옆에 앉은 참석자가 전에는 아마도 대회에 한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며 이러한 규모의 대회에는 거의 틀림없이 참석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아는 즐거움에서 나오게 되는 감정이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증인이 살아계신 진리의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의 연합된 국제적 형제 단체라는 압도적인 역력한 증거로부터 나온 감정이었다.

서 유럽에서 온 한 참석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러한 감정을 요약하였다. “1952년 이후로 모든 대회에 참석해 보았지만, 분위기, 열정, 즐거움, 사랑, 인식 및 감사하는 태도에 있어서, 이 대회는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틀림없이 바르샤바에서 감정이 절정에 달한 것은 일요일의 마지막 기도중이었을 것이다. 수천명은 기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모두는 기도에 표현된 영, 사랑, 헌신, 환희,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인식 그리고 여호와의 일을 계속 수행하려는 결심을 감지하였다. 약 60,000명이 머리 숙여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의 외경감을 불러일으키는 침묵을 깨뜨린 것은 분명히 인식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즐거운 흐느낌의 소리뿐이었다. 기도가 끝났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아멘”이라고 말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뒤이어 자발적인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와 그 거대한 무리 속에서 11분 이상 메아리쳤다.

166,000여 명이 폴란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권 역사의 목격 증인이 되었다. 사단의 악한 제도가 최종 멸망으로 치닫기 전에, 훨씬 더 많은 역사—여호와의 주권의 입증으로 절정을 이루게 될 흥미 진진하고, 숨막히고, 가슴 설레게 하는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선택하기만 한다면, 당신도 그 역사의 일부로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렇게 할 것인가?

[각주]

a 신문의 추산.

[21면 네모]

역사적 이정표

1928년 300명의 폴란드 증인이 처음으로 소규모 대회들을 개최함.

1939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때, 1,100명의 증인이 전파함. 많은 증인이 투옥되었으며, 일부는 독일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함.

1945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증인의 수는 두배 이상인 2,500명으로 증가함.

1946년 6월에, 1,500명이 루블린 근처의 대회에 참석하였고, 298명이 침례받음. 9월에 5,600명이 카토비체의 대회에 참석함.

1947년 크라코프의 한 대회에 7,000명이 참석하였고, 476명이 침례받음. 두명의 길르앗 졸업생이 전파 활동을 조직하는 일을 돕기 위해 도착함.

1950년 3월에 18,000명의 증인 신기록에 달함. 기념식에 24,000명이 참석함. 7월에 활동이 금지되어, 개인 집에서 소규모 모임을 가질 필요가 있게 됨.

1968년 하루의 지역 대회들이 숲속에서 100명 혹은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처음으로 열림. 그후 무려 1,000명이 참석함.

1980년 폴란드에서 거의 2,000명의 증인이 지역 대회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여행함.

1981년 1980년의 대회보다 훨씬 큰 대회가 폴란드 형제들을 위해 빈에서 개최됨.

1982년 폴란드 정부는 증인이 하루의 대회를 위한 집회장과 경기장을 빌릴 수 있도록 허락함.

1985년 삼일간의 지역 대회가 94,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폴란드에서 개최됨. 네명의 통치체 성원을 포함하여, 16개국에서 수백명이 방문함.

1989년 “경건한 정성” 지역 대회에 세개의 경기장이 가득 메워졌으며, 다섯명의 통치체 성원이 참석함. 총참석자 수는 166,518명이며, 6,093명이 침례받음. 두 가지 전도지 즉 「여호와의 증인은 무엇을 믿는가?」와 「성서를 믿을 수 있는 이유」 그리고 32면 팜플렛 「삼위일체를 믿어야 하는가?」가 폴란드어로 발표됨.

[23면 삽화]

바르샤바에서 연단 앞에 앉아 있는 침례 지원자들과 그들의 침례를 지켜보고 있는 군중

[25면 삽화]

호조프에서, 소련에서 온 참석자들을 위한 구획의 일부 및 소련의 증인을 포즈나니로 실어다 준 버스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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