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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들은 죽음의 문턱에 선 나를 통해 배웠다
  • 깨어라!—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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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5
깨95 12/22 25-27면

의사들은 죽음의 문턱에 선 나를 통해 배웠다

우리는 1991년 5월 중순에, 네 번째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막내 미카엘은 아홉 살이었고, 쌍둥이 딸인 마리아와 사라는 열세 살이었습니다. 아이를 더 가질 계획은 아니었지만, 아기를 또 낳는다는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여겨졌습니다.

임신 3개월로 접어든 어느 날 저녁에, 나는 갑자기 폐에 통증을 느꼈습니다. 다음날에는 거의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의사는 내가 폐렴에 걸렸다면서, 페니실린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이삼 일이 지나면서 호전되기 시작했지만, 아주 쇠약한 상태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다른 쪽 폐에 통증이 왔으며, 똑같은 조치가 반복되었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은, 숨쉬기가 곤란하여 누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첫 번째 통증이 있은 후 일 주일이 조금 지나자, 한쪽 다리가 멍이 들더니 부어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의사는 폐의 통증이 폐렴 때문이 아니라, 응혈 때문이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 여의사는 내 서혜부에 응혈이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나는 응혈이 스웨덴 임산부들의 가장 보편적인 사망 원인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나는 스톡홀름에 있는 카롤린스카 슉후세트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 곳에는 임신 합병증 전문 산부인과 진료실이 있습니다.

의사들은 피를 묽게 하는 약인 헤파린을 나에게 투여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헤파린 투여로 인한 출혈의 위험성은, 폐에 또 다른 응혈이 생기는 위험성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이삼 주 후에는 집에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내 속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작은 아이와 함께 내가 살아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이 마음속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분만 시간

유도 분만을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 처치를 시작할 단계를 밟기도 전에, 나는 아랫배에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병원으로 급송되었습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아무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저녁에는, 배가 많이 부어 올랐으며 통증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밤중에 의사가 진찰을 해보더니, 진통이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아랫배는 한층 더 부어 올랐고, 통증은 참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의사는 염려스런 눈빛으로, 마지막으로 태동을 느낀 것이 언제였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문득, 태동을 느끼지 못한 지가 한참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즉시 분만실로 급송되었습니다. 멀리서 의료진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수혈을 거부해요”라고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 간호사가 내 위로 몸을 숙이더니,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가 죽었다는 걸 알고 있죠?” 마치 누군가에게 칼로 심장을 찔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잠언 12:18.

단호한 수혈 거부

갑자기 담당 의사가 나타나더니, 내가 중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내가 아직도 수혈을 수락하지 않겠다는 결정에 고착하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그렇다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그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피를 멀리하라는 명령 아래 있으며, 내가 하느님의 법에 순종하기를 원한다는 점은 담당 의사에게 아주 분명히 밝혔습니다.—사도 15:28, 29; 21:25.

그러는 동안, 그들은 또 다른 의사를 불렀는데, 바르브로 라르손이라는 숙련된 외과의였습니다. 그 여의사는 속히 도착하였고, 그 즉시 수술을 했습니다. 내 복부를 절개했을 때, 그들은 내출혈로 3리터의 피가 손실되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라르손 박사는 수혈에 관한 내 결정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그 후, 또 다른 의사는 내가 죽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여자가 이 순간에 살아 있을지 모르겠군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의사들은 출혈의 원인을 찾지 못해서 내 아랫배 속에 압박 붕대를 넣어 두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내게 생존의 희망이라고는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병원에 도착하여 내 상태를 알게 되자, 그 중 한 아이는 아마겟돈이 곧 올 것이고, 그리고 나면 내가 부활되어 자기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활이란 참으로 놀랍고도 공의로운 마련입니다!—요한 5:28, 29; 11:17-44; 사도 24:15; 계시 21:3, 4.

기로에 처한 생명

내 헤모글로빈 수치는 데시리터당 4그램으로 떨어졌지만, 출혈은 멎은 것 같았습니다. 이전에 나는 내 증상 기록부에 「깨어라!」 1991년 11월 22일 호(한국어판은 12월 1일 호) 한 부를 끼워 둔 적이 있습니다. 라르손 박사가 그것을 발견하고는 “수혈 없이 출혈을 피하고 제어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을 주의해서 보았습니다. 그 여의사는 혹시 내가 생존하도록 도와 주는 데 사용할 만한 것이 있나 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그것을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에리트로포이에틴”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는데, 그것은 인체의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약물입니다. 이제 라르손 박사는 그것을 투여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물로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따라서 문제는, 에리트로포이에틴이 늦지 않게 작용해 줄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튿날 헤모글로빈 수치는 2.9로 떨어졌습니다. 눈을 떠 보니, 온 가족이 내 침대 곁에 있어서, 무슨 일인지 의아스러웠습니다. 나는 인공 호흡기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탄에 빠져 거의 미칠 지경이었지만, 심지어 울 수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내게, 살아 남기 위해서는 힘을 아껴야 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뱃속에 있는 압박 붕대가 염증을 일으켜서 열이 났습니다. 헤모글로빈 수치는 2.7로 떨어졌습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마취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라르손 박사는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압박 붕대를 제거하기 위해서 다시 수술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술하기 전에, 아이들이 들어와서 나를 만나 보도록 허락되었습니다. 다들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료진들 중 몇 사람은 울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살아 남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주 용감했으며, 그래서 나도 침착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도로 마취를 했기 때문에, 이따금 나는 의료진들이 서로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내가 이미 죽은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수술 중에 내가 들었던 것을 나중에 말하자, 한 간호사는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고 믿었으며, 내가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튿날, 나는 조금 나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헤모글로빈 수치는 2.9였고 헤마토크릿 수치는 9였습니다.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이 우리 가족을 위해 음식과 커피를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사랑과 애정에 감사했습니다. 여전히 중태이기는 해도 저녁 때까지 상태가 안정되어 있어서, 나는 다른 병동으로 옮겨졌습니다.

의사들이 배움

많은 의료진들이 내게 호기심을 가졌으며, 그들 대부분은 아주 친절했습니다. 한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하느님이 당신을 구해 주신 것이 분명해요.” 다른 병동에서 들른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저 헤모글로빈 수치가 그렇게 낮은 사람의 모습이 어떤지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의식이 또렷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다음날, 담당 의사는 쉬는 날이었는데도 나를 보러 왔습니다. 그는 일어난 일들로 인해 겸손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완전히 회복된다면, 의사들이 환자 치료시의 수혈 대체 요법에 관하여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극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가슴 아픈 분만을 한 지 이 주 반이 지난 후, 헤모글로빈 수치는 증가하여 8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퇴원했습니다. 사흘 후에는 여호와의 증인의 연례 순회 대회가 있었으며, 나는 그 곳에 참석했습니다. 우리가 호된 시련을 겪는 동안 그토록 지원해 준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을 다시 만난 일은 참으로 격려가 되었습니다!—잠언 17:17.

라르손 박사의 약속대로, 후에 “에리트로포이에틴으로 수혈을 대치함”이라고 명한, 내 증세에 관한 보고서가 스웨덴 의학지 「레카르티닝엔」지에 실렸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인, 35세의 여성에게 광범위하고 심각한 산과 출혈이 있었다. 그는 수혈을 거부하였지만, 에리트로포이에틴 요법은 수락하였다. 수술 후 9일 동안 다량의 에리트로포이에틴으로 치료받고 나서, 아무런 부작용 없이 헤모글로빈 수치는 데시리터당 2.9에서 8.2그램으로 증가했다.”

그 기사는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처음에 그 환자는 몹시 쇠약했지만, 놀라우리만큼 빨리 회복되었다. 게다가 수술 후의 과정에서 합병증이 전혀 없었다. 환자는 이 주 후에 퇴원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우리에게 혹독한 시련이 되기는 했어도, 그로 인해 일부 의사들이 수혈 대체 요법에 관해 더 많이 배웠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쁩니다. 그들이 성공적임이 증명된 치료 방식을 시도할 준비가 되어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안 윕시오티스의 체험담.

[26면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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