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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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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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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6
파66 2/1 49-55면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1.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는 어떠하였으며, 그 사실이 어떻게 나타났읍니까?

예언자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9:24-27) 『「메시야」 즉 인도자」는 통용기원 29년에 나타나셨읍니다. 그 때에 「나사렛」의 목수 예수는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마태 3:13-17) 그는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서 기원 70년에 일어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셨읍니다. 그는 『미석』과 다른 비싼 재료로 만든 모형적 『하나님의 전」을 보전하려고 하시지 않았읍니다. (누가 21:5, 6) 하나님께서 이 성전이 「예루살렘」에서 있는 것을 허락하신 동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전을 존경하셨고 그 곳에서 숭배하셨읍니다. 두번이나 그는 상업주의를 그곳에서 쓸어 버리셨읍니다.―요한 2:13-22; 마태 21:10-14.

2. 그러나 예수는 어느 건물에 더 관심을 가지고 계셨읍니까?

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참되고 영원한 성전에 더 관심을 가지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루살렘」으로 마지막 여행을 하여 그 성과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시기 전에 그의 열 두 사도들이 듣는데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회중을 세울 것이며, 「하데스」의 문들이 그것을 압도하지 못할 것입니다.』―마태 16:18, 신세.

3, 4. (ㄱ) 마태 16:18에서 예수께서는 그의 회중을 무엇으로 말씀하셨읍니까? (ㄴ)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바울」은 회중을 무엇으로 비유하였으며, 어떻게 그러하다고 말하였읍니까?

3 그의 회중(즉 교회)을 세우는 데 있어서 반석 위에 그것을 세운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이전에 목수였던 그 분은 그의 회중을 성전에 비유하셨읍니다. 그는 회중을 하나님의 산 집으로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 기원 30년 봄에 첫번째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을 때에 그는 『성전』이라는 말을 「예루살렘」에 있는 물질적 성전과 다른 무엇엔가에 적용시키셨읍니다. (요한 2:13-22) 그러므로 이제 마태 16:18에서 그는 충성스러운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그의 회중을 자신을 기초석으로서 그 위에 세우는 성전으로 비유하셨읍니다.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신 「아테미」 (다이아나)의 전이 그때까지 서 있던 소 「아시아」 「에베소」에 있는 회중에게 편지할 때 그리스도인 회중 전체를 산 전이라고 말하였읍니다. 「바울」의 편지는 이러합니다.

4 『이는 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에베소 2:18-22.

5. 고린도 전 3:16, 17에 있는 「바울」의 말에 의하면 무엇이 참다운 『하나님의 전」입니까?

5 다시 참다운 『하나님의 전」은 산 사람들로 이루어진 성전이라는 것을 지적하여 사도 「바울」은 고대 「희랍」의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 편지하였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전인 것과 더욱이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십니까? 만일 누가 하나님의 전을 멸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전입니다.』—고린도 전 3:16, 17, 신세.

6. 상징적 전의 성원은 무엇과 비교되며, 「베드로」는 이것을 어떻게 비교하였읍니까?

6 그러므로 이 상징적 전의 성원들은 물질적 전의 돌들에 비교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그들을 『산 돌」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소 「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할 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베드로 전 2:4-6; 에베소 2:20.

7. 하나님께서는 그의 살아있는 전에 어떻게 머무십니까?

7 하나님께서 그의 살아 있는 전에 머무시는 것은 그의 영으로 계시는 것이요 새긴 어떠한 형상이나 우상으로가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다시 우상으로 가득한 「고린도」시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린도 후 6:16.

8. 「바울」과 「베드로」의 이러한 말은 그때 「예루살렘」에 서 있던 전은 어떠하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까?

8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이러한 모든 것을 기록한 것은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의 전이 「로마」 군대에 의하여 파괴되기 5년 전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곳인 「예루살렘」에 있는 물질적 전을 버리셨음이 분명하며, 예수께서 종교 지도자들이 그를 죽음에 처하기 사흘 전인 「니산」월 11일에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되었읍니다.—마태 23:37, 38.

9.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 「시온」에 『모퉁이 돌」로 놓여지셨으며, 언제 그위에 세워지는 일이 시작되었읍니까?

9 예수께서 죽으신지 세째 날이 되었을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셨고, 그로 천적 「시온」산인 하늘로 돌아 오게 하셨읍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 『모퉁이 돌」이 되게 하여 그 위에 새로운 산 전이 세워지게 하셨읍니다. (베드로 전 2:6; 이사야 28:16; 마태 16:18) 이 산 전은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써 머물러 계실 『영적 전」이기 때문에 기원 33년 오순절 날부터 세워지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천적 『모퉁이 돌」에 믿음을 두고 있는 믿는 「유대」인들에게 부어졌읍니다.—사도 2:1-42.

버리기 쉬움, 어떻게

10, 11. (ㄱ) 왜 우리에게 하나님의 참다운 전을 버리기 쉬운 일이 있읍니까? (ㄴ) 「바울」은 어떠한 말로써 그러한 일에 대하여 「디모데」에게 경고했읍니까?

10 참다운 『하나님의 전」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충성스러운 회중으로 이루어진 산 전이므로 이 상징적 전이 그 전 안에 있는 『산 돌」이 될 사람들에 의하여 어떻게 버려질 수 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이러한 『산 돌」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내려오는 이 영적 전을 위하여 선택되고 준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버릴 수 있는 일이 우리에게 있읍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 감독자 「디모데」에게 그러한 일을 경고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11 『내가 이러한 것을 너에게 쓰는 것은. .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를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회중이요 기둥이요 진리의 받침대이다. 참으로 이 경건한 신비는 크기도 하다. 「그는 육으로 나타나신 바 되셨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선언받으」셨고, 천사들에게 나타나셨고, 여러 나라들 가운데서 전파되셨고, 세상에서 믿어지게 되셨고, 영광으로 올리움을 받으셨다. 그러나 영감에 의한 발언이 분명히 말하기를 나중 기간에 어떤 자들이 믿음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이며, 그릇 인도하는 영감에 의한 발언과 악귀들의 가르침에 관심을 기울이며.』—디모데 전 3:14로부터 4:1, 신세.

12, 13. (ㄱ) 그러므로 「디모데」는 어떠한 일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였읍니까? (ㄴ) 「디모데」는 디모데 전 4:14-16; 6:2, 20, 21에 있는 대로 어떻게 해야 하였읍니까?

12 그가 「바울」의 첫째 편지를 받고 또 그에게 보낸 「바울」의 둘째 편지로 보충을 받음으로 일 세기에 있던 그리스도인 감독자 「디모데」는, 「바울」이 그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를 써 보냈으므로 더욱 온전히 이해하였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 즉 회중에 대한 그의 책임의 어떠한 것도 버리지 않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하였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의 한 성원인 사도가 디모데 전서 4:14-16; 6:2, 20, 21에서 다음과 같이 하라고 한 대로 하여야 하였읍니다.

13 『예언을 통하여 그리고 장년자들의 일단이 네 위에 그들의 손을 얹을 때에 네게 주어진 네 안에 있는 선물을 소홀히 하지 말라. 이러한 모든 것들을 숙고하고, 그들에 전념하여 너의 진보가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 자신과 너의 가르침에 끊임없이 주의하라. 이렇게 하는 것을 계속하라. 이렇게 함으로 너는 자신과 너에게 듣는 자들을 함께 구원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고 이러한 권고를 하는 일을 계속하라. . . . 오 「디모데」여, 너에게 맡겨 놓은 것을 지키고, 거룩한 것을 어기는 빈 말과 거짓되이 불리우는 「지식」의 모순으로부터 돌아서라. 그러한 지식을 나타내려고 하다가 어떤 자들이 믿음으로부터 떨어졌기 때문이다.』

심각한 결과를 가져 오는 버리는 일

14. (ㄱ) 「디모데」는 어디에 정규적으로 참석하였으며, 그는 왜 거기에 빠지는 일이 없었읍니까? (ㄴ) 이러한 참석자들 가운데는 어떠한 연령의 구별이 있읍니까?

14 회중의 감독자인 「디모데」는 정규적으로 회중 집회에 참석해야 하였읍니다. 집회에서 행하여지는 것을 사회하거나 「바울」이 그에게 편지한 대로 그 자신이 집회에서 『대중적으로 낭독하는 일과, 권고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네 자신을 사용하는 것을 계속하」기 위하여 참석하였읍니다. (디모데 전 4:13, 신세) 그는 결코 집회에 빠지는 일이 없었읍니다. 그가 집회에 빠진다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의 집」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의 회중이요, 기둥이요, 진리의 받침대」로부터 끊어 버리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가 집회에 빠지면서 그의 책임을 수행할 수 없었읍니다. 집회에 참석한다는 것이 결코 죽을 날이 가까와 오는 노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청춘과 현재 수명의 끝이 가까운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젊었읍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도 너의 젊음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라. . .장년자를 가혹하게 비평하지 말라. 반대로 그를 아버지와 같이 대접하고, 연소자들을 형제들과 같이 하고.』—디모데 전 4:12; 5:1, 신세.

15, 16. (ㄱ) 고의적으로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임의로 어떻게 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은 어떠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입니까? (ㄴ) 이 사실이 히브리 10:23-31에 어떻게 명시되어 있읍니까?

15 회중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 일은 『하나님의 전」을 버리는 가장 명백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만일 헌신하고 침례받은 하나님의 집의 한 성원이 고의적으로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는 임의로 회중을 자신으로부터 제명시키는 것입니다. 제명이란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한 성원을 끊어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일 한 사람이 그가 죽기까지 이렇게 제명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인정 받지 못한 자로서 영원한 멸망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집회로부터 떠나 있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10:23-31은 이렇게 말합니다.

16 『우리의 소망의 공개적 선포를 흔들림이 없이 굳게 잡읍시다. 약속하신 그분은 충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서로 피하라가 아니라] 서로 고려하십시다. 어떤 사람들이 습관을 가지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을 버리지 말고 서로 격려하고, 여러분이 그 날이 가까와 오고 있음을 보는 대로 더욱 그렇게 하십시다. 우리가 만일 진리의 정확한 지식을 받은 후에 고의적으로 죄를 행하고 있다면 더는 죄들을 위한 아무런 희생도 남아 있지 않으며, 다만 심판의 무서운 기대만이 있으며, 반대하는 자들을 사를 불같은 질투가 있을 뿐입니다. . . .우리는 「복수는 나의 것이다. 내가 갚을 것이다」라고 하신 그분을 알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다」라고 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으로 넘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신세, 신명 32:35, 36 참조.

17. 그리스도교국에서 집회에 정규적으로 참석하는 데 큰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이며, 그러나 하나님의 참다운 전에 있어서는 어떠합니까?

17 그리스도교국에 있는 교회 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는 돈이 필요합니다. 종교 집회 시간에 한번이나 혹은 여러번 연보 접시나 주머니 혹은 연보 통을 참석자들 앞으로 돌리거나 종교 건물에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강제적 헌금을 하기에는 너무나 가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다운 집에 있어서는 회중 집회에 정규적으로 참석하는 데 그러한 물질적 방해가 되는 것이 없읍니다.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모든 집회에 있어서는 『입장 무료, 연보 걷지 않음」이라는 법칙이 사용됩니다. 다만 집회에 참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18. 회중의 필요한 비용은 어떻게 충당될 수 있으며,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어떻게 합니까?

18 물론, 일 세기에 성서 시대에서와 같이 개인 가정에서 집회가 열리지 않는 곳에서는 회중이 집회를 위한 회관에서 정규적으로 모이기 위하여 비용을 담당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로마 16:5; 고린도 전 16:19; 골로새 4:15; 빌레몬 2) 그러한 경우에 있어서는 회중 성원들이 그들이 헌금할 수 있는 대로 자진적인 헌금을 할 수 있읍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편리한 곳에 헌금 궤를 비치해 놓음으로써 각자가 아무도 모르게 헌금을 넣을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일 세기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 .사람에게 영광을 얻」기 위하여 자선 사업이나 구제하던 종교적 위선자들과 같이 되기를 원치 않읍니다. (마태 6:1-4) 그러므로 오늘날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헌금을 넣을 수 있는 헌금 궤들이 있읍니다.

19. 여기에서 주요한 것은 헌금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무엇입니까?

19 회중이 충당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재정적 비용으로 집회 장소를 마련하지 못하는 일이 있음으로써 『하나님의 전」을 버리는 일이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헌금하는 문제가 주요한 것은 아닙니다. 주요한 일은 집회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정규적으로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20. 집회에서 우리는 재정적인 방법 외에도 어떻게 보탬이 될 수 있읍니까?

20 이러한 여러 가지 집회에 참석함으로써 재정적인 방법 외에도 여러가지로 항상 보탬이 될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기 위하여 노래를 부르는 일에 회중과 함께 목청으로 한 몫을 할 수 있읍니다. 만일 일반적인 성서 연구가 사회하는 때라면 질문에 대한 성서적 해답을 함으로써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연구 재료를 미리 읽어 볼 필요가 있읍니다. 또한 공개 강연이 있을 때에 참석하여 주의깊이 듣고, 관심을 보이며, 감사의 표시를 함으로써 공개 강연 연사를 격려할 수 있읍니다. 또한 집회 전후에 회중 성원들과 함께 섞여서 만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권고하고 세워 줄 수 있읍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소망의 공개적 선포를 굳게 잡」을 수 있으며, 또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서로 고려」할 수 있읍니다.—히브리 10:23-25, 신세.

준비와 기도

21. (ㄱ) 미리 준비함으로써 참석자는 어떠한 점을 나타냅니까? (ㄴ) 그렇게 하여 그는 회중을 어떠한 상태로 유지되도록 도울 수 있읍니까?

21 그러한 집회를 위하여 미리 준비함으로써 『하나님의 전」을 버리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낼 수 있읍니다. 그리하여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다만 기계적으로 무관심하게 그저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즉 자신이 영적으로 세움을 받고 하나님의 집 안의 다른 성원들을 세워 주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참석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믿음과 소망과 담대함에 있어서 회중을 튼튼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것들을 더욱 튼튼하게 자라가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우리는 회중의 순결성 즉 다만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순결성 뿐 아니라 또한 도덕적 면에 있어서의 순결성도 살필 수 있읍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는 영적으로 힘써 싸우는 것과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사용하여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유다 3; 에베소 6:11-17; 빌립보 1:27)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을 영적으로 좋은 회복 상태에 있도록 도움이 됩니다.

22. 어떠한 다른 방법으로써 「바울」이 에베소 6:18, 19에서 요구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않을 수 있읍니까?

22 이뿐 아니라 하나님의 집안의 충성스러운 성원은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 즉 가정에서 정규적으로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집회에 참석하였을 때에 회중과 함께 기도하는 것을 등한히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적 전을 버리는 일이 없읍니다. 「바울」은 『여호와를 위한 성전」의 사도적 기초의 한 부분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에베소」에 있는 회중에 편지할 때에 그들에게 다만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할 뿐 아니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읍니다. (에베소 2:20-22; 6:18, 19) 진실한 기도로써 그는 하나님의 전의 복지와 번영에 대하여 진실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3. 기도는 왜 힘이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는 데 있어서 「다니엘」과 같이 될 수 있읍니까?

23 기도란 참으로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일치하게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야고보 5:16) 예언자 「다니엘」은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전이 재건될 것을 위하여 기도하였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산 돌」들로 된 전이 좋은 영적 상태를 유지하며 보존될 것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읍니다.—다니엘9:1-19.

24. 시편 122:1, 2, 8, 9에 의하면 「다윗」 왕은 어떠한 면으로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됩니까?

24 「예루살렘」의 왕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영광스러운 전을 세우기를 간절히 원하였던 「다윗」은 감사에 넘친 노래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찌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 (시 122:1, 2, 8, 9) 「다윗」 왕은 하나님의 전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으로 갈 초대를 즐거워하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됩니다.

활동하는 전

25. 베드로 전 2:5, 9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우리는 어떠한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전을 버리기를 원치 않읍니까?

25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참다운 전이 산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그러므로 그것은 활동하는 조직입니다. 거룩한 숭배는 우리가 다만 회중 집회에 참석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 전에 의하여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수행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신령한 집」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것이며, 더욱이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은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지 않으면 안됨을 명백히 하였읍니다. (베드로 전 2:5, 9) 이러한 모든 일을 하기 위하여는 활동이 요구되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전을 버리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러한 활동에 참예하지 않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26, 27. (ㄱ) 하나님의 숭배자들이 그의 전에서 드리는 이러한 『신령한 제사」는 어떠한 종류의 희생입니까? (ㄴ) 로마 10:13-15에 있는 「바울」의 논리 대로, 그러한 희생의 표현을 왜 회중 밖에서도 해야 합니까?

26 하나님의 숭배자들이 그의 전에서 바치는 이러한 『신령한 제사」는 동물의 희생이 아닙니다. 히브리 13:15, 16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 찬양의 희생을 바칩시다. 그것은 즉 그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더욱이 선을 행하는 일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한 희생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세) 하나님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며, 회중 안에서나 밖에서 선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탁월하심이 온 땅과 모든 백성들 가운데 선포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백성들이 그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이치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요엘 2:32을 인용하여 그것을 근거로 이렇게 질문합니다.

27 『누구든지 주[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 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로마 10:13-15.

28. 집안 성원들은 그들이 전파하도록 보냄을 받은 것을 신중히 생각한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28 하나님의 집안 성원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과 온 인류를 축복할 그의 「메시야」 왕국을 전파하여 알리도록 보냄을 받은 것을 신중히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전의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은 이상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충성스럽게 그리고 비이기적으로 이러한 모든 활동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전의 임명된 성원 모두를 지지합니다. 그들은 마치 사도 「바울」의 선교 활동을 너그럽게 지원해 준 일 세기의 「빌립보」 회중과 같읍니다. (빌립보 4:14-16) 그들은 이 활동에 참여하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써 이 중요한 면으로 『하나님의 전」을 버리는 일이 없도록 주의합니다.

29, 30. 계시록 7장에 예언된 바와 같이 『거룩한 제사 직분」의 확장된 활동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29 1918년에 제 일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부터 하나님의 전에서 『거룩한 제사 직분」의 확장된 활동의 결과로서 마지막 수자는 지금 알 수 없는 큰 무리의 사람들이 온 땅으로부터 하나님의 영적 전으로 몰려 들어왔읍니다. 계시록 7:9-15은 예언적으로 그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30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 .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31. (ㄱ) 어느 기간에 이 『큰 무리」가 나왔읍니까? (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인정하며, 그들은 어떠한 생활의 표준을 더는 받아들이지 않읍니까?

31 우리의 독자인 당신은 자신이 이 『큰 무리」 가운데 끼어 있음을 볼 수 있읍니까? 만일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큰 환난」이 『세상 죄」를 제거하기 위하여 피를 흘려 하나님께 희생을 바치신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1914-1918년에 『재난의 시작」으로써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마태 24:8; 요한 1:29) 모든 민족들 위에 임할 『재난』의 끝은 아직 오지 않았읍니다. 이 끝은 현 사물의 제도의 완전한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큰 무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봉사를 하려고 생각하기 전에 『큰 환난」의 끝이 올 것을 기다리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재난의 시작」이 있은 이래 보좌에 앉으신 천지의 하나님으로부터 한번 희생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기를 찾아서 나왔읍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의 천사들과 땅의 사람들의 정당한 통치자이심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더는 이 세상적 사물의 제도의 도덕적 종교적 표준을 받아들이지 않읍니다. 계시록 7:9-15에 상징된 바와 같이 그들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그들의 더러운 모양을 씻어 버리려고 합니다.

32. 그들은 어떻게 『어린 양」의 피로써 그들의 옷을 희게 씻읍니까?

32 그러므로 그들은 『어린 양」의 흘린 피로 그들의 옷을 씻어서 죄의 보기 싫은 오점을 씻어 버립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 받아들이고 이 대제사장이 바친 죄를 위한 희생을 믿고 그 다음에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그렇게 합니다. 그들은 더는 그들 자신에게나, 세상에게나, 「사단」마귀에게 속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셨음으로 인하여 그에게 속합니다.

33. 그들은 왜 하나님의 영적 전에 모여들며, 밤에 봉사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33 그들이 이제 하나님 앞에 서서 종려 가지를 들고 즐거움으로 찬양하게 된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 돌」이 되시는 하나님의 영적 전에 모여들어 밤낮으로 여호와께 거룩한 봉사를 하게 된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에서 『영적 제사 직분」을 가진 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러면 영적 제사 직분을 가진 자들이 이렇게 응답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시 134:1-3.

34. 그들은 하나님의 전에서 무엇을 하는 데 깨어 있으며, 24시간 중 어느 때에 그렇게 합니까?

34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으로 모여들고 있는 『큰 무리」는 다만 그의 전에서 있는 모임에 참석하는것 이상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에도 활동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아직도 이 지상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영적 전의 『산 돌」들의 남아 있는 사람들과 협조합니다. 그들은 총독 「느헤미야」당시에 살던 「유대」인들과 같이 되기를 원치 않읍니다. 그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숭배를 위하여 바칠 것을 바치지 않았고 그리하여 「레위」인들의 성전 봉사자들은 성전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먹고 살기 위하여 농사를 지움으로 『하나님의 전」을 버렸던 것입니다. (느헤미야 13:10, 11)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를 통하여 구원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영원한 빚을 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그의 전에서 깨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읍니다.

35. (ㄱ) 우리는 계시록 7:9-15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적 그림이 어떻게 헛되지 않을 것을 압니까? (ㄴ) 『큰 무리」와 영적 제사 직분을 가진 남은 자들은 어떠한 결의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어떠할 것입니까?

35 계시록 7:9-15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적인 그림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적 그림의 실현은 오늘날 우리 앞에 놓여져 있읍니다. 그것은 오늘날 땅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따라야 할 본이 됩니다. 그들은 지금 『큰 환난」의 『재난』의 종말이 모든 거짓 종교와 사람이 만든 그들의 전을 멸망하기 전에 그것을 따릅니다. 『큰 무리」와 영적 제사 직분을 가진 남은 자들과 함께 홀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의 영적 성전에서 그에게 거룩한 봉사를 바치고 있읍니다. 낮이고 밤이고 그들은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는 변할 수 없는 결의를 수행합니다. 행복한 결과는 여호와 하나님의 숭배가 활력있게 계속될 것이며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에 대한 증가된 찬양과 함께 계속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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