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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리카의 가톨릭 교회
  • 깨어라!—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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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5
깨95 1/1 18-20면

아프리카의 가톨릭 교회

「깰 때이다」 이탈리아 통신원 기

가톨릭 교회는 아프리카에 수천만 명의 신자를 두고 있으므로, 그 곳의 교회 문제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년 초에 300명이 넘는 교회 지도자들이 한 달간의 특별 회의에서 이 문제들 중 얼마를 토의하려고 로마 교황청에 모였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지에 보도된 대로, 교황은 개회사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망라하는 아프리카 교회 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 아프리카 전체가 오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참석하였습니다. 로마의 주교는 깊은 애정으로 아프리카를 맞이하는 바입니다.”

부족 전쟁

많은 사람이 아는 바와 같이, 가톨릭 교회의 문제는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교인인, 아프리카의 두 나라 부룬디와 르완다에서 특히 심각하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웃에게 살해되었던 작년 봄에 그 지역의 부족 전쟁은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다. 한 목격자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우리는 어린 자녀를 등에 업은 여인들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지는 가톨릭 지도층의 고민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 신문은 교황이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교인인,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부룬디]에서 벌어진 분쟁에 대한 최신 보도를 듣고 ‘한없는 고통’을 느꼈다”고 말하였다.

르완다에서 벌어진 대학살은 가톨릭 지도층의 체면을 한층 더 손상시켰다. 그 신문은 “교황이 70퍼센트가 가톨릭교인인 국가에서 벌어진 종족 대학살을 비난하다”라는 표제를 실었다. 그 기사는 이렇게 논평하였다. “그 아프리카 국가에서의 싸움은 ‘사실상의 종족 말살을 [수반하며] 불행하게도 가톨릭교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교황은 말하였다.”

로마에서 가톨릭의 이 역사적인 회의가 열린 바로 그 시기에 르완다에서 잔학 행위가 벌어지고 있었으므로, 주교들의 관심이 르완다의 상황에 집중되었음이 분명하다.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지는 이렇게 논평하였다. “르완다의 분쟁은 염려스러운 점을 드러낸다. 즉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부족주의를 극복할 정도로 아프리카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함께 모인 주교들의 염려를 언급하면서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지는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부족주의라는] 이 문제는 나이지리아, 아우카의 주교인 알베르트 카네네 오비에푸나가 회의에서 거론함으로 논의하게 되었다.” 오비에푸나는 자신의 연설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전형적인 아프리카인은 가족 생활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생활도 부족의 일을 중심으로 영위합니다.”

그 다음에 오비에푸나는 분명히 르완다를 염두에 두고 회의에서 계속 이렇게 연설하였다. “이러한 사고 방식이 너무나 만연해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인들 사이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즉 궁지에 몰리면 한 가족이라는 교회의 그리스도인 개념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격언이 더 우세해진다는 것입니다. 아마 여기에서 언급한 물에는, 교회라는 가족 안에 태어나게 해준 세례의 물이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 된 아프리카인에게도 혈연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그 주교는 가톨릭 신앙이 아프리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서로를 참으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형제 관계를 산출하지 못하였음을 인정한 것이다. (요한 13:35) 오히려, 아프리카의 가톨릭교인들에게는 ‘혈연 관계가 더 중요하다.’ 이로 인해 그들은 다른 모든 문제보다 부족간의 증오심을 더 앞세우게 되었다. 교황이 인정한 것처럼, 아프리카의 가톨릭교인들은 최근의 기억에 남아 있는 최악의 잔학 행위 중 일부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존속이 위태롭다고 말하다

그 회의에 참석한 아프리카의 주교들은 가톨릭이 아프리카에서 존속할지에 대한 염려를 나타냈다. 나미비아의 주교인 보니파티우스 하우시쿠는 “교회가 우리 나라에 계속 존재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문화 적응이라는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비슷한 소감을 표현하면서 이탈리아 가톨릭 통신사인 아디스타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아프리카에서 복음의 ‘문화 적응’에 대하여 언급한다는 것은 그 대륙에서 가톨릭 교회의 운명 자체, 즉 교회의 존속 또는 쇠망의 가능성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교들이 말하는 “문화 적응”이란 정확히 무슨 말인가?

교회와 “문화 적응”

존 M. 월리고는 “동일한 실상을 나타내기 위하여 적응이라는 용어가 오랫동안 쓰여 왔다”고 설명하였다. 더 간단히 말하면, “문화 적응”이란 고대의 의식, 대상물, 행위 그리고 장소들에 새로운 이름과 의미를 부여함으로, 부족 종교의 전통과 개념을 가톨릭의 의식과 숭배에 동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 적응은 아프리카인들이 평판이 좋은 가톨릭교인이면서도 자기 부족 종교의 관습과 의식과 신앙을 고수하는 것을 용인한다. 이에 대하여 어떤 반론이 있을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라 레푸블리카」지는 이렇게 질문하였다. “사실 유럽에서도 12월 25일에 있었던 솔리스 인빅티(무적 태양)의 축제일에 크리스마스를 정착시키지 않았는가?”

사실, 인류 복음화 성성(聖省)의 장관인 요제프 톰코 추기경이 말한 것처럼 “선교인 교회는 그 용어가 사용되기 오래 전부터 문화 적응을 실천하였다.” 「라 레푸블리카」지에서 언급한 대로, 크리스마스 축일은 그 사실을 잘 예시한다. 그 날은 본래 이교 축일이었던 것이다. 「신 가톨릭 백과 사전」은 “12월 25일이라는 날짜는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아니라 나탈리스 솔리스 인빅티(무적 태양의 탄생일) 축제 곧 동지 때 열리는 로마의 태양 축제일에 해당한다”고 인정한다.

크리스마스는 이교에 뿌리를 내린 많은 교회 관습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한 신앙들 중에는 삼위일체, 영혼불멸 그리고 인간 영혼이 사후에 영원한 고초를 받는다는 신앙이 있다. 19세기의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은 “교회 지도자들은 일찍부터, 기회가 생기면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의식과 습관을 채택하거나 본뜨거나 용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기술하였다. 그는 교회의 많은 관습과 축일들을 나열하면서, 그것들이 “모두 이교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교회 안으로 채택됨으로 거룩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가톨릭교인들은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들과 같은 비그리스도교 지역으로 들어갈 때, 종종 사람들이 이미 교회와 비슷한 종교 관습과 신앙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교회가 이전 여러 세기 동안 비그리스도인들의 관습과 가르침을 채택하여 가톨릭교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습과 가르침은 “교회 안으로 채택됨으로 거룩하게 되었다”고 뉴먼 추기경은 주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작년에 아프리카의 비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였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지에 인용되었다. “나는 [아프리카 베냉의] 코토누에서 부두교 신봉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말한 점을 볼 때, 이미 그들의 사고 방식, 의식, 상징물, 성향 가운데 교회가 그들에게 전해 주기를 원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들어 있음이 분명하였다. 단지 그들은 누군가가 와서, 자기들이 문지방을 넘고 세례를 통한 생활을 하도록 손을 내밀어 줄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세례를 받기 전에 이미 그러한 생활을 어느 정도 영위하며 경험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참되고 순수한 그리스도교를 가르치는 일에 실패함으로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다른 지역의 국가주의처럼, 부족주의가 여전히 존재하여 가톨릭교인들이 서로 살육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리스도에게 참으로 불명예를 돌리는 일이다! 성서는 서로에 대한 그러한 불법적인 살인이 사람들을 “마귀의 자녀”로 드러내 준다고 말하며, 예수께서는 그러한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여, 내게서 떠나시오.”—요한 첫째 3:10-12; 마태 7:23.

그러므로 정직한 마음을 가진 가톨릭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숭배가 하느님 보시기에 더러운 것이 되게 하는 어떤 관습이나 신앙과 타협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고 강력히 권한다. 성서는 “믿지 않는 사람과 맞지 않는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은혜를 누리려면, 그들과 ‘따로 있고 더는 하느님 보시기에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고린도 둘째 6:14-17.

[20면 삽입]

교황은 ‘르완다에서의 전쟁이 사실상의 종족 말살이며 가톨릭교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였다

[18면 사진 자료 제공]

사진: Jerden Bouman/Sip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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