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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교와 참 종교의 기록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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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8
파78 4/15 10-15면

그리스도교와 참 종교의 기록

1, 2. 보통 “그리스도교”라고 불리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와 어떻게 비교됩니까?

1976년 12월 24일자 「디트로이트 프리이 프레스」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였읍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인들은 두번째로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할 것인가?

계속된 기사에서 특별 기고가인 ‘시드니 J. 해리스’ 씨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읍니다.

“그리스도가 ‘크리스마스’ 날에 다시 오신다면 이내 두번째로 십자가에 못박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번에는 ‘로마’인들이나 ‘유대’인들이 아니라 스스로 그리스도교인들이라고 자랑스럽게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렇게 되지 않을까?

“나는 오늘날의 우리가 인간 행위와 사회적인 관계에 대한 색다르고, 놀랍고, ‘비실용적’인 교리들을 가르친 이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우할 것인지 궁금하다 ···

“우리 가운데 있는 군국주의자들은 그가 악을 저항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고 우리에게 촉구하기 때문에 그를 비겁한 평화주의자라고 공격하지 않을까?

“우리 중에 있는 국가주의자들은 그가 우리 모두는 한 몸에 속했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그를 배척하지 않을까? ··· 우리 중에 있는 감상주의자들은 그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좁고 어렵다고 경고하기 때문에 그를 냉소가라고 배척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해 본다. 그리스도교 기원이 이미 시작되었는가를.”

2 이 기사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성서에 제시된 참 종교를 신봉한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견해 사이에 존재하는 몇가지 주요한 차이점을 극적으로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와 참 종교

3, 4. ‘아담’과 ‘하와’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ㄱ) 예수께서 믿으신 내용(창세 1:26)과 (ㄴ) 그의 제자들이 믿었던 바와 어떻게 비교됩니까?

3 성서 「창세기」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첫 인간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음을 가르친다는 것을 살펴보았읍니다. 진화론을 더 좋아하는 많은 교직자들과 교인들이 「창세기」 기사를 신화라고 생각하지만 그리스도교의 설립자이신 예수께서는 어떠하셨읍니까?

4 예수께서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다고 확신하셨음은 부인할 수 없읍니다. 그분의 제자들도 역시 그렇게 믿었읍니다. (창세 2:21-24; 고린도 전 6:16; 15:45; 에베소 5:31; 누가 3:23-38) 언젠가 예수께서는 이혼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태 19:4-9.

5. 성서에 대한 어떠한 태도가 참 종교를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됩니까?

5 우리는 예수의 이러한 말씀으로부터 그분과 그분의 추종자들이 성서를 영감받은 신뢰할 만한 기록으로 받아들였음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그러한 인정은 참 종교를 분별하는 주요한 표입니다. (디모데 후 3:16, 17) 우리 각자는 이제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볼 수 있읍니다. ‘나의 종교는 창조에 관한 성서의 내용을 포함하여 성경을 영감받은 정확한 기록으로 받아들이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와 사도들과 동일하게 믿는가?’

6. (ㄱ) 예수께서는 결혼과 이혼에 관하여 어떻게 느끼셨으며, 참 종교는 이 문제에 관한 「창세기」의 내용과 어떻게 비교됩니까? (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과 결혼에 관하여 어떠한 행로를 따랐읍니까? (히브리 13:4)

6 예수께서 마태 19:4-9에서 말씀하신 바는 올바른 행실에 관하여 참 종교가 일관성이 있음을 예시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결혼이 거룩하고 결혼 언약이 구속력이 있다는 점에 동의하셨읍니다. 즉 이혼과 재혼은 단지 자기 배우자가 심각한 부도덕을 범하였을 때만 성경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종교는 기혼자들이 이런 경건한 표준에 고착함으로써 그들의 연합을 성공적인 것이 되도록 자극합니다. 그들은 결혼을 국가에 의해 쉽게 해소될 수 있는 일시적인 사회 계약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참 종교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난잡한 성생활을 피하고 결혼에 관한 창조주의 견해를 거룩하고 구속력있는 결합으로 받아들였읍니다. 그리하여 ‘C. J. 카독스’ 박사는 제 2세기 그리스도인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읍니다.

“결혼의 한계 밖에서의 모든 성관계는 엄격히 금지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주변의 이방 세계에 만연된 과도한 행위들에 대해 자주 공격하였다.”—「초기 교회와 세계」 283면.

7, 8.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교인들이 성서의 도덕 표준에 고착하고 있읍니까? 아니면 오늘날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까?

7 당신은 대부분의 교회들이 성서의 도덕적 표준에 열렬히 고착하고 있는 것을 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성경적인 근거도 없이 이혼이나 재혼을 하는 것이 보통입니까? 또한 많은 종교들은 부도덕하게 동거하는 사람들이나 일부다처주의자들까지도 교인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8 물론 많은 사람들은 성서의 높은 도덕은 찬양할 만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시대에 그것에 고착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의 세상에 과도한 행위가 만연해 있지만’ 종교인들이 높은 도덕 표준에 고착할 수 있음이 분명합니다. (히브리 13:4)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수십만명과 관련하여 「런던 데일리 텔리그라프」지의 다음과 같은 보도에 유의하십시오.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 ‘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이 높은 도덕률을 지키는 단정하고 질서있는 사람들임을 나타내 왔다 ··· ‘아프리카’ 사회를 특징짓는 혼음과 일부다처주의는 증인들 중에서는 생각조차 해 볼 수 없다. 그 종파는 검약, 시간 엄수, 정직성 그리고 순종의 습관을 가르친다.”—1972년 10월 26일자.

9. (ㄱ) 왜 성도덕과 도둑질에 관한 성서 내용은 서로 관련되어 있읍니까? (신명 5:19, 21; 데살로니가 전 4:4-6) (ㄴ) 참 종교는 회개하지 않고 악을 계속 행하는 사람에 대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알아냅니까?

9 그러므로 처음부터, 우리는 성도덕에 고착하는 것과 결혼에 대한 존중이 참 숭배의 명백한 표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재산권에 관한 내용 및 도둑질을 정죄하는 성서 내용과 관련됩니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의 배우자나 다른 사람의 도덕적 순결을 훔치는 것도 포함됩니다. (창세 2:24; 에베소 4:28) 더우기 성서는 참 종교를 믿는다고 공언하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계속 ‘음행하고 간음하고, 도둑질이나 탐욕’을 행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요구 조건과 일치하게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쫓겨나야 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고린도 전 5:11-13; 6:9, 10) 그처럼 하나님의 도덕에 굳게 고착하는 것은 참된 종교를 알아내는 일관성있는 표였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은 그것과 어떻게 비교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읍니다.

예수와 영혼

10. 그리스도인 성경과 「창세기」는 “영혼” 문제에 관하여 어떻게 비교됩니까?

10 ‘아담’과 관련된 앞의 토론에서 우리는 성서가 ‘아담’에게 불멸의 영혼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그가 영혼이었다고 한 점을 고려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인 성경 즉 “신약”에서도 그와 동일한 이해를 발견할 수 있읍니까? 참으로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 문제를 논하면서 「창세기」의 기록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읍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산 영혼; living soul]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예수 그리스도]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느니라].” (고린도 전 15:45) 그러므로 이 문제에 있어서도 참 종교의 신조에는 일관성이 있읍니다.

11. 예수의 제자들은 어떠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은 그것이 단순히 바라는 생각이 아니라 실제적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읍니까? (베드로 전 1:3, 4; 사도 10:39, 40; 17:31; 고린도 전 15:3-8)

11 그리스도의 초기 추종자들은 예수 자신에게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러한 이해를 확신할 수 있었읍니다. 인간 영혼인 그분은 죽임을 당하셨읍니다. 그분은 삼일 동안 죽은 상태에 계셨으며, 그 기간 중에는 다른 어떤 곳에도 살아계시지 않았읍니다. (사도 2:22-27; 고린도 전 15:3, 4) 그분은 무덤 속에 계시다가 제 삼일에 하나님께서 그분을 영체로 부활시켜 후에 하늘로 돌아갈 수 있게 하셨읍니다. (베드로 전 3:18) 그 전에 예수께서는 죽음을 무의식 상태에 있는 잠으로 비유하신 후에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일이 있읍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음이라].” (요한 11:11-14, 25; 5:28, 29) 그러므로 그의 제자들이 인간에게 불멸의 영혼이 있다는 희랍 철학을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었읍니다.

12. 종교와 관련하여 왜 영혼에 관한 신앙이 의미 심장합니까?

12 이와 같은 지식으로 우리 각자는 우리의 종교가 가르치는 바를 고려해 볼 수 있읍니다. 우리의 종교적 사고는 참 종교가 일관성있게 견지해 온 내용 즉 사람이 영혼이며 어떠한 미래의 생명도 부활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과 일치하게 틀잡혀 있는가? 이것은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희망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노아’에게 주신 명령과 예수

13, 14. 왜 피 문제는 참 숭배에 있어서 중요합니까?

13 예수의 가르침이 ‘아담’에 관한 「창세기」 내용과 일치한 바와 같이 그 가르침이 ‘노아’에 관한 성서 기록과도 일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적일 것입니다. 당신은 창세기 9:3-6에서 창조주께서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명령을 내리셨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는 피채 고기를 먹는 일과 다른 인간의 생명을 취하는 것을 금하셨읍니다.

14 그 이후로 참 종교에는 피에 대한 존경이 관련되게 되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피가 자기에게서 나온 그리고 자기에게 속한 생명을 대표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레위 17:13, 14; 시 36:9) 이와 일치하게 모든 인류를 위해 희생으로 쏟아진 것은 예수의 생명의 피였읍니다. (에베소 1:7; 히브리 9:11-14; 베드로 전 1:19)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피를 먹거나 피를 빼지 않은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읍니까? 그리스도인 성경을 보면 사도행전 15장에 그리스도인 중앙 장로의 회 혹은 통치체를 형성하는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의 구속력을 가진 결정이 들어 있읍니다. 성서에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인들도 ‘노아’를 통해 명령된 바와 똑같이 피를 멀리하여야 함을 분명히 하였읍니다.—사도 15:28, 29; 21:25.

15, 16.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행동과 ‘여호와의 증인’들의 행동은 생명의 피와 관련하여 어떻게 비교됩니까?

15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법에 고착하였읍니다. ‘라틴’ 필자 ‘터툴리안’은 제 2, 3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하고 정상적인 음식에도 동물의 피는 넣지 않았고, 목매어 죽인 것과 자연사한 것을 멀리하였’음을 알려 줍니다. 심지어 박해자들도 참 그리스도교에 고착하는 사람들은 피가 들어 있는 고기를 먹지 않음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피로 만든 ‘소세지’로 유혹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일을 불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온전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터툴리안’의 「호교서」 제 1부 9장.

16 그 이래로 참 종교의 이러한 독특한 점이 사라졌읍니까?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와 관련된 성서 내용을 무시하거나 가르치지 않지만 그것은 아직도 참다운 그리스도교를 알아내는 한 가지 표입니다. 1976년 어떤 ‘아프리카’ 국가의 한 보고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정치적인 중립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투옥된 ‘여호와의 증인’들에 관하여 말했읍니다. 그들이 투옥되었던 교도소의 교도관들은 그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부인하는 편지를 쓰게 하고, 자신의 종교를 바꾸고, 일부다처 원칙을 받아들이거나 피를 빼지 않은 고기를 먹게’ 하려고 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였읍니다. 우리는 그 그리스도인들이 사도들처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는 반응을 보인 것을 기꺼이 말씀드립니다.—사도 5:29.

17. 그리스도인들은 참 종교에 관한 어떤 다른 증거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신 내용에서 찾아 볼 수 있읍니까?

17 참 종교에 관하여 고려할 수 있는 또 다른 부가적 증거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신 것과 관련이 있읍니다. 전체 인간 가족이 단지 팔명이었던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서로 대항하여 싸우거나 서로 죽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백히 말씀하셨읍니다. (창세 9:5, 6) 인류에 대한 형제로서의 이런 감정과 인간 생명에 대한 존경은 참 종교를 알아내는 가장 강력한 표 중의 하나입니다.—출애굽 20:13.

18. (ㄱ) 예수 자신은 무엇이 그의 제자들을 알아내는 표라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예수의 말씀 때문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전쟁과 관련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하였읍니까? (마태 5:43-45; 26:52)

18 예수께서는 죽으시기 얼마 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한 13:34, 35) 따라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군대에 속하거나 어떠한 다른 고대 국가들의 군대에 속하여 싸우는 일을 거절하였읍니다. ‘조나단 다이몬드’는 “그리스도교 원칙과 전쟁과의 조화에 관한 조사”라는 그의 수필에서 그 문제에 대해 자기가 조사한 바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읍니다.

“우리 구주와 가장 가까운 시대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이 명백히 전쟁을 금하셨다고 확신하였다.—그들은 이러한 신앙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으며, 그 신앙을 지지하기 위하여 그들의 재산이나 생명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하였으며, 희생하였다 ···”—60, 61면.

19. 성서 필자 ‘요한’은 참 종교의 어떠한 특징을 강조합니까?

19 사도 ‘요한’은 참 종교의 필수적인 특징으로서 사랑을 매우 강조하였읍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 1서 3:11, 12, 18.

연합된 왕국 지지자들

20. 다른 사람이 참 숭배를 알아내도록 도울 때 우리는 왕국에 관하여 어떠한 점을 지적할 수 있읍니까?

20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전세계적으로 연합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예수의 전파의 중심이 되는 주제 즉 하늘의 왕국에 있읍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지구상 어디에 살든지 이 왕국의 권위를 지지하고 생명을 바칩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교인들이 ‘나라이 임하옵소서’ 하고 예수의 “모범적 기도”를 되풀이 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 왕국이 지상 거민의 유익을 위하여 실제로 이 지구를 다스리고 인류에게 공의, 평화, 건강 그리고 생명을 가져올 실제 정부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읍니까? (계시 21:3, 4; 베드로 후 3:11-13) 예수께서는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그 왕국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내 나라[왕국]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한 18:36.

21.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충성과 노력을 어디에 바칩니까?

21 이 왕국은 천적 근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가져오려는 인간의 노력을 존중하지만 그들의 모든 능력과 자원을 그 왕국과 그 왕국이 모든 인류에게 가져 올 희망을 선포하는 데 바칩니다. (마태 24:14; 28:18-20) 따라서 그 왕국에 대한 믿음과 충성은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들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22.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세속 정부와 관련하여 어떤 지위를 가졌읍니까? (디도 3:1; 베드로 전 2:17)

22 사도 시대 이후의 기간에 살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이러한 신앙을 나타냈읍니다. 그들은 세금을 내고, 그 나라의 법을 준수하고 모든 정상적인 점에서는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모범적인 시민들이었읍니다. (마태 22:17-21; 로마 13:1-7) 그러나 그들은 그 시대의 정치적인 분열과 투쟁 가운데서 중립을 지켰읍니다. 역사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세상에서 의인이며 순례자들이었다.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었다; 그들이 바라본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공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의 부족은 처음부터 그리스도교의 뚜렷한 특징이 되었다.”—‘E. G. 하아디’ 저 「그리스도교와 로마 정부」 39면.

23. 올바른 종교에 관하여 생각할 때 왜 ‘여호와의 증인’들의 중립적인 위치는 흥미있읍니까? (요한 15:19)

23 따라서 오늘날 참 종교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알아내려면 우리는 어떠한 개인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우리 시대의 부정과 고통을 시정하는 하나님의 왕국의 조처를 기다리기 때문에 인간 정부의 일에 중립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F. H. 리텔’은 「국교에서 성직록의 겸임까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독특한 교리가 아무리 믿기 어렵고 고지식하게 보이더라도 성서적인 종교에 있어서는 왕국의 임함이 극적인 침투의 계기이자 인간이 예상하는 정상적인 행로를 전환시키는 계기임을 잊어서는 안된다.”—212면.

왕국에 관한 성서 교리는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지적하신 바와 같이 세상의 견해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말씀도 하셨읍니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 우리가 참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성서의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의 활동을 조사해 볼 가치가 있읍니다.—마태 11:19.

그 의미는 무엇인가?

24. 요약하여 참 종교를 알아낼 수 있는 몇가지 중요한 표는 무엇입니까?

24 여기에서 우리는 참 종교를 알아내는 모든 표를 다 고려하지는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우리가 가진 종교 및 우리 자신의 신앙과 습관을 헤아려 볼 수 있는 풍부한 기초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가 성서에서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서 발전한 내용에 따라 우리는 참 종교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는 것을 쉽게 인정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이 땅에서 살도록 직접 창조하셨다. 인간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없으며, 죽은 자들은 장차 부활을 받는다; 부도덕을 피하고 결혼 마련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데 굳건해야 한다; 피에 관한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동료 인간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하는 것은 생활을 훨씬 더 즐겁게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시는 놀라운 희망을 가지도록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할 필요가 있다.

25, 26. 우리 각자는 참 숭배의 이러한 특징에 관하여 왜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읍니까? 어떠한 결과가 있을 것입니까?

25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 혹은 개인적인 신앙이나 습관이 성서에서 참 종교로 지적된 것과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지 모릅니다. 당신의 경우에 얼마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지체하지 말고 그렇게 하십시오. 베드로 전 3:10-12의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충고를 따르십시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26 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것을 좇을 수 있읍니까? 참 종교와 조화되지 않는 것은 버릴 뿐만 아니라 우리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살도록 적극적인 조처를 취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노아’가 단순히 신앙을 가진 자가 아니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성서는 ‘노아’가 참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의의 전파자’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와 그의 사도들도 믿었고 참 종교에 일치하게 생활하였읍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지상에서의 평화스러운 새 질서에 관한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 포함됩니다. (마태 4:17; 10:7; 28:19, 20) 우리도 온 마음을 다하여 그렇게 할 때 우리에게 즐거움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 생의 목적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주게 됩니다. 그들이 참 종교를 알아내고 실천한다면 풍부한 축복이 그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14면 삽화]

참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의 공통적인 희망에 근거한 세계적 연합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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