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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악의 사태가 닥쳤을 때
  • 깨어라!—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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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0
깨80 04월호 41-43면

최악의 사태가 닥쳤을 때

한 어린 소녀의 감동적인 믿음의 이야기

우리 딸 ‘엘리제’는 1962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그 아이가 태어나 우리와 그 아이의 오빠 ‘에사’는 무척 기뻐했다. ‘엘리제’는 배우려는 열의가 강했기 때문에 남편과 나는 그 아이가 입학하기 전에 읽는 법을 가르쳤다. 또한 우리 가족의 다른 식구들처럼 그 아이에게는 음악적인 소질도 있었다.

우리는 ‘엘리제’를 세 살 때 음악 유치원에 등록시켰다. ‘엘리제’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에는 결혼식에서 ‘비발디’의 A-단조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로 ‘바이올린’에 능숙해 있었다. 우리는 가족 ‘오케스트라’를 형성하였다. 남편은 ‘비올라’, ‘에사’는 ‘첼로’, 그리고 ‘엘리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였다. ‘엘리제’는 매우 탁월한 음악가가 될 것 같이 보였다.

우리는 음악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딸의 영적인 발전에 더 중점을 두어 유아기부터 그 아이에게 성서를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에는 집집을 자기 스스로 방문하면서 「파수대」와 「깨어라!」 잡지를 전하곤 하였다. 한 이웃 집 부인은 조금 흥분했었다. 그 이유인즉 그렇게 어린 아이가 그런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부인은 ‘엘리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같이 어린 아이가 내게 성서에 대해 말해 주러 오다니! 내 참, 넌 그 잡지를 스스로 읽을 줄도 모르지 않니!”

“아, 아녜요, 읽을 수 있어요”하고 대답하고는 ‘엘리제’는 배부하고 있던 잡지의 한 귀절을 읽고 나서 설명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매우 기뻤다. 회중이 새로운 왕국회관을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을 때 그 아이가 나타낸 반응을 지켜보는 것 역시 무척 행복한 일이었다. 그 아이는 총 저금액인 15‘마르크’(미화로 3불 75‘센트’)를 은행에서 인출해 내어 건축을 위해 헌금하였던 것이다.

우리를 두렵게 한 발견

‘엘리제’가 열 살이던 1972년 어느 여름날 우리는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그 아이 코 위에 이상한 혹이 나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혹은 매우 작았지만,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를 ‘퓨오틴하르주’에 있는 의료 ‘센터’로 데려 갔다. 전문의는 코 위에 그런 혹이 난 것을 처음 본다고 말하고는 대학 병원의 이(耳)과에 가보라고 권하였다. 며칠 후에 우리는 악성 질환이 아니라는 진단 결과를 듣게 되어 안심하였다.

약물 처방과 함께 혹이 커지는 일이 곧 중단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렇지를 않았다. 2주일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아 우리는 ‘엘리제’를 의사에게 다시 데려갔다. 이번에는 병원에 입원되었고 그 아이는 9월 24일에 수술을 받았다. “댁의 어린 따님은 암에 걸렸읍니다”라는 고통스러운 소식을 들은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생명을 위한 용감한 싸움

암이 ‘엘리제’의 편도선에까지 번진 것 같았다. 그래서 편도선을 제거하였다. 그 다음 몇 달 동안 암이 계속 번졌기 때문에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수술을 몇차례 더 하였다. 우리는 ‘엘리제’가 기록한 일기를 아직 가지고 있다. 그 아이는 1973년 가을에 이렇게 썼다.

“세 번 수술을 받고 난 후 정형 외과의 입원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곧 입원 하였다. 다시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리트바’라는 좋은 친구가 있었다. 그 애는 눈 수술을 받았었다. 우리는 ‘페크카’와 ‘티이나’와 함께 숨바꼭질 놀이를 자주 하였다. 나는 ‘리트바’에게 「위대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음」, 「성서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라는 세권의 서적을 주었다. ‘리트바’는 그 책들을 모두 읽었다. 내 생각으론 올 가을이 내 생애 중에 가장 괴로운 가을인 것 같다.”

여러분은 외모를 해치는 이러한 수술들이 계속되어 우리 모두가 얼마나 낙심했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제’의 일기를 보면 그 아이가 얼마나 괴로와하고 아파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아이는 믿음이 강하였으며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도 엿볼 수 있다. 일기는 이렇게 계속된다.

“(1974년) 1월에 네번째 수술을 받았는데 내 뺨에 아주 커다란 흉터가 생겼다. 며칠 동안 머리 전체와 귀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왼쪽 귀에 붕대가 덜 감겨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을 때는 그 쪽 귀를 사용해야 하였다. 붕대를 풀었을 때 내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눈 근처에 있는 실을 뽑아낼 때는 내 눈이 빠져 나올까봐 두려웠다. 1월 19일에 퇴원했다. 행복한 날이었다.”

이런 모든 일이 있는 동안 대회 ‘오케스트라’의 그 아이의 음악 친구들을 포함하여 우리의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은 계속 찾아와 격려해 주었다. 또한 그 아이의 학교 친구들과 교사들도 매우 친절하였으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그 아이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주었으며 그 아이가 자기들에게 환영받고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종종 ‘엘리제’는 친구들이 자기를 위로해 준 것 이상으로 그들을 위로해 주었다.

그 아이는 벗들에게 자기가 혹 죽더라도 잠간 동안 자는 것에 불과하며 낙원에서 깨어날 것이라고 말해 주곤 하였다. “새 질서는 내가 죽자마자 시작될거야. 왜냐하면 아무도 자기가 자고 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을 모르니까 말이야.”하고 그 아이는 말하곤 하였다. 그 아이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그처럼 확신을 가지고 침착하게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친구들이 감정을 억누르기란 힘든 일이었다.

우리는 암이 어떻게 해서인가 치료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1974년 3월에 ‘코발트’ 광선 치료가 시작되었으며, 이어서 약물 치료를 하였다. ‘엘리제’는 일기에 이 치료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광선 치료로 나는 무척 허약해졌다. 그 치료는 3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가장 괴로운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5월에 방학하기 전 날 나는 약물 치료를 받았다. 나는 너무 허약해져서 6월 내내 희망의 빛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3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였으며 침대에서 내려 올 기운조차 없었다. 몸무게는 5‘킬로그램’이 줄어 버렸고 머리 카락은 모두 빠져 버렸다. 그렇지만 장난감 집이 있었다. 아빠가 그걸 지어 놓았을 땐 정말 멋있었다.

“다행히도 7월에는 약간 좋아진 것 같아서 지역 대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대회 동안에는 상태가 좋은 것 같았고 그 때부터 내 기분은 상당히 좋아졌다. 8월에 1주일 동안 또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별로 앓지 않았다. 약물 치료는 2년 동안 계속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모두 제한된 효과를 보였을 뿐 ‘엘리제’의 상태는 나빠지기만 하였다. 자기가 곧 죽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자 그 아이는 친구들에게 자기 장난감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 자기가 부활되면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들에게 되새겨 주었다. 그러나 ‘바이올린’만은 아무에게도 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새 질서에서 우리 가족 ‘오케스트라’에서 다시 연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였다.

또한, 이 기간 내내 그 아이는 자기 선생님, 학교 친구들, 의사들, 간호원들에게 많은 증거를 하였다. 그 아이는 「현 생명이 인생의 전부인가?」라는 책 12부에 자기 서명을 하여 남겨 두었다. 자기가 죽고 나면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들에게 그 책을 나누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엘리제’의 이야기는 ‘헬싱키’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1976년 1월 4일 아직 14살도 채 못된 나이로 그 아이는 사망하였다.

우리를 놀라게 한 상면

1년 반 후 남편과 나는 ‘헬싱키’의 ‘아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지역 대회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물었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처음에는 당황하였지만 곧 그가 한 때 ‘엘리제’의 치료를 담당한 적이 있는 의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흰 의사 복장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르게 보였으며, 수염도 깎아 버렸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엘리제’는 다른 의사들에게 처럼 그에게도 증거를 했었으며 그는 매우 친절하였고 성서에 어느 정도 관심을 보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역시 그에게 증거를 하였었다. 우리는 ‘엘리제’에게 친구들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쳤는데 저녁 기도 때마다 그 아이는 이 의사를 자주 포함시켜서 그가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진리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의사가 우리 딸이 죽음의 병 중에 보인 믿음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엘리제’는 내게 「참다운 평화와 안전」책을 주었지요. 그렇지만 나는 바빴기 때문에 책꽂이에 그냥 꽂아 두었읍니다. 당시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 못해서 나는 문제들을 호전시키려고 ‘헬싱키’의 ‘X-레이’ 병원에서의 나의 무거운 책임을 벗어 버렸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랜드’로 이사하였고, 나는 보건소에서 일반 진료를 보았읍니다.

“이사한 것만으로는 우리 가족 관계가 좋아지질 않았읍니다. 그러던 중 그 지방 ‘증인’이 내 아내를 방문하였고, 아내는 얼마의 인쇄물을 받았읍니다. 그러자 아내는 ‘엘리제’가 내게 준 책이 기억나서 책장에서 그 책을 꺼내어 전체를 다 읽었읍니다. 아내는 곧 이것이 진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어 그 지방 증인과 연구가 시작 되었읍니다. 처음에는 내가 연구하는 것을 반대할까봐 아내는 연구에 대해 내게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였읍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했지요. ‘우리 가족 관계를 향상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아요.’ 나는 그 ‘증인’을 만나고자 하였으며 곧 기회가 마련되었읍니다. 그 결과 나까지도 연구에 가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서 원칙들은 우리 가족 문제들을 개선시켜 주었으며 우리가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갖도록 해주었읍니다. 1976년 우리는 침례를 받았고 아내는 정규 ‘파이오니아’를 하고 있읍니다. 네 명의 아이들중 셋이 ‘좋은 소식’의 선포자이고 7살 난 막내 아이는 우리가 야외 봉사에 나갈 때 정기적으로 함께 나갑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격려를 받았겠는가를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딸의 기도는 최상의 응답을 받은 것 같았다. 이 일을 ‘엘리제’가 알기만 한다면! 그 아이가 부활되면 이야기해 줄 정말 기뻐할 만한 이야기거리들이 있을 것이다.

의사가 “댁의 어린 따님은 암에 걸렸읍니다”하는 말을 들었을 때가 내 생애에서 가장 암담한 날이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제’가 살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우리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 여호와 하나님과 성서에 있는 그분의 약속에 대한 강한 믿음이 한낱 어린 아이의 인생을 그렇게도 강력히 주관하는 것을 보는 것은 가슴을 뭉클케 하였다. 나는 ‘엘리제’가 한 말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단지 하룻밤처럼 자고 있을걸거예요. 그리고 새 질서에서 깨어날거고요.”—기고.

[41면 엘리제의 사진]

[41면 삽화]

“댁의 어린 따님은 암에 걸렸읍니다” 하고 의사가 말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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