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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80 03월호 14-19면
  • 그리스도교국의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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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교국의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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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80 03월호 14-19면

그리스도교국의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1, 2. (ㄱ) 아무런 근거도 없이 좋은 일이 있을 것을 예언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시험이 되게 합니까? (ㄴ) 지금 해결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며, 그 쟁점이 제기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가까운 장래, 우리 생전에 일어날 좋은 일들에 대한 예언을 듣기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시험이 되게 합니다. 어떤 예언은 그것이 굳건한 근거가 있거나 권위있는 근원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우리가 듣기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기를 원할지 모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취하도록 우리를 유혹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장래가 관련될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 경우가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그 이유는 해결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 바로 지금 온 인류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은 ‘누가 세계를 다스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쟁점이 제기된 것은 자유 기업의 자본주의 나라들과 사회주의의 공산주의 나라들 사이의 끝없는 투쟁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의 왕국에 관하여 선포한 것이 그러한 쟁점을 제기하게 한 요인입니다. 이 왕국이 ‘이방인의 때’가 끝난 1914년부터 다스리는 것은 합당한 일입니다.

3. (ㄱ) 그러므로 사람들은 어떠한 문제에 대하여 그들의 입장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ㄴ) 이방 나라들은 왜 그들의 주권을 여호와께 양도해야 합니까?

3 전세계에서 190여 개 언어로 이 왕국 선포를 들은 사람들은 그들의 입장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들은 이제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의 올바른 통치를 지지할 것입니까? 혹은 반대할 것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우리 피조물의 소유물이 아니라 땅의 ‘창조주’의 소유물입니다. 이 ‘창조주’의 책인 성서의 시간표에 의하면 그분이 그리스도교국의 나라들을 포함한 지상 나라들의 세계 지배를 허락하신 때는 1914년 이른 가을에 끝났습니다. 그분은 어떻게 그러한 ‘이방인의 때’의 끝을 가져오셨습니까? 왕으로서 그리고 하늘에 있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하늘로부터 세계 정부에서 다스리는 “큰 권능”을 잡으심으로써입니다. (계시 11:15-18) 그러므로 그분의 아들이 지금 통치하십니다. (에스겔 21:25-27) 지금은 이방 나라들이 그들의 주권을 여호와께 양도해야 할 때입니다.

4, 5. (ㄱ) 기원전 614년으로 소급해 보면 그 때 중동 지방에는 어떠한 위협이 있었습니까? (ㄴ) 그 때에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기구들은 어떻게 되어 있었으며, 이 기구들에 대한 하나냐의 예언이 성취되려면, 어떠한 일이 있어야 하였습니까?

4 기원전 614년으로 소급해 가 보면 그 당시 유다 왕국도 같은 상태에 처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세계적 위협이 있었습니다. 어디로부터입니까? 하나님께서 “북방 모든 족속”이라고 부르신 곳으로부터입니다. 이것은 바벨론 세계 강국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그 강국은 북쪽 통로로 중동 지방을 침략할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1:13-15; 25:9, 26) 중동 지방은 이미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의 여호야김이 바벨론의 예속 왕이 된 기원전 620년부터 그러하였습니다. 그의 동생 시드기야가 성도(聖都)의 마지막 왕이 되었고 느부갓네살은 충성을 맹세하게 한 후에 그를 보좌에 앉혔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떠나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에 그는 폐위된 여호야긴과 유대 귀인들을 사로잡아갔습니다. 그는 또한 여호와의 성전으로부터 거룩한 기구들을 가져다가 바벨론에 있는 거짓 신들의 전(殿)에다 두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약탈해 온 이들 거룩한 기구들과 기타 보물들은 얼마 동안이나 바벨론에 있을 것이었습니까? 시드기야 통치 제4년에 이 질문이 열띤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5 앗술의 아들 하나냐라는 거짓 예언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주장하면서 “두 해”라고 못박았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그 때가 오기 전에 바벨론이 전복되고 애굽이 세계 강국으로 돌아와야만 하였습니다. 하나냐는 바벨론을 대항하여 예언함으로써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국제적으로 반기를 드는 자들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이미 예레미야가 선포한 바 있는 여호와의 명령과 충고를 반대하였습니다.

6. 예레미야 28:8, 9에 의하면 하나냐의 예언은 예레미야 이전의 예언자들의 예언과 어떻게 달랐습니까?

6 하나냐가 유다 땅에 대해 거짓 희망을 갖게 함으로 예레미야는 성전에 있는 모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 이러한 말로써 그의 대답을 마쳤습니다.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예레미야 28:1-9.

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914년 이래 우리 시대에 관하여 무엇을 예언하셨으며, 참을 말하는 자들에 관하여 오늘날 어떠한 질문이 일어납니까?

7 여호와의 가장 위대하신 예언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914년 이래 우리 시대에 일어날 전쟁과 기근, 질병, 지진 및 기타 재난에 관하여 예언하셨으며, 이 모든 일들은 인류 역사상 미증유(未曾有)의 “큰 환난”으로 절정이 될 것입니다. (마태 24:4-22)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의 이 예언이 1914년 이래 점진적으로 성취되어 온 사실을 지적합니다. 예수께서는 가까운 장래 즉 이 세대 안에 이 세상에 결코 영속적인 평화가 없을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누구를 보내셨으며, 누가 그분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자들입니까? 반대로 예언하는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입니까? 아니면 오늘날의 예레미야 반열입니까? 장차 일어날 일들은 누가 참을 말한 자들인지를 알려 줄 것입니다.

8. 예레미야가 대답한 후에 하나냐는 어떠한 극적 행동을 취했으며, 그는 어떠한 때에 관한 예언을 하였습니까?

8 거짓 예언자 하나냐는 여호와의 “종”에게 국제적 반기를 드는 것이 성공할 것임을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극적 행동을 그가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고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두 해가 차기 전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예레미야 28:10, 11.

9. 이제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멍에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라고 하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9 그러나 그러한 예언이 단순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성취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나냐의 예언을 성취시키시는 동시에 그와 반대되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성취시키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발표하신 “종”에 대한 국제적 반역은 실패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중에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를 만들었느니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신다 하라.” (예레미야 28:12-14) 따라서 하나냐에 의하여 조장된 국제적 음모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더우기 여호와께서 “들짐승”까지도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시기 위하여는 여호와께서 국제적 음모자들의 땅도 그에게 주셔야 할 것입니다.

종교적 주모자가 보응을 받다

10. 여호와를 대항하는 국제적 모의를 지지하는 하나냐와 같은 교직자들에 대하여 예레미야 반열은 어떠한 행동을 취할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까?

10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예언자들은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의 왕국을 대항하는 국제적 모의을 지지하며 크게 소리칩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그들 누구에게도 죽음의 선고를 할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영감받은 말씀을 사용하고 그것을 하나냐로 전영된 교직적 거짓 예언자들에 대하여 한 반열로서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레미야의 예언적 행동을 읽어 봅시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으로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하는 말을 하였음이라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예레미야 28:15, 16.

11. (ㄱ) 하나냐는 얼마나 더 살았습니까? (ㄴ)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 역시 어떠한 죄를 짓고 있으며, 그러므로 예레미야 반열은 무엇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까?

11 여호와를 반대한 국제적 음모자들의 패역을 지지한 하나냐는 약 2개월 더 살았을 뿐입니다.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기원전 614년]칠월에 죽었더라.” (예레미야 28:17, 1) 고대의 이러한 예언적 희곡(戲曲)으로 볼 때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거짓 예언자들인 교직자들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고대 느부갓네살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인 여호와의 종-왕의 멍에를 메는 것을 거절한 통치자들을 지지합니다. 예레미야 반열은 이 점에 있어서 교직자들과 동조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계속 교직자들이 재난으로 백성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2. 이미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유대인들을 위하여 예레미야는 여호와로부터 거짓 예언자 아합과 시드기야에 관한 어떠한 소식을 받았습니까?

12 그 옛날 중동 지방에 이러한 정치적 불안이 있었을 때에 이미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유대인들 사이에도 거짓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사로잡혀간 유대인들에게 거짓 희망을 심어 주고 있는 이들 사이비 예언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 소식을 보내셨습니다.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 나 여호와의 말을 들을찌니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너희 바벨론에 있는 유다 모든 포로가 그들로 저주거리를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로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행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니라 나는 아는 자요 증거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였더라.”—예레미야 29:20-23.

여호와의 “종” 느부갓네살에게는 시드기야와 아합을 불살라 죽인 그럴 만한 정치적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충고를 어기고 바벨론 제국을 해롭게 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13. 유대인 포로들이 바벨론으로부터 일찍 구출될 것을 기대해야 하였습니까?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편지는 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였습니까?

13 위에 인용된 글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먼 바벨론에 사로잡혀가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백성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였습니다. 이 편지는 예루살렘의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에 있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보낸 두 밀사 즉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에 의하여 전달되었습니다. (예레미야 29:1-3) 예레미야의 이 편지 가운데서 여호와께서는 포로들에게 바벨론으로부터 속히 구출될 것을 기대하지 말고 그곳에 정착하여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역을 도모하지 말고 “내[여호와]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예레미야 29:4-10.

14. 옛날 예언자처럼 예레미야 반열은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든지 어떻게 하라고 교훈합니까?

14 전영된 예레미야처럼 오늘날의 예레미야 반열도 헌신하고 침례받은 모든 여호와의 증인에게 영적으로 말하여 그들이 “나그네와 행인”처럼 살고 있는 나라에서 법을 준수하고 평화로운 시민으로서 생활하라고 교훈합니다. (베드로 전 2:11-15) 그들은 또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상대적 복종을 함으로써 하나님과도 평화를 유지합니다.—로마 13:1-4.

15. 바벨론에 있던 거짓 예언자 스마야는 무슨 일을 하였으며, 그는 예루살렘 전의 “유사”에게 무슨 불평을 하였습니까?

15 예레미야가 그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전에 그 당시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 있던 거짓 예언자 곧 느헬람 사람 스마야가 벌써 예루살렘 전의 “유사”(有司)인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에게 편지를 보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포로들에게 보내는 예레미야의 편지 가운데서 이 사실을 지적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네가 네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집 유사로 세우심은 무릇 미친 자와 자칭 선지자를 착고에 채우고 칼을 메우게 하심이어늘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자칭 선지자라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대저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때가 오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였다 하였느니라.”—예레미야 29:24-28; 비교 예레미야 29:4-6.

16. 성전 “유사”는, 스마야로부터 편지를 받고 어떻게 하였으며, 그 때 예레미야는 스마야에 관하여 어떠한 예언을 하도록 영감을 받았습니까?

16 그러나 스마야의 편지를 받은 제사장 스바냐는 성전 “유사”로서 예레미야를 착고에 채우고 칼을 메우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그 편지를 예레미야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예레미야 29:29) 이제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모든 포로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로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을 인하여 이 백성중에 거할 그의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선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29:30-32.

17. 스마야가 조장한 바벨론에 대한 반역은 왜 또한 여호와를 반역하는 것이었습니까?

17 스마야가 쓴 편지와 그의 예언으로써 그는 바벨론 세계 강국의 강경한 적국인 애굽의 바로의 지지 아래 예루살렘의 시드기야 왕에게 반역을 조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반역은 단순히 바벨론에 대한 반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여호와께 대한 반역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때 바벨론 왕을 자기의 “종”으로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바벨론 왕의 하늘의 주인이셨습니다. 따라서 바벨론에 대한 반역은 기본적으로 여호와께 대한 반역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 중립을 지키면서 여호와를 기다리라

18. 스마야는 어떻게 여호와보다 앞서 행동하려고 하였으며, 자기 자손과 자기 후손에게 어떠한 결과가 오게 하였습니까?

18 바벨론에 사로잡혀 와 있던 포로 중의 한 사람인 스마야는 여호와께서 유대인 포로들을 구출하실 때까지 기다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예언된 바사의 고레스에 대한 이사야 44:28부터 45:4에 있는 예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바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전복하고 유대인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낼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스마야는 여호와보다 앞서 행동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과 동료 포로들을 자기 방법대로 구원하려고 도모하였습니다. 그는 바벨론 왕으로부터 예속된 유다 왕국에게 “쇠멍에”를 지게 하는 길을 자초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8:13, 14) 그러므로 반역자 스마야에게 아무런 구출도 올 수 없었습니다. 그의 자손도 끊어져서 이스라엘의 회복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19. 스마야의 현대적 실체는 1914년 이래 어떠한 행로를 취해 왔습니까?

19 오늘날 우리는 예레미야 29:8, 9에 나오는 예레미야의 편지의 충고를 청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여호와의 마련에 반기를 들도록 조장한 고대 느헬람 사람 스마야의 현대적 실체를 따르지 않게 됩니다.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래 예레미야 반열의 말을 듣지 않는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이제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음이 증명되어 왔습니다. 교직자들은 예수께서 예언하셨고 1914년 이래 성취되어 온 “징조”의 특징들에 유의하도록 주의를 받아 왔습니다. 그 “징조”의 특징들이란 세계적인 범위의 전쟁의 “칼”과 또한 파멸적인 “기근”과 속수 무책의 “염병” 혹은 온역과 아무 힘이 없는 인구 ‘소산’책 등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그리스도교 나라들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교국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9:16-19; 마태 24:4-20) 그래도 교직자들은 그들이 성경적으로 설명된 “징조”의 의미를 믿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열국에게 지금 통치하는 여호와의 종-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들의 국가적 주권을 양도하라고 재촉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914년 이래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함께 느부갓네살의 바벨론 제국보다 훨씬 더 큰 “세상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직자들은 사람의 도모하는 바를 승인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아니라 국제 연합을 지지합니다.

20. 통치권에 대한 반역자들은 어떠한 벌을 마땅히 받게 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영속적인 구원을 어떻게 얻을 것입니까?

20 오늘날 세상 나라들 가운데서는 헌정에 대한 반역자들을 사형에 처합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와 그분의 종-왕에 대한 비그리스도교적 반역도 즉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는 소위 “그리스도교” 종교 지도자들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29:32) 그들의 멸망은 거짓 예언자 스마야와 그의 후손에게 집행된 것으로 전영되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포로 백성 중 순종한 자들에게 베푸실 “선한 일”을 결코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수단으로 우리의 즉각적인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속적인 구원을 얻는 것은 바사의 고레스보다 더 크신 “종”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출하실 날을 참을성있게 기다리면서 여호와를 신뢰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21. 예레미야 29:12-14에 있는 순종적인 포로들에 관한 여호와의 예언처럼 오늘날 우리가 어떠한 길을 따라야 합니까?

21 우리가 여호와보다 앞서려고 한다면 우리가 열망하는 구원을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 등을 돌리고 그분을 생각 밖으로 버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정하신 때에 고국으로 돌아와 구원을 얻은 사람들의 본을 따르는 것이 잘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본을 따를 만한 가치가 있음을 여호와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예언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12-14.

22. 여호와의 “선의의 해”를 생각할 때 우리는 장래에 대한 어떠한 희망에 따라 생활해야 합니까?

22 우리는 지금 “여호와의 은혜[선의, 신세]의 해”의 끝이 가까운 때에 살고 있습니다. (이사야 61:2) 그러므로 우리의 유익을 위한 여호와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아직도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예레미야 29:11) 우리가 만일 지금 여호와의 우주 주권에 순복하기만 한다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각하고 계신 “장래”는 가장 바랄 만한 것입니다. 즉 여호와의 왕-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와 번영과 행복한 가운데 즐기게 될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두신 희망입니다. 이것을 깊이 인식하고 그 희망과 온전히 일치하게 생활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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