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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8 12/8 12-13면

비밀 기록이 공개되다

「깨어라!」 이탈리아 통신원

“종교 재판 기록이 공개되다.” 1965년까지는 검사성성(檢邪聖省)으로 알려져 있던 신앙교리성성의 기록을 학자들이 볼 수 있도록 교황청이 허락한 사실을 보도 매체에서는 그런 식으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한 조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0년이 되기 전에 끝마치고 싶어하는, 잘 조직된 장기간의 역사 바로잡기 과정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그 보도에서는 언급하였습니다.a 그 기록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기록에 어떤 비밀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검사성성은 교황 파울루스 3세에 의해 1542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이단”을 탄압하기 위한 이 교황 직속 기관은, 1478년에 시작된 스페인 종교 재판소와 구별하기 위해 로마 종교 재판소라고도 불렸습니다.b 1542년에 이 추기경들의 모임이 설립된 것은 “그리스도교국 전역에서 발생하는 이단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 분야의 권위자인 아드리아노 프로스페리는 설명합니다. 16세기에 운영되었던 종교 재판소들 가운데 로마 종교 재판소만이, 비록 이름과 임무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운영되고 있습니다.

종교 재판 기록은 모아졌습니다. 마침내 이 기록들이 쌓여 검사성성의 비밀 기록이 되었습니다. 1559년에 그 기록은, 로마 종교 재판소의 주된 옹호자로 여겨지던 교황 파울루스 4세의 사망을 “기념”하여 반란을 일으킨 일부 로마 시민들에 의해 약탈을 당하였습니다. 1810년, 나폴레옹 1세는 로마를 정복한 다음 그 기록을 파리로 옮겼습니다. 그 때에 그리고 그 후에 교황에게 그 기록이 반환되는 과정에서 많은 자료가 분실되거나 파기되었습니다.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가?

이 기록을 이루는 4300개 이상의 문서들은 성 베드로 대성당 가까이 있는 두 개의 방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교황청 직속 기관의 책임자인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의 말에 따르면, 이 기록에 들어 있는 내용은 역사적인 문제들과는 직접 관련이 없고 “주로 신학적 성격을 띤”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이 기록이 많은 점을 밝혀 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합니다. 프로스페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그 기록 가운데 로마 종교 재판소 모임의 의사록은 있지만 “재판에 제출된 서류, 재판 기록, 그리고 거의 모든 재판 절차 기록이 빠져 있습니다. 대부분은 1815년에서 1817년 사이에 몬시뇨르 마리노 마리니의 명령에 따라 파리에서 파기되었는데, 그는 나폴레옹이 가져간 그 문서들을 되찾기 위해 로마로부터 파견된 사람입니다.”

교황청에서는 레오 13세가 사망한 때인 1903년 7월 이전에 모아진 문서들을 학자들이 볼 수 있게 허락하였습니다. 문서들을 보려면, 조사가들은 종교계나 학계의 권위자로부터 받은 소개장을 제출해야 합니다.

비난

기록이 공개되었다는 소식에 대체적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단지 1903년 이전의 문서만 볼 수 있게 한 이유에 대해 숙고해 보면서,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 큉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교황 자리에 막 오른 교황 피우스 10세가, 모든 계열의 신학자들을 피해자로 만들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독일의 주교들에게 곤란을 겪게 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서 멀어지게 한, 반(反)근대주의자 운동을 시작한 해가 1903년이니, 바로 그 해야말로 이 기록이 더 흥미진진해지는 해가 아니겠는가?”

법사학자(法史學者)인 이탈로 메레우가 보기에는, 이름을 바꾸고 기록을 공개하였어도 “[신앙교리성성]에서는 과거의 종교 재판소에서 했던 일과 동일한 일을 과거의 방법으로 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란, 이를테면, 조사를 받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문서를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알려지지 않을 비밀이 없다’

일반적으로 역사가들은 “종교 재판 기록”에서 뜻밖의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가톨릭 교회가 여론의 심판에 따라야겠다고 느낀 것은 의미 심장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견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정하신 때가 되면, 여러 세기 동안 잔학한 종교 재판들을 행하여 하느님의 계명을 범하고 예수의 가르침의 정신을 어기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한 종교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 종교 재판들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단지 그 교회의 교리나 관행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끔찍스럽게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마태 26:52; 요한 14:15; 로마 14:12.

학자들이 아무리 깊이 그 기록을 분석하더라도, 그 분석은 항상 완벽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하느님]이 보시는 데 나타나지 않는 창조물이 없고, 모든 것이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숨김없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히브리 4:13) 그러한 이유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반대하는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덮여 가려진 것치고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비밀치고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마태 10:26.

[각주]

a 「파수대」 1998년 3월 1일호 3-7면 참조.

b 이 두 기관은 사용한 방법과 결과는 별로 다르지 않지만, 1231년에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시작된 중세 종교 재판소와 관련하여 보면 새로운 것이었다.

[12면 사진 자료 제공]

이탈리아 로마의 검사성성 공관

그림: From the book Bildersaal deutscher Geschich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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