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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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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어떻게?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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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6
파86 1/15 4-7면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어떻게?

“하나님께서 그가 올바르다고 말씀하시다(GOD ’e say ’im alrite).” 이것은 최근에 나온 신 기니아 피진어판 “신약”에서 “의인(義認;justification)”을 표현한 말인 것 같다. 기묘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많은 영어 성서에서, 로마서 5:16에 나오는 것처럼, “의인” 또는 “의롭다고 선언함(declaration of righteousness)”이라고 번역된 단어 배후에 있는 기본 사상을 잘 나타내 준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의 바르게 살고 있다. 할 수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한다. 나는 조물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의인(義認)이라는 말을 자기 의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성서에 따르면, “의인”에 관한 교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려하시는 방법 및 그분이 우리를 대하시는 방법과 관계가 있다. 여호와께서는 “창조하신 자”이시다. (이사야 40:28) 그분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시다. (창세 18:25)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에 대해 생각하시는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르게 될 필요가 있는 이유

성서는 여호와에 관하여 이렇게 알려 준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의, 신세]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신명 32:4) 그분은 의의 구현체이시다. 창조주이시자 생명의 수여자로서, 그분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결정하는 표준 곧 기준을 정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시다. 하나님의 표준과 일치하는 것이 곧 의로운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지성있는 피조물들이 창조주와 조화를 이루는 생활을 하기 원하는 경우 그들이 달해야 할 과녁을 설정해 놓으신다. 그 과녁 곧 표준을 빗나가는 것을 가리켜 성서 원어에서는 죄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죄란 불의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옳고 그른 것을 정의해 놓으신 바와 일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죄는 일종의 무질서, 곧 불법이기도 하다.—요한 1서 5:17; 3:4.

여호와는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시다. (I 고린도 14:33, 새번역) 원래, 하늘과 땅에 있던 그분의 모든 피조물들은 완전하였다. 그들에게는 자유 의지가 부여되었다. (고린도 후 3:17)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를 누렸다. (로마 8:21) 그분의 의로운 표준이 존중받던 동안에는, 전 우주에 평화와 질서가 가득하였다. 일부 피조물들이 처음에는 하늘에서, 나중에는 땅에서 그분이 그들을 다스릴 권리를 배척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불법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을 때 우주에 무질서한 상태가 끼어들게 되었다. 그들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하나님의 표준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과녁을 빗나갔으므로 스스로 죄지은 자들이 되었다.

우리의 첫 부모 아담과 하와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창세 3:1-6) “이러므로 ·⁠·⁠·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 5:12) 그들이 반역한 이래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하였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표준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로마 5:21; 3:2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르게 될 필요가 있다.

“의인”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교회들은 하나님과 이같이 화목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같은 관계를 얻는 방법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이 갖는 신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교리가 서로 다르다.

가톨릭의 교의에 관하여, 「가톨릭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의인이란 영혼 내에서의 변화 혹은 변형을 의미하며, 그러한 변화 혹은 변형을 통해서 사람은 아담의 자녀로서 출생할 때 속해 있던 원죄의 상태에서 벗어나, 두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총받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가톨릭 사전」(A Catholic Dictionary)은 이같이 부연 설명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인(成人)들이 죽음과 죄의 상태에서 은총받고 하나님의 벗이 되는 상태로 향상되는 과정으로 국한한다. 유아들에 관해서는 그들이 자신의 행위없이 세례로 의인된다고 교회에서 가르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가톨릭 교회’에서 가르치는 “의인”이란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세례받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총”의 선물로 실제로 의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행동이다. 또한 그러한 의인은 (1) 개인적인 공적, 곧 선행으로 증진될 수 있고, (2) 치명적인 죄나 불신으로 말미암아 상실할 수 있으며, (3) 고해 성사로 되찾을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러한 마련 안에서, 의인된 가톨릭 교인은 자신의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여 사면을 받아야 한다. 사면 후에도 여전히 받아야 하는 “일시적인 형벌”은 선행으로 속죄되거나 “면죄”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다.a

프로테스탄트의 견해

16세기 초에 면죄부를 남발하여 판매하였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개혁’이 촉발되었다. 가톨릭 수도사인 마르틴 루터는 1517년에 독일 비텐베르크에 있는 성교회(城教會) 문에 붙였던 95개 조에서 이 행위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루터가 가톨릭의 공식 교의에 동의하지 못한 점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데 있었다. 그것은 의인에 관한 교회의 교리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 점을 확증하여 「가톨릭 사전」에서는 이렇게 기술한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이 의인되는 방법에 관한 신앙의 차이가 ‘종교 개혁’ 당시 가톨릭 교인들과 프로테스탄트 교인들 간의 주된 논쟁점을 형성하였다. 루터는 그의 저서 「좌담」(Table Talk)에서 ‘만일 이 교리(즉 믿음만으로 의인된다는 교리)가 무너진다면, 우리는 끝장이다’라고 말한다.”

루터가 ‘믿음만으로 의인된다’고 한 말의 의미는 정확히 말해 무엇이었는가? 가톨릭 교인으로서 루터는 사람이 의인되는 데에는 세례, 개인적인 공적, 선행 그리고 사제가 주관하는 고해 성사가 포함되며, 사제는 고백을 듣고, 사면을 내리고, 자기 형벌이 포함될 수 있는 보상 행위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배웠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발견하기 위해, 루터는 금식, 기도, 자기 형벌을 포함하여 의인에 관한 로마 가톨릭 교의에 관해 알려 주는 모든 자료들을 조사하였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만족을 얻지 못하자, 그는 시편과 바울의 편지들을 읽고 또 읽었으며,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공적, 선행 혹은 고해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의 믿음 때문에 사람들을 의인하신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정신의 평화를 찾게 되었다. 그는 “믿음만으로 의인된다”는 이 사상에 심취하게 된 나머지, 그의 독일어 번역판의 로마서 3:28에 나오는 “믿음”이라는 말 다음에 “만으로”라는 말을 첨가하였다!b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믿음을 통해서 은총을 받아 의인된다”는 루터의 견해를 기본적으로 받아들였다. 사실상 이 점은 이전의 프랑스인 개혁자 자크 르페브르 데타프레가 이미 밝힌 바 있었다. 의인에 관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견해 차를 요약하여, 「가톨릭 사전」은 이렇게 기술한다. “가톨릭 교인들은 의인을 사람을 실제로 올바르게 만들어 주는 행위로 간주한다.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즉 그리스도—이 그에게 베푼 공적으로 그가 올바르다고 선언되고 간주되는 것으로 여긴다.”

가톨릭의 “의인”도 프로테스탄트의 “의인”도 아니다

가톨릭 교의에서, 세례 때에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을 받음으로써 “사람이 실제로 올바르게,” 즉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는 경우, 그것은 성서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벗어나는 것이다. 원죄를 씻어내는 것은 세례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인 것이다. (로마 5:8, 9) 하나님께서 실제로 의롭다고 하시는 것과 의로운 것으로 간주되는 것, 즉 고려되는 것은 크게 다르다. (로마 4:7, 8) 죄에 대항하여 애써 싸우는 정직한 가톨릭 교인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실제로 의롭게 되지 못했음을 안다. (로마 7:14-19) 만일 그가 실제로 의롭다면, 사제에게 가서 고백할 죄가 없을 것이다.

더우기, 만일 가톨릭 교의가 성서를 따르는 것이라면, 죄를 자각한 가톨릭 교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를 구할 것이다. (요한 1서 1:9-2:2) 인간 사제가 “의인”의 어떤 단계에서든지 중재하는 일은 성서에서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없으며, 면죄 교리의 기초가 되는 공적의 축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히브리 7:26-28.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희생에 혜택을 입어 의롭다고 선언되는 것을 의미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의인 개념은 분명히 성서에서 가르치는 내용에 더 가깝다. 그러나 일부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믿음만으로 의인” 되는 것을 가르치는데, 우리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것은 사도 바울과 야고보가 제시한 특정한 추리들을 간과하는 것이다. 그러한 교회들이 나타내는, 영적으로 독선적인 태도는 “한번 구원받으면, 영구히 구원받는다”는 말에 요약되어 있다. 일부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는 것으로 충분하므로, 의인이 세례에 선행된다고 믿는다.

게다가 어떤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믿음으로 의인된다고 가르치면서도, 프랑스 개혁자 존 캘빈을 추종하여 개인 예정론을 가르침으로 자유 의지에 대한 성서의 교리를 부인한다. (신명 30:19, 20) 그러므로 의인에 대한 가톨릭의 개념이나 프로테스탄트의 개념 어느 쪽도 성서와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성서는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

그러나 성서에서는 “의인” 곧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교리를 명확하게 가르친다.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르게 될 필요가 있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가 아니라 “진노의 자녀”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에베소 2:1-3)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에 대해 진노를 품고 계시는지의 여부는 우리가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그분이 베풀어 주신 자비로운 마련을 받아들이는지, 거부하는지에 달려 있다. (요한 3:36) 그 인자한 마련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치르신 대속물”이다.—로마 3:23, 24, 신세.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이 두가지 희망, 곧 “땅에 있는” 희망과 “하늘에 있는” 희망을 열어 준다는 것을 밝혀 주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형주]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로새 1:19, 20, 신세 참조.

이 두가지 희망 중 어느 한 희망에 참여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여기에는 단순히 “예수를 믿는 것” 이상이 포함된다. 하늘 희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련된 것에 관해서는 다음 두 기사에서 고려할 것이다. 계속 읽기 바라며, 이 잡지를 전해 준 여호와의 증인에게 함께 성서를 가지고 이 기사들을 고려할 것을 주저하지 말고 요청하기 바란다.

[각주]

a 가톨릭 교의에 따르면, 죄에는 범죄와 두 가지 형벌—영원한 형벌과 일시적인 형벌—이 포함된다고 한다. 범죄와 영원한 형벌은 고해 성사로 용서받는다. 일시적인 형벌은 현세에서의 선행과 참회 행위로 속함을 받거나, 내세에서의 연옥의 불에서 속함을 받아야 한다. 면죄는 “교회의 보고”에 쌓여 있는 그리스도, 마리아, “성자”들의 공적을 적용하여 일시적인 형벌을 부분적으로 혹은 온전히 (전부) 용서하는 것이다. 면죄받기 위해 필요한 “선행”에는 순례 여행이나 어떤 “선한” 목적에 헌금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과거에는 십자군 전쟁을 위하여, 성당, 교회, 병원들을 짓기 위해 돈을 거두어 들였다.

b 루터는 야고보서 2장에 나오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의 논증이 “행함이 없이” 의인되는 것에 대한 사도 바울의 설명과 모순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하여, 야고보서의 정전성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로마 4:6, 새번역) 그는 바울이 유대인의 율법을 행하는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로마 3:19, 20, 28.

[5면 삽입]

‘가톨릭 교회’는 의인으로 사람이 실제로 의롭게 되지만, 치명적인 죄를 지음으로써 의인된 상태를 상실하거나 개인적인 공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6면 삽입]

많은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은 믿음만으로 의인되는 것, 곧 의롭다고 선언되는 것을 믿으며, 예수에 대한 신앙이 구원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일부 사람들은 의인이 예정되었다고 믿는다

[7면 삽입]

성서는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가졌으며,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이 두 가지 희망, 곧 하늘 희망과 땅의 희망을 열어 준다고 가르친다. 두 가지 희망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받는 것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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