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격려함
1. 남을 격려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인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어떠한 훌륭한 본들을 가지고 있읍니까?
모든 사람은 남을 격려할 기회를 가지고 있으니, 그러한 기회를 잘 이용할 때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읍니까! 누구보다도 여호와께서는 격려의 수여자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부족을 용서하시고, 우리의 소망을 세워 주시며,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시험과 일을 위하여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찬가지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격려자이심을 증명하셨으며, 병든 자와 환자들에게 연민을 나타내셨으며,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자기 제자들과 똑 같이 하심으로써,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까지 내 놓으심으로써 그들을 위한 본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요한 15:13) 사도들도 그들의 사명을 수행한다는 것은 전파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능률적이어야 할 것을 요구할 뿐 아니라 그들의 동료 일군에게 대한 사랑스러운 격려도 요구한다는 것을 인식하였으며 따라서 그들은 회중에 세워주는 서간과 개인적 방문과 감동적인 강연을 해 줌으로써 이것을 마련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전 5:12; 히브리 13:22; 사도 11:23; 20:2) 우리가 따라야 할 얼마나 훌륭한 본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 하면, 성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도록 그의 아들의 발자취에 따라 걷도록 사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본받은 것 같이 그들을 본받도록 권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음으로 우리가 서로 격려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에베소 5:1; 베드로 전 2:21; 고린도 전 11:1.
2. 우리 주위 세계에서 우리는 어떠한 실망적인 습관들을 보며, 그러한 것이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하지만, 우리 주위 세계에서는 단지 자신들이 우월해지기 위하여 서로 헐뜯고, 남의 방침과 습관을 저주하는 경향이 있읍니다. 그들은 다른 동료들을 짓눌러 버려서 그들의 경쟁자가 되지 못하게 합니다. 심지어 일군들이 잘하는데도 단 한마디의 칭찬의 말을 하지 않으나, 잘못을 저지르도록 버려뒀다가 즉각 불러 야단을 칩니다. 주부들도 남편이 의당한 것으로 여길 때에는 실죽해 지는 법입니다. 가정에서나 사업계를 막론하고 그러한 정신은 사람들이 일하는데 가질 수 있는 어떠한 기쁨도 앗아가 버리며, 그들을 실망에 잠기게 하며 맥풀리게 하며, 쓸쓸하게 합니다. 이 결과로, 매일 전 세계에 걸치어 만명 이상이 자살한다고 보도 되었읍니다. 고의적으로 행하였건 혹은 단순히 무관심하게 행하였건 간에 그 얼마나 남부끄러우며 이기적인 동료 인간 취급법입니까! 무엇이 잘못이 있읍니까? 결핍된 것은 무엇입니까? 격려입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격려한다는 것은 사랑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 세상은 사랑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라고 오래 전에 예언한 이 마지막 날에 우리가 살고 있으나, 남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들이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합니다.—디모데 후 3:1-3.
줄 것을 생각하다
3, 4. 남들이 격려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 것입니까?
3 우리가 접촉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격려적이 되지 않을 것은 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너무 염두에 두기 때문에, 친절을 나타낼 기회를 잡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도 미안해 하는 기색없이 남을 방해합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사랑이 없는 마음씨를 본받아야 할까요?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읍니까! 이기적인 인간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야말로 따를 본이 되십니다. 그가 천대를 받으셨을 때, 되려 그들을 천대하시지 않으셨읍니다. 그가 가르치셨으며 격려하신 그의 친 제자들, 그의 동료 숭배자들이 그를 버리기까지 하였을 때 그들에게 위협적인 말씀을 하시고 포기하셨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중요한 일은 그의 하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임을 알고 계셨읍니다. 따라서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4 예수께서는 우리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생각하도록 추천하셨읍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사도 20:35) 많은 일에 있어서 그것은 사실이며, 격려하는데 있어서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만일 남들이 우리에게 격려해 주어야 할 때에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지나치게 마음을 쓴다면, 실망하게 되는 법입니다. 오히려 격려할 기회를 찾으며, 남들로부터 받는 격려는 단지 부가적인 배당금 정도로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할 수 있는데도 격려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낙담하고 있기 때문에 흔히 그렇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십시오. 그들은 격려를 필요로 합니다. 그들에게 낙담하며 실망하는 대신에, 연민을 보이며 우리를 낙망시키는 자들에게 힘준다는 것은 얼마나 더 좋은 일입니까! 격려를 받는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격려 할 때 한층 더 행복하게 됩니다.
5. 격려하는 어떤 방법들이 있읍니까?
5 격려를 하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읍니다. 성실한 칭찬의 말은 일군에게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보여 준 친절이나 베풀어 준 봉사에 대한 단지 한 마디의 따뜻한 감사는 일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하도록 자극합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한번의 친절한 행동은 여러 말보다 더 웅변적으로 말하는 법이며 내포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의 기풍을 지지합니다. 당신이 벗할 때 낙담했거나 쓸쓸했던 사람들을 격려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기쁜 소식을 그들과 나누는 것은 그들의 전망을 밝혀 주게 되는 법입니다. 그렇습니다, 단지 정다운 미소만도 남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한층 더 좋은 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소망을 주는 것이며 우리가 옳은 일을 행하도록 힘과 담대함을 남에게 주는 말과 본으로써 마련할 수 있는 권면입니다. 만일 우리가 격려하는 일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나은 기회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가족 내에서
6. 우리는 어디에서 남을 격려하는 습관을 기르기 시작할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6 기회를 찾기 시작하는데 알맞는 장소는 바로 가정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그러한 습관을 기른다면, 그것이 어디에서나 저절로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격려의 기초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또한 뭉치도록 만드는 것으로서, 「바울」은 「골로새」인들에게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로새 3:12-14) 한데 뭉치기 위하여 이 경건한 교훈을 적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얼마나 상호간에 힘을 주는 것이겠읍니까!
7, 8. 남편이 자기 아내를 격려하는데는 어떠한 기회가 있으며, 왜 그것은 중요합니까?
7 남편이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해 주고 싶어하며 아내가 자기 남편을 간절히 기쁘게 해 주고 싶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고린도 전 7:33, 34) 하지만 의미심장한 어떤 일을 거듭하지 않은 것보다 더 맥빠지게 하는 일이 몇가지 있읍니다. 어떤 아내가 집을 깨끗이 유지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며 가족을 위하여 음식을 장만하며 다른 일들로 남편을 기쁘게 하는데 이것을 의당한 것으로 여긴다면, 아내는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내가 당연히 할 일을 했는데 잘했다고 말할 필요가 있는가 하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그 대답을 이렇게 합니다.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잠언 31:28, 29.
8 심지어 부족함이 있을 때라도, 가족의 사랑의 띠는 그것을 정도 이상으로 확대 함으로써 힘을 받게 되는 일은 없읍니다. 필요하다면, 문제에 주의를 돌리십시오. 그러나, 특히 수행된 선한 일을 살피고 감사하십시오. 작은 일에 대한 칭찬까지도 장래 한층 더 많이 그리고 잘 노력하며 행하려고 하는 정신과 힘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고가 일어날 때가 격려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식하는 남편은 저만큼에서 『당신은 왜 그렇게도 멍청해?』와 같은 말로 아내를 꾸짖지 않는 법입니다. 아내는 벌써 그 일에 충분히 속을 썩이고 있을 것입니다. 악화시킬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내의 느낌을 당신의 것 만큼 중요시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친절한 말 한마디와 약간의 도움은 참다운 격려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일이지만, 사랑을 표시하며, 연합의 완전한 띠는 바로 사랑입니다.—마태 19:5, 6.
9. 어떤 방법으로 그리스도인 아내는 자기 남편을 세울 수 있읍니까?
9 매우 부지런 함으로써 좋은 아내는 또한 자기 남편을 세웁니다.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잠언 31:11, 12, 27) 그러한 아내는 남편의 가장권을 피하려고 하는 경쟁자가 아니라 그의 인도하에 기꺼이 협력하며 일합니다. 아내는 비단 눈앞의 좋은 것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속적인 복지를 생각합니다. 그 아내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입니다. (에베소 5:22, 23; 잠언 31:30) 그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아내는 가족의 영적 복지를 첫째에 두며, 물질에 관하여는 이러한 견해를 가집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그리하여 아내는 물질주의의 올무를 막아내도록 도우며 하나님의 봉사를 밀어낼 가능성이 있는 과도한 경제부담 때문에 오는 염려를 피하도록 돕습니다. (디모데 전 6:6-8; 마태 13:22) 다른 관심사를 뒤에 미루며 영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열정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아내는 자기 남편을 격려하여 이러한 영적 문제에 마땅한 주의를 돌리도록 할 수 있읍니다.
10. 자녀들에게 노력을 무엇에다 바치도록 격려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자녀들에 관하여 말하드라도, 그들에게 영적 사물의 가치를 배우도록 도와주는 일보다 더 큰 격려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이 있겠읍니까? 그들에게 경건한 원칙의 철저한 교훈을 베풀지 않는다면 일생에 그들을 붙어다닐 염려와 욕구 불만은 늘 마음의 초조함과 슬픔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골로새 3:21; 에베소 6:4) 만일 그들이 물질의 소유를 추구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왔으며 그들의 모든 정력을 상업분야에서 일하는데 바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축복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하므로 멸망시키고자 하시는 세상을 세우기 위하여 그들이 온갖 노력을 다 경주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오산이겠읍니까! 하나님의 봉사에 가능하다면 전시간 「파이오니아」 봉사자로서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한결 낫고 얼마나 한결 많은 상이 있겠으며 얼마나 한결 격려가 되겠읍니까! 시편 필자가 하나님께 말씀드린 바와 같읍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 84:10) 그러한 생애를 추구하도록 자녀들을 격려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격려할줄 알도록 배워야 한다는 것은 물론입니다.
11, 12. 젊은이들이 자기 부모를 격려할 기회가 있읍니까? 어느모로?
11 그렇습니다, 젊은이들도 주는 것을 생각하도록 배울 수 있읍니다. 그들은 누구나 자기들을 시중들게 되어 있다는 견해를 갖도록 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부모의 노고를 감사할 줄 알며 부모가 말씀할 때에는 듣고 순종할 줄 알며 수행해야 할 가정의 잔 일들을 돕는데 있어서 부모의 지시에 따라 기꺼이 일하는 사람이 될 줄 알도록 배울 필요가 있읍니다.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주의를 돌려야 할 필요가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 때 자발적으로 도움을 제공하게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집에서 떠나 있을 때에도 그들의 행실로써 자신과 남에게 축복이 될 수 있읍니다. 성서는 지혜롭게 이렇게 교훈합니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찌니라…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언 23:22-25; 10:1; 15:20; 19:13.
12 자녀들이 이 교훈을 적용할 때 부모가 늙으셨을 때에도 그들의 사랑에 대하여 감사를 표시하지 않는다는 법이 없읍니다. 디모데 전 5:4, 8에는 이러한 교훈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비록 부모들이 늙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자녀들이 잊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부모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격려가 됩니까!
감독자들의 책임
13. (ㄱ) 격려하는데 있어서 감독자가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이 면과 관련하여, 잘 고려할 수 있는 어떠한 점들이 있읍니까?
13 모든 사람이 자기 동료 인간들에게 격려의 원천이 될 수 있기는 하지만, 가까운 벗과 자기 가족 성원을 제외하고는, 감독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남을 격려하든가 실망시킬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읍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기희를 살필 의무를 부과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면과 관련해서 그들에게는 책임이 있읍니다. 이 점에 관하여 그들은 위대하신 감독자들, 즉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진리의 말씀으로써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우리를 세우십니다. 그는 우리의 능력이 못미치는데까지 우리를 몰아 대는 일이 없으시며 자기 백성들에게 사랑스러운 염려를 나타내십니다. 당신은 한 감독자로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세우기 위하여 당신의 말을 사용합니까? 당신은 그들 각자의 육체적 그리고 심적 제한에 대해서 고려한다는 것을 표시합니까? 당신이 멈추어 그들의 사업에 관하여 말할 때 그들은 당신을 보고 정말 기뻐합니까 혹은 이번에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하고 걱정합니까? 예수의 제자들은 그와의 벗함을 고마워 하였읍니다. 그들이 비록 그를 주라든가 주인이라고 부르기는 하였지만, 그는 친히 한 동료 일군임을 입증하셨읍니다. 그는 그들의 감독자이셨으나, 수행되어야 할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들과 함께 참예하심으로써 그들에게 본을 세우신 분이십니다. (베드로 전 2:25) 그는 자기 제자들이 겸허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아셨으며, 따라서 이 교훈도 그들에게 가르치셨읍니다. 그들을 늘 낮추심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생활로 겸허를 실천하심으로써 입니다. (요한 13:1-17) 그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그가 거칠고 말씀을 쌀쌀하게 하신다거나 말도 다 듣기 전에 대답부터 성급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심을 알았으며, 그들이 그와 벗하는 데서 「그들의 영혼이 쉼」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마태 11:29.
14. (ㄱ) 감독자는 자기가 스승임을 어떻게 표시하며, 자기 형제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칩니까? (ㄴ) 능률이 사랑으로 조절될 때, 남을 다루는데 어떠한 영향을 끼칩니까?
14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감독자는 남에게 무엇을 하라고 단지 말만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구비한 스승으로서 그들과 함께 일하는데 참예함으로 그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는 무리에게 본이 됩니다. (디모데 전 3:2) 그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그에게 이끌리며 도움을 위하여 그를 기대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읍니다. (마태 23:8) 그들은 그가 일을 수행해야 할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것과 능률을 올리기 위하여 애쓴다는 것을 알지만, 동료 일군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사랑이 그로 참으며 이해하도록 만든다는 것도 압니다.
15. 어떤 사람이 자기 일에 부족하다든가 혹은 어떤 일을 실제로 그르쳤을 경우에, 성서는 감독자가 사태를 어떻게 다루라고 훈계하며, 어떤 목적을 마음에 간직해야 할 것입니까?
15 때때로 사람들이 부족함을 드러내거나 그릇된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은 사실이며, 감독자는 그러한 사태에 적절한 주의를 돌리도록 해야 할 사람입니다. 이 때에 그 위범자를 불러 설명하게 하고 닦아세울 것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아마 무심코 한 말이 그릇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성서가 이 사태를 어떻게 다루라고 말하였는가에 유의하십시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라디아 6:1) 목적은 잘못한 자를 회복시키는 것이지 그를 채찍질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온유한 정신을 요구합니다. 결과는 잘못한 자를 세우는 것이 될 것입니다.
16. 「엘리후」는 「욥」을 충고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올바른 견해를 나타냈읍니까?
16 이 점과 관련해서, 「엘리후」가 자기의 교훈을 「욥」에게 어떻게 소개하였는가에 유의하십시오.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나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동하는구나 내 말이 내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고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진실히 말하리라 . . . 네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나와 네가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내 위엄으로는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권세로는 너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그런 다음 그는 「욥」과 더불어 그 사태를 계속 논의하였읍니다. 그러나 「엘리후」가 어떻게 문제에 접근 하였는가에 유의하십시오. 그는 「욥」에게 애원하였읍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욥」보다 조금도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하였으며 자기가 이제 말하려고 하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하였읍니다. 사태를 다루는데 얼마나 훌륭한 방법입니까!—욥 33:1-7.
17.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남을 훈계하는데 관하여 어떠한 충고를 하였으며, 어떤 사람이 고의적이며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라는 것이 발견되었을 때 사태를 어떻게 다루어야 했읍니까?
17 「바울」이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을 때 바로 그러한 태도를 추천하였읍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하라.』 (디모데 전 5:1, 2) 하지만, 행악자가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며 성실한 회개를 나타내지 않을 때, 격려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올바른 행실이지, 행악자가 아닙니다. 그러한 고의적인 위범이 충분히 입증될 때, 같은 디모데 전 5:20에서 발견된 충고를 적용할 것입니다.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히브리 12:7-11.
모두를 위한 기회
18. (ㄱ)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며, 따라서 그 영향력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까? (ㄴ)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이나 봉사의 특권을 확장시키려고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때, 우리는 어떻게 세울 수 있으며, 이 중요성을 어떤 예가 표시합니까?
18 가정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회중의 감독자이든지 아니든지, 모두가 서로 세우며 격려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읍니다. 모두는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는 세울 수도 있고 헐 수도 있읍니다. 그는 고무할 수 있거나 무관심을 조장할 수도 있읍니다. 원이야 하건 안하건, 그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 영향력이 선을 위한 것이 되게 합시다. 우리가 골로새 3:8, 9에 기록된 훌륭한 교훈을 따른다면 우리의 말은 그러한 선을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우리가 선한 것들을 우리 마음에 섭취해드렸다면, 우리의 마음이 건전한 욕망으로 가득찼다면, 우리가 말하는 것은 세우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이 말하는 까닭입니다. (마태 12:34, 35) 우리의 마음이 선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이나 여호와의 조직을 통하여 받은 교훈을 무례하게 혹은 깔보며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자는 「디오드레베」였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회중을 충실히 감독하는 사람들을 『배나 존경』할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요한 3서 9; 디모데 전 5:17) 우리는 자기의 봉사의 특권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사람이라든가, 아마 전시간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하려하는 사람들이라든가 왕국 전도인들이 크게 필요한 어떤 구역으로 이사하려고 하는 사람의 절실한 마음을 실망시키는 말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없는 정탐들과 같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패배주의자들의 보고로써 낙담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으며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보다도 충실한 「여호수아」와 「갈렙」과도 같이, 우리는 그들에게 앞에 열려있는 봉사의 특권을 잡음으로써 담대함을 표시하도록 권면할 것입니다.—민수 13:27–14:9.
19. 우리가 서로 격려할 수 있는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읍니까?
19 하나님의 봉사에서의 우리의 바로 열의와 충실성으로써 서로 힘의 원천이 될 수 있읍니다. 봉사에 열심히 참예하는 본을 세움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똑 같이 행하도록 돕습니다. 우리가 남에게 봉사에서 즐긴 훌륭한 경험담을 말할 때, 우리가 성경 연구에서 수집한 지식의 보석을 그들과 함께 나눌 때, 우리가 서로 격려하는 것이되며, 마치 사도들이 그들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방문하였을 때 행한 것과 같이 됩니다. (사도 15:3, 30, 31) 병든자와 환자들에게 대한 우리의 염려로써, 의를 위하여 투옥된 사람들에게 대한 염려로써, 가능한 곳에서 그들과 계속 접촉하며 방문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에 힘을 줍니다. (고린도 후 7:6, 7; 사도 28:15) 「사단」의 세상과 타협하기를 거절함으로써, 우리는 남을 확고 부동하게 서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서로 세우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기꺼이 우리의 생명과 자유의 위험마저 무릅씀으로써, 두려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담대함을 서로 줍니다. 모든 여호와의 헌신한 증인들이 서로 격려할 수 있는 그러한 기회를 계속 완전히 이용하도록 합시다.
20. 『피차 세우』는데 관하여, 데살로니가 전 5:11-15에서는 어떠한 충고를 발견할 수 있읍니까?
20 그러므로 우리 주위 사람들의 필요성을 고려합시다. 남을 격려함으로써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그의 아들의 본을 받도록 합시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것 같이 하라.』 당신의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에게 관하여 말하면 함께 일하는데 있어서 그들을 세우며 그들에게 대한 남의 견해를 세우십시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희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한편 감독자 되시는 여러분이시어, 여러분의 형제들을 낙담시키지 말고 격려하십시오.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우리가 누구이든 우리가 접촉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가정에서이건, 그리스도인 회중에서이건, 우리 세상 직장에서이건,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데살로니가 전 5:11-15, 신세) 그렇습니다, 자 우리 서로 격려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