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간 제25부—“당신의 뜻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이다”
그리스도전 6세기와 5세기 그리고 4세기를 거쳐 광대한 제국을 이루었던 「바사」의 왕 「고래스」 3년에 여호와의 선지자 「다니엘」은 천사를 통하여 그의 마지막 환상을 보고 우리를 위하여 그의 예언서 11장 12장에 기록하였다. 먼저 그 예언적 환상은 성경 역사에서 넷째 세계 강국인 「바사」 제국의 경과를 예언하였다. 그리고 희랍을 정복 하지 못하고 「바사」는 드디어 희랍에게 정복될 것을 예언하였다. 천사의 말은 이러하다. 『장차 한 능력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리라.』 (다니엘 11:3) 그 희랍의 왕은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으로 나타나게되었다. 그로 인하여 희랍제국이 건설되었다. 그 나라는 성경역사상 다섯째 세계 강국으로 등장하였다.
12. 「알렉산더」는 얼마 동안 세계 지배권을 잡았었는가? 그의 나라는 어떻게 갈라지고 말았는가?
12 「알렉산던」가 세계의 지배권을 잡은 것은 짧은 기간이었다. 여호와의 천사는 이것을 예언하였다.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이 외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니라.』 (다니엘 11:4) 「알렉산더」가 33세 때 그의 전성시대가 왔다. 「바벨론」에서 연회를 하고 있던 「알렉산더」는 갑자기 「말라리아」 열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그 때는 주전 323년이었다. 그리하여 성경적으로 망하게 되어 있는 이 도시를 자기 수도로 만들려고 한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구라파」와 소「아시아」 그리고 중동 「아시아」와 「애굽」에 걸쳐 있던 그의 방대한 나라는 천하 사방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의 시체는 「애굽」으로 가져다가 「애굽」의 총독인 「프돌레미」장군으로 말미암아 「알렉산드리아」에서 매장되었다.
13. 그 나라가 「알렉산더」의 후손들에게 나뉘어질 수 없다는 천사의 예언이 어떻게 참되게 입증되었는가?
13 그 제국은 「알렉산더」의 후손에 넘겨 주지 못하였다. 그는 「마게도냐」에다 무능한 동생 「빌립 · 아리대우스」를 남겨두었다. 그는 7년 못되게 통치하였으나 주전 317년에 그의 친어머니에게 살해되었다. 「록크사나」를 통하여 난 「알렉산더」의 적자 「알렉산더 · 알로우」는 그의 뒤를 따라 약 6년 동안 통치하였다. 주전 311년에 그의 아버지의 장군이었던 「가산더」의 손에 의하여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그리고 「가산더」는 「마게도냐」와 희랍의 왕위를 강탈하였다. 「알렉산더」의 서자인 「헤라클레스」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통치하였으나 주전 309년에 살해되었다. 그가 죽으므로써 「알렉산더」의 혈통은 끊어지고 말았다. 그의 집에서 통치가 떠남으로써 천사의 예언은 참으로 입증되었다.
14. 「알렉산더」의 나라는 한때 어떻게 『천하 사방』으로 갈라졌다가 후에 다시 세나라가 되었는가?
14 「알렉산더」가 세운 제국은 그의 후손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그의 장군들은 서로 다투어 영토를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나라는 『천하 사방에』라는 예언대로 네개로 갈라졌다. 애꾸눈인 「안티고누스」장군은 자기 자신을 온 「아시아」의 주인으로 세워 「알렉산더」대왕의 후계자라고 주장하여 드디어 왕이라고 하였다. 그는 「가산더」 「실루커스」 그리고 「리시마거스」와 같은 그의 세 동려 장군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주전 301년에 소「아시아」의 「프리기아」 지방 「이프수스」에서 그들과 싸웠으나 패배되고 말았다. 나타난 네개의 희랍 제국은 다음과 같다. 「마게도냐」와 희랍을 차지한 「가산더」장군의 제국 「비산티움」을 포함한 소「아시아」와 「구라파 드레이스」를 차지한 「리시마거스」 장군의 제국 (3) 「바벨론」 「메디아」 「씨리아」 「바사」 그리고 「인두스」강의 동쪽 도를 차지한 「실루커스 · 니가도」(정복자)의 제국 「애굽」 「리비아」 「아라비아」 「팔레스티나」 그리고 「꾈레 · 씨리아」를 차지한 「프돌레미 · 라구스」장군의 제국이었다. 수년 있다가 「가산더」장군의 후사가 끊어졌다. 그리고 주전 285년에 「리시마거스」 장군은 「마게도냐」 제국의 「구라파」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주전 277년에 애꾸눈 「안티고누스」 장군의 손자인 「안티고누스 · 고나다스」는 「마게도냐」의 왕위를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마게도냐」가 주전 168년에 「로마」에 예속되어 주전 146년에 「로마」의 도로서 끝날때까지 희랍의 제국은 세개가 되었었다.
15. 정복자 「실루거스」는 어떻게 「아시아」지역의 주인이 되었으며 그가 세운 어떠한 도시에 사도들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는가?
15 주전 281년에 「리시마거스」 장군은 「실루거스 · 니가도」 장군과 싸워서 패배됨으로 「아시아」지역은 사실상 「실루거스」가 주인 노릇을 하게되었다. 「실루거스」는 「실루기대」 혹은 「시리아」의 「실루기드」 왕조를 세운 사람이다. 「이프수스」의 결정적 전쟁후 곧 그는 「시리아」에다 「안디옥」시를 세웠다. 「안디옥」시는 그의 아버지 「안디옥쿠스」의 이름을 본딴 것이다. 그는 해변 도시를 하나 세웠는데 그의 이름을 본따서 「실루기아」라고 하였다. 수세기 후에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은 항구 도시 「실루기아」라는 말을 사용하였으며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르쳐 주었다. 거기서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사도 11:25-27; 13:1-4.
16. 「실루거스」는 그의 수도를 어디로 옮겼는가? 그리고 그로부터 시작된 오랜 전쟁은 그의 마지막 환상에서와 같이 얼마나 오랜 전쟁이 시작 되었는가?
16 「실루거스」는 그의 정부의 자리를 「바벨론」으로 부터 그의 새로운 「시리아」의 수도인 「안디옥」으로 옮겼다. 그는 주전 280년에 암살되었다. 「실루기드」 왕조는 「실루거스」를 이어 주전 64년까지 계속되었다. 그 해는 바로 「로마」의 장군 「봄베이」가 「시리아」를 「로마」의 도로 만든 때었다. 「실루거스」는 그가 죽기 오래전에 그의 아들 「안디오거스」 1세에게 왕의 칭호와 더불어 「유브라데」강 건너편 모든 나라에대한 지배권을 주었다. 성경에 나타난 『북방 왕』과 『남방 왕』의 오랜 전쟁은 「실루거스 니가도」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앞을 내다본 여호와의 천사는 『북방 왕』과 『남방 왕』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두 왕』의 국적과 정치적 체제가 시시로 변동하여 수 세기를 내려왔으며 심지어는 오늘날 20세기에 있어서도 우리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a「두로」왕의 흉망
17. 무엇을 기준으로 남방 왕과 북방 왕으로 갈라 놓았는가?
17 지금부터 여호와의 천사는 기다란 전쟁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君)들 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다니엘 11:5)이 『남방 왕』은 무엇의 남쪽이며 『북방 왕』은 무엇의 북쪽인가? 그들은 「다니엘」 백성의 남쪽과 북쪽이었다.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볼 때는 「다니엘」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유다」 땅에 돌아와 있을때었다.
18. 다니엘 11:5에 말한 『남방 왕』은 누구를 지적한 것인가? 그리고 그는 어떠한 왕조를 세웠는가?
18 다니엘 11:5에 말한 『남방 왕』은 누구를 지적하여 말하였는가? 그는 군(君)들 중의 하나다. 즉 「알렉산더」대왕의 군대 장군들의 하나인 「라구스」의 아들 「프돌레미」 1세다. 그는 사실상 「알렉산더」의 팔명의 호위병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애굽」의 총독이 되었으나 주전 306년에 왕의 칭호를 붙였던것이다. 그는 애꾸눈 「안디고누스」 장군의 본을받았다. 그는 「마게도냐」 왕조로서 「애굽」의 「바로」 들이된 13 혹은 14 왕중의 처음 왕이었다. 그는 자기 이름을 따서 「애굽」을 통치한 「프돌레미」왕조를 세웠다. 주전 약 312년 안식일에 그는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그는 「유대」인들을 설복시켜 식민지인으로 남쪽인 「애굽」으로 오게하였으며 그들로 「알렉산드리아」에다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그는 또 그의 아들과 후계자들로 「알렉산드리아」에다 유명한 도서관과 박물관을 세우게 하였다. 「유다」의 「유대」인 지역은 「애굽」의 「프돌레미」 혹은 『남방왕』의 통치 밑에 있었는데 주전 198년에 『북방 왕』이 그 곳을 정복하였다. 「프돌레미」 1세는 「실루거스」왕이 지배하는 「시리아」 지역을 여러번 침공하였었다.
19.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게』된 군(君)은 누구였는가? 그리고 그와 그의 후계자들의 역할은 무엇이 었는가?
19 천사가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라고 한 「알렉산더」의 군대 장군 중의 다른 하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누구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었는가? 이는 바로「실루거스 니가도」였다. 그는 『북방 왕』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안디오거스」1세(구원자)가 그의 뒤를 이었다. 이 왕은 천사의 예언 가운데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남방 왕』과 싸운것이 아니라 소 「아시아」에 있는 「갈라디아」 인들과 싸우다 죽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안디오거스」2세가 뒤를 이었다. 그는 자기를 데오스 즉 『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는 「라오디스」라는 여인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서 난 아들을 그의 조부 「실루거스」의 이름을 따라 「실루거스」라고 하였다.
20. 맹약에 의하면 남방왕의 딸은 무엇을 하게되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20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천사는 이같이 말한다.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맹약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나아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이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이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 (다니엘 11:6) 그러면 여기 말한 『남방 왕』의 딸은 누구였는가? 그는 「애굽」의 왕 「프돌레미」 2세 (빌라델부스)의 딸 「베레니스」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 「애굽」왕은 자기 신하인 「유대」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을 「희랍」어로 번역시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사업은 드디어 유명한 「희랍」어 칠십인역을 만들게 하였다. 「희랍」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주후 1세기에도 이 칠십인역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21. 맹약에 의하면 남방 왕의 딸과 어떠한 일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21 「프돌레미」 2세는 『북방 왕』 「안디오거스」 2세(데오스)인 「시리아」왕과 두번 전쟁하였다. 주전 250년에 이 두 왕은 서로 화친하게 되었다. 이 동맹 즉 『맹약』의 대가로서 북방 왕의 「시리아」왕 「안디오거스」 2세는 「프돌레미」 2세의 딸 「베레니스」와 결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안디오거스」 2세는 이미 「라오디스」와 결혼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애굽」사람 「베레니스」와 결혼하기 위하여 「라오디스」와 이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리아」왕 「안디오거스」 2세는 「베레니스」 에게서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는 『북방 왕』의 보좌에 앉을 후계자가 되었다. 그러나 처음 아내 「라오디스」의 아들은 후계자에서 제외되었다.
22. 「베레니스」의 『힘』은 어떻게 서지 못하였는가? 그리고 「베레니스」와 그 여자를 데려온 사람들과 그 여자를 얻은 사람들은 어떻게 『버림』을 받았는가?
22 「베레니스」를 지지하는 능력 즉 『힘』은 그 여자의 아버지 「프돌레미」 2세 었다. 그러나 주전 246-7년에 그 여자의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베레니스」는 「시리아」의 왕 「안디오거스」 2세인 그 여자의 남편과 더불어 『힘이 쇠하고』 말았다. 그때에 「안디오거스」 2세는 「베레니스」를 버리고 전처인 「라오디스」를 불러왔다. 그리고 그 여자의 맏아들을 「실루거스 칼리니거스」라고 하여 「시리아」의 왕위를 계승할 자로 정하였다. 예언된바와 같이 「베레니스」와 관련된 모든 일에 문제가 생겼다. 그 여자의 『힘』이 되는 그의 아버지뿐 아니라 『그의 후손』인 그 여자 자신도 끊어지게 되었다. 「라오디스」가 계획한 대로 그 여자는 어린 애기와 함께 살해되었다. 그 여자를 「애굽」에서 「시리아」로 가져온 수행원들도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라오디스」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 여자를 다시 데려온 「안디오거스」 2세 「데오스」는 예언대로 틀림없이 그 여자에 의하여 독살되었다. 『신』의 종말이 얼마나 비참하였는가? 이것은 그 여자가 두번째 이혼됨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베레니스」를 난 그 여자의 아버지도 죽고 「베레니스」를 잠시 아내로 취하였던 남편도 죽었다. 그 결과 「라오디스」의 맏아들인 「실루거스」 2세만이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시리아」의 왕위에 앉을 올바른 후계자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튼튼한 화평의 원인이 되지는 못하였다.
23. 「베레니스」의 본족은 누구였는가?
23 천사는 이에 대하여 반응이 있을 것을 또 예언하였다. 『그러나 이 공주의 본족에서 난자 중에 하나가 그의 위를 이어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다니엘 11:7) 「베레니스」의 『본족』은 물론 그 여자의 양친인 「프돌레미」 2세 (빌라델부스)와 그의 누이며 동시에 아내인 「아리시노외」였다.
24. 『이 공주의 본족 중의 하나』가 어떻게 일어섰는가? 그리고 어떻게 북방 왕의 성에 들어가서 어떻게 그들을 쳐서 이겼는가?
24 「베레니스」의 『본족에서 난자』 중에 그 여자의 아버지를 계승한 자는 「베레니스」의 오빠였다. 그는 지금 「프돌레미」 3세로서 『남방 왕』이 되었다. 그의 별명은 「에버겟데스」(은혜자)었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후 왕권을 잡음으로써 일어서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의 누이인 「베레니스」를 죽인 살인자에게 복수 하기 위하여 「시리아」의 수도 「안디옥」으로 떠났다. 「프돌레미」 3세는 얼마의 군대를 거느리고 「시리아」의 왕 「실루거스」 2세 「갈리니거스」를 치고저 진격하였다. 「갈리니거스」의 어머니인 「라오디스」는 그의 아들을 시켜 「베레니스」와 그 여자의 어린 애기를 죽였던 것이다. 「프돌레미」 3세는 북방 왕의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여왕 노릇을 하는 「라오디스」를 죽였다. 그는 더 나아가서 「시리아」를 짓밟고 수도 「안디옥」의 요새지와 항구도시인 「실루기아」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그는 주력을 동쪽으로 둘려 북방 왕의 큰 나라를 통과하여 「바빌로니아」와 「수사」까지 진격하였으며 그는 또 계속 동으로 진격하여 「인도」해안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되므로 살인적인 「실루거스」2세는 「시리아」 왕위로부터 물러나게 되었다.
25. 그는 어떻게 종교적 모욕을 일소했으며 이로써 어떠한 이름을 받았는가?
25 그리고 여호와의 천사는 남방 왕이 종교적 모욕을 없애 버릴 것을 말하였다.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그 은과 금의 아름다운 기구를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오 몇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다니엘 11:8) 이 보다 이백여년 전에 즉 「애굽」왕 「사메디거스」 3세 때 세계 넷째 강국이었던 「비사」 국왕 「감비세스」는 「애굽」을 정복하여 그들의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을 「바사」로 가져갔던 것이다. 지금 먼저 「사바」와 「바빌로니아」의 수도였던 「수사」를 점령하여 승리한 남방 왕 「프돌레미」 3세는 옛날 성전에서 강탈하여 간 신들을 도로 찾아 갔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에버것데스」 즉 「애굽」 사람들에게 『은혜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26. 왜 『몇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였』으며 그는 본국에 무엇을 가지고 왔는가?
26 「프돌레미」 3세가 「나일」강이 흐르는 「애굽」으로 돌아오자 남쪽에서 집안 싸움이 생기게 되었다. 집안에서 일어난 반역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그는 북방 왕을 정복할 유리한 기회를 잃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북방 왕을 더 침범하는 일을 중지하였다. 「애굽」에서 훔쳐간 진상들을 「프돌레미」 3세는 전리품으로서 도로 찾아왔는데 『은과 금의 아름다운 기구』가 2,500개 이상이나 되었다. 그가 주전 221년에 저절로 죽었는지 혹은 살해되었는지를 아무도 모른다. 그 문제에 대하여 여러가지 억측이 있다. 하여튼 그가 「시리아」왕 「실루거스」 2세를 복수한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 살았던 것은 확실하다.
27. 북방 왕은 남방 왕의 나라에 들어갔다가 왜 물러나왔는가?
27 북방 왕은 이 기회를 노리고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천사는 이같이 예언하였다. 『북방 왕이 남방 왕의 나라로 쳐 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 가리라.』 (다니엘 11:9) 자기를 낮추었던 「실루거스」 2세는 복수심으로 남방 왕을 쳤다. 그는 남방 왕의 나라로 쳐들어갔으나 결국 패배하였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군대를 데리고 수치스러운 도피를 하여 주전 242년에 「시리아」의 수도「안디옥」으로 돌아왔다. 그의 별명 「갈리니거스」(영광스러운 승리라는 뜻)는 그의 이름에 합당치 못한 사람으로 입증되었다. 「갈리니거스」는 「애굽」의 「프돌레미」 3세 앞에서 죽었다. 「실루거스」 3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라우너스」(벼락이라는 뜻)라고 이름지었다. 이도 3년이 못되어 살해되고 그의 통치도 종말을 지었다. 그의 형제가 「시리아」 왕위에 올라 「안디오거스」 3세가 되어 『대왕』이라고 불리웠다.
28, 29. (ㄱ) 북방 왕의 큰 아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ㄴ) 작은 아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또 어떻게 물의 넘침같이 밀어 들어갔으며 또 와서 견고한 성까지 치게 되었는가?
28 「시리아」왕 「실루거스」 2세 「갈리니거스」의 두 아들에 관하여 천사는 또 예언하였다. 『그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의 넘침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다니엘 11:10
29 그의 아들 하나인 「실루거스」3세 (세라우너스)는 소「아시아」 서쪽으로 진격하여 싸우는 도중 암살되었다. 그의 동생인 다른 아들 즉 「안디오거스」 3세 대왕은 많은 군대를 모아 남방 왕을 공격하였다. 그때 남방 왕은 「프돌레미」 4세었으며 그의 별명은 「빌로바도」였다. 새로운 북방 왕 「안디오거스」 3세는 드디어 새로 일어서는 「로마」와 싸우게 되었다. 그러나 먼저 그는 그의 군대를 돌려 「애굽」의 노략물을 탈환하였다. 먼저 항구 도시인 「실루기아」를 뺏고 다음에 「꾈레 시리아」와 「두로」의 해변 도시들과 「프돌레마이스」와 그 근방 도시들을 도로 찾았다. 그는 「안디오거스」 3세를 치기 위하여 「프돌레미」 4세가 보낸 「애굽」의 군대를 패배시켰다. 그는 또한 「팔레스티나」에 있는 「유대아」의 여러 도시를 점령하였다. 겨울 동안에 승리를 거둔 「안디오거스」 3세는 그의 군사 6만을 거느리고 「두로」의 남방 25「마일」되는 「프돌레마이스」에서 겨울 진(陣)을 쳤다. 그 다음 봄에(주전 217년)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치』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각주]
a 97면에 있는 희랍나라의 남방 왕과 북방 왕을 표시한 지도 참조.
[97면 지도]
북방왕과 남방왕의 희랍 제국 (312-30 B.C.)
Boundaries ---
Cities and Towns °
SCALE OF MILES
0
100
300
500
(MEDITERRANEAN SEA)
MACEDONIAN EMPIRE
Pella
Thermopylae
GREECE
Acarnania
Chalcis
Athens
Boeotia
Sparta
CRETE
CYPRUS
THRACE
Byzantium
Lysimachia
(Black Sea)
실루거드
BITHYNIA
Ilium
Pergamum
Sardis
Ephesus
Magnesia
CILICIA
TAURUS MTS
Tarsus
Seleucia
Antioch
Tadmor (Palmyra)
Damascus
Byblus
Sidon
Tyre
Ptolemais
Jerusalem
Gaza
프돌레머 제국
EGYPT
River Nile
Alexandria
Memphis
LIBYA
Red Sea
아라비아
Elath
ARMENIA
PONTUS
River Tigris
MESOPOTAMIA
River Euphrates
Babylon
BABYLONIA
(Persian Gulf)
PERSIS
Susa
ELAM
Persepolis
CARMANIA
GEDROSIA
메디아 제국
Gaugamela
Ecbatana
PARTHIA
HYRCANIA
Hecatompylus
ARIA
SOGDIANA
BACTRIA
DRANGIANA
ARACHOSIA
(Indus River)
(Jhelum R.)
(Chenab R.)
(Ravi R.)
(Sutlej R.)
아시아
(CASPIAN 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