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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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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6
파86 1/15 3-4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가?

많은 사람들은 이 질문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보기에 올바르다고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보편적인 좌우명은 ‘네 방법대로 하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좌우명은 ‘죄 의식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아 제일주의’ 생활 철학에 물든 일부 소수의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견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인구의 82퍼센트가 세례받은 가톨릭 교인들인데, 1983년에 실시된 한 조사에서는 단지 4퍼센트의 사람들만이 죄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에는, “미국 정신 의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카알 메닝거 박사가 수년 전에 자극을 받고 「죄는 어떻게 되었는가?」(Whatever Became of Sin?)라는 제목을 전권에 걸쳐 다룬 책을 저술하였다. 그 책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하나의 국가로서, 우리는 약 20년 전에 ‘죄짓는 일’을 공식적으로 중지하였다.” 그 책의 표지에는 이러한 말이 있었다. “‘죄’라는 단어는 우리의 어휘에서 거의 사라졌다.”

사실상, 오늘날 죄의 개념이라는 것이 매우 모호해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도 실제로 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현대의 염려

이같이 죄에 대한 관념이 사그라지고 있음에도, 근간에 세계 무대에서 진전된 여러 가지 사태들로 인해 사람들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한 가지는 세계의 많은 선진국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낙태들이다. 이들 중 어떤 나라들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압도적인 수를 차지하고 있는 데도 매우 자유로운 낙태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대량 태아 살해 행위는 죄의 개념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설명하기 어려운 반응들을 낳아왔다.

예를 든다면, 낙태를 용납하는 생활 철학을 가진 여자들 중에 낙태 후에 죄 의식을 느끼고, 정신병을 얻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게다가 공산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에서까지도 “연구 조사들은 낙태를 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려 준다.”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프랑스 의학 학술원’ 회원인 앙리 바루 교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기록된 근본 원칙”을 범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누가 기록한 원칙인가?

근간에 들어 사람들을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 또 하나의 현상은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성매개 질환들이다. 사망률이 높은 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로 인해, 난잡한 성 생활을 통해 구식 금기 사항들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고 생각하였을 많은 사람들이 의심과 염려의 물결에 휩싸여 왔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누린 성적 “자유”에 대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기 때문에, 그들 중 일부 사람들은 과연 자기들이 형벌을 받지 않게 될 것인지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있다. 누구에게 벌받는다는 것인가?

사람이 도덕적 원칙들을 우롱하고는 무사할 수 없음을 일깨워 주는 그러한 현대적 현상들을 보고 일부 생각있는 사람들은 죄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에 대한 그들의 견해들을 재평가하고 있다.

교회와 죄

“금세기의 죄는 죄 의식을 모두 상실한 것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일찌기 1946년에 그러한 강력한 말을 하였다. 분명히 상황은 그때 이래로 악화되어 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최근에 “화목과 고해”라는 제목으로 죄와 고백에 관해 쓴 내용 가운데서, 선임자가 한 그러한 말을 인용하고 나서 오늘날 세속화된 사회에서의 죄의 개념의 쇠퇴라고 그가 지칭한 현상에 대해 개탄하였다.

그 교황은 또한 가톨릭 사제들과 평신도들에게 오늘날 많은 가톨릭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집단적 고백과 사면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개별 고백이 고해 성사를 하는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가톨릭 교의에서 고해는 죄를 지은 사람과 하나님을 화해시키는 선한 일과 관계가 있다.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사제에게 사적인 고백을 할 필요성을 부인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으로 죄를 용서받기에 충분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제찬 봉령”에서의 공동 참회와 사면을 좋아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義認)되는 데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믿는다.

고백, 고해, 의인 곧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신분을 갖는 방법에 관한 문제에 대해 소위 그리스도교 교회들 내에 그같이 상충되는 교리들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당황해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다.

다음 기사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르게 될 필요가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이며, “의인”(義認)에 대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견해들을 검토할 것이다. 다른 두 가지 기사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갖는 문제에 관해서 성서가 가르치는 바와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설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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