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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격려를 통하여 주게 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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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격려를 통하여 주게 되는 힘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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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파63 10/15 385-390면

격려를 통하여 주게 되는 힘

“우리가 우리 앞에 놓여있는 소망을 계속 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기 위함이다.—히브리 6:18, 신세.

1. 격려는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며, 사도 「바울」은 이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표시하였읍니까?

비상시에 격려란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 자신의 약점 때문에 낙망하고 있을 때, 알아주는 말이나 소망을 주는 한마디를 얼마나 고마워 합니까! 이것은 새 힘을 줍니다. 이것은 짐을 덜어주며 보다 큰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어려운 일들을 직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것은 우리가 장래를 직면하는데 필요한 힘을 줍니다. 이것은 가혹한 압력하에서 꼭 잡도록 담대함을 갖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히 격려의 유익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의 신자들에게 편지하였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격려를] 얻으려 함이라.』 (로마 1:11, 12, 신세) 그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그들 자신의 약점 때문에 문제가 있었고 실제적으로 온갖 불의로 충만한 세상에 둘러 있었으며 격려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격려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였읍니다. 그는 또한 유익이 단지 한쪽에만 있게 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었읍니다. 왜냐 하면, 격려한다는 것이 결국 피차 세워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격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격려와 아첨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격려의 최선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2 「바울」이 「로마」의 신자들을 위하여 바랐던 그러한 세워주는 일은 아첨하는 데서 오지는 않읍니다. 비원칙적인 낡은 세상은 흔히 아첨한다는 것과 격려를 혼돈하고 있읍니다. 아첨한다는 것은 거짓이며, 성실하지 않은 것이나 지나친 찬양입니다. 거짓됨과 비성실은 힘을 줄 수 없읍니다. 그들은 세워주지 않읍니다. 그런 일들은 결국 아첨하는 사람에게 보다도 흔히 모욕을 돌릴 뿐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일찌기 한 편지에 쓴 바와 같읍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 (데살로니가 전 2:5) 거짓 위에 세워진 확신은 망상이며, 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소망은 실망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가적 위기에 거짓말을 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해도 참으로 세워주는 일이나 힘을 주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종교 교직자들이 여윈 사람들에게 죽은 자의 상태를 거짓말 할 때, 위안은 옅으며 효험이 없읍니다. 거기에는 참 격려가 없읍니다. 힘을 주는 격려를 하려면, 당신은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시 146:4; 전도 9:5; 요한 5:28, 29) 이 부패한 세상의 실패와 동시에 그들 자신의 부족을 가슴 아파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은 남에게 담대하게 해주고 소망을 유지하게 해주는 데 물론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본을 마련하시다

3. 어느모로 하나님께서는 격려하는데 있어서 지휘해 오셨으며, 이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칩니까?

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격려하는데 있어서 친히 지휘해 오셨읍니다. 「아담」이 인류를 죄로 빠뜨린 직후, 하나님께서는 어떤 구출자를 일으키시겠다고 선언하셨으며, 그렇게 하심으로 그는 그 때에 탄생되지 않은 후손을 위한 소망의 기초를 마련하셨읍니다. 그는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후세대에 살던 그의 종들에게 천명하시어 그것을 강조하셨으며 확대 하셨읍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의 약속에 관하여 그것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 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피난한 우리가 우리 앞에 놓여있는 소망을 계속 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히브리 6:17-19, 신세) 그렇습니다, 소망에 대한 건전한 기초를 마련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을 격려하시며, 그들의 확신을 세우시며, 두려움 없이 장래를 직면할 수 있도록 만드십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어김이 없는 약속은 이 이십세기에 지금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무한한 힘의 근원입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로마 15:4.

4.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책임이 있게 되며, 그러나 왜 이것은 짐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4 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지는 사람들은 그의 증인들이 되지 않으면 안되며, 그의 이름과 목적을 남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들은 생활을 그의 뜻과 일치 조화시키도록 나열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봉사를 짐으로 만드시지 않으며, 그들의 능력 이상으로 혹사하시지 않으십니다. 목자가 자기 양을 돌보시는 것 같이 그는 사랑스럽게 그들을 돌보십니다.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 하시리로다.』 (이사야 40:11) 하나님께서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 하심으로써 기쁨을 앗아 가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단순히 걸려 넘어진다고 해서 우리를 배척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3, 14) 그는 자비로우시며, 사랑스러우시며 불쌍히 여기시며, 그의 용서하심은 크게 노력할 담대함을 줍니다.

5. 우리가 성서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의 기록을 고려할 때, 그것은 우리로 어떻게 반응을 나타내게 합니까?

5 하나님의 봉사에 부지런히 힘쓰려면, 강한 믿음이 요구되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믿음에 힘주기 위한 모든 마련을 다하셨읍니다. 그의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약속에 부가하여, 그는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두르셨읍니다. 그들의 본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경주를 위하여 담대하게 해주며 기력을 새롭게 해줍니다. 「아벨」과 「삼손」은 여호와의 봉사에 그들의 생명을 내논 사람들이었읍니다. 「노아」는 경건치 못한 세상으로 둘러 있었으나 성실함을 유지한 사람이었읍니다. 「모세」는 참 하나님의 봉사를 위하여 「애굽」의 모든 부를 잊었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바로」의 추적하는 군대로부터 그들을 구출하실 것을 믿었읍니다. 그리고 「다윗」은 두려움 없이 「불레셋」의 거인 「골리앗」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맞섰읍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수석 대행자]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 12:1, 2, 신세.

6. 수석 대행자이자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이의 본은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칩니까?

6 우리가 수석 대행자이시자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이를 열심히 바라 볼 때, 무엇을 알 수 있읍니까? 또 다시, 담대하게 될 원인입니다. 예수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본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우리는 따라야 할 살아있는 행로의 본을 가지고 있읍니다. 우리가 그 분의 발자취에서 받아들이는 모든 자취는 만족과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그것은 새 힘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 11:28-30.

7. (ㄱ) 참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지만 담대해야 할 이유가 있읍니까? (ㄴ) 「베드로」는 「그의 형제들을 굳게 하라」는 예수의 교훈을 어떻게 실천하였읍니까?

7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 낡은 세상의 박해를 초래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디모데 후 3:12) 예수께서는 몸소 이것을 경고하여 말씀하셨읍니다.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그러나, 이것까지도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로 마음을 상실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당신의 임종의 밤에 하신 말씀을 생각 나게 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 15:20; 16:33) 사도들은 담대하였읍니다. 그들은 중단하지 않았읍니다. 「베드로」가 주를 부인함으로 비틀거렸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개하였읍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읍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누가 22:32) 「베드로」는 바로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의 충실한 봉사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힘의 한가지 원천이 되었읍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한 것은 세워주는 것이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격려하는 말을 기록하였읍니다.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격려]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고 「베드로」는 말하였읍니다. (베드로 전 5:12, 신세) 그는 누구라도 하나님의 조직을 잊고 거짓 가르침으로 쏠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그들이 늘 세상의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첫 정전 서간(正典書簡)에서 그들을 격려하였고 그들이 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에 힘주기 위하여 편지 하였던 것입니다.

격려의 편지

8. 첫 정전 서간을 섰을 때, 「베드로」는 큰 격려의 원천으로서 무엇을 기록하였으며, 우리는 그것에서 어떻게 유익을 받을 수 있읍니까?

8 「베드로」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는 방법으로서 바로 무엇이라고 말하여 우리를 위해서 서로 격려하는 본을 세웠읍니까? 그는 자기의 힘의 최대의 원천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는 그 소망에 관하여 기록하였읍니다. 그들로 이것을 더 크게 인식하도록 자극을 줄 수만 있다면, 자기 그리스도인 동료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는 그들의 소망이 『산 소망』 즉 실망으로 인도하지 않는 신뢰할 수 있는 한가지 기대임을 강조하였읍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이 소망은 그들 중에 있는 큰 기쁨과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의 원인이었읍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말하였던 것입니다. 천사들까지도 응시하기를 간절히 원하였던 문제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리스도인 남녀에게 주셨읍니다. 그들이 얼마나 고맙게 생각해야 하겠읍니까! 이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힘을 주고 받들 것이겠읍니까! (베드로 전 1:3-5, 8-12)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적은 무리』인 144,000 중의 한 성원으로서 천적 생명에 불리움을 받았건 혹은 「땅에 거할 정직한 자」 중의 하나로 불리움을 받았건, 하나님의 약속에 그의 마음을 고정시키는데서 최대의 격려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있는 그 약속을 연구하며, 자기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그 약속에 관하여 토론하며 남에게 그것을 창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누가 12:32; 잠언 2:21.

9. 그리스도인 소망은 핍박을 직면하는 능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칩니까?

9 이 신뢰할만한 소망이 주는 힘이 어찌나 크든지 그리스도인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는 혹독한 시험을 직면하고도 기뻐할 수 있으며 굳게 설 수 있읍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을 이었읍니다.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 전 1:6, 7)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하여 소망을, 인내하는 문제와 연결하였읍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 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그리고 예수의 경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이 내뿜는 전형적인 현저한 힘을 발견합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형주]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리스도의 본을 면밀히 생각하는 사람들은 피곤해지거나 맥이 빠지지 않으며, 중단하지 않읍니다.—로마 12:12; 히브리 12:2, 3, 신세; 베드로 전 4:13, 14.

10. 「베드로」는 어떤 활동을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을 분기시키도록 훈계하였으며, 이와 관련하여 서로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10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해야 할 중대한 일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의 첫 서간을 통하여 격려를 받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활동을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분기시키도록」 권면을 받고 있으며, 서로 흡사한 격려를 제공할 의무하에 있읍니다.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을 받은 몸지체의 일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긴 제사장의 그것에 비교됩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동물 제물을 바치지는 않지만, 영적 제물 즉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그것은 그의 이름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입술의 열매이다.』 (베드로 전 1:13; 2:4-9; 히브리 13:15, 신세)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목적을 선포합니다. 그가 세상의 영적 흑암에서 신기한 그의 진리의 빛으로 부르셨읍니다. 그러한 봉사를 위하여 영적 힘은 중대합니다.

11.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인도되기 위하여, 세상의 두려움의 원인을 우리는 어떻게 보며,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행하도록 요구됩니까?

11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그들의 길을 비추며 힘을 주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의 두려움에 참예하지 않읍니다. 그들은 세상 위기를 괴로워하지 않읍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명령에 주의를 돌립니다.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깊은 존경]으로 하고.』 (베드로 전 3:14, 15, 신세)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 때문에 그들은 늘 남과 같이 세상의 염려에 참예하지 않으며 세계 기구의 영구 보존에 자신들을 헌신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읍니다. 그들은 세상의 일부가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들의 위치는 도의적으로 잘못이라고 보일지 모르기 때문에 변호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초조 함으로써가 아니라 온유와 깊은 존경으로 해야합니다. 그들의 소망이 하나님과 그의 아들에게 있기 때문에 그들은 통치자로서 인간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명백히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로서 그들이 세상과의 벗관계를 구한다는 것은 잘못일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원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의적인 세상 가운데서 그러한 위치를 유지하려면 담대함이 필요합니다.—베드로 전 1:20, 21; 요한 15:19; 야고보 4:4.

12. (ㄱ) 전파와 가르치는 사업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자들에게 가담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영향을 받읍니까? (ㄴ)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봉사에 참예할 때 서로 힘줄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표시하였읍니까?

12 이제 이러한 기름부음을 받은 증인들은 그들에게 가담한 다른 큰 무리를 가지고 있읍니다. 이들은 그들에게 큰 격려의 원천이 되는 성전 반열과 연합하여 섬기는 헌신한 사람들이며 예수의 이러한 명령을 성취시키는데 그들과 함께 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민족 중에서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 .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 28:19, 20, 신세; 계시 7:9, 10) 이것은 큰 일이며, 위급한 일이며, 따라서 연합된 노력을 요구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하고 권면하였으며 『서로 대접』 함으로써 서로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그들은 함께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읍니다. 『보라! 내가 이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때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얼마나 훌륭한 격려입니까!—베드로 전 4:8-11.

13. 사도 「베드로」는 어떤 다른 격려를 그의 서간에다 포함하였으며,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힘줍니까?

13 그 세상의 부패한 상태를 보자, 「베드로」는 또한 다른 면으로도 격려할 필요를 발견하였읍니다. 그 격려는 칭찬의 형태를 취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을 소망으로 가득채우기 위하여 계획된 문제를 말하지도 않았읍니다. 오히려 이 격려는 못된 행실을 피하도록 권유하는 형태를 취하였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그러한 교훈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늘 타락한 세상과 밀접히 접촉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것은 잘잘못을 명백히 명심하도록 돕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의 뒤틀린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보호하며 경건치 못한 습관에 대한 의로운 증오감에 힘을 줍니다. 이것은 우리를 도와 이러한 『육신의 정욕』이 뒤좇을만한 것이 못되며, 영혼에 대하여 싸움을 하는 원수라는 것과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방임한다면, 우리의 생활에 슬쩍 끼어들어 결국 우리의 생명 우리의 영혼의 멸망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명심하게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격려를 필요로 하며, 여호와께서는 마치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도들을 통하여 마련해 주셨듯이 현대 숭배자들을 위하여도 그것을 마련해주십니다.—베드로 전 2:11, 12, 16; 4:3-5.

14. 억압적인 고용주를 섬기는 사람들을 위하여 어떠한 힘을 주는 말씀이 있으며, 이 교훈은 심지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유익합니까?

14 격려의 편지에서 「베드로」는 또한 얼마간의 실망적인 가사라든가 형제들이 직면하고 있으며 그들의 숭배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급료 문제를 고료하였읍니다. 예컨데,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깔깔한 주인들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으며, 오늘날과도 같이 그들의 그리스도인 믿음 때문에 세상 고용주들로부터 천대를 받았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입장을 어떻게 봐야 하였을까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베드로」는 기록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하여 그들의 입장을 그리스도 자신의 입장에 비교하여 말하였읍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따라야 할 그러한 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격려가 됩니까!—베드로 전 2:18-23.

15. (ㄱ) 격려의 원천으로서 그리스도인 아내의 주의를 무엇에다 돌렸읍니까? (ㄴ) 아내들을 격려하도록 남편들에게 어떠한 충고가 주어졌읍니까? (ㄷ) 남편과 아내 양쪽이 서로 힘을 주며 돕기를 원한다면 그들의 마음을 무엇에 고정시켜야 합니까?

15 이 같은 훌륭한 복종의 본은 그리스도인 아내들, 심지어는 믿지 않는 남편들과 결혼한 아내들에게도 추천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아내들에 대한 충고를 하기 시작하기 전에 「베드로」가 『이와 같이』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주의를 앞에 있는 복종에 관한 말에 돌렸던 것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안에 본을 가지고 있으며, 그는 제 일세기에 그들에게 본이 되신것 만큼 오늘날도 본이 되십니다. 그들의 참을성 있는 인내의 결과에 관해서 그들을 격려하여 「베드로」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 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남편들도 자신들의 두통꺼리를 가지고 있으며 격려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이 결혼한 남자로서 여호와의 영의 감동을 받아 그들에게 닥치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였으며 자기 아내를 다루는데 있어서 이해하도록 힘쓰며 아내가 『더 연약한 그릇이요.』 인정하도록 힘 쓸 것을 권면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아내가 남자처럼 정서적으로 반응을 보인다거나 남자가 하듯이 똑 같이 일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양쪽이 그들의 마음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는 참으로 중요한 일은 그들의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가사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보상을 받도록 서로 돕고자 하는 진지한 욕망을 결코 흐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얼마나 실용적인 격려입니까! 여러 가지 곤란지사들을 토론해 주었으니 모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읍니까! 그들을 인도해야 할 그리스도인 원칙을 지적해 주었으며, 어려운 환경 하에서도 충실성 때문에 수행될 수 있었던 강조적인 선한 점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영감받은 편지는 이 시험 많은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힘의 원천입니다.—베드로 전 3:1-9.

16. 「베드로」 전서 5장에서는 감독자들과 관련된 어떤 문제가 토론되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베드로」의 서간에서는 마치 격려를 필요로 하지 않는양 감독자들을 간과하지 않았읍니다. 반대로, 그는 특히 인식할 문제들을 그들과 논하였읍니다. 즉 그들의 봉사에 관한 적절한 견해, 하나님과 형제들에 대한 그들의 관계, 난문제들의 취급과 핍박등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라고 그는 말하였읍니다. 지금까지도 자기가 감독하고 있는 회중 내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할 때 깊이 감동되지 않을 감독자가 누구이겠읍니까? 문제를 이렇게 볼 때, 감독자는 「무리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거나 자랑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충고에 유의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전체의 짐을 혼자 나르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깨닫는 다는것은 겸손한 감독자에게 정말 격려의 원천입니다. 그는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인도하여 주실 것을 하나님께 바라도록 권면을 받고 있읍니다. 즉 그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인도를 구하여 그의 말씀을 조사하며 기도로 그에게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사단」의 세상에서 오는 핍박을 직면하였을 때 혼자 서 있지 않읍니다. 「베드로」가 말한 것과 같읍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베드로 전 5:1-10) 감독자들은 담대하게 될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다.

17. 그러므로 힘의 위대한 수여자는 사실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의문의 여지없이, 여호와께서는 몸소 그의 백성들에게 대한 힘의 수여자이십니다. 그분이야 말로 우리가 고려한 이러한 격려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영감주신 분이십니다. 그 자신의 말씀인 성경에 내포된 약속은 바로 우리를 소망으로 가득채우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가르쳐 오셨기 때문에 생활 문제들을 성경적으로 직면할 수 있읍니다. 그가 우리를 뒷바침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반대를 대하고도 확고부동하게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과도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저희의 힘이시요.』—시 28:7, 8.

[387면 삽화]

“’실누아노’를 통해서 내가 격려하기를 위하여 편지하였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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