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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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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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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8/1 347-352면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함’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느헤미야 10:39.

1.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래 광야에 세웠던 참 숭배의 건물에 대하여 설명하십시오.

삼천 사백 여년 전에 거칠은 ‘시내’ 광야에 훌륭한 장막이 세워졌읍니다. 그것은 폭이 4.5‘미터’, 높이가 4.5‘미터’, 길이가 13.5‘미터’였읍니다. 그처럼 조그만 규모였지만, 그 마당에 있는 것들과 그 모든 기구들을 합하면 200만불(5억 6천만원) 이상에 달하는 값진 건물이었읍니다. (출애굽 38:29-31, 신세, 1953년판 각주) 이것은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여호와의 도움을 받아 해방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에 의해 기원전 1512년에 세운 탄복할 만한 성막이었읍니다. (출애굽 36:2-38:20) 이 놀라운 장막은 약 485년간 ‘이스라엘’의 참 숭배 중심지의 역할을 하였읍니다.

2, 3. (ㄱ) 기원전 1027년에 ‘솔로몬’은 여호와의 찬양을 위하여 무슨 건물을 준공하였읍니까? (ㄴ) 그 후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를 약술하십시오.

2 기원전 1027년에 ‘다윗’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왕인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숭배를 위한 다른 건물을 준공하였읍니다. 이 성전 설계는 그의 아버지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을 받은 것이었읍니다. (역대 상 28:11-19) 그 내부 성소는 폭이 9‘미터’ 길이가 27‘미터’ 높이가 13.5‘미터’였읍니다. (열왕 상 6:2) 이 성전은 주로 석회석과 백향목으로 되어 있으며, 금과 보석으로 단장되어 있어서, 의심할 것 없이 인간이 지은 건물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값진 건물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이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기 위하여 50억불(1조 4천억원) 상당의 금과 은이 기증되었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성전을 좋아하셨읍니다. ‘솔로몬’이 봉헌식에서 감동적인 기도를 한 후에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였던 것입니다.—역대 하 6:12-7:3.

3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기원전 607년에 ‘바벨론’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유대’인들은 사로잡혀 갔읍니다. (열왕 하 25:8-12) ‘이스라엘’ 사람들은 70년 후에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하여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왔으며, 드디어 ‘스룹바벨’의 지휘 하에 그 자리에 성전을 재건하였읍니다. (에스라 1:1-4; 3:8-11; 6:14, 15) 수 세기 후에 ‘헤롯’ 대왕은 점차적으로 이 성전을 재건하였으며, 그가 재건한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존재하였었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여호와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그 성전은 예수께서 예언하신대로 기원 70년에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파괴하였을 때에 성전도 파괴되어 버렸읍니다.—마태 24:1, 2.

4. 성막과 그 후의 물질적 성전들은 무엇이 대신하였읍니까? 그 점을 설명하십시오.

4 성전은 합당하게도 “여호와의 전”, “참 하나님의 집”, “여호와의 집”이라고 불리웠읍니다. 예수께서도 그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셨읍니다. (역대 하 26:16; 에스라 3:8, 신세; 요한 2:16)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었던 초기의 성막과 후기 물질적 성전은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영적 성전이 그것들을 대신하게 되었읍니다. 그에 대하여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동료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여호와, 신세]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 2:19-22) 이 성전을 구성하는 사람들 안에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며, 그들을 “산 돌”로서 ‘영적 집’으로 지어져 갑니다. (베드로 전 2:4, 5; 고린도 전 3:16) 영적 성전을 이루는 자들의 수는 144,000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들 중에서도 소수의 남은 자들이 아직 지상에 살아 있읍니다.—계시 7:4-8; 14:1-5.

5. 지상의 소망을 가진 여호와의 찬양자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자기들이 성전 반열과의 접촉을 깊이 감사한다는 것을 나타냅니까?

5 여호와의 증인들의 지방 회중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 한 명 혹은 그 이상이 참석하여 영적 성전을 대표합니다. 그러나 현재 지상에 살아남은 자들의 수가 적기 때문에 어떤 지방에서는 하나님의 종들의 회중이 단지 지상의 희망을 가진 헌신한 여호와의 찬양자들 곧 “큰 무리”로만 구성되어 있는 수가 많습니다. 「계시록」에서는 그 “큰 무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고 설명하였읍니다. (계시 7:9, 15) 이 사람들은 지상에 있는 모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과 충실히 협조함으로써 성전 반열들과 접촉하는 것을 깊이 감사합니다. (마태 24:45-47) 그들은 그리스도의 “형제들”, 그의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을 선대한 보답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됩니다.—마태 25:34-40, 46.

값진 것으로 여호와를 공경함

6, 7. (ㄱ)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과 성전 건축을 위하여 헌금할 기회가 있었을 때에 어떠한 반응을 보였읍니까? (ㄴ) 오늘날 여호와의 종들은 참 숭배를 지지할 기회가 있을 때에 어떠한 반응을 보입니까? (ㄷ) 이렇게 한다고 하여 궁색해집니까?

6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막 건축을 돕기 위하여 금, 은, 동, 털실, 마포 등을 헌납하는 특권을 가졌었읍니다. 즐거이 자원하는 자들은 “여호와께 드릴 것”을 대단히 많이 바쳤기 때문에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어 헌납을 중지시켜야 하였던 것입니다. (출애굽 35:4-9, 20-29; 36:4-7) 수 세기 후에 나이 많은 ‘다윗’은 장차 ‘예루살렘’ 성전을 짓도록 하기 위하여 그러한 즐거움을 가지고, 금, 은, 구리, 철, 채석, 보석 등을 헌납하였읍니다. 그러나 ‘다윗’은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는 금과 은을 추가로 굉장히 많이 바쳤읍니다. 동료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와 함께 헌물하라는 권고를 받고 아낌없이 헌납하였읍니다.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역대 상 29:1-9.

7 오늘날도 참 숭배를 위한 건물을 지으려고 할 때면 여호와의 종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은 ‘왙취 타워 협회’ 시설 또는 지부 시설을 확장한다던가 혹은 지방의 새로운 왕국회관을 짓는다고 할 때에 그러한 사업을 기쁘게 물질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들은 왕왕 왕국회관 짓는 일에 직접 힘과 시간을 바치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번영하게 하시고 여러 방향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관대함을 나타내도록 하십니다. (고린도 후 9:8-12) 하나님의 왕국 관심사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헌금을 함으로써 참 숭배를 지지했다고 하여 궁색해지는 법은 없읍니다. 잠언 3:9, 10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8. 여호와의 종들은 하나님의 전을 버리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일을 합니까?

8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과 그 후의 성전을 지지하고 그 장소에서 수행하는 제사장들의 봉사와 ‘레위’인들의 봉사도 후원하였읍니다. 예를 들면, ‘느헤미야’ 시대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자기들이 여호와의 전을 버리지 않아야 함을 인식하고 여호와의 성소에서 수행되는 깨끗한 숭배를 지탱하기 위하여 헌물을 하기로 결의하였읍니다. (느헤미야 10:32-39)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전을 버린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러한 예로서 그들은 가능하다면 왕국회관을 유지하는 일에 그리고 왕국의 기쁜 소식 전파 사업을 확장하는 일에 헌금을 합니다. (마태 24:14; 마가 13:10) 그들은 이 일을 즐거움으로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고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과 일치하게 행동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린도 후 9:7.

9. 성전에 관한 고대의 예로 보아서 왕국회관 수리가 필요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9 세월이 흐름에 따라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수리해야 할 곳들이 있었읍니다. ‘유다’의 ‘요아스’ 왕 때에 그러한 일이 있었읍니다. 그 때에 책임있는 자들이 신속하게 수리를 하지 않았으나 결국 성소를 수리하였읍니다. (열왕 하 12:4-15) 후에 ‘유다’ 왕 ‘요시야’도 또한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읍니다. (열왕 하 22:3-7) 오늘날의 하나님의 종들도 지방 왕국회관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고를 기울임으로써 그들의 하나님의 전을 사모함을 나타냅니다. 수리할 일이 있으면, 그것을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하고 정직한 봉사를 하고자 열망함으로써 그런 마음을 나타냅니다.

10. 그리스도인들은 왕국회관의 재산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10 때로는 성전이 약탈을 당하였읍니다. ‘이스라엘’ 왕인 다른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 시대에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아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읍니다. (열왕 하 14:11-14) 이러한 사건으로 보아 오늘날의 여호와의 종들은 왕국회관의 기구들과 다른 물건을 사용하는 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읍니다. 혹시라도 회중 전체에 속한 물건을 부당하게 자기 개인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여 범죄하는 일이 있게 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왕국회관의 재산은 소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먼저 여호와의 소유물이고 다음에 그 숭배 장소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것입니다. 또한 기억할 것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여호와의 성전을 약탈하여 그의 귀중한 기물을 가져가고 그 영화로운 건물을 파괴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열왕 하 25:8-17) 왕국회관이나 거기에 속한 기물을 잘못 사용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조금이나마 그 이교 군주와 같이 되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청결해야 함

11, 12. (ㄱ)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청결에 대한 어떠한 요구 조건을 지켜야 하였읍니까? (ㄴ) ‘바벨론’의 포로 상태에서 해방된 ‘유대’인들이 왜 청결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읍니까? (ㄷ) 이사야 52:11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됩니까?

11 왕국회관을 청소하고 그것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한 몫을 담당하는 것 또한 당신의 특권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적 및 신체적 청결도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체적 종교적 청결에 깊은 주의를 기울였으며, 예를 들어, 어떤 유출병(流出病)으로 인하여 신체가 불결해졌을 때같은 경우에 옷을 빤다던가 목욕을 해야만 하였읍니다. (레위기 15장) 신체적 청결과 의식(儀式)적 청결은 같은 것이 아니었지만, 위에서 든 예와 같이 상호 관련이 있읍니다. 인분을 처치하는 점에 있어서도 위생적으로 하였읍니다. (신명 23:12-14) 성막과 후에 지은 성전에는 큰 물두멍에 물을 담아 제사장들이 몸을 씻는데 그 물을 사용하도록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의 성소에서 봉사를 드릴 때에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청결하여야 하였읍니다. (출애굽 30:17-21; 역대 하 4:6)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 상태로부터 해방되기 전에(기원전 537년) ‘이사야’는 영감을 받아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너희는 떠날찌어다 떠날찌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찌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찌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찌어다.” (이사야 52:11)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느브갓네살’이 여러 해 전에 여호와의 성전에서 가져갔던 거룩한 기물을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돌아오는 특권을 갖게 되었읍니다. 그러한 거룩한 기물들은 여호와의 깨끗한 숭배자들이 지고 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봉사에 불결한 사람은 사용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12 이사야 52:11의 의미를 확대하고 그 귀절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서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여호와, 신세]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하셨느니라].” (고린도 후 6:14-17) 고대에 해방되었던 충실한 ‘유대’인 남은 자들은 ‘바벨론’과 ‘바벨론’의 거짓 우상 숭배로부터 떠났으며 그들의 불결한 것들에 오염되지 않고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였읍니다. 마찬가지로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을 떠난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종교에 물들지 않고 깨끗합니다. (계시 18:1-8)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사모함으로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숭배합니다.—요한 4:23, 24.

13. ‘바울’은 무슨 이유로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때 부도덕한 사람을 회중으로부터 추방하라고 권고하였읍니까?

13 모든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깨끗해야 함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대 ‘고린도’ 회중에서는 한 때 그들 가운데 부도덕한 사람을 용납한 적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의 동료 신자들에게 그 악한 자를 쫓아 내라고 권고하였읍니다.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어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한 것입니다.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기 때문에 행악자에 대하여 그러한 처분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고린도 전 5:1-6) 그러한 사람을 회중에서 추방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근거한 회중의 영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14. (ㄱ) 왜 그리스도인들은 훌륭한 행실을 유지해야 합니까? (ㄴ) 예수의 제자들은 무슨 성품을 보고 알아볼 수 있으며, ‘바울’은 그 성품을 어떻게 정의하였읍니까?

14 그리스도인이 훌륭한 행실을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베드로 전 2:12) 자기의 행동이 자기가 연합한 회중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또한 시편 필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여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니이다.]” (시 15:1, 2) ‘바울’은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열망하였읍니다. (빌립보 1:9-11) 그는 ‘로마’의 동료 신자들에게 사랑 외에는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권고하였으며(로마 13:8), 또한 영감을 받아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편지에 사랑이라는 특출한 성품을 감동적으로 설명하였읍니다. 그는 설명하기를,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투기하지 않고, 사랑은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또한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바라며 견딘다고 하였읍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고린도 전 13:4-8, 새번역)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 가운데 나타나는 사랑으로써 알아보게 되어 있읍니다. (요한 13:34, 35)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전반적인 면에서 경건한 행동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영적 전을 사모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영적 전과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15.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무슨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여호와의 성소에 모였읍니까? 거기에 참석하면 어떠한 유익을 얻었읍니까?

15 옛날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호와의 성소에 모이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 세 번, 무교병의 절기, 맥추절, 수장절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이는 특권을 즐겼읍니다. (출애굽 23:14-17) ‘예루살렘’에 성전이 서 있었을 때에는, 많은 군중이 그 도시로 향해서 나아갈 때에 기대가 부풀었읍니다. 그곳은 거의 790‘미터’나 높이 솟은 곳이기 때문에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 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시 48:1, 2) 그 곳 성전에 가면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고, 제사장들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었고, 많은 악기의 소리와 ‘레위’인들의 목소리가 화음을 이룬 여호와께 드리는 찬양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읍니다. 초기 성막 봉사는 영적으로 크게 유익하기도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하고 외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시 122:1.

16.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받기 위하여 모일 때에 어떤 유익을 받습니까?

16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일 년에 세 번씩 특정한 성막이나 성전에 모이지 않지만, 성서를 공부하고 토론하기 위하여 그들의 왕국회관에 매주 모이고 때때로 대회에 모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받기 위하여 모일 때에는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합니다. (히브리 10:24, 25) 그들은 집회에서 격려를 받습니다. 19세기 전에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격려를 주고 받은 것과 같습니다. ‘누가’는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였다고 보고하였읍니다. (사도 15:30-32) 동료 신자들과 교제를 하면 또한 영적으로 날카롭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언 27:17.

17. 우리는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연설을 경청하는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충고를 받습니까?

17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최선의 유익을 받기 위하여 집회를 사회하는 종이 질문을 제시할 때에 심각히 생각하도록 하십시오. 질문에 대하여 해설할 때에 자신의 말로 표현하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인 출판물에서 대답을 그대로 읽으면 충분치 않습니다. 그 내용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은 ‘에디오피아’ 내시는 ‘이사야’의 예언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그 예언에 관한 질문에 어느 정도 대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대답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곳의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읍니다. ‘빌립’이 특정한 성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해 줄 때까지는 그가 깊은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사도 8:26-39)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깊이 생각하고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발표하는 것을 주의하여 듣는 사람들은 어려운 성서 문제들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모임에서 성서 강연, 실연 등등의 방법으로 제공되는 지식을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18, 19. 수줍어하는 사람들과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자기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격려가 있읍니까?

18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대답을 하거나 자신의 말을 발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은 수줍어서 다른 사람이 말하도록 하고 자기는 조용히 있읍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영적으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보고 격려를 받을 수 있읍니다. ‘바울’은 다정하게도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를] . . . 부끄러워 말”라고 하였읍니다. (디모데 후 1:7, 8)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고 “실족지 않게 하시”는 여호와께서 분명히 당신을 도와 그리스도인 집회에서나 다른 곳에서 말로 당신의 믿음을 표현하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시 68:19; 121:3.

19 만일 어느 그리스도인이 유창하게 말을 못한다면 어느 정도 ‘모세’와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출하시는데 ‘모세’를 사용하시겠다고 하셨을 때에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주[여호와, 신세]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문제를 해결하여 ‘모세’에게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형 ‘아론’으로 하여금 그와 함께 하도록 마련하셨고 ‘모세’에게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고 확신을 주셨읍니다. (출애굽 4:10-17) ‘아론’이 ‘모세’의 대변자로서 활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세’ 혼자서도 많은 연설을 행하였읍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를 보면 ‘모세’가 ‘아론’의 사후 자기가 죽기 직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연설한 내용이 있읍니다. (민수 20:22-29; 33:37, 38; 신명 10:6; 34:1-8) 그러므로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고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당신의 믿음을 말로 표현하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한 가지 방법이 됩니다. ‘다윗’은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시 22:22) 만일 당신도 마찬가지로 느낀다면,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함으로써 그것을 나타내십시오.

날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20. 현재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자들은 여호와께 어떠한 종류의 제사를 드립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여러 세기 전에 ‘다윗’은 여호와께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하고 외쳤읍니다. (시 145:2) 당신도 그렇게 느낍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여호와를 끊임없이 송축하고 그의 이름을 찬양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였을 때에 동물이건 추수한 곡식이건 여호와께 적절한 제물을 바쳤읍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합당한 제물을 바칩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의 이름을 찬양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범죄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권고를 받았읍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할찌니라].” (호세아 14:1, 2) 현재 여호와의 종들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드리며, 다음과 같은 권고를 받아드립니다.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브리 13:15) 그렇습니다. 그들은 즐거운 왕국 전파와 가르치는 일에서 입의 말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정규적으로 여호와께 그러한 찬양을 드림으로써 당신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한다는 점을 보이십시오.

21.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한다는 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나타낼 수 있읍니까?

21 웅대한 물질적 성막과 여호와의 성전이 더 이상 지상에 서 있지 않지만, 당신이 더 영광스러운 영적 성전을 사모한다는 것을 나타내십시오. 영적 성전 반열과 완전히 협조하십시오. 당신의 값진 것으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그러한 일을 함으로써, 영적 청결을 유지함으로써,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고 참여함으로써, 그리고 날마다 여호와를 기쁘게 찬양함으로써 당신이 여호와의 전을 사모하고 있음을 계속 나타내십시오. 여호와와 그의 숭배와 하나님의 전에 대한 당신의 태도가 ‘다윗’의 태도와 같게 되도록 하십시오.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여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350면 삽화]

하나님의 백성들은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하여 함께 모이는 것을 즐거워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을 영적으로 날카롭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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