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91 6/1 6-9면
  • 텔레비전이 우리를 바꾸어 놓았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텔레비전이 우리를 바꾸어 놓았는가?
  • 깨어라!—1991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유혹의 명수
  • TV와 도덕관
  • 환상 대 현실
  • 영향력 있는 기계
  • TV 어린이
  • ‘텔레비젼’이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깨어라!—1978
  • ‘텔레비젼’을 제어하라!
    깨어라!—1978
  • ‘텔레비젼’은 해로울 수 있다
    깨어라!—1978
  • ‘텔레비젼’—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깨어라!—1983
더 보기
깨어라!—1991
깨91 6/1 6-9면

텔레비전이 우리를 바꾸어 놓았는가?

‘세상을 보는 창.’ 텔레비전은 이렇게 묘사되었다. 저술가 에릭 바노는 「풍요의 상자—미국 텔레비전 발달사」(Tube of Plenty—The Evolution of American Television) 책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1960년대 초에 “[텔레비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는 창이 되었다. 그것이 보여 주는 모습이 곧 온 세상의 모습 같았다. 사람들은 그것의 타당성과 완벽성을 신뢰하였다.”

하지만 단지 창에 불과한 것이라면 장면을 선택해서 보여 줄 수 없다. 그것은 조명과 보는 각도를 정할 수 없다. 우리의 관심을 붙잡기 위해 갑자기 장면을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TV는 할 수 있다. 그러한 요소들은 우리가 보는 것에 대한 느낌과 판단을 극적으로 틀잡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요소들은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 조절하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편견 없다는 뉴스 보도와 기록물들도 의도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그렇게 조작되기 십상이다.a

유혹의 명수

그런데 텔레비전을 주관하는 사람들이 시청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영향을 주려고 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예로서 광고를 제작할 때, 그런 사람들은 사실상 시청자를 구매 분위기로 끌어들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온갖 유혹적인 책략을 다 동원한다. 색상. 음악. 아름다운 사람들. 성적 묘사. 호화로운 배경. 엄청나게 다양한 소재를 능수 능란하게 사용한다.

이전에 광고 담당 간부였던 한 사람은 광고 분야에서 15년을 보낸 것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였다. “[TV와 같은]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정신에 직접 말하고, 딴 세상의 어떤 마술사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달리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을 하게 할 수 있는 이미지를 넣어 주는 것이 가능함을 알았다.”

텔레비전이 사람들에게 그처럼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이미 1950년대에 분명히 나타났다. 연간 5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던 한 립스틱 회사가 미국 텔레비전에 광고를 내기 시작하였다. 2년 만에 매상고가 연간 450만 달러로 치솟았다! 한 은행이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에 서비스 마련을 광고하자 갑자기 1500만 달러의 예금액이 쇄도해 들어왔다.

오늘날 미국인은 매년 평균 3만 2000회 이상의 상업 광고를 본다. 광고는 감정을 유혹적으로 자극한다. 마크 크리스핀 밀러가 「상자 속의 TV 문화」(Boxed In—The Culture of TV)에서 이렇게 기술한 바와 같다. “사람은 보는 것의 조종을 받는다는 말은 사실이다. 일상 생활에 편만해 있는 상업 광고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조종은 “흔히 분별해 내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위험한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분간하는 법을 배울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립스틱이나 정치적 견해, 문화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도덕관—혹은 도덕관의 결여—을 판매한다.

TV와 도덕관

갈수록 미국 TV에 성적 행동이 자주 묘사되는 것을 알고 놀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89년에 「계간 언론」(Journalism Quarterly)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 밝혀 준 바에 의하면, TV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인 프라임 타임 66시간 동안, 암시적인 것이든, 말로 표현된 것이든, 실제로 묘사된 것이든 성적 행동이 모두 722회나 있었다. 사례들로는 성욕을 자극하는 접촉에서 성관계, 수음, 동성애, 근친 상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시간당 평균 10.94회였다!

이 점에 있어서 미국만 유별난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TV 영화는 노골적인 가학성애를 묘사한다. 이탈리아 TV에는 나체 프로그램이 등장한다. 스페인의 심야 TV 프로그램은 폭력과 성애를 다룬 영화로 특색을 이룬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폭력은 TV 부도덕의 또 다른 유형이다. 미국에서 「타임」 잡지의 한 TV 평론가는 최근에 일련의 공포 프로그램에서 보여 준 “소름끼치게 재미 있는 유머”를 격찬하였다. 이 연속물에는 목 자르기, 사지 절단, 찔러 죽이기 및 신들리는 일에 관한 장면들이 주로 나왔다. 물론 많은 TV 폭력물은 덜 소름끼치는 것이며—따라서 보다 쉽게 받아들여진다. 서구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최근에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외딴 마을에서 방영되었을 때, 한 노인은 어리둥절해 하며 “왜 백인들은 항상 서로 칼로 찌르고 총을 쏘며 치고 박는게요?”하고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대답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들과 제공자들이 시청자가 보기 원하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기를 원한다는 데 있다. 폭력은 시청자의 주의를 끈다. 성 역시 그렇다. 따라서 TV는 그 두 가지를 충분히 공급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분량을 너무 빨리 제공하지는 않는다. 시청자들이 거부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도나 매크로핸이 「프라임 타임, 우리들의 시간」(Prime Time, Our Time)에서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대부분의 인기 프로그램들은 상스러운 말, 성, 폭력 등과 같은 소재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간다. 그런 다음 막다른 한계에 이르면 그 한계를 넘어선다. 그렇게 되면 대중은 새로운 한계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때 동성애는 TV 흥미의 “한계”를 넘어선 소재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일단 그것에 익숙해지자 훨씬 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프랑스의 한 언론인은 이렇게 단언하였다. “어떤 제작자도 오늘날 동성애를 일탈 행위로 제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 도리어 이상한 것은 사회와 사회의 편협이다.” 1990년에 미국의 11개 도시에서 유선 텔레비전으로 ‘동성애 연속극’이 방영되었다. 프로그램은 남자들끼리 동침하는 장면을 주로 다루었다. 프로그램 제작자는 그러한 장면이 “시청자들의 민감도를 완화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도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동성애자들이 고안한 것이라고 「뉴스위크」 잡지에 말하였다.

환상 대 현실

「계간 언론」에 보도된 연구의 집필자들은, TV에서 불법적 성의 결과를 보여 주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TV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쾌락 위주의 성적 묘사”는 그릇된 정보를 유포하는 행동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하였다. 그들은 또 다른 연구 결과를 언급하였는데, 그 연구에서는 TV 연속극이 무엇보다도 ‘성은 혼외 상대자와 즐기는 것이며, 그로 인해 병에 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메시지를 유포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 메시지가 우리 사회의 현실인가? 십대 임신이나 성 매개 질환이 없는 혼전 성관계? AIDS에 걸릴 두려움 없는 동성애와 양성애? 주인공에게는 승리를 그리고 악당에게는 수치를 남기는 폭력과 신체 상해—하지만 이상스럽게도 흔히 둘 다 다치지 않는 일? TV는 결과를 염려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축복된 세상을 창출한다. 양심의 법, 도덕의 법, 자제의 법이 즉석 만족의 법으로 대치된다.

텔레비전이 “세상을 보는 창”—적어도 현실 세상을 보는 창—은 아님이 분명하다. 사실, 최근에 발행된 텔레비전에 관한 한 책의 제목은 「비현실 산업」(The Unreality Industry)이었다. 그 책의 저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TV는 “우리 생활에서 으뜸가는 강력한 세력이 되었다. 그 결과 TV는 현실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중요하고 황당스러운 것으로,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구분, 경계선 자체를 없앤다.”

이러한 말은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공연한 걱정처럼 들릴지 모른다. ‘보는 것을 다 믿지는 않아요’하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물론 우리에게는 TV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무릎 반사식의 무조건적 회의주의가 우리의 감정을 이용하는 TV의 교활한 술책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 기고가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TV의 으뜸가는 흉계는 그것이 우리의 심리 구조에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결코 알리지 않는 것이다.”

영향력 있는 기계

「1990 브리태니카 연감」(1990 Britannica Book of the Year)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매일 평균 일곱 시간 이 분이다. 보다 온건한 평가에 따른 수치는 하루에 약 두 시간이다. 그래도 일평생 텔레비전을 보는 데 7년을 보내는 셈이다! TV를 그토록 장기간 들여다보고도 영향을 받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TV와 현실 사이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관해 읽게 되는 것도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영국의 「대중 매체, 문화, 사회」(Media, Culture and Society)지에 실린 한 연구는 TV가 틀림없이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에 대해 바라는 것이 현실 자체라고 생각하도록 현혹시키면서 “현실 세계에 대한 엉뚱한 시각”을 갖게 유도한다는 사실을 밝혀 주었다. 그 외에 미국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에서 종합한 것과 같은 다른 연구들은 그러한 결론을 지지하는 것 같다.

TV가 일반 대중의 현실 개념에 영향을 미친다면,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과 행동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나 매크로핸이 「프라임 타임, 우리들의 시간」에서 이렇게 기술한 바와 같다.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이 금기 사항이나 상스러운 말의 장벽을 무너뜨릴 때, 우리는 보다 거리낌없이 그러한 장벽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 난잡한 성행위가 일반 수준이 될 때, 혹은 남성미 있는 연기자가 콘돔 사용을 언급할 때 영향을 받는다. 각 경우에 TV는—나중에 결과가 나타나는 방식으로—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따라서 대체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한다.”

TV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에 따라 부도덕과 폭력이 증가하였음에 틀림없다. 우연의 일치인가?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한 연구는 세 나라에서 범죄와 폭력의 비율이 증가한 것은 오로지 각 나라에 TV가 도입된 후였다고 알려 주었다. TV를 일찍 도입한 나라일수록 범죄율도 빠르게 증가하였다.

놀랄 만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TV가 기분 전환을 가져다 주는 여가 활동으로 평가될 수도 없다는 점이다. 13년에 걸쳐 1200가지 소재로 실시된 여러 연구들은 모든 여가 활동 중에서 텔레비전 시청이 사람들에게 기분 전환을 가장 적게 가져다 줄 것임을 밝혀 주었다. 오히려 TV 시청은 시청자들을 수동적이면서도 긴장하게 하며,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특히 오래 시청하는 사람은 시청하기 시작할 때보다 기분이 더 나빠진다. 그와는 달리 독서는 좀더 기분 전환을 가져다 주며, 더 나은 기분을 갖게 하고, 더 잘 집중하게 한다!

그러나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아무리 건설적인 것이라 해도, 약삭빠른 시간 도둑인 TV는 쉽사리 책을 뒷전으로 밀어 치울 것이다. 텔레비전이 뉴욕 시에 처음으로 도입되자, 얼마 안 있어 공공 도서관들의 도서 대출량이 줄어들었다. 물론 인류가 독서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오늘날 사람들은 참을성 없이 독서를 한다. 즉 현란한 시각 영상을 쉴 새 없이 제공받지 않는 한 주의력이 곧 약해진다는 말이다. 통계와 연구들은 그러한 막연한 염려를 확증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쏜살같이 지나가는 순간순간 아무리 짧은 주의력이라도 붙잡으려고 고안된 끝없이 쏟아지는 TV 오락물을 계속 포식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개인적 깊이와 징계 부면에서 무엇을 잃게 되는가?

TV 어린이

그런데 TV 문제가 참으로 절박한 것은 어린이와 관련해서다. 대체로, TV가 성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나 어린이에게 미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오히려 더 많이 미칠 수 있다. 아무튼 어린이는 TV에서 보는 환상적인 세상을 믿는 경향이 더 많다. 독일 신문 「라이니셔 메르쿠어/크리스트 운트 벨트」는 최근의 한 연구를 언급하였는데, 그 연구에서는 어린이가 흔히 “화면에서 보는 것과 현실 생활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은 비현실 세계에서 보는 것을 현실 세계로 옮긴다”는 사실을 밝혀 주었다.

수십 년 간의 조사 중 3000가지가 족히 넘는 과학적 연구는 TV 폭력물이 어린이와 십대 청소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지지하였다. 미국 소아과 학회와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 및 미국 의학 협회와 같은 명망 있는 기관들은 모두 텔레비전 폭력물이 어린이에게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야기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여러 연구들은 그 외의 우려할 만한 결과를 지적하였다. 예로서, 어린이 비만은 과도한 TV 시청과 연관되어 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TV 앞에서 보내는 비활동적인 시간이 활발하게 노는 시간을 대치한다. (2) TV 상업 광고로 인해 쉽사리 어린이는 영양가가 거의 없고 기름기 많은 군것질 식품을 사먹게 된다. 그 외의 조사는 TV를 과도하게 시청하는 어린이의 학업 성적이 낮음을 밝혀 주었다. 그 결론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타임」 잡지는 최근에 여러 정신과 의사와 교사들이 어린이의 독서력과 학업 성적의 전반적 감소를 TV 탓으로 돌린다고 보도하였다.

다시금, 중요한 요소는 시간이다. 미국의 어린이는 일반적으로 고등 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면 학교에서는 1만 1000시간을 보내는 데 비해, TV 앞에서는 1만 7000시간을 보낸다. 많은 어린이의 경우, TV가 주요 활동 시간을 차지하지는 않을지라도 주요 여가 활동 시간을 차지한다. 「부모를 위한 전국 사친회 담화문: 최상의 자녀 교육법」(The National PTA Talks to Parents: How to Get the Best Education for Your Child) 책은 모든 5학년생(열 살)의 절반이 하루에 집에서 독서하는 데는 4분을 사용하지만 TV를 보는 데는 130분을 사용한다고 지적한다.

끝으로, TV가 어린이와 성인 모두에게 매우 실제적인 위험을 주지 않는다고 진지하게 주장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모는 집에서 TV 시청을 금해야 하는가? 일반 사람들은 TV를 없애거나 다락에 집어 넣음으로써 그 영향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가?

[각주]

a 본지 1990년 9월 1일 호의 “뉴스는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참조.

[7면 삽입]

“왜 백인들은 언제나 서로 칼로 찌르고 총을 쏘며 치고 박는게요?”

[9면 삽화]

TV를 끄고 책을 보자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