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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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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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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인 균형을 배움
  •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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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1/15 31-36면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라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 전 2:21.

1.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마련을 하셨으며, 그 마련으로부터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의롭고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마련을 해 주셨읍니다. 이러한 목적을 염두에 두시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시어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읍니다. (요한 3:16) 그러나 이 웅장한 보상인 생명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하셨고, 또 그러한 면에 있어서, 그는 하나의 완전한 본을 세워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확고하게 걸으려는 사람들은 모두 “그 자취를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베드로 전 2:21) 그러나,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2. 균형을 유지하는 데는 무엇이 내포되어 있읍니까?

2 균형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웹스터 동의어 사전」의 설명을 살펴 봅시다. “균형이란 일방의 부분이나 요소, 요인, 세력이 타방의 그것을 무게나 비례에 있어서 능가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동요가 일어나기까지는 보통 외부로 나타나지 않는 안정 혹은 안녕을 암시한다. . . . 따라서, 빙판에 미끌어져서, 몸의 중심이 옮겨지고, 다리가 몸을 떠받치지 못할 때, 균형을 잃고 넘어진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 다칩니다. 또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균형을 잃으면, 다치고, 심지어는 생명을 잃는 수도 있읍니다. 신체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읍니다.

그리스도인 균형을 배움

3. 영적 균형은 왜 절대 필요합니까? 우리는 영적 균형을 선천적으로 받습니까?

3 그러나, 합당한 영적 균형은 더욱 더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한 필수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첫 인간 부부, ‘아담’과 ‘하와’는 영적 균형을 잃었읍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길로 타락하였읍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죽었으며, 오늘날의 우리를 포함한 그의 모든 후손들은 불균형한 생활을 하게 되었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 가운데서 잉태되었고, 과오 가운데 출생하였으며, 선천적으로 악한 경향을 가지게 되었읍니다.—시 51:5; 로마 5:12.

4. 어떻게 영적 균형을 획득하며, 일단 획득한 후에 그것을 상실할 수 있읍니까?

4 그러므로, 선천적으로 그리스도인 균형을 받고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치 걸음마를 시작한 애기가 부지런히 노력하여 신체의 균형을 배우는 것과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인 균형을 터득하기 위하여 솔선하고 노력하고 끈기를 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위, 제 발로 서게 되었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그리스도인으로서 걸어왔읍니다. 그들은 대속의 희생을 받아들였고, 자신을 이 악한 세상과 세상의 악한 습관으로부터 분리시켰고, 그들의 생명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바치기까지 하였읍니다. (마태 20:28; 요한 17:16; 히브리 10:7) 그러나, 그 후에, 그들은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였읍니다. 무엇인가가 그들로 하여금 균형을 잃게 하였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지 못하게 하였읍니다.

5. 그리스도인 각자는 어떻게 자문해 볼 것입니까?

5 그러므로, 이러한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균형을 배운 후에, 우리는 생활 가운데 어떠한 환경에 접한다 할지라도 충실하게 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계속 밀접하게 따를 수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영원히 살 것인가의 여부는 우리가 그렇게 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읍니다!—베드로 후 3:13; 계시 21:3, 4.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균형

6. 그리스도인 균형을 얻는 데 제일 요건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태도에 있어서, 어떠한 본을 세우셨읍니까?

6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의 제일 요건은 우리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란 무엇입니까? 완전한 본이신 그리스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그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제공하셨읍니다. 항상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숭배를 핵심으로 삼고 모든 다른 활동을 거기에 관련시키셨읍니다. 그의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항상 그의 주된 관심사였읍니다. 동일하게, 우리도 우리의 창조주를 섬기는 것의 중요성, 및 우리가 그분께 은혜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실, 여호와께서는 해, 비,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우리가 먹는 음식물, 및 필요한 영적 마련 등,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마태 5:45; 사도 14:15-17) 우리는 성서 시편 필자와 함께,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음을 쉽사리 시인할 수 있읍니다.—시 36:9.

7.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는 데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균형잡힌 생각입니까?

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소유하고 계신데, 우리가 그분의 선함에 대한 보답으로 무엇을 드릴 수 있읍니까? 우리는 자유 도덕 행위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온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읍니다. (마태 22:37, 38) 그렇게 온 영혼을 다한 헌신은 어떤 균형을 잃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합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4:10) 하나님께 전적 헌신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는 데 절대 필요합니다.

8. 하나님께 전적 헌신을 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누구의 예가 잘 알려 줍니까?

8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여하한 환경 하에서도 하나님께 전적 헌신을 한 그리스도의 본을 따른다고 다른 사람에게 글로 쓰는 것은, 실제 그렇게 행하는 것보다 쉬운 법입니다. 예를 들면, ‘솔로몬’ 왕은 여호와를 충실히 섬기던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고 썼읍니다. (전도 12:13) 그러나, 그 후, ‘솔로몬’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라는 유혹에 넘어갔으며, 자기가 쓴대로 행하지 못하였읍니다. 왜 그랬읍니까?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9.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9 그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악에 대한 인간의 죄의 경향만은 아닙니다. (로마 7:20, 21) 또 다른 커다란 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는 영자, ‘사단’ 마귀의 악한 영향력입니다. 성서는 그를 “이 사물의 제도의 신”이라고 부릅니다. (고린도 후 4:4, 신세) ‘사단’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합당한 관계를 파괴하려고 하며,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균형을 잃게 하는 입장 혹은 환경을 조성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시기 바로 전날 밤, 자기의 사도인 ‘시몬 베드로’에게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사단’의 그러한 계교를 암시합니다. (누가 22:31) ‘베드로’를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사단’이 꾸민 계교를 고찰해 보면, 오늘날 우리가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두려움은 균형을 잃게 한다

10. (ㄱ) 기원 33년, ‘니산’월 14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무슨 성일(聖日)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였읍니까? (ㄴ) 그들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갔을 때는 자정에 가까왔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어떠한 근거가 있읍니까?

10 우선, 그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생각해 봅시다. 때는 기원 33년 초봄이었고, 매년 ‘니산’월에 있는 유월절 날이었읍니다. 예수와 그의 열 두 사도는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하여 ‘유대’인의 하루가 시작하는 오후 6시가 지난 후 ‘예루살렘’ 모처 다락방에 모였읍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면, 유월절 양은 ‘니산’월 14일 “두 저녁 사이”까지 간직하여야 하였읍니다. 이 “두 저녁 사이”라는 말을 어떤 학자들은 일몰과 깊은 박명 사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때에 그들은 그 양을 죽여서 통채로 구워야 하였읍니다. (출애굽 12:6-10) 그러한 동물을 통채로 굽는 데는 4시간 내지 5시간 걸렸을 것입니다. 따라서, 유월절 식사가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죽음의 기념식을 제정하셨을 때는 거의 자정에 가까왔을 것입니다. 그 후,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갔으며, 거기서 예수께서 체포되셨읍니다.—마가 14:17-46.

11. 예수의 피체시, ‘베드로’는 어떻게 하였읍니까?

11 춥고 어두운 그 이른 새벽에, 성서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일이 있었읍니다. “그들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갔읍니다. 거기에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모두 모여 있었읍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멀찍이 따라가서 대제사장의 집 안마당에까지 들어가 하졸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읍니다. 대제사장들과 온 의회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에 대한 불리한 증거를 찾았으나 얻지 못했읍니다. 많은 사람이 거짓 증언을 했[읍니다].”—마가 14:53-56, 새번역.

12. 그 때 예수는 어떤 일을 당하셨읍니까?

12 예수께서는 그러한 거짓 증인들로부터 허위 고발을 받고 계셨읍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영감받은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일도 있었읍니다. “그들 중의 더러는 예수께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린 후에 주먹으로 치면서 ‘자, 그대를 치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 맞추어 보오’ 하고 소리 질렀읍니다. 그리고 하졸들은 예수를 손바닥으로 쳤읍니다.” (마가 14:65, 새번역) 이 얼마나 부당한 짓이었읍니까! 그 폭도는 마귀가 선동한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을 선동하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때리고 모욕하도록 한 장본인은 ‘사단’이었읍니다. 이 모든 일은 ‘베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까? 그는 자기의 주의 본을 따라서, 그러한 역경 가운데서도 합당한 균형을 유지할 것입니까?

13. 예수께서 그러한 일을 당하신 것은 ‘베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읍니까?

13 그 대답은 곧 얻을 수 있읍니다. 성서 기록은 이렇게 계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뜰 아랫편에 있었는데 대제사장의 어린 계집종 하나가 와서 ‘베드로’가 불을 쬐고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얼굴을 노려보며 ‘당신도 ‘나사렛’ 사람 예수와 같이 다녔지요?’ 하고 말했읍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것을 부인하며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고 말했읍니다. 그리고 바깥 뜰로 나가자 그 여종이 다시 거기서 그를 보고 곁에 선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예수와 한 패랍니다’ 하고 말했읍니다. ‘베드로’는 다시 이를 부인했읍니다. 조금 후에 곁에 선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을 건넸읍니다: ‘당신이 ‘갈릴리’ 사람이니 틀림없이 예수와 한 패일거요.’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말했읍니다.”—마가 14:66-71, 새번역.

14.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부인한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4 그러나 그의 대답은 참이 아니었읍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예수를 알았읍니다. 사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그가 예수와 함께 있을 때, 그는 “주님, 저는 감옥이라도 죽음이라도 주님과 함께 갈 각오가 되어 있읍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버리지 않겠읍니다” 하고 큰 소리쳤읍니다. (누가 22:33; 마태 26:33, 새번역) 그런데 ‘베드로’의 태도가 이처럼 급변한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그 이유는 두려움이었읍니다. ‘베드로’는 그러한 경우를 당하자 당황하였읍니다. 예수는 사악한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으며, 진리는 의곡당하고 있읍니다. 옳은 것은 그른 것처럼 보이게 되었고 결백한 자는 죄인처럼 보이게 되었읍니다. 이러한 경우를 당하자 ‘베드로’는 위압에 눌려서 균형을 잃어버렸읍니다. 갑자기, 그의 올바른 충성심은 뒤흔들렸읍니다. 나중에 그는 이것을 크게 애통해 하였읍니다.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성서는 말합니다.—마가 14:72, 새번역.

이러한 일은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다

15. (ㄱ) ‘베드로’가 당한 것과 비슷한 환경을 우리도 당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이 사건으로 인하여 ‘베드로’는 영원히 균형을 잃었읍니까?

15 비슷한 환경이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읍니다. ‘사단’ 마귀는 아직도 그리스도인들의 균형을 빼앗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려고 맹활약하고 있읍니다. 또한, ‘베드로’의 경우에 주효하였던 그 술법을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사용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읍니다. ‘베드로’가 신속히 그의 영적 균형을 되찾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마음 깊이 뉘우쳤고, 간절히 구하여 용서를 받았읍니다. 그는 인기없던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담대한 전도인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죽기까지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을 지켰읍니다. 그러나, 그가 그의 주인,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한 것은 그 얼마나 비참한 경험이었읍니까! 그러한 경험은 단 한번이라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당신은 ‘베드로’가 당한 것과 비슷한 환경에 대비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읍니까? 그러한 환경은 일어날 수 있으며, 아마 일어날 것입니다.

16. 오늘날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균형을 잃는 한 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부당한 두려움 때문에 헌신한 그리스도인이 균형을 잃고 여호와 하나님과의 합당한 관계를 망각하게 되는 경우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읍니다. 그것은 아마 그들이 왕국 소식을 집집으로 전도하는 것을 이웃 사람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일 수 있읍니다. 만약, 고용주가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일 수도 있읍니다. 그것은 실제로 중요한,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망각한 사람에게 무서운 생각이 될 수 있읍니다! 사춘기의 자녀들은 특히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두려워하기 쉽습니다.

17, 18. ‘베드로’가 당한 일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는 어떠한 토론이 교실에서 일어날 수 있읍니까?

17 만약 당신이 어린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금 교실에서 공부하는 중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수업 시간에 여호와의 증인의 성서 신앙에 관한 것이 문제가 되었읍니다. 편견과 애국주의 정신이 강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파괴적이다. 그들은 반정부주의자들이다” 하고 한 학생이 주장합니다. 이것은 예수를 처형하던 당시, 예수에게 던진 비난과 동일합니다. (누가 23:2) “여호와의 증인들은 투표도 하지 않고, 조국을 위해서 싸우지도 않는다” 하고 다른 학생이 맞장구 칩니다. 그러나, 국가의 정치 문제에 대하여 엄정 중립을 지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행한 바였읍니다. (요한 6:15; 15:17-19; 야고보 4:4) 현대의 한 교과서를 보면,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군복무를 하지 않았으며, 관직을 맡지 않았다”a라는 말이 있읍니다. 그러나 학생들과 선생은 그러한 문제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을 잘 모르며, 또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행동에 관하여 잘 모릅니다. 토론은 점점 가열됩니다.

18 “여호와의 증인들은 적-그리스도인이다. 그들은 ‘크리스머스’도 지키지 않는다” 하고 한 여학생이 주장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반감이 고조됩니다. 학생들은 ‘크리스머스’가 이교 축일이며, 성서에서 지키라고 하지 않았으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지켰다는 증거도 없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 문제에 관한 권위 있는 서적들의 증언들을 잘 모릅니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녀에게 생명을 주는 수혈을 반대하고 죽도록 내버려둔다” 하고 비난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얼마나 끔찍한 사람들인가! 하는 기분을 모두가 가집니다. 어린 학생들은 성서가 피먹는 것을 엄히 금하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동물과 인간의 피를 절대 멀리하였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b—레위 17:10; 사도 15:20, 29.

19. (ㄱ) 그러한 환경에 처한 어린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ㄴ) 그러한 입장에 대비하여 언제 준비해야 합니까?

19 바로 그 때, 교실에 있는 어떤 학생이 당신을 보면서, “너는 여호와의 증인이지?” 하고 묻습니다. 그 때 당신은 사도 ‘베드로’가 당한 것과 비슷한 환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하겠읍니까? 당신은 그러한 환경에 어떻게 대처하겠읍니까? 당신은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할 것입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충실한 증인으로 봉사할 것입니까? (요한 17:6; 계시 1:5) 장차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러한 환경에 대처할 준비를 할 때는 지금입니다. 그러한 경우에 예수 그리스도의 담대한 본을 따르기로 확고히 결심해야 할 때는 지금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균형을 잃는 일을 피할 것입니다.

사전 준비

20.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는 데 무엇이 필요하며, 예수께서는 그 필요성을 인정하심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20 여호와 하나님과의 합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우리의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이 필요성을 인정하셨읍니다. 그분의 지상 생애 중 그 중요한 최후 시간에, 특히 그것을 절감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 마지막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계실 때, 믿음을 강하게 해 주는 영적 문제에 관하여 격려하는 말씀을 하셨고, 이러한 말로 결론을 지으셨읍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긴 기도를 하신 다음 그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떠나셨읍니다.—요한 16:33-18:1.

21, 22.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 어떠한 면으로 그리스도를 본받지 못하였읍니까?

21 동산에 가서도, 예수께서는 계속 천적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그분의 인도와 지도를 구하셨읍니다. 혼자 기도하시려고 제자들을 떠나실 때,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에게 “너희는 여기 머물러 있으라 그리고 깨어 있으라”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들은 예수의 지시 대로 행하였읍니까? 성서 기록에 의하면,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셨읍니다. 얼마나 실망하셨겠읍니까! 이것은 앞일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읍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너희는 모두 깨어 있어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마가 14:32-38, 새번역) 실로, 그때는 자정이 훨씬 지난 때였읍니다. 육신은 지쳐 있었읍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의 본을 마땅히 따랐어야 하였읍니다. 그때 그들은 영적 문제에 대하여 보통 이상의 주의를 돌려야 할 때였읍니다. 하나님의 여자의 약속된 씨가 막 상함을 받으려는 때였읍니다! 그 얼마나 중대한 순간이었읍니까!—창세 3:15; 갈라디아 3:16.

22 그러면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두번째에는 예수의 간곡한 교훈을 심중히 받아들였읍니까?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이러합니다.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읍니다. 그리고 돌아와 보시니 그들은 또 자고 있었읍니다. 그들의 눈이 피곤했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읍니다.” (마가 14:39, 40, 새번역)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청종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예수의 교훈을 등한히 여겼읍니다. 세번째 기도하시러 떠나시기 전에, 예수는 또 다시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권고하였읍니다. 그러나, 또 다시, 그의 교훈을 청종치 않았읍니다. 예수께서 “세번째 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아직도 자느냐? 아직도 쉬느냐? 그만하면 넉넉할 것이다. 때가 왔다. 보라,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하고 말씀하셨읍니다.—마가 14:41.

23. (ㄱ)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게 된 요인은 틀림없이 무엇이었을 것이며 따라서 무엇을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칠 수 없읍니까? (ㄴ) ‘사단’이 오늘날 더 활동적이라고 믿을 만한 어떠한 근거가 있읍니까?

23 제자들이, 예언된 바와 같이, 잠시 후에 예수를 버리고 도망간 원인은 바로 이러한 무기력하고 조는 상태가 아니었겠읍니까? (마가 14:50; 마태 26:31; 스가랴 13:7) 그리스도인이 믿음의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전의 준비와 영적 강화책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읍니다. 그 당시도 그러했고 오늘날도 그러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은 ‘사단’이 과거보다 더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서 예언은 바로 이 세대에, 즉 최근에, 그와 그의 악귀들이 하늘에서 쫓겨났으며, 하늘로부터의 음성에 의하면 쫓겨난 결과는 다음과 같읍니다. “땅과 바다는 화 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 갔음이라.” (계시 12:12) 현재 우리는 그 화 있는 짧은 때에 살고 있읍니다!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의 균형을 빼앗고,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하고 있읍니다.

24.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24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가 영적으로 무기력해질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영적으로 격동시키고, 목전에 임한 믿음의 시련을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읍니다. 당신이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열심히 활동하였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거나 그분의 은총을 상실할 위험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태도를 가지지 마십시오. 회중 집회에 빠져도 든든하며, 영적 문제를 토론할 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히브리 2:1; 10:24, 25) 우리 모두는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영적으로 깨어 있고,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자서, 그리고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는 기도도 등한히 할 수 없읍니다. 하나님과의 정기적 통신으로 강화된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는 균형에 절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으십시오. 그는 인간 중에서 가장 영적으로 강한 분이었지만, 꾸준히 기도하셨읍니다. 특히, 인간 생애의 마지막 밤에 그렇게 하셨읍니다. 우리도 영적 균형을 유지하려면, 그와 꼭 같이 해야 합니다.

상을 항상 바라보라

25. 예수께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읍니까?

25 예수께서 영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천적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즐거움과, 영원한 생명을 받으리라는 즐거움을 항상 중요한 것으로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격려를 받고 있읍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형주]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 12:2, 신세 참조) 그러므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예수의 본을 따르십시오! 당신의 창조주를 영화롭게 하고, 그분으로부터 생명의 상을 받는 특권을 항상 바라보십시오!

26. 하나님의 이익을 우리의 생활에서 첫째로 두기가 왜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까?

26 그러나,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익을 우리 생활에서 첫째로 두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특히 이 세상에 보이는 여러 가지 유혹들이 있을 때에 그러합니다. 예를 들면 돈과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들이 유혹이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 때문에 균형을 잃어버렸읍니다. (디모데 후 4:10)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지 못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아버지의 이익을 항상 첫째로 두셨던 것입니다. 사실상, 예수께서는 일신의 안락을 완전히 이차적인 문제로 하셨기 때문에, 한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읍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누가 9:58.

27. ‘모세’와 ‘다윗’은 어떠한 훌륭한 본을 세웠읍니까?

27 족장 ‘모세’도 그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숭배를 첫째로 두는 좋은 본을 세웠읍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양육받았으며, 따라서, 그 고대 강국의 통치자의 왕궁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서 수치를 당할 것을 택하였읍니다. 왜? 성서 기록에 의하면, 그는 “보이지 아니 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히브리 11:23-27) 그렇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여호와께 그의 주의를 집중시켰읍니다. 여호와와 합당한 관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모세’는 모범적으로 영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읍니다. 그는 만물이 여호와께 속하였으며, 인간은 그 보답으로 하나님께 숭배와 헌신만을 드릴 수 있음을 인식하였읍니다. 그 후, 시편 필자 ‘다윗’은 그 동일한 균형잡힌 견해를 가지고,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셨다고 기록하였읍니다.—시 16:8.

28.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까?

28 그러므로, 합당한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도 그러한 견해를 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현재는 물질의 유혹이 대단히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물질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면, 균형을 잃을 위험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항상 위에 있는 것을, 그리고 당신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기적인 물질 추구를 당신의 주 관심사로 삼지 마십시오. (골로새 3:2)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고, 영원한 생명의 상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십시오. 그는 당신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읍니다.—베드로 전 2:21.

[각주]

a ‘하버튼’, ‘로드’, ‘스페어스’ 공저, 「세계사, 인간의 업적의 이야기」, 117면. (1962년판)

b ‘맥클린톡’과 ‘스트롱’ 공편 「백과 사전」 1권 834면에 보면, 피에 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이 인간의 피를 마시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이성없는 동물의 피를 먹는 일까지도 그들에게 불법이었다. 그 동일한 입장을 증거하는 수많은 증거들을 그 후대에서 볼 수 있다.”

[33면 삽화]

균형을 잃어 버린 ‘베드로’는 주를 부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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