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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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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넓혀 다른 사람을 도움

천구백칠십삼 년에 그 모든 일이 벌어졌을 때, 나는 스물두 살의 건강한 젊은이였다. 내 생활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스포츠에 참여했고 운동을 좋아했다. 휴가 때면 파도타기를 하러 가곤 했다. 자동차 드라이브도 즐겼다. 그런데 어리석고 성급하게 불끈 화를 터뜨리는 바람에 그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말았다.

아내 제마와 함께 친척 집에 들렀을 때였는데, 몇 명의 소년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그들이 길을 따라 걸어오면서 정원 울타리의 나무를 꺾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소년들은 우리를 보자 나뭇조각들을 정원에 던지더니 이어서 우리가 서 있던 집 발코니로 던지기 시작했다. 한 조각이 네 살짜리 딸 피파에게 맞았다. 왈칵 분노가 치솟은 나는 들고 있던 큰 컵을 그 파렴치한들에게 힘껏 던졌다. 그 발코니는 지상 3.7미터 높이였다.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만 몸의 균형을 잃고 말았다. 나는 거꾸러지면서 아래로 떨어져 머리를 땅에 박아, 목의 척추골 몇 개가 탈구되고 골절되었다.

근 1년 동안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내 처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다. 내 옆자리에 있던 남자는 스스로 생명을 끊었고, 그 이래로도 내가 그곳에서 알게 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길을 갔다. 그 절망과 좌절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는 것 때문에 그리고 호전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괴로운 나머지, 나 역시 여러 번 생명을 끊을 생각을 했었다. 실상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알약을 좀 갖다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 그러나 아내는 미쳤느냐고 하면서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 두 사람은 그때 아내가 거절했던 일을 얼마나 고맙게 느끼는지 모른다!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여러 해 동안 여호와의 증인이던, 아내의 친척 아주머니가 아내와 함께 성서 연구를 시작했을 때였다. 아내는 배운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도무지 종교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교직자가 하는 말에는 흥미가 없었다. 아무튼, 나는 이렇다 할 만큼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가 새로 발견한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즉시 두 가지 점에 매력을 느꼈다.

첫째로, 내가 학창 시절에 열중했던 과목 중 하나인 역사가 성서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한 관련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둘째로,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그분에게 마음이 끌렸다. 나는 인생의 불공정이 결코 시정될 수 없다고 늘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여호와의 목적과 그분의 왕국에 관해 배움에 따라, 공의가 편만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신명 32:4; 누가 18:7, 8.

삶의 목적

그 후로 나는 성서 연구에서 빨리 발전했다. 신체적으로 무능하였고 계속 그런 상태로 있을 것이었지만, 나는 삶의 목적을 발견했다. 감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얻은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음을 깨달으면서 나의 견해는 곧 넓어졌다.

어떻게 진보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나를 괴롭히는 질문이었다. 아내와 나는 함께 침례를 받았다. 나는 여러 명의 훌륭한 개인 교수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영적으로 자라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바논의 한 증인에 관한 기사를 읽었을 때 전환점이 왔다.a 그는 46세였고 18년 동안이나 전혀 거동을 못하고 누워 지냈다. 그런데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로 보였지만, 그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장로였다! 그때까지, 그는 16명을 여호와의 헌신한 종이 되게 도왔고 매달 일곱 건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었다. 그의 경험담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지방 주택 당국은 우리 가족을 위해 단층집을 공급해 주었는데, 내가 돌아다니는 데 도움이 되는 기계 설비를 완전히 갖춘 집이었다. 나는 필요한 모든 신체적 지원을 누린다. 우리 가족은 함께 협력하여, 휠체어를 쉽게 실을 수 있는 유개 트럭을 하나 샀다. 덕분에 우리는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집회에 가족이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다. 친절하게도, 얼마 안 있어 지방 회중에서는 우리 집에서 회중 서적 연구 집회를 보도록 마련하였다.

회중의 형제 자매들이 내 휠체어를 밀어 주겠다고 나섰을 때 호별 방문 증거에 대한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 나는 집주인에게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양팔과 손을 사용하지 못하므로 성서를 사용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성구를 언급하면, 내 짝이 성서를 찾아 그 구절을 보여 주고 내가 말하는 성서 연구 보조물을 제공한다.

물론, 많은 사람이 나의 집을 찾아 주어서, 그런 식으로 성서 연구를 사회할 수가 있다. 또한 입에 펜을 물고 편지 쓰는 법을 익혔기 때문에, 하루중 아무 때나 전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보조 파이오니아를 할 수 있었다.

가르치는 자로서 자격을 갖춤

때가 되어 봉사의 종으로 자격을 갖추게 되었지만, 내가 어떻게 연단에서 가르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연구하는 동안, 이 사이에 막대기를 물고서 성서 책장을 넘기는 법을 배웠다. 그 방법이 유용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당연히 그 막대를 물어 올리고 다시 내려놓는 동안은 말을 멈추어야 했다. 이내 나는 그 해결책이—성서 책장을 넘기는 일에—내 혀를 사용하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내가 쓰는 방법이다.

이 특이한 기술로 인해 나의 연설 능력이 발전할 수 있었고, 또 신권 전도 학교 임명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1984년에 내가 회중 장로로 섬기도록 임명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했겠는지 상상해 보라!

다음 단계는 45분 간 계속되는 공개 강연을 하는 일이었다. 이 일에는 주의 깊은 준비가 필요하였다. 나는 항상 신체적으로 피곤을 느꼈지만 끝까지 해냈다. 지금은 때때로 이웃 회중을 방문하여 강연하는 부가적인 특권을 누린다. 어린이들은 내가 혀로 성서 책장을 넘기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서, 때로는 나를 흉내내려고 한다. 그렇지만 얼마 안 가서 포기해 버린다. 효과적으로 그 일을 하는 데는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병원을 떠났을 때의 그 쓰라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처럼 불구가 된 다른 많은 사람들의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떠났음을 알고 있었다. 내 아내가 나를 떠났더라도 나는 이해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애정어린 동반자로서 우리 딸 피파의 지원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내 곁에 머물러 주었다. 두 사람의 도움과 회중의 도움으로, 나는 자신을 “넓히”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었다. (고린도 후 6:13)—토니 우드의 체험담.

[각주]

a 「파수대」(영문) 1981년 4월 15일 호에 실린 에스테판 칼라얀의 체험담 “절망에서 즐거움으로” 참조.

[25면 삽화]

아내 제마 및 딸 피파와 함께

혀로 책장을 넘기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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