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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가오는 천년 평화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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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파70 1/1 3-15면

다가오는 천년 평화

“그들이 ···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계시 20:6.

1. 달에서의 행성의 평화와 이 땅에서의 평화 중 사람들은 어느 쪽을 원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명의 우주 비행사가 1968년 ‘크리스마스’ 때에 인조 우주선을 타고 달 주위 궤도를 열 바퀴 돌면서 단지 112‘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달 위를 관찰하였읍니다. 그 때 달의 상태는 매우 평화스러웠읍니다. 그들이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였을 때, 그들은 전쟁이 있는 세계, 3차 세계 대전, 핵전쟁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는 세계로 돌아온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환란으로 가득찬 땅으로 돌아온 것을 매우 기뻐하였읍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행성의 평화를 즐기기 위하여 달에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이겠읍니까? 사람들이 보통 원하는 것은 바로 이 땅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망은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천년 평화를 즐길 곳이 바로 이 땅이며, 그 평화는 멀지 않아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생전에 이 평화가 시작된다면 어떠하겠읍니까? 당신은 아마 최고의 경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2, 3. (ㄱ) 사람들은 왜 세계 통치자들에게 영속적인 세계 평화를 설립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지 못합니까? (ㄴ) 인구 폭발은 어느 정도이며, 그것은 어떻게 평화에 영향을 미칩니까?

2 오늘날의 세계 상태는 틀림없이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일으킬 것입니다. “누가 천년 평화를 가져와서 그것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평화스럽게 하는 자와 평화를 유지하는 자로써 사람들이 지금까지 세상사를 처리해온 것을 볼 때 사람에게 이 거창한 일을 할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영속적인 세계 평화를 설립하는 데 놓여져 있는 장애가 사람으로서는 넘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당신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잘 알고 있고, “인구 폭발 방지 운동” 기관에서 거듭 광고하고 있는 “인구 폭탄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표제의 전면 신문 광고를 읽었을 것입니다. (「뉴욕 타임즈」, 1969년 2월 9일자) 또한 당신은 “영국인이 지상 지옥을 예언하다”라는 충격적인 표제 아래 1968년 11월 23일에 영국 ‘런던’에서 「보수 협회」 회장 ‘리취-칼더’ 경의 성명을 읽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 성명에는 이런 말이 들어 있읍니다.

3 “나는 사람들이 인구 폭발을 마치 장래 일처럼 말하고 세계의 굶주림이 다만 위협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수억의 사람들이 이미 굶주리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하다. ··· 내가 염려하는 것은 사람들의 영혼을 사후 지옥에서 건지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지옥에서 건지는 것이다.”—「뉴욕 타임즈」, 1968년 11월 24일자.

4. ‘헉슬리’ 씨는 세계의 가장 긴급한 문제가 무엇이라고 지적하였으며, 현재 어떠한 의문이 마음의 평화를 앗아 갑니까?

4 이 말은 십사년 전(1954년 9월 7일)에 같은 도시에서 세계 정부를 위한 의회 회의에서 연설한 전 ‘국제 연합 교육 과학 문화 기구’ 총장 ‘줄리언 헉슬리’ 씨의 말을 뒷받침해 줄 뿐입니다. 그때 그는 “세계의 가장 긴급한 문제는 인구 증가로서 그것은 식량 공급을 압도할 기세이다.”라고 말하였읍니다. (1954년 9월 8일자 「뉴임 타임즈」지) 그러므로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십 사년이 지나면 인구와 식량 문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묻게 됩니다. 이치적인 결론은 우리에게 평화스러운 마음을 갖게 하지 않습니다.

5. 소규모적인 전쟁을 해결한다 해도 왜 전면적인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며, 극동에서는 어떤 골치거리가 확대되고 있읍니까?

5 월남 전쟁이나 중동 전쟁의 소규모적인 전쟁이 해결된다고 해서 전면적인 변화가 올 수는 없읍니다. 양대 정치 집단의 적의는 아직도 그대로 있읍니다. 1968년 12월 6일자 「뉴욕 타임즈」지 (96면, 4, 5항)는 “국내 문제”를 논의하면서 “··· 냉전에 광범위한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결코 끝났다고는 볼 수 없다. 그 위험성은 감소되지 않고 있다.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그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읍니다. 이 신문은 소련 ‘불럭’의 계속적인 붕괴가 ‘러시아’로 하여금 새롭고 무모한 짓을 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표시하였읍니다. 이것은 ‘소비에트’ 연맹의 바로 옆집인 중공이 ‘러시아’에게 큰 문제거리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사실 중공은 나머지 세계에 대해서도 큰 문제입니다. 불안한 사실은 중공이 막대한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 뿐 아니라 이제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핵 국가가 된 것입니다. 중공이 ‘미사일’ 분야에 계속 성공해서 1972년까지 핵무기 저장을 시작할 수 있게 되면, 그 때부터 계속 저장하면, “1975년경까지는 15내지 20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배치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뉴욕 타임즈」지 1969년 2월 3일자.

6, 7. 1969년 1월 20일에 누가 세계 평화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으며, 어떠한 말로써 그렇게 하였읍니까?

6 인간의 힘으로 세계 평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너무나 벅찹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북미합중국 제37대 대통령인 것같읍니다. 1969년 1월 20일에 그는 취임식에서 한 그의 연설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7 “본인은 오늘 하나님 앞과 동포 앞에서 합중국의 헌법을 옹호하고 변호할 것을 선서하였읍니다. 본인은 이제 이 선서에 이 신성한 공약을 부가합니다. 즉 본인은 본인의 직위와 본인의 정력과 본인이 짜낼 수 있는 모든 지혜를 평화를 이룩하는데 바칠 것입니다. ··· 역사가 수여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영예는 평화스럽게 하는 자라는 칭호입니다. 이제 이 영예가 미국에 손짓하고 있읍니다. 즉 미국은 마침내 세계를 혼란의 골짜기에서, 문명의 개화기부터 인간이 꿈꾸어 온 평화의 높은 평지로 올려 놓을 기회를 가지고 있읍니다. 우리가 만일 성공한다면, 장래 세대들은 지금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가 기회를 잘 다스려서 인류를 위해 세계를 안전하게 만드는데 도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 우리의 앞길에는 절망의 잔이 아니라 기회의 잔이 놓여져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으로서가 아니라 기쁨으로 이 기회를 포착합시다. 그리고 ‘다 같은 동승자(同乘者)로서’ 앞으로 전진하며, 믿음을 굳게 가지고, 우리의 목적을 공고히 하고, 위험에 조심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계속 유지합시다.”—「뉴욕 타임즈」지 1969년 1월 21일자.

8. 새로 취임한 대통령은 예수의 어떠한 지복(至福)의 말씀을 생각한 것같으며, 그러나 그가 어떠한 성서 예언을 생각하였던 것은 분명합니까?

8 이 대통령은 아마 자기가 신봉한다는 예수의 그 유명한 말씀을 생각하고 말한 것 같습니다. 예수의 생애에 관한 ‘마태 레위’의 기록을 보면 예수의 이런 말씀이 있읍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 (마태 5:9) 그러나 이 대통령이 기원전 8세기에 있던 고대 예언자를 생각하였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왜냐 하면 그가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대통령 부인이 펴서 포개 놓은 두 개의 가정용 성서 위에 놓았는데, 거기 펴 있는 곳은 ‘이사야’의 예언서 2장 4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뉴욕 타임즈」지 1969년 1월 20일 제1면 끝란) 이 성귀에 그의 왼손을 얹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계획된 것이었읍니다. 이 성귀에는 2천여년 전의 “하나님의 뜻”이 표현되어 있으나 이제 이 대통령은 거기에 “사람의 약속”을 부가하였읍니다.

정치적 지배자들에게 달려 있는가?

9. 그 성서 예언의 실현은 조건부입니까? 그렇다면 전쟁없는 세계는 어떠합니까?

9 만일 이사야 2장 4절에 있는 예언의 말씀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말한 것이라면, 그것은 틀림 없이 실현될 것이며, 언젠가는 반드시 세계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예언의 말씀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데 어떤 조건이 필요합니까? 이것이 실현되는 것은 “사람의 약속”에 달려있읍니까? 이것의 실현은 여러 나라들과 국민들의 정치적 지배자들의 “약속”에 달려 있읍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 땅에 전쟁없는 세계가 올 가망이 있읍니까?

10, 11. (ㄱ)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세계 상태를 가져오는 일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가져오는 방법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길과 자신의 길을 어떻게 비교하십니까?

10 세계적으로 저명하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종국적인 세계 상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종교적 감정에 사로잡혀 진실하게 그들의 정치적 지위와 그들의 정력과 그들의 모든 지혜를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의 세계 상태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사용하고자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사람들이 약속을 해놓고 그런 약속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서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노력하지 않고, 이 세상 지혜에 따라 그들대로의 방법으로 노력한다면 어떻게 되겠읍니까?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그들의 “약속”을 성취시키려는 노력을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읍니까? 그런 “약속”을 한 사람들이 사실상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게 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현재까지 영속적인 세계 평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노력한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이었읍니까? 인간이 노력한 방법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아 그들의 방법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 ···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이사야 55:8-11.

12, 13. (ㄱ) 제 일차 세계 대전 후에 또 다른 세계 대전을 막기 위한 사람의 방법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미국 그리스도 교회 연합회는 어떻게 그 길이 하나님의 길이라고 보증하였읍니까?

12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나 기록케 하신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치 세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약속”은 어떠합니까? 1918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그런 사람들은 또 다른 세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열중하였읍니다. 평화 조약과 관련이 있는 정치인들이 전쟁을 방지하려고 어떤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읍니까? 평화 조약에 소위 국제 연맹 계약이라는 것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하였읍니다. 평화 조약이 발효하자 국제 연맹도 발효하였읍니다. 국제 연맹을 지지한 사람들은 그 기구를 통하여 여러 가지를 약속하였읍니다. 국제 연맹은 마치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보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교직자들이 연맹을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미국 그리스도 교회 연합회는 마치 하나님의 대변자나 되는 것처럼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13 “이러한 연맹은 단순한 정치적 조치가 아니라, 지상의 하나님의 왕국의 정치적 표현이다. ··· 교회는 선의의 영을 줄 수 있으며, 이것이 없이는 국제 연맹은 결코 존속할 수 없다. ··· 국제 연맹은 복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 복음과도 같이 그 목적은 ‘땅에서는 평화, 사람에게는 선의’라는 것이다.”—「연합회 회보」 제2권 1호, 1919년 1월호, 12-14면.

14. (ㄱ) 교회들이 국제 연맹에 대하여 잘못 알았음을 무엇이 증명하였읍니까? (ㄴ) 현재 종교가들은 국제 연합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이것이 국제 연합이 영속한다는 보증이 됩니까?

14 그리스도교국의 이들 교회들이 잘못 알았음이 분명합니다. 국제 연맹은 존속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막기 위하여 인간의 지혜로서 설계된 이 기구는 바로 그것을 일으키고 말았읍니다. 연맹은 1945년 10월 24일에 그 힘을 새로 탄생한 세계 평화 기구인 국제 연합에게 인계하였읍니다.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이 국제 기구도 또 다시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의 성실한 지지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같이 보이게 되었읍니다. 심지어 ‘바티칸’ 시의 교황들까지도 그것을 지지하고 나왔읍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한 때 ‘뉴욕’에 있는 국제 연합 본부에서 연설한 일이 있읍니다. 현재 국제 연합은 126개 회원국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는 최근에 37대 대통령 취임을 가진 나라도 들어 있읍니다. 이 새로운 대통령은 자기가 “사람의 약속”을 어떻게 성취시킬 것인가를 언급하였는데, 그것은 다른 여러 가지 소규모의 국제 동맹과 함께 국제 연합과 일함으로 성취시킬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의 축복은 국제 연맹의 경우와 같이 국제 연합을 영속시켜 줄 것을 보증해 주지 못합니다.

15. ‘평화스럽게 하는 자’라는 칭호를 국제 연맹과 국제 연합에 수여할 만한 역사적 근거가 있으며, 광장 벽에 새겨진 성서 예언은 국제 연합에 의하여 성취될 것입니까?

15 역사는 평화스럽게 하는 자라는 칭호를 가질 영예를 국제 연맹에게 수여할 수 없읍니다. 역사가 국제 연합에게 평화스럽게 하는 자라는 칭호를 주어 영예롭게 할 근거도 없읍니다. 국제 연합이 평화라는 말을 크게 외치며, 땅 여러 곳에서 평화를 회복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협정을 하고 있는 한편 그 성원 국가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읍니다.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의 가장 강력한 회원국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군비 국가들입니다. 오늘날 존재하는 바와 같은 세계 평화는 무서운 평화이며, 현대 문명의 종말을 가져올 핵전쟁, ‘박테리아’ 전쟁, 방사능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유지되는 평화입니다. 그렇다면 ‘뉴욕’ 시 42번가 국제 연합 광장 건너편 벽에 뚜렷이 새겨져 있는 말의 성취는 어떻게 되었읍니까? 거기에 새겨져 있는 말은 이러합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사람의 약속”에 달려 있지 않음

16. ‘평화스럽게 하는 자’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은 이사야 2:4에 예언된 어떠한 기본적 요구 조건에 달하지 못하고 있읍니까?

16 인간 역사가 영감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기록대로 아무리 사람들과 나라들에게 여러 가지 칭호로 영예를 돌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평화스럽게 하는 자라는 “가장 위대한 영예”를 20세기 후반기에 있는 어떠한 정치가들에게도 수여하시고자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이 영예는 국제 연합의 어떠한 성원 국가도 또는 국제 연합 회원국이 아닌 어떤 나라에게도 주어질 수 없읍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나라들이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겠다고 한 이사야 2:4의 예언을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는 단 한 나라도 한 백성도 없읍니다. 이 예언이 들어 있는 귀절의 첫 부분을 읽어 보면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라고 하였읍니다.

17, 18. (ㄱ) 어떠한 같은 예언이 그 요구 조건을 반복합니까? (ㄴ) 열국들은 그 요구 조건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며, 하나님의 역사는 어떠한 칭호를 그들에게 수여하지 않습니까?

17 같은 옛날에 기록된 예언으로서 이사야 2:4의 예언과 같은 예언이 미가 4:3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가 많은 민족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18 열국은 여호와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문제들을 국제 연합 총회나 안전 보장 이사회나 혹은 ‘네델란드·헤이그’에 있는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소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서 가운데 있는 심판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나라들은 심지어 예언자 ‘이사야’나 ‘미가’가 살던 곳으로부터 “먼 곳”에 있는 “강한 이방”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있는 혹은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대변자들이 인용하는 말씀에 있는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 심판과 그 판결을 받아들이고 청종하였다면, 그들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었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었을 것이며 그들은 서로 칼을 들고 치지 아니 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연합된 조직이든지 단독 국가이든지 간에 열국으로부터 영속적인 세계 평화가 올 것을 희망할 수 없읍니다. 어느 정치 지배자나 나라들도 앞으로 나와서 하나님의 역사상 평화스럽게 하는 자라는 칭호의 큰 영예를 받을 만하지 못합니다.

19. 이사야 2:4은 “사람의 약속”에 달려 있읍니까? 그리고 평화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실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읍니까?

19 사람보다 훨씬 높은 하나님의 방법과 지혜가 아니라 인간의 방법과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의 약속”으로부터는 무장 해제와 평화를 배우는 세계에 대하여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읍니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약속”에 의지하지 않으십니다. 미래에 대한 그의 예언은 “사람의 약속”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이사야 2:4에 있는 그의 말씀은 조건부가 아닌 예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과 강한 나라들이 그것을 반대해서 계획하고 행동한다 할지라도 이 영광스러운 예언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취시킬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백성이, 어떤 강국이 그분에게 대항해서 승리할 수 있겠읍니까? 이 확실한 사실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예언된 바와 같은 영원한 세계 평화를 동경하는 모든 사람들은 위안을 받을 수 있읍니다.

20, 21. (ㄱ) 왜 하나님께서는 그가 말씀하신 목적을 변경시키지 않으셨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이사야 9:6, 7에 있는 어떠한 말씀으로써 그분의 ‘평화스럽게 하는 자’를 예언하셨읍니까?

20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가 말씀하신 목적을 변경시키는 일이 없읍니다. 거의 2천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온 인류를 위하여 평화스럽게 하는 자로서 일할 한 분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고 성별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지상 거민들이 무장을 해제할 일과 더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일을 예언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예언자를 통해서 평화스럽게 하는 자를 예언하셨읍니다. 우리는 이미 이사야 2:4을 고려하였읍니다. 이제 9장 6, 7절을 열어서 이 평화스럽게 하는 자의 출생과 그의 일에 관하여 읽어보도록 합시다.

21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능하신, 신세]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22. 이 예언은 우리가 평화로운 천년 통치를 위하여 기대해야 할 분을 어떻게 지적합니까?

22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다시 들어 보십시오. 끝없는 평화의 끝없는 정부의 깨어질 수 없는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으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 왕족에서 난 한 아기의 정부이며 이 아들의 이름은 “평강의 왕” 즉 ‘평화의 왕’이라고 불리우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의 생명은 그의 평화스러운 정부와 같이 끝이 없고, 불멸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또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불리우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이것은 그가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임을 의미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예언은 이 평화스러운 끝없는 정부가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가오는 천년 평화를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인 ‘평화의 왕’의 통치인 것입니다. 바로 이 분이 여호와 하나님께 평화스럽게 하는 자라는 칭호의 영예를 받을 분이며 이 20세기에 있는 어떠한 정치가들이나 어떠한 나라들이 아닙니다.

23. 우리는 ‘이사야’의 예언이 아주 오래 전에 주어졌지만, 왜 그것이 성취되리라는 믿음을 상실할 이유가 없읍니까?

23 하나님의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 예언이 기록된 이래 2,500년 이상이나 지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나라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무서운 세계 전쟁을 방지하려고 애쓰는 때에 살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스럽게 하는 자와 지상의 영원한 평화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 예언을 뒷받침하며 그분 자신이 그의 성령을 통하여 영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는 말로 끝맺기 때문입니다. 그 예언에 관한 그분의 열심은 현대에도 결코 식어지지 않았읍니다. 왜냐 하면 이 예언은 그 자신의 이름과 명성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어떤 일에도 결코 거짓말을 하신 일이 없읍니다. 그분은 이 예언에 있어서도 결코 거짓말장이가 아니심을 증명하실 것입니다. 그는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디도 1:2; 히브리 6:18.

왕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

24. 역사는 ‘이사야’ 시대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다스린 왕들 가운데 약속된 ‘평화의 왕’으로 증명된 왕이 있었는가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24 하나님의 대변자인 예언자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히스기야’ 왕 통치 때에 계속 예언하였읍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평화스럽게 하는 자 즉 ‘평화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한 약속된 “아기” 혹은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였읍니다. ‘히스기야’ 왕에 이어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의 보좌” 위에 앉은 마지막 왕 ‘시드기야’ 왕까지 일곱 왕들도 약속된 ‘평화의 왕’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였읍니다. 사실상 ‘시드기야’ 왕 통치 제11년에 ‘예루살렘’ 성도와 ‘솔로몬’ 왕에 의하여 건축된 성전이 이방국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멸망되었고, 정복된 백성들은 멀리 떨어진 ‘바벨론’으로 유배당하였읍니다. 70년 후에야 ‘예루살렘’ 성과 하나님의 숭배를 위한 성전이 유배되었다가 해방된 자들에 의하여 건축되기 시작하였읍니다.

25. 언제, 어디에서 “아기”이며, “아들”이며, ‘다윗’의 영원한 후사인 분의 출생으로 말미암아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하였읍니까?

25 그러면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은 좌절되었고 식어졌읍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읍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실패한 것같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 예언을 성취시키고자 하는 열심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뜨거웠읍니다. “‘다윗’의 보좌”는 결코 ‘예루살렘’에 세워지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읍니다. ‘다윗’ 왕의 왕계는 중단되었읍니다. ‘예루살렘’이 재건되기 시작한지 535년이 되었을 때에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인 “아들”이 탄생함으로써 성취되기 시작하였읍니다. 이 일은 통용 기원이 시작되기 2년 전에 있었읍니다. 다시 말하면 기원전 2년이었읍니다. 이 일은 ‘미가’의 예언(5:2)대로 ‘다윗’ 왕의 출생지인 ‘유다·베들레헴’에서 일어났읍니다.

26, 27. ‘누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아기가 출생한 날 밤에 누구를 증인들이 되게 하셨읍니까?

26 열심이신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의 고대 예언의 성취를 입증하시기 위하여 약속된 ‘평화의 왕’의 탄생의 증인들을 가지고 계실 것이 분명합니다. 우선 그분은 아기의 탄생을 천사들이 증거하게 하셨읍니다. 그 다음에 이 사건을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목격하게 하셨읍니다. 기원전 2년 이른 가을 밤에 여호와 하나님의 천사는 ‘베들레헴’ 근처 들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목자들에게 나타났읍니다. 이 출생에 관하여 조사한 ‘누가’라는 의사는 자기가 이 아기를 해산시키지 않았지만 이렇게 보고합니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시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누가 2:8-14.

27 의사 ‘누가’는 목자들이 가서 새로 난 아기를 보았고 그리하여 그들은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주 메시야”의 탄생의 목격자들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의사 ‘누가’는 이러한 말로써 그의 기록을 맺습니다.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는 바와 같이 듣고 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누가 2:15-20.

28. 사십일 후에 누가 그 아기의 출생의 증인들이 되었읍니까?

28 사십일 후에 이 아기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왔을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므온’이라는 사람과 그 후에 여예언자 ‘안나’가 이 아기를 보았고 그 아기가 누구인가를 알았읍니다. 이렇게해서 그들 또한 ‘평화의 왕’에 관한 예언 성취의 증인들이 되었읍니다.—누가 2:22-38.

29. 이분은 어떠한 이름과 칭호로 불리웠으며, 그의 이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9 천사는 그 아기를 “주 메시야”라고 하였읍니다. 희랍어를 말하는 그 당시 ‘유대’인들은 “주 그리스도”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메시야”와 “그리스도”는 같은 뜻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그의 처녀 어머니에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바에 의하면 그는 ‘예슈아’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의사 ‘누가’와 같이 희랍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은 그를 ‘예수’라고 불렀읍니다. 그러므로 그의 칭호와 함께 그는 ‘예슈아 메시야’ 혹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웠읍니다. (누가 1:26-33; 마태 1:1, 20-25) 그가 ‘다윗’ 왕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그는 또한 “‘다윗’의 아들”이라고 불리웠읍니다. 그는 왜 예수라는 이름을 받았읍니까? ‘윌리암 스미스’ 박사편 「성서 사전」(1346면) 1894년 판에 의하면 ‘예슈아’ 혹은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도움” 혹은 “구주”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의 양부 즉 ‘나사렛’의 목수 ‘요셉’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마태 1:18-25.

30. (ㄱ) ‘솔로몬’ 왕은 왜 평화의 천년 통치로 인도할 자가 아니었읍니까? (ㄴ) 그는 충성스러웠을 때에 누구의 모형이었읍니까?

30 그의 왕조 중에는 ‘다윗’의 아들인 고대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던 ‘솔로몬’ 왕이 있었읍니다. 그의 이름은 “평화로움” 혹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매우 적절하게도 그는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였읍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은 “이중 평화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름들의 결합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통치는 천년 평화로 인도하지 못하였읍니다. 그것은 다만 40년간의 평화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의 왕으로서 현명한 출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년에 가서 악하게 되었읍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압제자가 되었읍니다. 그는 많은 이방 처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그들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을 숭배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살아계신 참 하나님과의 평화를 상실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후계자들의 왕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 열 지파를 찢어 내심으로써 그의 노를 나타내셨읍니다. (열왕 상 11:7-12:24; 느헤미야 13:26, 27) 그러나 그의 사십년 통치 절반 이상 ‘솔로몬’은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하였고 성서 가운데 세 권의 책을 기록하였으며, ‘솔로몬’은 참 메시야 즉 그리스도의 예언적 인물로 사용되었읍니다.

31. (ㄱ) 왜 예수께서는 자신이 “‘솔로몬’보다 더 큰 이”라고 말하실 수 있었읍니까? (ㄴ) 왜 그는 이 지상에서 ‘다윗’의 보좌를 얻지 않았읍니까?

31 완전한 인간으로서 지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솔로몬’과 같지 않아 결코 하나님께 불충실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합당하게도 “여호와의 도움” 혹은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을 가진 ‘예슈아’ 혹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셨읍니다. 그의 조상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거룩한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요단’ 강에서 물의 침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로부터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읍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침례자 ‘요한’에게 들리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태 3:13-17) 이 때에 예수께서는 ‘솔로몬’보다 더 크신, 큰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그리스도가 되셨읍니다. 이기적이나 과장이 없이 예수께서는 자신을 “‘솔로몬’보다 더 큰 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읍니다. (마태 12:42) 예수께서는 그의 충성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보좌” 즉 그러한 보좌가 상징하는 온 ‘이스라엘’에 대한 왕의 통치권을 유지하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름부음을 받으신 예수에게 지상의 “‘다윗’의 보좌”를 주신 일이 없읍니다. (누가 1:32, 33) 우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그가 형주에서 완전한 인간 희생물로서 죽을 때까지 예수의 충실성을 시험하셨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께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수 있게 하셨읍니다.—마태 1:21.

32. (ㄱ) 예수께서 그가 배반당하던 날 밤까지 하나님과의 평화를 유지하셨는가를 무엇이 알려 줍니까? (ㄴ) 왜 예수께서는 마귀나 인간으로부터 왕권을 받지 않으셨읍니까?

32 기름부음을 받은 예수께서는 그가 지상 생활을 마칠 때까지 여호와 하나님과의 평화를 유지하셨읍니다. 예수께서 배반되어 그를 죽일 자들의 손에 넘겨지기 바로 전에 그는 그의 열 두 사도들 중의 충실한 열 한 명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4:27) 몇 시간 후에 그가 재판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앞에 서셨을 때에 평화스러운 예수께서는 그에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형주에 달리신 예수의 머리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를 붙인 것은 예수의 청에 의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요한 18:36; 19:16-22) 예수께서는 마귀의 손이나 사람의 손으로부터 왕권을 받는 것을 거절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기가 영원한 후사가 될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그에게 주실 때를 기다리면서 형주에서 죽으셨읍니다. (마태 4:8-11; 누가 1:32, 33; 요한 6:14, 15)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느니라”라고 전파하신 대로 충실하게 죽으셨읍니다.—마가 1:14, 15; 마태 4:12-17.

33. ‘솔로몬’과 달리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살아계시며, 어떻게 그는 천년 평화를 가져오실 수 있읍니까?

33 거의 3천년이 지난 오늘날 불충실한 ‘솔로몬’은 아직도 그의 조상과 함께 죽음에서 잠을 자고 있읍니다. (열왕 상 11:41-4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 성벽 밖에서 형주에 달려 희생적인 죽음을 당하신지 천 구백여년이 지난 오늘날 현재 살아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가 죽은지 삼일만에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셔서 그에게 불멸성과 썩지않음을 입혀 하늘의 영자로서 생명을 갖게 하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되신 후에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40일 동안 자신을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내셨기 때문에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격자들이 500여명이나 되었읍니다. (사도 1:1-5; 2:22-36; 고린도 전 15:3-9) 그는 이제 영원히 살아 계시며 그는 참으로 죽어가는 인류 세계에 대하여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되실 수 있읍니다. 그리고 인류를 다스릴 평화스러운 그의 정부는 끝이 있을 필요가 없읍니다. 그러므로 무궁할 것입니다. (이사야 9:6, 7) 그는 하늘에 계신 통치자로서 전쟁으로 시달린 인류를 천년 평화로 인도하실 수 있읍니다. 국제 연합은 그렇게 할 수 없읍니다!

천년 평화가 다가오고 있다

34. (ㄱ) 왜 지금이 그분께서 평화로운 정사를 시작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인 것같습니까? (ㄴ) 특히 누가 먼저 제거되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4 그렇지만 ‘평화의 왕’은 언제 끝없는 평화의 그의 정사를 시작할 것입니까? 의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오늘날 그러한 정부를 절규하고 있읍니다. 오늘날 이 세상 상태로 볼 때 지금이야말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 9:6, 7의 깨어질 수 없는 약속대로 그러한 정부를 가져오실만한 적절한 때가 아닙니까? 분명히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선 평화의 방해자들이 제거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장 큰 방해자는 국제 연합도 어떤 한 나라도 어떤 국민도 결코 정복할 수 없는 자입니다. 왜냐 하면 그는 초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숭배하는 대신 그 시험자를 숭배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왕국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겠다고 제공한 자입니다. 이 가장 큰 평화의 방해자는 ‘사단’ 마귀라고 불리웁니다. 그는 마귀들 혹은 악귀들의 군단의 왕입니다. (마태 4:8-11; 12:24-2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이 세상의 왕”이라고 부르셨고,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그를 “이 세상 신”이라고 불렀읍니다. 사도 ‘요한’은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요한 12:31; 14:30; 고린도 후 4:4; 요한 1서 5:19.

35. (ㄱ) 어떠한 예언적 칭호에 따라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을 제거하실 수 있읍니까? (ㄴ) 지상에서 누가 평화의 방해자들이며, 언제 어떻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제거하실 것입니까?

35 인류 위에 권세를 가지고 있는 평화의 가장 큰 방해자를 제거하는데 모든 사람의 힘을 다 모아도 부족합니다. 이 일을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실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 불리우는 여러 가지 이름들 가운데는 “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지상에 있는 보이는 방해자들을 모두 제거한 후에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계시 19:11-20:3) 이렇게 하시기 위하여 그는 왕 ‘다윗’이 시편 110:1-6에 예언한 바와 같이 우선 승리를 거둔 왕이어야 하고 그의 지상의 원수들 가운데서 다스려야 하고 마침내 그들을 완전히 정복해야 합니다. 그분이 이렇게 하셔야 할 이유는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났을 때에 이 세상 나라들과 제국들은 그리스도교국이 한 바와 같이 그들의 지상 왕국을 평화스럽게 그에게 양보하는 것을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가 21:24; 시 2:1-6) 반 세기 이상 지난 금년에 이르기까지 열국은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였읍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멀지 않은 장래에 어떠한 일이 있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상태에 ‘할-마게돈’ 혹은 ‘아마겟돈’이라는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이 일어날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 16:14, 16) 이 전쟁은 모든 인간 평화 방해자들을 제거할 것입니다.

36. 이러한 평화 방해자들을 제거한 후에 어떠한 기간이 시작되며, 미국 대통령은 그의 취임사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그것을 상기시켰읍니까?

36 모든 인간과 악귀적 세계 평화 방해자들을 제거한 후에 온 땅에 대한 ‘평화의 왕’의 통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한 하나님의 정하신 때는 다가오고 있으며 그것과 함께 천년 평화가 도래할 것입니다. 천년은 천년기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 말은 1969년 1월 20일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취임사에서 언급된 한 귀절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는 미국인과 모든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하였읍니다. 새로 서약한 대통령은 그의 연설 여덟째 항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앞으로 8년이면 미국은 한 나라로서 200년이 되는 해를 경축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생전에 인류는 천년만에 단 한번 오는 큰 새해 즉 3천년기의 시초를 경축하게 될 것입니다.” 이 대통령은 주후 2001년을 말한 것이었읍니다.a

37.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서 연구생들은 어떠한 천년기에 더욱 관심이 있으며, 그 천년기는 언제부터 계산됩니까?

37 대통령의 계속된 말은 세째 천년기 첫 해에 미국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고대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이 들어 있는 성서를 연구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연구생들에게는 관심을 이끄는 더욱 중요한 천년기가 있읍니다. 그것은 일곱째 천년기입니다. 이것은 주후 1년부터 일곱째 천년기가 아니라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기 시작한 때 즉 완전한 인간 남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 창조된 때부터 일곱째가 되는 천년기입니다. 이 해는 보통 ‘안노문디’ 즉 “세계기원”이라고 하며 그것은 인류 세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38. (ㄱ) 정통 ‘유대’교 역법은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때를 언제로 계산합니까? (ㄴ) ‘앗서’의 연대에 의하면 인간 존재의 6천년기는 언제 끝납니까?

38 이 사실은 천년 평화 즉 천년기가 다가오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읍니까? 그것은 확실이 관계가 있읍니다. 정통 ‘유대’교 역법에 의하면 새 미국 대통령이 그의 취임사를 한 때는 세계 기원 5729년 음력으로 다섯째 달 초가 됩니다. 이 역법은 고대 「‘히브리’어 성경」만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감받은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도 중요시하는 연대 학자 즉 때의 검사자들에게는 ‘유대’ 역법은 2백년이나 늦습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어떤 성서판은 ‘아일란드’의 영국 국교회 감독 ‘제임스 앗서’(기원 1581-1656년) 대주교의 연대를 기입해 놓았읍니다. 인간 창조의 ‘앗서’ 연대는 기원전 4004년입니다. 이 연대에 의하면 인간 존재 6000년 혹은 6천년기는 기원 1996년 가을에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인간 존재 제7천년기가 시작됩니다.

39. 성서 연대의 더욱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6천년기는 언제 끝납니까?

39 더욱 최근에 성서의 열렬한 연구자들은 이 연대를 재조사하였읍니다. 그들의 조사에 의하면 지상의 인류 생애의 6천년은 70년대 중간에 끝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에 의한 인간 창조부터의 일곱째 천년기는 10년 안에 시작되게 되어 있읍니다.b

40. 하나님께서 일곱째 창조의 날에 쉬시는 것을 기념하여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관한 어떠한 율법을 그의 선민들에게 주셨읍니까?

40 현대 세계 상태가 세계적인 변화가 가까와 오고 있다는 것 외에, 지상의 인간 존재 제 7천년기의 도래는 전쟁에 시달린 인류에게 반가운 변화가 올 것을 알려줍니다. 성서 처음 두 장에 의하면 인간 남녀는 여섯째 창조의 날 끝에 창조되었읍니다. 우리는 지금 일곱째 창조의 날에 살고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일곱째 날에 땅의 창조를 쉬시고 안식해 오셨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일곱째 창조의 날에 쉬시는 것과 평행해서 예언자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 중 네째 계명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민들이 일주일 중 일곱째 날은 쉬지 않으면 안된다고 명령하셨읍니다. (출애굽 20:8-11) 그러므로 그날은 일주일 중 하루의 안식일이며 그날은 인간 고뇌로부터 쉬는 날이었읍니다.

41. (ㄱ) 안식일이었던 어느날, 예수께서는 어떠한 더 큰 안식일을 지적하셨읍니까? (ㄴ) 하나님께서 때를 측정하시는 방법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는 무엇에 해당합니까?

41 장차 ‘평화의 왕’이 되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앞으로 올 더 큰 안식일을 지적하셨읍니다. 앞으로 올 이 안식일을 지적하셔서 그는 어느 안식일날 비판을 받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마태 12:1-8) 예수께서는 그의 평화로운 천년 통치를 말씀하신 것이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사를 천년 길이의 통치로 측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영감으로 시편 90:4에 이렇게 기록하게 하셨읍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니라].”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에게 영감으로 이렇게 기록하게 하셨읍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베드로 후 3:8) 예언적 환상에서 사도 ‘요한’은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들이 결박되어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갇히고 그 천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승리적인 제자들과 함께 온 인류를 다스리는 것을 보았읍니다. (계시 5:9, 10; 20:1-7) 그러므로 때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에 의하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은 다만 “하루”에 해당합니다.

42. (ㄱ) 예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기 위하여 그의 천년기 통치는 어느 기간에 있을 것입니까? (ㄴ) 왜 인간이 ‘사단’의 노예가 된 6천년기의 끝은 안식의 휴식이 시작될 적절한 때가 될 것입니까?

42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기 위하여 그의 천년 통치는 일련의 천년 기간 즉 천년기의 일곱째에 해당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 12:8) 그리하여 그것은 안식 통치가 되어야 합니다. ‘사단’ 마귀는 인류 존재 초기부터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인간 가족을 고통 가운데 몰아넣고 ‘노아’ 홍수 전에는 폭력으로 이 땅을 가득차게 하였고, 오늘날에는 같은 옛 땅을 더 큰 폭력으로 가득 채우려고 하고 있읍니다. 이제 곧 인류를 노예로서 착취해 온 6천년기는 끝날 것이며 마태 24:34의 예수의 예언의 말씀에 의하면 이 세대 생전에 즉 1914년 이방인의 때가 마칠 때부터 지금까지 세계 사건을 목격해 온 이 세대 생전에 끝나게 되어 있읍니다. 그렇다면 ‘사단’ 마귀의 고통스러운 노예 생활을 하던 인류의 6천년기가 끝나는 때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인간 피조물들을 안식의 천년기로 인도하실 적합한 때가 아니겠읍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일 것입니다.

43. (ㄱ) 고대의 매주 있던 안식일은 활동에 있어서 어떠한 종류의 날이었읍니까? (ㄴ) 그리스도의 안식 통치동안 그리스도나 지상에 있는 그의 백성들이 게으름을 피울 것입니까?

43 옛날에 예언자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받은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안식일은 참으로 평화스러운 날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창조의 날에 땅에 사업을 쉬신 것과 일치하게 그의 백성들도 엿새 동안 힘써 일하던 것을 중지해야 하였읍니다. 그리고 그의 가축들도 그러하였읍니다. (출애굽 20:1-11) 이와 마찬가지로 천년간의 안식통치도 땅과 땅의 거민들에게 평화스러운 때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이전 6천년기의 모든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쉬는 때가 될 것입니다. 살인 전쟁의 상징인 칼은 보습으로 변해질 것이며 창은 포도원을 재배하는 낫으로 바꾸어 질 것입니다. 이 안식 천년기에서 사는 일은 결코 무미건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는 결코 게으름을 부릴 때도 아닙니다. 안식의 주인이신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게으름을 부리시지 않을 것이며 그의 지상의 백성들도 게으름을 부리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44. (ㄱ)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셨을 때 매주 있던 안식일에 왜 아주 많은 기적을 행하셨읍니까? (ㄴ) 이것은 히브리 10:1에 있는 ‘바울’의 말과 어떻게 일치합니까?

44 십계명 아래 있는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안식일에 병자와 불구자를 고치시는 많은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만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뿐이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또한 그의 안식 통치 기간에 그가 인류를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들의 속박으로부터 어떻게 구출하실 것이며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로부터 유전된 죄와 불완전성으로 인한 죽음으로부터 어떻게 그들을 구출하실 것인가를 전영하시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과거 6천년 기간에 전쟁과 폭력은 수 많은 사람들을 불시에 죽음과 무덤으로 이끌었읍니다. 그러나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예언하신 그대로 무덤으로부터 그 많은 인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실 것입니다. (요한 5:28, 29) 충실한 그의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안식의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말한 것은 결코 헛된 말이 아니었읍니다.—히브리 10:1; 골로새 2:16, 17.

낙원을 위한 보습과 낫

45. (ㄱ)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떻게 이미 이사야 2:4에 순응하였읍니까? (ㄴ) 이 예언은 ‘아마겟돈’과 ‘사단’의 감금 후에도 어떻게 적용될 것입니까?

45 이미 전쟁의 위협으로 위험한 이 때에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이사야 2:4의 예언에 순응해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었읍니다. ‘할-마게돈’의 우주 전쟁이 있고 ‘사단’과 그의 악귀들을 무저갱에 감금한 후에도 이 예언은 계속 적용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의 인간 생존자들이 그들의 보습과 낫을 사용하여 전쟁의 흔적으로 가득차 있는 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래 인간에게 만들라고 하신 영광스러운 낙원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 1:26-28; 2:8-14)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지 않고 헛되이 그에게 돌아오는 일이 없읍니다. 그렇지 않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아래서 온 땅은 자유롭고 인간 피조물로 가득찬 영원한 낙원으로 가꾸어질 것입니다. 그 일곱째 안식 천년기 안에 안식일의 왕이시며 주인이신 예수께서는 평화 방해자들의 괴수인 ‘사단’ 마귀의 모든 일을 일소하실 것입니다.—누가 23:43.

46. 고대 안식일 율법을 범한 사람에 대한 처우는 안식 천년기와 끝에 있을 고의적인 방해 자들에 대하여 무엇을 전영하였읍니까?

46 하나님의 고대 선민 가운데서 십계명이 유효할 때에 안식일을 범하는 모든 자들은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올 안식 천년기의 주인에게 순종하지 않고 평화를 방해하는 자들은 멸망될 것입니다. (민수 15:32-36; 출애굽 31:13-17)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들이 다시 무저갱으로부터 나와서 다시 한번 땅의 평화를 방해하려고 할 때에 그들은 이 땅을 다시 전쟁마당으로 만들려고 하는 자들과 함께 멸망될 것입니다. (계시 20:7-10, 15) 하나님과 계속 평화를 유지한 사람들은 살아남아 땅을 영원히 돌보는 낙원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47. 더 큰 ‘솔로몬’에 관한 시편 72:7에 의하면 지상 평화는 얼마 동안 계속될 것입니까?

47 그 때에는 평화스러운 다른 혹성을 찾기 위하여 달에 ‘로케트’를 발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때에 시편 72:7에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라고 기록된 바와 같이 더 큰 ‘솔로몬’이신 왕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기도가 응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평화는 달과 같이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메시야의 일천년 안식일이 이루어지고 유지되는 지상 평화는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48. 현재 누가 그 평화로운 천년기를 준비하고 있으며, 그들과 함께 그렇게 하도록 누가 초대를 받고 있읍니까?

48 오늘날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다가오는 천년 평화를 위하여 즐거움으로 준비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을 위한 예언된 “지상 평화”를 즐기기를 동경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들과 함께 축복된 천년기의 평화를 위하여 준비하도록 따뜻한 초대를 받고 있읍니다.

[각주]

a 그리스도교국은 주의 연대력(Anno Domini)을 사용하며, 이 연대는 주후 1년(AD)부터 시작된다.

b 「성서 이해를 위한 보조서」(영문) 333면 “연대” 제하 참조. 또한 1968년 발행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 가운데서의 영원한 생명」 26-35면, “인간 존재 육천년이 가까와 오고 있다” 제하 참조.

[6면 삽입]

본 기사에 실린, 때에 알맞고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소식은 지난 7월과 8월 중에 북미와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서 도합 840,572명의 청중에게 공개 강연으로 제공된 바 있읍니다.

[4면 전면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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