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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도 활동이 큰 도전이 되는 경우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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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6
파76 6/1 261-264면

전도 활동이 큰 도전이 되는 경우

유럽 대륙의 거의 절반, 미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전도 활동을 하라는 임명을 받는다면 어떻겠는가? 그 구역이 대부분 사막이고 사정없이 내려쪼이는 태양열이 섭씨 50도를 넘는다면 어떠하겠는가? 흙탕 길, 먼지, 파리, 기타 갖가지 곤충의 무리, 간간히 내리는 폭우 등의 시련이 한없어 보이는 지역에서 전파 활동을 하는 도전을 당신은 받아들이겠는가?

나의 아내와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 오지(奧地)에서 활동하라는 제의를 받고 그것을 수락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가 그렇게 큰가 하고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나라는 영국의 58배나 되는 크기이다! 그 나라에는 눈많은 지역이 ‘스위스’보다도 더 많으며, 호수는 ‘스코틀란드’, ‘홀란드’, ‘프랑스’, ‘벨지움’을 전부 합한 것보다도 많다. 그리고 햇빛 좋은 해변은 ‘하와이’, ‘타이티’, ‘발리’, ‘피지’, ‘파고 파고’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그리고 그 나라의 사막은 세계적으로도 큰 것에 속한다.

우리는 이 사막 지역을 2년 동안 여행하였으며, 6개월에 약 16,000‘킬로미터’를 여행하면서 여호와의 증인들의 14개 회중과 7개의 작은 집단을 방문하였다. 이 사막 오지에서 회중과 회중 사이를 여행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도전인가를 당신은 아는가?

여행 준비

먼저, 심한 굴곡, 움푹진 곳, 개천, 먼지 등에 견딜 수 있도록 자동차를 보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바퀴 순회할 때마다 매번 지나는 4,800‘킬로미터’의 포장 안된 길이 자동차에 특히 어려움을 주었다.

자동차의 앞 유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 위에 철망을 덧대었다. 다음에 ‘캉가루’가 불빛을 향해 달겨들 때에 자동차에 피해가 없도록 ‘캉가루’ 방지판을 만들어 붙였다. 자동차의 ‘엔진’과 ‘기어’를 도로 면에서 더 높이기 위하여 차 앞부분에 큼직한 ‘코일 스프링’을 부착하였다. 뒤에는 휘발유 ‘탱크’ 둘레에 철판을 완전히 용접하여 돌에 맞아도 뚫리지 않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자동차가 흔들려도 차동(差動) ‘기어’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차동 장치를 보강하였다.

자동차의 지붕에는 거의 전체 면적을 차지하는 선반을 만들었다. 거기에는, 차바퀴, ‘타이어’, 휘발유, 윤활유, 여과기, 공기 ‘펌프’, 밧줄, ‘잭’, ‘밧데리’ 전선, 몸을 씻고 마시고 할 물, 그리고 기계가 어떻게 고장나든 거의 수선을 할 수 있는 공구와 부속품 등등을 빽빽히 실었다. 이곳에서 전도 활동 임명을 받으려면 먼저 훌륭한 자동차 기술공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매년 자동차가 고장나 극도의 고열 때문에 차 안에서 몇명씩 죽는다는 사실은 철저한 준비의 필요성을 잘 알려 준다. 주유소와 주유소 사이의 거리가 왕왕 500‘킬로미터’나 되며 다른 자동차를 만나는 일도 거의 없다.

또한, 중요한 일은 옷들을 전부 ‘비닐’로 싸서 옷가방에 넣는 일이다. 그 다음에 옷가방을 두꺼운 천으로 싼다.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옷에 먼지가 잔뜩 끼기 때문이다.

도로상에서의 경험

우리는 일반적으로 주초에 여행을 하고 주일의 후반부에 증인들의 회중과 연합하여 전도 활동을 하였다. 우리는 회중 혹은 격지 집단 사이를 여행할 때에 평균 약 800‘킬로미터’를 자동차로 달렸다. 그러므로 매주 하루나 이틀 밤은 도로 상에서 자동차 안에서 잠자는 것이 된다. 밤에도 기온이 섭씨 38도 이상이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의 ‘윈댐’에서 ‘브루움’까지 1,200‘킬로미터’를 여행할 때에 우리는 비를 만났다. 때로는 험란한 지점을 비켜가기 위하여 차도를 벗어나 길이 없는 곳으로 가기도 하였다. 때로는 차에서 나와 개미집의 흙을 퍼서 움푹진 곳을 메우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차를 밀고 아내는 운전을 하고 하여 결국 어려운 곳을 빠져 나가곤 하였다.

첫 번째 순회 여행 때는 16,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광대한 지역에서 한 촌락을 제외하고는 전연 풀이라곤 보지 못하였다. 가뭄이 극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비가 오면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날 수 있다. (이사야 35:1) 계절적인 비가 내린 후에는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 문자 그대로 눈에 보이는 끝까지 온통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또한 사막 지방은 ‘캉가루’, ‘고안나’, 야생 당나귀, 말, ‘에뮤’새, ‘딩고’(들개), 낙타 등등 야생 조수로 생기를 나타내었다.

730‘킬로미터’에 달하는 한 흙길은 특히 인적이 드물고 더운 곳이었다. 짐의 무게를 덜기 위하여 우리는 상당량의 물을 내려 놓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펑크’가 났고 조금 후에 또 ‘타이어’가 터졌다. 이제 두개의 ‘스페어 타이어’를 다 갈아 끼웠는데, 그 길을 지나는 자동차는 거의 없는데다가 그 다음 촌락까지는 아직도 190‘킬로미터’가 남았었다.

서로 거의 말도 없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시속 30‘킬로미터’의 속도로 슬금슬금 차를 몰았다. 어느 순간에라도 또 ‘타이어’가 터질 것 같아 앞길이 막막하였다. 기온은 섭씨 46도인데다가 가진 것이라고는 뜻뜻한 물 반초롱 뿐이었다. 갑자기 또 ‘펑크’가 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락 근처에서였다. 그날 밤 “문명사회”에 다시 돌아온 것이 실로 다행스러웠다.

또 한번은 갑자기 비를 만났다. 거대한 ‘트럭’들이 길에 빠져 있었다. “형씨, 도저히 못갈 것입니다” 하고 한 ‘트럭’ 운전사가 우리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내려다 보기라도 할 셈으로 언덕까지 올라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도저히 통과할 수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날 밤 길 가운데 차를 세우고 몇 시간 잠을 붙였다.

이튿날 아침 나는 아내에게 “소리 지르지 마시오” 하고 미리 주의를 주었다. 자동차를 조심스레 ‘워밍업’한 다음 거칠게 병거를 몰았다고 하는 성서의 인물 ‘예후’를 생각하면서, 나는 사방으로 흙탕물을 튀기면서 우리 “병거”를 전속력으로 몰아 언덕을 올랐다. (열왕 하 9:20) 때로는 대담하게 차를 몰아붙일 필요도 있다. 우리 머리 속에는 다음 회중에 가서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함께 전도 활동을 할 생각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계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번은, 홍수 때문에 그 다음 회중을 방문하기 위하여 4,200‘킬로미터’를 우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기 때문에 주초에 회중에 도착하지 못하고 목요일 저녁에 도착하였는데, 심히 지치고 먼지투성이에다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다. 그것은 720‘킬로미터’ 전방에서 앞 유리창이 깨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회중과 함께 전도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여행하는 거리는 그보다 더욱 멀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시드니’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 참석하는 데 왕복 10,000‘킬로미터’ 정도를 여행하였다. ‘포트 헤드란드’를 출발하여 ‘마운트 뉴만’으로 되돌아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여행 도중 문제를 당할 것에 대비하여 보통 2주일간 사용할 식품을 가지고 다닌다. 나는 ‘비스킷’과 볶은 콩을 좋아하고 아내는 통조림한 정어리를 가장 좋아하였다.

때때로 나는 자동차 여행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수일 동안 세속 일을 하기도 하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이라고 하는 ‘윈담’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일하던 일을 나는 도저히 잊지 못한다. 그곳 원주민 한 사람은 성서에 특별히 관심이 많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약속하신 새 제도에 관해 자세히 증거할 수 있었다.—베드로 후 3:13.

더위를 이겨냄

이곳의 더위를 추운 지방의 기온과 조금 바꾸어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1972년에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는 기온이 계속 섭씨 50도를 오르내렸다. 나의 아내는 젖은 수건을 얼굴과 목에 붙이고 살았다. 우리는 작은 나무 아래 웅크리고 앉아서 점심을 먹곤 하였는데, 그것은 ‘눌라보’ 평원을 통과하는 1,300‘킬로미터’ 거리에는 큰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 평원의 이름 ‘눌라보’라는 말은 “나무가 없다”는 뜻이므로 이름이 적절하였다.

모든 것이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자동차를 만지면 손을 델 정도였다. 뜨거운 열기가 계속되기 때문에 자동차 유리 둘레에 달린 고무가 녹아났다. 값싼 구두를 사서 신었더니 뒤축이 녹아서 몇 주일 지나자 옆으로 밀려 나갔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기온은 섭씨 48도로 낮아졌었다. 그 정도만도 시원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전도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흔히 섭씨 43도의 더위를 경험하였는데, 그래도 정상적인 호별 방문 계획을 따를 수 있었다. ‘엑스마우드’에서는 오전에 첫 집을 방문하던 때, 즉 오전 9시 이전부터 기온이 섭씨 43도이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매우 강인하여 이러한 기후에도 잘 견디어낸다.

한번은 22개월 된 어린 증인이 41도의 더위에도 칭얼대지 않고 오전 내내 호별 방문을 따라다니는 것을 보았다. 점심 시간에 다시 만났을 때에 그는 얼굴이 온통 붉은 먼지로 뒤덮이고 두 볼과 이마에 구슬같은 땀 방울을 흘리면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큰 웃음을 지으면서 그 날 오전에 만난 몇몇 사람에 관하여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하였다.

하루는 기온이 48도였는데, 나는 ‘미카다라’의 어느 가정에서 공개 강연을 하였다. 얼마 후 바지를 벗어보니 성서를 올려 놓았던 왼편 무릎에 하얗게 소금이 굳어 있었고 앉았던 자리에는 하얀 자죽이 양쪽에 나 있었다. 그러나 그 지방 사람들은 더위에 익숙해서인지 그 날 오후에 선풍기를 돌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내 아내와 나는 가외로 소금을 섭취하고 힘을 달라고 여호와께 의지함으로써만 그러한 상태를 견디어낼 수 있었다.

영적으로 강하게 유지함

우리가 방문하였던 한 여호와의 증인 가족은 인근 회중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데도 다른 증인들과 동일한 영적 양식을 섭취하려고 노력한다. 집회날 저녁이면 그들은 정장(正裝)을 한 후 전세계 여호와의 증인 회중에서 고려하는 집회 내용을 식구들이 다룬다.

어느 날은 그 집 어머니가 아이를 낳게 되어 입원하였으므로 문제가 생겼다. 그날 밤 그 어머니가 신권 학교에서 연설을 하게 되어 있었는데 집회를 어떻게 진행하였는가? 그들은 전부 병원으로 와서 거기서 집회를 가졌던 것이다! 아무 것도 그 가족이 정기적으로 영적 교육을 받는 것을 막지 못한다.

격리되어 있는 또 다른 증인도 그와 비슷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혼자 뿐이었으므로 모든 집회 부분을 혼자 취급하였으며, 심지어 왕국 노래도 혼자 불렀다. 부락 사람들은 그가 사교 활동에 빠진 것을 보고 호의를 베푼다는 뜻에서 자기들의 두 가지 ‘클럽’에 회원으로 가입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는 재치있게 자기가 ‘클럽’에 가입하고 싶지 않음을 설명하였다.

이 사람은 새로운 증인이라서 얼마 지난 다음에야 용기를 내어 이웃 사람들에게 전도를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오늘은 그만 둡시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 종교는 여기에 가져오지 마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어떤 사람과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얼마 안가서 그 사람도 그와 함께 집회에 참석하였다. 우리는 그와 함께 더 머물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였다.

증인이 한명밖에 없는 곳으로 우리가 방문한 지역이 또 몇 군데 있었다. 고립되어 있는 어느 그리스도인 자매는 전도 활동을 열심히 하여 자기 구역에서 10,000여명의 주민에게 증거를 하였다. 그는 등에 아기를 업고 또 한 아이를 손에 잡고 다니면서 전도를 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을 많이 일으킬 수 있었다. 종종 회중의 공개적 성서 연설을 녹음한 ‘카제트 테이프’를 고립되어 있는 전도인들이나 집단에게 보내어 그들도 이러한 연설로부터 영적 유익을 받도록 해 준다.

멀리 떨어진 여러 광산촌에서는 증거하는 일이 매우 즐겁다. 그러한 지역에 가기 위해 증인들은 흔히 수백 ‘킬로미터’ 여행을 하며, 1주일씩 야영을 한다. 증인들은 젊은 가족들을 많이 만나는데,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다. 그들은 생활이 단순하므로 독서할 시간이 더 많다. 어느날 ‘카라다’에 사는 한 사람은 내게 있는 성서 서적을 전부 구입하였다.

때때로 우리는 약간 피곤을 느꼈지만, 축복은 실로 컸다. 더러 우리는 경제 사정이 안좋은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인가로부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동차 밑에 들어가 고장난 부분을 찾고 있었다. 놀랍게도 자동차 한대가 다가왔다. 알고 보니 그 운전사는 임명되지 않은 구역에서 전도하는 증인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그는 자기 집에 돌아가자 즉시 우리의 다음 방문지로 50‘달러’를 송금하였다. 우리는 한번도 필수품에 부족을 당한 일이 없었다.

오지에 사는 증인들로서는 성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100‘킬로미터’ 정도 여행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웃 회중에 사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에 세명의 그리스도인 장로 위원회는 주말 전체를 바쳐 1,900‘킬로미터’ 거리를 여행하기도 한다. 어떤 증인들은 1년에 두번 있는 순회 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왕복 4,800‘킬로미터’를 여행한다. 도로 사정이 나쁘거나 홍수가 났을 때에는 여유가 있다면 비행기를 타고 간다. 한 가족은 순회 대회에 참석하는 데 비행기 요금과 숙박비로 1,000‘달러’ 이상을 지출하였다. 자기 생활에서 영적 문제를 첫째로 삼는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실로 흐뭇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다른 전도 임명을 받았다. 새로운 순회구에서는 여행하는 면적이 이전의 임명지에서 한 회중 구역에 해당할 만한 정도이다. 우리의 마음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광대한 오지에 사는 우리 형제들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기고.

[261면 삽화]

‘유럽’ 지도 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윤곽이 겹쳐 있고 여행로가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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