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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69 4/1 154-159면
  • 당신 자신과 당신의 가르침을 살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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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 자신과 당신의 가르침을 살피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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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4/1 154-159면

당신 자신과 당신의 가르침을 살피라

“네 자신과 너의 가르침에 끊임없이 주의하라. 이렇게 하는 것을 계속하라, 이렇게 함으로 너는 자신과 너에게 듣는 자들을 함께 구원할 것이다.”—디모데 전 4:16, 신세.

1. (ㄱ) 누가 언어를 창조하셨으며, 무슨 목적으로 사용되었읍니까? (ㄴ) 첫 남자는 이 전달 수단의 선물을 어떻게 사용하였읍니까?

성서를 보면, 그 서두로부터 몇 줄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음을 볼 수 있읍니다. 그분은 창조에 관한 여러 가지 지시를 발표하셨읍니다. 그분은 자신의 사업에 이름을 붙이셨읍니다. 그분은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할 일을 주셨으며, 각자의 활동에 한계를 정해 주셨읍니다. (창세 1:1-25) 조금 더 읽어나가면 여호와께서 남자와 그의 아내를 창조하셨음을 볼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에 관하여 지시하셨읍니다. (창세 2:16, 17) ‘아담’은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와’는 나중에 그 지시를 이야기할 수 있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들과 . . . 각종 새를 지으시고 . . .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오셨읍니다. ‘아담’은 말하였고,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의 이름이” 되었읍니다. (창세 2:19, 20) 여호와께서 첫 여자를 아담에게 데리고 오셨을 때 ‘아담’은 말하였읍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창세 2:23) 그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계속 말해 왔읍니다.

2. 언어는 인간에게 귀중한 것입니까? 어떠한 면으로 그러합니까?

2 인간 사이의 의사 전달은 인간에게 항상 필수적인 것이 되어 왔읍니다. 그것은 학문을 촉진시킵니다. 그것은 가르치는 데 필요합니다. 인간은 언어에 의하여 동료 인간과 정신적 접촉을 할 수 있읍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남에게 알리고 동시에, 남이 생각하는 바를 알아 내는 도구는 바로 이 언어입니다. 구어(口語)를 통하여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증가됩니다. 애기가 단단한 음식물을 먹고 혀의 근육을 많이 사용하게 됨에 따라 발음을 점점 더 명확하게 한다는 설도 있읍니다. 언어를 구사하는데 훌륭한 솜씨를 보인, 사도 ‘바울’은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았다고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3:11) 일반적으로 볼 때, 인간은 말하기를 좋아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말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말을 합니다. 지금까지 기록되어 왔고 보존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든 말을 살펴 보기란, 우리의 짧은 인생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면에 시간을 들이고 검토하고, 또 사용한다면, 당신의 언어 구사력은 발전될 것이며, 다른 활동의 경우와 같이, 그 결과로 더 많은 즐거움과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ㄱ) 말하는 데 필요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말하는 능력을 어떻게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읍니까?

3 우두머리 설계자이시며 인간의 조물주이신 여호와께서는 인간이 말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시켜 주신 분입니다. 즉 입술, 혀, 목구멍을 주셨고, 몸이 공명판(共鳴板)의 역할을 하여 유쾌하고 풍부한 의사 전달을 하도록 해 주셨읍니다. 이러한 것을 통하여, 우리는 남에게 격려적인 소식을 전할 수 있고, 동시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읍니다. “언어와 언어 기능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선물”이라고 ‘노아 웹스터’는 말하였읍니다. 오래 전, 예언자 ‘이사야’는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을 알게 하”셨다고 기록하였읍니다. (이사야 50:4) 시편 71:8, 15, 23, 24의 필자는 이 훌륭한 도구를 가치있게 사용하는 한 가지 방법을 지적하여, “주를 찬송함[이] . . . 내 입에 가득하”며 “주의 의[를] . . . 내 입으로 종일 전”하며,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이 기뻐 외치며”, “내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하리라고 하였읍니다.

4. (ㄱ) 우리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격려한 대로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읍니까? (ㄴ) 단어는 어떠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읍니까?

4 그로부터 500여년 후, ‘바울’은 우리의 언어 도구를 올바로 사용할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읍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에베소 4:29) 디모데 후서 2:2, 24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 . .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 하[느니라].” 언어는 가르치는 도구입니다. 단어 하나 하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어가 여러 개 모여서 감정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매섭고 잔혹하고 거칠고 냉혹하고 비천한 것이 될 수 있고, 혹은, 은혜롭고 부드럽고 사랑에 차 있고 친절하고 상냥한 것이 될 수 있읍니다.

어휘의 필요성

5. (ㄱ) 떠듬 떠듬 읽거나 말문이 막히는 것은 보통 무엇의 표시입니까? (ㄴ) 그것은 원래 단어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의미입니까? (ㄷ) 왜 인간은 말을 해야 합니까?

5 당신은 남을 온유한 방법으로 가르치기에 충분한 어휘를 가지고 있읍니까? 당신은 간신히 의사 소통이 되는 것, 즉 단어를 활용하는 즐거움이라기 보다는 겨우 그 자리만 모면하는 것으로 만족하십니까? ‘윌리암 암스트롱’은 「공부는 힘든 일이다」란 책 39면에서 “정신적으로 나태한 사람은 그 사용하는 어휘의 범위도 좁다고 말하였읍니다. 몇백 단어만 알면 겨우 의사 소통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몇천 단어를 알면 인생이 좀 더 다채로워 질 것이며, 남을 온유하게 가르치는 사업을 만족스럽게 수행할 수 있읍니다. 만일 당신이 읽을 때, 떠듬 떠듬 읽거나 막힌다면, 혹은 당신이 말할 때,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아마 그 원인은 당신이 사용하는 어휘의 범위가 좁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도구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또 그 도구를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을 기울임으로 개선시킬 수 있읍니다. 지혜롭기로 유명하였던 ‘솔로몬’도 그러한 노력을 하였다는 것은 전도 12:10의 다음과 같은 말로 보아 알 수 있읍니다.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 당신의 언어에서 사용 가능한 단어를 살펴 보십시요. 그러면 당신은 새로운 단어들을 많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의 단어 수는 450,000개 이상입니다. (「웹스터 신 국제 사전」, 6면) 사용할 수 있는 단어 수가 그렇게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사상을 완전히 제공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산 사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확신과 의미가 들어 있는 글을 쓴 성서 필자들의 훌륭한 본을 따라야 합니다. 그들의 글에는 지혜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하고 감탄하였읍니다. (로마 11:33, 34)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 크신 스승의 지도 아래 얼마나 크게 발전하셨는가 유의하십시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골로새 2:3) 인간은 무제한의 지식의 보고와 방대한 표현의 수단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말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의사 전달을 해야 합니다.

6. 언제 말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습니까?

6 집을 짓거나, 옷을 만들거나, 벼를 심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무엇을 하든지, 그것을 하고 나면, 만족과 보람을 느낍니다. 남에게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설명해 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말이 상대방의 마음 속에 사상을 전달하고 그 사람이 그 사상을 시인할 때, 당신은 기쁩니다. 그래서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잠언 15:23) 여호와의 말씀은 항상 성취되기 때문에 그 분은 이 면에 있어서 완전한 본이 되십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이사야 55:11.

7. (ㄱ) 언제 우리는 우리의 어휘를 발전시키는 일을 중단해야 합니까? (ㄴ)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어떻게 하셨는지 설명하십시요.

7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하여는 노력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읍니다. “나는 너무 늙어서 배울 수 없다”라든가 “나는 너무 바빠서 공부할 시간이 없다”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출판업계의 한 잡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가장 유명한 400명의 정치가, 화가, 군인, 시인, 작가들을 살펴 본즉, 그들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35‘퍼센트’는 60-70세에, 23‘퍼센트’는 70-80세에, 8‘퍼센트’는 80세를 넘어서 이루어진 것이다.” (「프린팅 인프레숀」, 1966년 7월호, 74면) 약 300년 전, ‘세익스피어’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어떤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항상 활동적으로 생각하고, 항상 새로운 사상을 받아 들일 용의를 가지고 있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 . 그들은 항상 현재의 최선을 즐길 것이며, 미래의 최선을 최초로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트리온 에드워즈’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연령은 세월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기질과 건강에 달려 있다.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늙었으며 어떤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 것 같다.” (‘트리온 에드워즈’저 「사상 신 사전」, 13, 15면) 인생의 험하고 복잡한 여로를 걸어온 노인이 기회가 부족하여, 지혜를 얻지 못한 것은 실로 애석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애석한 일은 참 지혜를 얻을 기회를 가진 노인이 “나는 너무 늙어서 배울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죽을 때까지 배우기를 계속한 충실한 남녀에 관한 기록으로 가득차 있읍니다. 당신은 매일 매일 진보해야 할 더 중요한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다. 즉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진리를 배우고 당신의 어휘를 증가시키는 일은 하루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시간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약간의 단어를 사용하여 큰 일을 수행할 수 있읍니다. 그 좋은 예는 기원 31년, ‘갈릴리’의 아름다운 언덕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입니다. 이 연설은 마태 5장부터 7장까지 석장에 걸쳐서 107절로 되어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시는 데 621종의 단어들을 사용하셨읍니다. (「신세계역」에서 실제 세어 본 것) 이 연설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며, 또 들을 수 있읍니다. 성서에 의하면 예수께서 이 연설을 마치셨을 때 반응이 이러하였읍니다. “무리들이 그 가르침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태 7:28, 29) 비그리스도인들도 이 연설이 명연설 중의 명연설임을 인정합니다. (‘마하트마 간디’, 「파수대」(영) 1958년 139면.) 성서에서 이 연설을 읽는 데는 15분 정도 걸릴 것입니다. 그 연설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우리가 의미 깊은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많은 것을 알려 주십니다. 당신은 이 특이한 연설이 단순한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사상을 전달하고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상을 전달하신 것입니다.

8. (ㄱ) 의사 전달상 생기는 현대의 문제를 묘사하십시오. (ㄴ) 의사소통이 안되는 예들을 말해 보십시오.

8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정교하게 설계된 언어 형성 및 발성 기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사용 가능한 방대한 수의 단어, 표현 및 사상 전달 음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최대 난제 중의 하나는 의사 전달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읍니다. 회사에서는 경영진과 노무자 간의 의사 전달이 안되기 때문에 불평이 생기며, 각 부서는 종속된 관계 부서에 절대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차질이 생깁니다. 종교 단체의 지도자들은 신도들에게 말하는 데 있어서, ‘모세’나 예수의 본을 따르지 않습니다. 정치가들의 말을, 보통의 경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국민은 그들의 말을 꼭 신뢰하지 못합니다. 상인들은 자기네들 물건만 팔려고 하며, 과잉 선전을 하고, 소비자의 욕망과 욕구를 일으키려고 하기 때문에, 누구 말이 옳고 누구 말이 틀린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합니다. 다른 장애물은 사상을 막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말하고 쓰지만 단지 동료 과학자들만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뿐입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합니다. 의사(醫師)들은 그들끼리만 의사 소통이 됩니다. 환자가 자기 병에 관하여 자세히 알려면 자꾸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래도 완전하게 알 수가 없읍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읍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과 문제를 토론하는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읍니다. 사실상 대다수의 청소년은 자기네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또 그 방식대로 말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그러한 말을 이해할 수 없읍니다. 사람들은 왜 말하지 않습니까?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왜 입을 다물고 있읍니까?

충고를 주는 일

9, 10. (ㄱ) 많은 사람들은 충고 주는 일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ㄴ) 성서는 그러한 견해를 추천합니까? 성서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9 그 동일한 문제의 다른 면은, 인간은 항상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개선하도록 충고하거나 앞에 놓인 위험을 경고해 주기를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읍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카운슬러’를 찾아 가며, 부모들은 자녀들이 교훈을 받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 주며, 회사에서는 의사 전달을 위한 중재자를 두며, 통치자들은 대사들을 파견합니다.

10 심지어 그리스도인 전도인까지도 남이 문제를 피하는데 도움이 될 몇마디의 말이나 충고를 주기를 꺼려합니다. 아마 “그러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감독자의 책임이니까” 하고 말할지 모릅니다. 성서는 갈라디아 6:1에서 다음과 같이 격려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영적 자격을 가진, 신세]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영적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회중의 감독자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길가에 “위험—다리가 끊어졌음”이란 표지를 보았을 때, 당신은 그 표지를 그린 사람의 능력을 의심하겠읍니까? 혹은 당신의 생명을 구해 준 그 경고에 감사하겠읍니까? 그리스도인 행동을 규제하는 원칙에 관한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이해하였다면 자기 형제가 그 원칙을 범하게 될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그에게 경고해 주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형제가 위로나 격려를 필요로 한다면, 거의 누구든지 그러한 종류의 도움을 베풀 능력이 있읍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 5:11에서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의사 전달 능력을 발전시킴

11. 우리의 의사 전달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성서는 어떻게 도움을 줍니까?

11 우리는 어떻게 의사 전달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읍니까? 당신은 어떻게 의사 전달 방법 즉 당신의 어휘를 발전시킵니까? 우리는 어디서 믿음직한 도움과 정확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읍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성서는 이 문제에 있어서 최선의 지침서입니다. 왜냐 하면 성서는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요점을 명확하게 하며, 그 사상은 의뢰할만 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저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성서에 포함된 영감받은 지식을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성서에 사용된 용어와 표현들이 적합한 것이 되도록 통제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성서를 매일 읽으면, 우리는 곧 그 동일하게 강력한 의사 전달 수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휘력이나 적어(適語) 선택력을 늘리는 것만이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는 격려적이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식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풍부한 어휘를 구사하면서도, 혀를 마구 놀려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읍니다. 잠언 12:18은 그러한 대조를 다음과 같이 잘 묘사합니다.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요구하시는 바에 관한 진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12. 여호와의 요구 조건을 이해하는 것이 왜 우리의 언어 구사력을 발전시키는 데 절대 필요합니까?

12 남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말하기 전에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사상 전달에 필요한 단어를 모른다면 생각할 수 없읍니다. 우리에게 생각하는 바가 없다면 남에게 유익한 재료를 말해 줄 수 없읍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지혜는 잠언 5:1, 2에서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어떻게 연관시켰는가 유의하십시오.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사고력, 신세]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이 훌륭한 교훈을 무시할 때, 우리는 잠언 29:20에 묘사된 사람같이 될 것입니다.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명심할 목표는 유용한 어휘수를 늘리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여호와의 목적에 관하여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겠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리의 보고를 탐색함에 따라서, 여러 가지 환경하에서 남에게 진리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단어나 표현이 부가적으로 증가될 것입니다. ‘바울’이 “네 자신과 너의 가르침에 끊임없이 주의하라”고 말한 요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디모데 전 4:16)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읍니다. (히브리 11:23-28) 그러나 ‘모세’같은 사람도 자기가 명확하게 의사 전달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여호와께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출애굽 4:10) 남에게 격려의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 “사람의 입을 지으”신 분을 ‘모세’에게 지적해 주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출애굽 4:11.

13. (ㄱ) 성경에서 묘사한 어떠한 도구가 이 필요한 의사 전달 면에서 본이 됩니까? (ㄴ) 어떠한 방법으로 본이 됩니까?

13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집안 식구를 먹이도록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을 임명하셨으며, 이 “종”은 금일까지 진리를 가르치는데 선두에 서 왔읍니다. 이 충성된 종의 조직체는,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하여, 여러 나라에서 여러 언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있어서 훌륭한 본이 됩니다. 이 “종”의 감독 아래 기록된 출판물들에 사용된 언어는 명확하며, 이해하기 쉽고, 사람들로 하여금 부단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향하게 하는 사상을 제공합니다. 세계 방방 곡곡에 있는 회중에서의 집회 순서는 이 “지혜있는 종”이 믿음을 세우기 위하여 준비한 것이며,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증가시킴으로 옵니다. (로마 10:14) 이 충성된 “종”이 여호와의 말씀의 원칙들을 담대하게 고수하는 데는, 확고하면서도 위엄이 있고 힘을 주는 정신이 깃들어 있읍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인간의 지식보다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이 충성된 “종”만이 집안 식구에게 영적 양식을 공급하는 일을 하며, 여호와의 풍부한 축복을 계속 받고 있읍니다.—말라기 3:10.

우리의 수단을 증가시킴

14. 잠언 13:20의 충고를 적용할 때,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가르침을 개선시킬 수 있읍니까?

14 우리의 가르침을 살피고 우리의 전달 수단을 증가시키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는다고 한 잠언 13:20의 제안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에베소 5:15에서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라고 기록한 바와 같이, 공부하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함을 인정할 필요가 있읍니다. (예레미야 10:23) 성서 기록은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졌다고 보고합니다. (사도 9:31)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읍니다. (창세 6:9, 신세) 예수의 행로는 우리에게 본이 됩니다. (요한 1서 2:6) 어떤 사람과 함께 걷는다면 그 사람과 연합하고 그 사람과 함께 일하고 그 사람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2:1-3에서 이 사실을 알려 주고 있는데 그 내용의 일부는 이러합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 .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서로 돕고 또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영과 장성한 사람들로부터 격려를 받음으로, 성서 원칙에 관하여 동일한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시편 119:63은 하나님의 현명한 종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

15.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진보를 어떻게 설명합니까?

15 성경적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 모든 발전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후 3:5, 6에서 알려 주는 바와 같이, 틀잡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

16. 성서 원칙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축복을 더 말씀해 보십시오.

16 성서 원칙으로 인도를 받는 사람들과의 교제는 귀중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안심이 됩니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도 실수를 하고 그른 일을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성서 가르침을 근거로 그들에게 호소하면 그들은 당신의 말을 들을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로 가득찬 오늘날, 성경으로부터 시정을 받고, “제가 잘못했읍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은 실로 축복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진실로 현명한 사람들입니다.

17. (ㄱ) 표현력은 신속히 발전됩니까? (ㄴ) 우리가 성장하는가를 특히 어떠한 면으로 살펴야 합니까?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17 우리는 모든 면으로 조금씩 조금씩 자라갑니다. 지식을 증가시키고 지식을 활용하는 수단을 증가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바로 이러한 면을 살펴야 합니다. 즉 적은 일들, 조그만 기회들을 살피십시오. 이렇게 할 때, 당신은 반드시 점진적으로 발전할 것이며 여러 해가 지난 후에는 큰 발전을 볼 것입니다. 회중 연단에서 연설할 특권을 받았을 때, 당신은 청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신의 사상을 계획합니까? 당신은 자주 사용되지 않는 단어를 찾아 보아, 그 단어를 올바로 사용하고 올바로 발음하려고 노력합니까? 당신이 「파수대」 연구에서 낭독 임명을 받았을 때, 당신은 한마디도 막히지 않고 모든 단어를 발음할 수 있도록 준비하십니까? 당신이 호별방문 할 때, 우리는 집주인들보다 성서에 관하여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여 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아주 안해 버리지는 않습니까? 부모되시는 분들은, 자녀들과 함께 매일 조금씩 자라가는 것을 소홀히 여기며, 의사소통이 안된다고 하여 자녀들이 ‘텔레비’만 보도록 방치하십니까? 이것은 마치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당신이 매일 조금씩 노력하여, 한 두 개의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또 그것을 사용한다면, 얼마 안있어서 당신은 수백개의 단어를 알게 될 것이고, 그 언어를 말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새로운 표현들과 단어들을 계속 배움에 따라서 당신의 말은 더 다채로워 질 것이며, 의미가 깊어지고, 표현력이 강해지고, 남에게 대단히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참을성을 가지고, 매번의 조그만 진보로 기뻐하십시오. 시간을 바치고 정기적으로 훈련을 받은 결과, 말못하던 애기가 말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8. (ㄱ)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참 거울은 무엇입니까? (ㄴ) 어떠한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18 여호와께서 우리 자신을 살피도록 마련해 주신 거울, 즉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봄으로 자신을 살피십시오. (야고보 1:25) 자신을 공평하게 평가하십시오. 지나치게 까다로운 결과로 조급해지고 피로해지는 일을 피하십시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과 같이 사용하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표준으로 삼아서 모든 것을 결정할 필요는 없읍니다. 우리가 따를 유일한 본은 그리스도 예수이시며, 예수께서는 자기의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11:30) 만약 당신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남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무엇을 하든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반면, 지식을 발전시키고 능력을 개선하는 데 관하여 무관심한 것도 현명치 못합니다. 진보는 일을 의미합니다. 현대 사람들은 일을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이 부면에 있어서 어떻게 올바른 균형을 취할 수 있는가를 더 살펴 볼 필요가 있읍니다. 다음 기사에서 그 문제를 살펴 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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