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떻게 행하는가를 자세히 살펴봄
너희가 어떻게 행할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 5:15, 16.
1.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큰 관심사가 되는 것은 무엇이며 그렇게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왕국이 통치한다는 사실이 왜 중요합니까?
오늘날 우리가 어느 곳에 살고 있든지 우리가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 보는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인 것입니다. 즉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하는가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 되는 것이 한가지 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이 지금 통치하고 있고 1914년 이래 지난 46년동안 통치하여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이 왜 그와같이 중요합니까? 그 이유는 이 천국의 중요한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또한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6:9, 10) 오늘날의 이 악한 낡은 세상은 역사상 보지 못했던 가장 큰 환란으로 그의 종말을 갖게될 때로 급속도로 가까와 가고 있읍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결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 일을 한 일이 없으며 그것을 반대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그의 뜻을 수행할 정부입니다. 그의 왕국은 하나님의 나타나신 뜻이 법률이 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베드로 후 3:13)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이 놀라운 변화를 피할수는 없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대하여 온 마음을 다한 충성을 바치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렇게 하는것은 이낡은 세상이 종말될때에 우리도 소멸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충성이란 우리 자신이 그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계적 고난에 있어서 우리에 대한 그의 의로운 뜻이 어떠한 것인가는 그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 나타나 있읍니다.
2. 우리는 오늘날을 어떠한 때라고 말할수 있으며, 그러므로 「바울」의 어떠한 충고가 오늘날 우리에게 적합합니까?
2 이 세상 종교나 도덕적 상태 그리고 나라들 사이의 관계나 개인들 사이의 관계를 살펴 볼 때 우리는 지금이 악한 날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그 당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다음과같은 충고는 또한 우리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적합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읍니다.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그리스도인 들이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회중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당할수 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에베소 5:15-18; 고린도 후 5:9-13.
3. (ㄱ)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기 전에 우리는 어떻게 행하였읍니까? (ㄴ) 우리가 헌신한 후에 어떻게 걸어가지 않으면 안되며, 이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점을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까?
3 오늘날 전 세계에는 오십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들을 바쳤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받으신것과 같이 물의 침례로써 그들의 헌신을 대중에게 상징하여 보였읍니다. (마태 3:13-17, 28:18-20)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기 이전에는 우리는 모두 어떠한 길인가를 걸어 왔었읍니다. 우리는 『이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에 권세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사단」마귀)이라.』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 . .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지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자가 되어 다시는 방탕에 방림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육신으로 행하되,』 (에베소 2:2; 4:17-19) 지금 하나님께 헌신한 우리는 그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을 중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함으로써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것을 결심하였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창세 5:22-24; 6:9) 오늘날은 매우 악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행하는가를 자세히 살피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일이며 긴급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볼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이 세상의 길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또는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밀접하게 행하고 있는가? 우리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4. 데살로니가 전 4:3-5, 7은 하나님의 뜻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그러므로 여호와는 「푸리아퍼스」신이나 「바알브올」신과 어떻게 다릅니까?
4 그의 말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의 뜻에 관한 간단한 말씀을 볼 수 있읍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그릇 취할 즐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 .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오 거룩하게 하심이니』라. (데살로니가 전 4:3-5, 7) 『자기의 그릇』이란 자기 자신의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바쳤을 때 우리는 우리의 그릇 즉 우리 자신의 몸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여호와는 희랍이나 「로마」 신화에 나오는 거짓 신인 「푸리아퍼스」와 같이 성적 신도 아니시며, 거짓신인 「바알브올」과 같이 음행으로써 숭배를 받는 분도 아니십니다.—민수 25:1-13.
5. 그의 조직에 대한 하나님의 어떠한 뜻이 그의 성원들에게 어려운 문제를 제공해 주며 그들은 어떻게 도움을 받습니까?
5 우리 헌신한 사람들은 함께 모여 신권조직을 형성하였읍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가 깨끗한 조직 즉 영광스러운 방법으로 사용하기 위한 성스러운 조직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부도덕하고 음란한 세상 가운데서 이와 같이 악한 때에 신권조직을 깨끗하게 보존하는 것은 그 조직의 땅의 성원인 우리로서는 매우 어려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를 돕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6. 이점에 있어서 특별한 책임이 누구에게 놓여져 있으며, 그들로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회복의 약속을 성취시키셨읍니까?
6 물론 헌신한 각자에게는 조직을 깨끗이 보존하고 여호와께 거룩하게 사용되기 위한 개인적인 책임이 놓여져 있읍니다. 그러나 조직안에서 감독자로 임명된 자들 위에는 특별한 책임이 놓여져 있읍니다. 특히 1919년 봄 이래 우리는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만물이 회복되는 때』에 살고 있읍니다. (사도 3:21, 신세) 19세기 전인 그리스도인 회중의 초기 즉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살아 있었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의 심판을 선언하고 그의 충고를 줄 수 있는 충실한 감독자들을 일으키셨읍니다. 사도의 믿음으로부터 『떠러져 나가는』 일이 있은 후에 이 충실한 감독자들의 시대는 지나갔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회복되는 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셨읍니다. 『내가 너희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희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이사야 1:26) 오늘날 여호와께서 임명하신 사사와 위대한 모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우신 양심적인 감독자들로서 그는 약속하신 회복을 성취시키고 그의 조직을 깨끗하고 의롭고 충실하게 보존하십니다.—사도 17:31; 이사야 9:6.
7. 감독자들은 어떠한 책임에 대하여 회계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그들 자신의 행함을 자세히 살펴야 합니까?
7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의 신세계 사회의 감독자들은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들은 『양떼의 본』으로서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올바른 본으로서의 영향력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이 봉사하고 있는 회중 조직에 있어서 혹은 순회구나 지역이나 지부구역이나 또는 지구에 있어서 심중한 권위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감독자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의 생명 즉 영혼들을 다루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합니다. (베드로 전 5:3; 히브리 13:17) 그들이 이들 헌신한 영혼들에 대하여 어떠한 회계(會計)를 한는것 같이 하느냐에 따라 감독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할 것인가가 결정될 것입니다. 만일 누가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감독자들은 그들 직책에 있어서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를 누구보다도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떻게 행하는가의 본
8, 9. (ㄱ) 의로운 조직을 위한 선한 감독자들의 힘이 「여호수아」와 그와 연합한자들에 의하여 어떻게 본이 보여졌읍니까? (ㄴ) 이러한 감독자들이 죽은후에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일어난 사건은 어떻게 이 사실을 명백히 해줍니까?
8 충실하고 의로운 조직을 위하여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강한 감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은 「모세」의 후계자였던 「여호수아」와 그리고 「여호수아」와 연합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장로들에 의하여 본이 보여졌읍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좋은 영향력에 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볼 수 있읍니다.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9 관찰력이 강하고 지식이 있는 「이스라엘」의 충성스러운 장로들은 여호와의 백성들의 회중을 침략하는 이방인들에 대하여 신권적 방파제가 되었었읍니다. 이 사실은 이들 신권적 감독자들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회중에게 일어났던 사건이 명백히 증명해 줍니다. 여호와와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가 생겼을 때에 그들은 이러한 감독자들의 도움이 되는 본이나 충고나 돌봄을 받지 못하였읍니다. 성경기록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이방의 압제자들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신 경건한 사사들을 일으키신 후에 그들은 사사들이 여호와의 종으로서 그들을 위하여 어떻게 하였는가를 즉시 잊어버렸읍니다.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도리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 열조의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사사 2:6-8, 10-12, 17.
10.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그 당시의 감독자로서 어떠한 것에 대한 방파제가 되었었읍니까?
10 예수 그리스도의 열 두 사도들도 옛날의 충성스러운 사사들과 그들과 연합하고 있던 감독자들과 같이 방파제가 되었었읍니다. 사도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들은 회중의 떨어져 나가』는 자들과 『불법의 사람』들과 『멸망의 자식』이 나타나는 것을 막는 힘이 되어 회중을 관리하였던 것입니다.—데살로니가 후 2:2-12.
11, 12. (ㄱ) 사도들이 죽은 후에 종교적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났으며 어떠한 사실이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회복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읍니까? (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각자는 그들이 행하는 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읍니까?
11 열 두 사도들과 그들의 충실한 동료 감독자들이 죽은 후에 순수한 기독교 신앙과 행함으로부터 『떠러져 나가는』 일이 급속도로 일어났으며 『불법의 사람』의 반렬이 종교조직을 관리하게 되었읍니다. 우리는 오늘날 이 종교적으로 『떠러져 나가는』 일과 기독교국의 『불법의 사람』에 의한 관리로부터 회복되었읍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의 신세계사회로 신권적인 조직을 갖게 되었읍니다. 우리가운데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질서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하여 더 큰 「여호수아」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않게 같이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또한 더 크신 「여호수아」가 1919년에 땅에 속해 있는 모든것을 맡기신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의 반렬이 같이하고 있읍니다.
12 더 크신 「여호수아」와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종의 반렬들은 배교의 정신과 여호와의 증인의 신세계 사회에 대항하는 『불법의 사람』들에 의한 어떠한 방해도 튼튼히 막는 역할을 하고 있읍니다. (베드로 후 3:13; 이사야 65:17; 마태 24:45-47)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어떻게 행하는가를 주의하라는 사도 「바울」의 충고를 들을 필요가 있읍니다. 이 세상과 그의 신이며 통치자인 「사단」마귀가 여호와의 증인의 전 회중을 포로로 할 수는 없지만, 이 세상과 그의 신인 「사단」은 조직을 부패케 하고 될수 있는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포로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지어 그들 가운데 선지자 「모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않게 임재해 계신 오늘날 조직안에 있는 각 개인이 그들과 같은 멸망에 이를수 있다는 경고를 우리에게 주고 있읍니다. 그 경고는 어떠한 것이겠읍니까?
13. 「모세」가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떠한 행동이 우리를 경고해 주는 예가 됩니까?
13 때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라비야」 반도에 있는 「시내」산 꼭대기에서 기적적으로 십계명을 선포하신 직후였읍니다. 「모세」가 아직도 그들로부터 멀리 떠러져 있지 않은 「시내」산 꼭대기에 40일 동안 있으면서 그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동안 「이스라엘」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소란한 행동으로 그것을 숭배하였읍니다. 이제 「이스라엘」백성들이 지키겠다고 서약한 십계명의 제일조 제이조와 제 칠조의 계명이 선포되었읍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 . . 간음하지 말지니라.』 (출애굽 20:2-5, 1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중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민족적 감독자인 「모세」가 그들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자 그들은 즉시 한계를 벗어나 버렸읍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산에 오른후 사십일 밖에 되지 않은 동안 「이스라엘」 백성 중의 많은 사람들은 이미 십계명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와 음란한 행동으로써 난폭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읍니다.—출애굽 32:1-35.
14. 「모압」 광야에 진치고 있었을 때 「이스라엘」백성이 행한 어떠한 예가 우리에게 경고가 됩니까?
14 사십년 후에 그들이 막 「모압」 광야에 있는 「가나안」으로부터 「요단」 강을 건느자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여호와의 약속이 기적적으로 성취하였음을 인정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의 새로운 세대들은 「모압」 사람들의 이방인의 딸들을 바라보는 길을 선택하였읍니다. 그들과의 이 부도덕적인 관계를 맺음으로 인하여 이들 이기적 마음을 가진 「이스라엘」백성들은 마귀의 종들인 이 유혹적인 여인들과 그들의 거짓 신인 「바알브올」을 숭배하는데 가담하였읍니다. 「이스라엘」의 족장 「시므리」는 뻔뻔스럽게도 「미디안」의 여인 「고스비」를 「이스라엘」의 거룩한 천막과 그의 천막으로 데리고 왔읍니다. 다만 제사장 「비느하스」가 「시므리」와 「고스비」를 죽이는 충성심있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이만 사천명의 「이스라엘」사람들을 죽이게 한 염병을 그치게 할 수 있었읍니다. (민수 25:1-9) 「모세」가 그 때에 아직도 살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상관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성스러움을 잊어 버렸읍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의로운 계명을 잊어버리고 이방 여인들과 부도덕적인 관계를 갖게하는 감정을 억제하지 않았읍니다. 그것은 거짓신인 「바알브올」을 숭배하는것이며 참다운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진노케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15. 사도는 그러한 경고가 되는 실례를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시키고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실례는 어떠한 사실을 명백히 하여 줍니까?
15 그리스도인의 사도 「바울」은 성스러운 것으로부터 떠러져 나간 이러한 역사적인 실례가 우리에게 경고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하는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함이니, 저희중에 어떤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중에 어떤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같이 간음하지 말자.』 (고린도 전 10:6-8) 만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여호와께 헌신한 자가 그의 마음을 악한 길로 가게한다면 그는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그의 욕망을 만족시키게 하려고 할 것이며 그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오게 될 것입니다. 멸망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좋은 실례는 이 사실을 명백히 하여주는 것입니다.
16. 우리의 소망이 실현될 때가 매우 가까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헌신한 자들은 어떠한 행동을 하며, 그러한 행동을 할때에 그들이 기억하지 않고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6 그러므로 오늘날 어떠한 헌신한 사람들은 우리의 왕국의 소망이 실현되는 날이 얼마나 가까왔는가 하는 문제는 상관도 하지 않고, 그들이 성경대로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가를 살피는 것을 게을리 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육체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이 세상의 더러운 것을 끌어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를 항상 지침서와 대조해 보지 않습니다. 그와같은 행동은 다만 그들 자신의 멸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대한 모욕과 그의 보이는 조직에 대한 모독을 가져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회중의 감독의 직접적인 감시와 감찰을 받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이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에 주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천사들이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리고 있으며, 그들은 그들이 지은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고 있읍니다.—민수 32:23.
17. 우리는 항상 누구 앞에서 행하는 것과 같이 행동하여야 하며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어떠한 건설적이고 결정적인 길을 걸어야 합니까?
17 우리는 항상 다만 우리의 지적 감독자인 인간 앞에서 행하는 것과 같이 행동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행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의 눈은 어느곳이나 보실 수 있으며 악한 자들과 선한자들을 감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15:3)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 12:14) 우리는 마치 시편 기자의 다음과 같은 말과 같이 건설적이고 결정적인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며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이말씀대로 행하기 위하여 항상 무엇을하든지 무엇을 말하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적 장로들이나 또는 우리의 회중의 종 즉 감독자들이 직접적으로 우리들을 감시하든지 아니하든지 마찬가지입니다.
18. 우리는 왜 결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지나친 신뢰를 할 수 없으며, 우리는 어떠한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여야 합니까?
18 우리는 결코 「아마겟돈」 직후에 있을 『새 하늘과 새땅』의 새로운 질서에 너무 가까히 와있다거가 또는 우리가 성경 진리에 충분히 오랜 기간 있었고 충분한 유혹을 당해 본일이 있으므로 우리가 행하는 것을 살피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코 떠러져나갈 위험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읍니다. 사도 「바울」은 「애굽」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에서 멸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읍니다. 그러나 이들 중의 어떠한 자들은 사십년째 되는 마지막 해에 멸망되었읍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너머질가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하는 것이 없나니,』 사람들은 사실상 이러한 시험에서 떨어졌읍니다. (고린도 전 10:11-13) 진리안에 있는 젊은 이로부터 늙은 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회중의 보통 성원으로부터 감독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을 신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가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를 주의함으로써 불행하게 너머지는 일이 없게 하여야 할것입니다. 여호와의 회중으로부터 제명처분을 당함으로 영원한 멸망의 고통을 당하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고린도 전 5:9-13.
악한 도덕으로 인한 전도인의 파멸
19. 미국의 회중 범죄자들의 어떠한 증가율이 살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줍니까?
19 미국 「부룩크린」에 있는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본부 봉사부에 나타난 통계를 보면 끊임 없이 조심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읍니다. 이통계는 미국에 있는 수천 개의 회중에 속하여 있는 헌신한 침례받은 성원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1952년 3월부터 1957년 4월에 이르기까지 5년동안 매년 평균 500명의 성원이 여호와의 조직안에서 관용할 수 없는 악행으로 인하여 제명 처분을 당하였읍니다. 그러나 1957년 4월부터 1958년 4월에 이르기 까지에는 그수가 매년평균 500명으로부터 1,334명의 범죄자가 있게 됨으로, 그 수는 놀랍게 뛰어 올랐읍니다. 이것은 2배 반 이상의 상승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미국에 있는 회중에서 같은 12개월 동안에 적어도 18,537명의 새로운 사람들이 증거 활동에 참여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리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로써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하여 방관적이 될수 없읍니다. 이 새로운 사람들의 수는 1958년 4월에 미국에서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을 선포한 226,797명의 12분의 1에 불과하며 그들중 헌신하고 침례를 받은 전도인들은 약 65「퍼센트」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147,000명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전도인들 중에서 1,334명의 범죄자의 수야 불과 얼마나 되는 것입니까? 그것이 1「퍼센트」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20. 그수가 다만 1 「퍼센트」에 불과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에게 어떠한 무서운 경고가 되는 것입니까?
20 1,334명이단지 1「퍼센트」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이숫자의 급작스러운 증가는 확실히 지난 해보다 두배나 되는 사람들이 1957-1958년의 이악한 때에 자신들을 조심하고 지혜롭게 걸어 가는 일에 실패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약 3,718개의 회중이 운영되고 있읍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셋중의 한 회중이 이들 제명 처분을 당한 1,334명의 영향을 받게 되었읍니다. 그렇게 많은 회중이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과 제명 처분을 받은 자의 수가 1957-1958년 사이에 배로 증가하였다는사실은 우리에게 무서운 경고가되는 것으로서 지금으로부터 우리가 그와같이 떠러져나가는 자의 한사람이 되지않도록 경계할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21. 우리는 어떻게 깨끗하고 흠이 없는 숭배를 하는데에 야고보 4:4을 잘못 적용시킬수 있으며, 어떠한 죄를 저지를 수 있읍니까?
21 여호와의 증인의 신세계 사회는 깨끗하고 더럽혀 지지 않은 숭배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제자였던 「야고보」는 이점을 우리에게 명백히 알려 주었읍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숭배의 형식은 이것이다. 곧 고아와 과부를 그들의 환난에서 돌보고 자신을 이 세상으로부터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간통하는 여인들아, 너희는 이 세상과 벗이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세상과 벗이 되고자 원하는 자는 자신을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야고보 1:27; 4:4; 신세) 만일 누가 이 세상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이 세상 다툼에서 중립을 지킴으로 자신을 이 세상으로부터 흠도 없이 지킬 수 있고 그럼으로써 그가 이 세상 벗이나 영적 음행자가 되지 않을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동시에 육체적 간통 혹은 간음을 행함으로써 자신의육체에 대하여 범죄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22. 어떠한 사람이 마태 24:14의 예언을 성취하는 일에 참여하고도 어떻게 「발람」과 같이 잘못하여 죄에 빠질 수 있읍니까?
22 또한 어떠한 사람이 다만 마태 24:14의 예언적인 계명을 성취시키고 야외 봉사에서 증거한 많은 시간을 보고하면 그는 이성간의 어떠한 부도덕적인 행동을 하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선지자 「발람」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을 예언하도록 대변자로 사용하신 자였읍니다. 그러나 후에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있는 동안의 마지막 때에 성숭배와 부도덕적인 행위를 왕성하게 하였음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민수 23:4–24:25; 25:1-3; 31:1-8, 15, 16; 계시록 2:14.
23. 「바울」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요구 조건이 전도하는 것과 똑 같이 중요한 것임을 알려 주었읍니까?
23 하나님의 왕국을 증거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위한 개인적인 요구 조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도덕도 또한 똑같은 요구 조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외쳤읍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으리로다!』 그는 몇줄안가서 이렇게 부언하였읍니다. 『내가 내몸을 쳐 복종하게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후에 자가가 도리어 버림이될가 두려워함이로다 . . . 저희 중의 어떤이들 (이스라엘 백성)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같이 간음하지말자.』—고린도 전 9:16, 27; 10:8.
24. 육체적인 부도덕한 행동을 범하는 것은 자신을 누구의 벗이 되게 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또한 어떠한 종류의 부도덕한 행동이 되는 것입니까?
24 아무도 자신을 속이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요. 간통 혹은 간음을 행하는것은 자신을 이 세상과 벗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간통 혹은 간음을 행하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그와 같은 행위가 자신을 하나님과 벗이 되게 하거나 그의 회중의 벗이 되게 하지 못하는 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는 이 세상을 본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행동은 이 세상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행위는 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 (여호와)를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한 1서 2:16) 그러므로 부도덕한 행동은 간음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 속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호와의 증인의 신세계 사회에 적합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25. 어떠한 두 가지 준엄한 행동으로써 여호와께서는 회중에서 그와 같이 부도덕한 행위를 한 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함을 보이셨읍니까?
25 여호와께서는 그의회중으로부터 23,000명의 간음을 행한 자를 일년이 아니라 하루 사이에 끊어 버리셨읍니다. 간음을 행하는 자들은 그의 회중으로부터 제명처분을 받지않으면 안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심지어 「실로」근처에서 있었던 싸움에서 대 제사장 「엘리」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두 제사장을 끊으셨읍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회막문에서 봉사하는 여인과 악하게도 간통을 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입니다.—사무엘 상 2:12, 22-25; 3:13, 14; 4:4-11, 17.
26. (ㄱ) 「바울」은 제명 처분을 받을 만한 다른 죄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그의 잘못을 깨달은 사람의 마음 상태는 어떠하여야 하며 그는 어떠한 절차를 밟아야 합니까?
26 제명 처분에 해당하는 죄로서 간음 외에도 다른 죄가 있읍니다. 「바울」은 회중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취하거나 토색하거던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 . . 이 악한 사람은 너희중에서 내어 쫓으라.』 (고린도 전 5:11, 13) 만일 어떠한 사람이 제명 처분을 당할 만 한 죄를 범하였으나 그의 잘못을 깊이 깨닫고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였는가를 알게 되면 그의 마음 상태는 어떠하여야 하겠읍니까? 그는 슬퍼하고 한없이 괴로워하며 회개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는 그의 죄를 다만 이미 보셔서 알고 계신 하나님께 고백할 뿐만 아니라, 또한 신권적으로 임명된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이는 조직에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때는 바로 자비를 호소함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 화목을 요청할 매우 심중한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와 일치하게 다음과 같이 교훈하고 있읍니다. 『너희중에 (영적으로)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야고보 5:14-16) 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는 태도와 영적 도움의 필요성을 고백하는 것은 죄를 범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가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를 살피는데 있어서 크나큰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