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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는 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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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는 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는가?
  • 깨어라!—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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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6
깨96 4/8 5-8면

교회는 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는가?

“스토아 학파 사람은 모두 스토아주의를 따랐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에는 그리스도인이 어디 있는가?”

랠프 월도 에머슨, 19세기 미국의 수필가이자 시인.

“나는 가톨릭교인입니다. 그러나 행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한 젊은 부인은 말합니다. “나는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한 십대는 덧붙여 말합니다. 이들의 말은 유럽의 젊은 세대들의 생각을 대변해 줍니다. 그들의 부모들—또는 십중팔구 그들의 조부모들—은 아직도 교회에 다닐지 모르지만, 종교적 믿음이 세대간의 간격을 연결시켜 주지는 못하였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유럽 사람들이 존중해 온 종교적 습관이 버림받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요인—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것

여러 세기 동안 지옥불이나 연옥에 대한 두려움이 유럽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평신도들은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는 지옥에 대한 열띤 설교와 교회의 생생한 그림들로 인해, 오로지 경건한 마음으로 교회에 참석함으로 그러한 저주를 면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되었습니다. 더욱이 「가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서」에는 “교회는 신자들이 ‘일요일과 축일마다 성찬식에 참여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a 시골 지역에서는 사회적인 압력도 상당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일요일마다 교회에 참석할 것이 기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였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자유로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이 더는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지 못합니다. 지옥 교리는 슬그머니 양탄자 밑으로 쓸어 넣어졌습니다. 유럽의 가톨릭교인들은 대부분 지옥을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일요일 미사에 빠지는 “죄”는 그다지 심각하게 간주되지 않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가톨릭 사제 티르소 바케로는 이렇게 시인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가톨릭교인]이 일요일 미사에 오지 않으면, 우리는 그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및 그의 형제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순간을 놓쳤기 때문에 진실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죄는 부차적인 문제이지요.”

그러므로 두려움이 더는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교회와 그 지도자들의 도덕적 권위는 어떻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양 무리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습니까?

위기에 처한 권위

종교적 두려움이 없어진 것과 일치하게 교회의 도덕적 지위도 눈에 띄게 하락하였습니다. “여러 세기 동안 우리에게는 ·⁠·⁠· 도덕을 가르치는 사람은 매우 많이 있었지만, 도덕적인 교사는 극히 적었다”고 이탈리아의 역사가 조르다노 브루노 궤리는 개탄합니다. 이러한 도덕적 지도력의 결핍은 그리스도교국을 황폐시킨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통해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유럽의 교회들은 신자들이 피의 향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무력하였습니다. 더욱 심각한 일로서, 교회들은 전쟁 수행에 쏟는 노력에—양편에서—적극적으로 가담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분파들 사이의 내란인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그리스도교에 비극과 수치의 시기가 시작되었다”고 역사가 폴 존슨은 언급하면서 이렇게 기술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제1차 세계 대전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도덕 상태에 훨씬 더 심한 타격을 가하였다. 그 전쟁은 종교 개혁의 요람인 독일 교회들의 무력함, 그리고 교황청의 비겁함과 이기심을 드러냈다.”

바티칸이 히틀러의 나치 정권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스페인의 프랑코 휘하의 파시스트 정부들과 맺은 정교 조약들 역시 교회의 도덕적 권위에 손상을 입혔습니다. 결국, 그처럼 정치적 편의주의를 택한 결과 신뢰성의 상실이라는 종교적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국가—그 결속이 풀림

20세기 중에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마침내 교회와 국가를 묶어 주던 결속을 풀어 버렸습니다. 사실, 주요 유럽 국가 가운데 현재 로마 가톨릭교를 공식 종교로 인정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유력한 교회들은 아직도 국가의 보조를 받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과거에 휘두르던 정치적 영향력은 상실하였습니다. 모든 교직자들이 이러한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스페인의 저명한 예수회 수사 호세 마리아 디에스알레그리아의 견해는 이러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은—그들 중 많은 사람은 진심으로—인간의 ‘권력’ 기반이 없이는 목회자로서 자기들의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인간의 ‘권력’ 기반”은 무너졌습니다. 1975년까지 “국가의 후원을 받는 가톨릭” 정부가 있었던 스페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본보기가 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스페인의 교직자들은 교회의 자금 조달 문제를 놓고 사회주의 정부와 지속적인 투쟁을 벌여 왔습니다. 스페인 테루엘의 주교는 최근에 자기 교구민들에게, 스페인 정부가 교회에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가톨릭교인으로서 박해를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1990년에 스페인 주교들은 “양심과 도덕의 심각한 위기”가 스페인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도덕의 위기’를 누구 탓으로 돌렸습니까? 주교들은 “공공 행정 기관[스페인 정부]이 빈번히 조장하는 애매 모호한 정신 태도”가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분명히, 그 주교들은 정부가 보조금을 제공해 줄 뿐 아니라 가톨릭의 이념도 장려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교직자들은 자기들이 설교하는 것을 실천하는가?

가톨릭 교회의 막대한 부는 가난한 교구에서 일하는 사제들에게는 언제나 당혹스러운 것입니다. 「타임」지가 “전후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최악의 재정 스캔들”이라고 부른 사건에 바티칸 은행이 연루된 것은 더욱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1987년, 이탈리아의 치안 판사들은 한 명의 대주교와 두 명의 바티칸 은행 중역을 체포하도록 영장을 발부하였습니다. 그러나 독립국으로서의 바티칸의 특별한 지위 때문에 그 고발된 교직자들은 구속을 면하였습니다. 바티칸 은행은 아무런 잘못도 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지만, 교회가 설교대로 실천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은 지우지 못하였습니다.—비교 마태 23:3.

널리 알려진 성적 비행은 한층 더 손상을 입혔습니다. 1992년 5월, 독신 생활을 지지한 일로 잘 알려진 아일랜드의 한 주교는 자기 교구민들에게 “자기를 용서”해 주고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주교는 17세 된 한 소년의 아버지로서 그의 교육비를 지불하기 위해 교회 기금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진 후, 사임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보다 한 달 전에는 한 가톨릭 사제가 독일 텔레비전 방송에 자기 “여자 친구”와 두 자녀를 데리고 출현하였습니다. 그는 매우 많은 사제들이 맺고 있는 내연 관계라는 문제를 놓고 “대화의 장을 열”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추문들은 어쩔 수 없이 오점을 남기게 마련입니다. 역사가 궤리는 「교회에 속한 이탈리아 사람들」(Gli italiani sotto la Chiesa)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교회는 여러 세기 동안 이탈리아 사람들을 분개시켜 왔다”고 주장합니다. “교권 반대 운동이 심지어 신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전개되는 것”이 그 한 가지 결과라고 그는 말합니다. 분개한 가톨릭교인들은 자기들의 교직자들에게 사도 바울이 로마 사람들에게 던진 것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 모릅니다. “예를 들면, 당신은 도둑질하지 말라고 전파하는데, 당신 자신은 분명히 정직합니까? 당신은 간음을 행하는 것을 공공연히 비난하는데, 당신 자신은 분명히 순결합니까?”—로마 2:21, 22, 「필립스역」.

교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크게 벌어진 틈

겉으로는 덜 드러나지만 아마 속으로 더 병들게 하는 문제는 교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크게 벌어진 틈일 것입니다. 주교들이 보낸 목회 서한들은 교구민들에게 교훈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스페인에서 실시한 한 조사에 의하면, 회견한 사람들 중 단지 28퍼센트만이 “주교들의 말에 동의”하였습니다. 같은 비율의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18퍼센트는 “주교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스페인 마호르카의 대주교 우베다는 다음과 같이 시인하였습니다. “비그리스도교화가 엄연한 현실로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 주교들 역시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뚜렷한 성경적 소식이 없는 것이 평신도들과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듭니다. 「가톨릭 헤럴드」지에 의하면, 교구민들 대부분은 사제들이 영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도, “[프랑스의] 많은 사제들은 ‘당면 문제에 관여’하기 위해 정치적인 행동을 취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탈리아의 사제이자 사회학자인 실바노 부르갈라시는 이렇게 시인합니다. “아마 그들[청소년들]이 하느님에게서 떠난 것은 우리들의 나쁜 본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타협, 종교와 사업, 이기심과 불순물 등이 ‘섞인 것’을 주었습니다.” 사제들의 사회적 지위가 실추되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가톨릭교인이지만 사제들을 믿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스페인의 가톨릭교인들로부터 흔히 듣는 표현입니다.

교직자들을 신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가톨릭교인들도 있지만, 교회의 교리—특히 비합리적이거나 비실용적이라고 생각되는 가르침들—에 심각한 의심을 품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교리들

두드러진 예는 지옥이라는 주제에 대한 가톨릭의 공식 가르침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서」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지옥의 존재와 그 영원성에 대하여 확언하는 바이다.” 그렇지만 최근에 행한 조사들에 따르면, 단지 프랑스 가톨릭교인의 4분의 1과 스페인 가톨릭교인의 3분의 1만이 지옥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덕 문제와 관련해서도 유럽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스웨덴의 십대 루터교인인 미미는 결혼 생활 밖에서 자녀를 갖는 것과 같은 도덕 문제들은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믿습니다. 프랑스의 가톨릭교인들의 견해도 대부분 미미의 생각과 같을 것입니다. 8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은 인생에 대한 중요한 결정에 직면하게 되면, 교회의 지침보다는 자기들의 양심을 지침으로 따를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교회의 권위가 과거에는 의견을 달리하는 어떤 목소리라도 잠잠케 하는 데 충분하였습니다. 바티칸의 관점으로 볼 때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교리 문답서」는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이미 언급한 모든 점은 궁극적으로 교회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고 단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접근 방식은 거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한 정치학과 교수인 안토니오 엘로르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권위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는 벽으로 둘러싸인 탑을 쌓고서 역사 앞에서 자기네 전통의 정당성을 보호하려 하고 있습니다.” “벽으로 둘러싸인 탑” 바깥에서는 교회의 영향력과 권위가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영적인 타락과는 별도로, 종교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으로 사회적 원인들이 있습니다. 소비지향적인 사회는 연예와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즐기려는 욕구와 충족시킬 수단이 있습니다. 그에 비해 교회에 가는 것은 일요일 아침을 지루하게 보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예배는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거의 채워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종교가 유럽의 양 무리를 다시 다스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종교는 한물 간 세력이며, 공룡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까?

[각주]

a 「가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서」는 초판이 1992년에 발행되었는데, 전세계 가톨릭교인을 위한 공식 교리서로 만들어진 것이다. 서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문답서를 가리켜 “가톨릭 교리를 가르칠 때 참고할 수 있는 확실하고 믿을 만한 전거”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톨릭 교리 문답서가 이전에 마지막으로 발행된 때는 1566년이었다.

[6면 삽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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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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