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83 8/1 11-13면
  • 나는 가난을 이렇게 극복한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나는 가난을 이렇게 극복한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실용적이고 경제적이 됨
  • 더 큰 도움의 근원
  • 2 | 생계를 잘 꾸려 나가십시오
    깨어라!—2022
  • 여덟 자녀를 여호와의 길로 양육하는 것은 힘들고도 기쁜 일이었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6
  • 나는 힌두교 출신이다
    깨어라!—1973
  • 가난을 없앨 영구적인 해결책을 찾아서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3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파83 8/1 11-13면

나는 가난을 이렇게 극복한다

당신은 미망인인가? 나도 그러하다. 아마 나처럼 당신에게도 돌봐야 할 자녀들이 있으나 당장 생활하기 위한 수입원이 없이 홀로 남게 되었을지 모른다. 나의 남편은 20세, 16세 및 14세된 삼 형제를 남겨둔 채 1973년에 사망하였다. 남편의 사망은 나의 인생에 큰 충격과 깊은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남편이 사망한 직후에 장남과 막내 두 아들이 집을 뛰쳐 나감으로써 또다시 충격을 받게 되었다. 무엇 때문이었는가? 이제 설명하기로 한다.

남편과 나는 ‘힌두’교인이었으며 우리는 자녀들 역시 ‘힌두’교 신자로 양육해 왔다. 그러던 중 남편이 사망하기 약 10년 전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들의 조직적인 전파 활동을 통하여 나와 접촉하게 되었다.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왕국에 의한 구원에 대해 알려 주는 성서의 소식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몇 개월간 진지하게 성서를 토론하고 연구한 후에 나는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인류의 구원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시 83:18; 사도 4:12) 그래서 나는, 가족들이 끈질기게 만류하고 남편이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했지만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이 되어 침례를 받았다.

‘힌두’교 사회에서 그리스도교를 믿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치욕이었으며, 남편은 그 점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죽는날까지 나의 그리스도인 신앙을 반대하였다. 장남과 막내 아들도 자기 아버지의 뜻을 좇아 ‘힌두’교의 생활 방식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자기 아버지의 사망을 기화로 가출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리스도인 어머니를 두게 된 오명을 씻고자 하였다. 그러나 나는 둘째 아들 ‘자야심만’에게 성서의 진실성 및 합리성과 생명을 구원하는 성서의 내용을 확신시킬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자야심만’과 단 둘이만 남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가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실용적이고 경제적이 됨

최초의 심한 충격에서 헤어나서, 나를 부양해주던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나는 앉아서 나의 형편을 숙고해 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국가의 보조금이나 정부의 사회 보장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 생계를 꾸려 나가야만 했다. 사실 최근까지도 내가 사는 지방에서 미망인은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계층에 속하였다. 미망인의 상태가 매우 비참했기 때문에 때때로 어떤 미망인은 남편을 화장하는 불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쪽을 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곳 인도의 ‘마드라’에 방이 세 개 있는 수수한 우리 집이 있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에게는 머리를 덮을 만한 지붕은 있었다. 나는 방 한 개를 세놓기로 하였으며, 이윽고 매월 소액이지만 정기적인 60‘루피’(약 5,000원)의 수입이 있게 되었다. 또한 나에게는 발 재봉틀 한 대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부인복, 특히 여자들이 ‘사리’ 안에 받쳐 입는 부인용 속치마를 만드는 일에 착수하였다. 얼마 후에 나는 몇 명의 단골 손님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매월 총 수입도 144‘루피’(약 11,500원)로 늘어났다.

그렇지만 우리는 검소하게 생활해야만 했다. 우리 집에는 전기와 수도가 가설되어 있긴 하였으나 가구는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점에 있어서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가구없이 생활하는 시골 사람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루에 얇은 요를 깔고 잠을 자는 데 익숙해 있다. 마루가 청결하기만 하면, 마루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 식사를 해도 편안하게 느낀다. 나는 요리를 하는 데 석유 난로를 쓰고 있으나 아무런 문제도 없다. 나무를 사용하는 모닥불보다는 그것이 훨씬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먹는가?

‘자야심만’과 나는 꽤 괜찮은 식사를 하고 있다. 조반으로 우리가 가장 즐겨 먹는 음식 가운데 한 가지는 ‘이들리’라고 부르는 음식이다. 이것은 쌀가루에 빻은 콩을 섞어 만든 조그마한 떡으로써, 솥에 넣어 쪄서 빻은 야자 열매와 향료 및 양념을 섞어 만든 ‘처트니’와 곁들여 먹게 된다. 여기 인도에서는 두 세개의 ‘이들리’와 ‘바나나’ 한개, ‘코오피’ 한잔이면 제법 실속있는 아침 식사로 간주된다.

점심과 저녁 식사 때는 우리의 주식인 ‘카레라이스’를 먹는다. 절약하기 위해 나는 흔히 날마다 여러 종류의 야채를 사용하여 다양성있는 야채 ‘카레’를 준비한다.

재정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요량으로 나는 방 하나를 조그만 음식점으로 개조하였다.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서 ‘이들리’와 ‘처트니’ 및 ‘코오피’를 준비하여 단골 손님들에게 조반을 차려 주었다. 방세로 들어오는 수입 외에도 소규모의 가내 재봉과 가정 요리로써 우리는 나날의 필수품을 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실용적이고 경제적이 되는 것 이외에도 가난을 극복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 것이 있었다.

더 큰 도움의 근원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로부터 받은 도움이었다. 성서는 내가 가난을 극복하는 데 있어 어느 면에서 도움이 되었는가? 한 가지는 족장 ‘욥’과 같은 성서 시대의 충실한 인간 남녀들의 훌륭한 본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욥’은 한때 굴욕과 고통이 따르는 빈궁한 생활을 인내해야만 했었다. 그러한 본들을 숙고해 보는 것은 시련 중에 내가 버티도록 도와 주었다.—욥 1:13-19; 2:7-9; 21:7.

그리고 내가 성서로부터 얻게 된 믿음 역시 나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비록 극빈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원망하거나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성서 진리는 나를 적극적인 전망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나는 하나님의 왕국의 권익을 나의 생활에서 첫째로 두며 정직한 방법으로 기꺼이 일하여 돈을 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보증하신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생활 필수품을 공급해 주실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 6:31-33) 내가 개인적으로 이것을 경험하게 된 것에 대하여 나는 참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와 같은 성서의 약속에 대한 나의 믿음은 나로 하여금 생활에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도록 도와 주었다. 그리고 나는 자주 디모데 전서 6:8에 있는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을 숙고해 본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성서 진리는 다른 면으로도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내가 ‘힌두’교 사회에서 사는 ‘힌두’교인이었을 때, 나는 주로 남편이 보호하고 감싸주는 생활에 익숙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수줍어하거나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공공연히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곤 하였었다. 그러나 성서를 배움으로써 이제 나는 사람들을 그들의 집으로 찾아가 만나서 빈곤이 과거 지사가 될 의로운 새 질서를 수립하실 하나님의 약속을 포함한 그분의 목적에 대하여 그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시 72:12-14) 나의 성품이 이처럼 놀랍게 변화된 것은 성서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지혜 덕분이다. 시편 19:7에서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도다.]”

다행히도, 나는 생활을 조절하여 현재 하나님의 왕국 소식의 전 시간 복음 전파자로 일하고 있다. 이것은 곧 나에게 더 이상 조그만 음식점을 운영할 만한 시간이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나는 방 두 개를 세놓아 매월 120‘루피’(약 9,500원)의 총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가내 재봉을 계속하고 있다. ‘자야심만’ 역시 여러 가지 소소한 일을 하여 매월 조금씩 돈을 벌고 있으며, 자기가 번 돈의 75‘퍼센트’를 기꺼이 생활비로 내놓는다. 우리는 매월 총수입금으로 생활 필수품과 경비를 충당하고 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매일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로부터 위로받았던 것처럼, 애통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에 매일 시간을 바칠 수 있게 해준다.—마태 5:4; 고린도 후 1:3, 4.

물론, 재정상의 어려움 즉 돌연 예기치 않은 비용을 지출하게 되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어떻게든지 마련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나 시기 적절하게 뜻밖의 일이 생겨 사태를 극복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어떤 때는 나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얼마의 돈을 우송해 오기도 하였다. 그들은 나를 완전히 잊지는 않았던 것이다. 혹은 예기치 않게 부인복 주문을 받기도 하였다. 여러 해 동안 종종 궁핍에 처한 때가 있긴 하였으나 자진하여 열심히 일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얼마의 자산을 기량껏 활용함으로써 곤궁한 상태에 버려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기고.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