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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새 시대?
    깨어라!—1991 | 7월 1일
    •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새 시대?

      “박해는 교황이 회당에 들어올 때 끝날 것이다.”—유대인 격언.

      천구백팔십육 년 4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 교황으로서는 기록상 최초로 유대교 숭배 장소에 들어갔다. 교황은 우레 같은 박수를 받고서, 가톨릭 교회가 “어느 때 누구에 의한 것이든지, 유대인에게 가해진 증오와 박해 및 반유대주의의 표방을 심히 유감스럽게 여긴다”고 재천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방문 목적이 오래 된 편견을 극복하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의 영적 유산에 대한 인식을 보다 온전히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최근에 그리스도교국의 다른 종파들 역시 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해묵은 불화를 해소할 길을 찾아왔다. 1987년 6월, 미국 장로 교회는 교회가 오랫동안 “반유대적인 태도와 행동”에 관련되었던 것에 대해 참회의 뜻을 표명하는 문서를 발표하였다. 그러한 조처에 뒤이어,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는 자체 결의문을 제정하였다. 이 결의문에서는 “유대교가 그리스도교에 의해 대치된 것이 아니”라는 점과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과 맺으신 계약이 폐기되지 않았다”는 점을 언명하였다.

      그리스도교국과 대학살

      이토록 괄목할 만한 노력의 밑바닥에 깔린 의도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교국이 나치의 대학살에 대한 책임에서 슬쩍 발뺌하려는 시도임이 분명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여러 해 동안,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대학살 행위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체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대 민족이 이 우려할 만한 사실에 함축된 의미를 모르고 지나갈 리가 없었다.

      해가 지나면서 대학살 생존자들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책, 잡지, 영화들은 강제 수용소의 참상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이스라엘 국가의 생존을 위한 투쟁 역시 세상의 관심을 유대인 사회에 집중시켰다. 그 결과 그리스도교국은 점점 공박을 받게 되었다. G. 피터 플렉이 「크리스천 센추리」에 이렇게 기술한 바와 같다. “[대학살 같은] 혐오할 만한 일을 일으키고 허용할 수 있는 종교와 문명에는 ·⁠·⁠· 심하게 잘못된 점이 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사태 중 거의 전적으로 침묵을 유지하며 수수방관한 교회에도 잘못된 점이 있음이 분명하다.”

      유대교 지도자들도 공감한다. 랍비인 스튜어트 E. 로젠버그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오랫동안 지속된 그리스도교인의 반유대교 역사와 나치주의의 최종 산물—유대 민족의 3분의 1을 고의적으로 살해한 것—사이에 관련이 있음을 이해한 교회 혹은 교회 지도자들이 그토록 적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는 많은 교회 성원들이 “모르는 체하였으며, 더 심하게는 히틀러 치하의 유럽에서 600만 명이 죽은 것을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버젓이 용납하였다”고 지적하였다.—「그리스도교 문제」(The Christian Problem).

      엘리 위절은 자신의 저서 「오늘날의 유대인」(A Jew Today)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히틀러도 히믈러도 교회에서 파문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비오 12세가 아우슈비츠와 트레블린카를 정죄하는 것을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여기기는커녕 필요한 일로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나치 친위대원 가운데 상당수가 끝까지 그리스도교의 테두리 안에 충실하게 머무른 신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살육을 자행하는 자들이 틈틈이 고백을 하러 갔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교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이 유대교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재정립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국에서는 유대인을 더는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이라거나 ‘저주받은 사람들’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인정받고 존중받는 사람으로 여기는 새로운 신학이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하나님께 이르는 서로 다른 길’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돈다.

      “새 시대”의 개막?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 발전을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의 “관계에서 온전한 새 시대”가 개막되는 것이라고 격찬하였다. 랍비 리언 클레니키는 이제 유대인은 “온 인류를 하나님께 이르게 하는 길로서의 예수의 의의와 그리스도교 사명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고 언명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협동 작업일지도 모른다.”—「뉴욕 타임스」, 1988년, 7월 24일.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낙관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유대교에 대한 자유 분방한 새 견해를 그리스도교의 근본 교리를 버리는 것으로 여긴다. 여러 유대교 지도자들 역시 새로운 평화 제의를 모호하고 상호 모순된 것 혹은 유대인을 개종시키려는 케케묵은 계략을 포장만 바꾼 것으로 여기면서 회의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는 그리스도교국이 대학살에서 수행한 역할을 포함하여 과거의 반유대주의 정책을 분명하게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유대인들에게 있다는 개념을 완전히 버릴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유대교가 그리스도교의 전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유효한 수단임을 인정받기 원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이 유대인을 개종시키려는 모든 노력을 중지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끝으로 많은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교국이 이스라엘 국가를 온전히 인정하고 지지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기사에서 알려 주듯이, 설령 그렇게 유례없는 조처가 취해진다 할지라도 벌어진 간격은 여전히 넓기만 할 것이다.

      [4면 삽화]

      그리스도교국은 대학살에 가담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자료 제공]

      Bundesarchiv Koblenz

  • 화해할 수 있는가?
    깨어라!—1991 | 7월 1일
    • 화해할 수 있는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패어 있는 골은 대학살로 인한 것보다 더 깊은 것이다. 시초부터 이 두 신앙은 핵심이 되는 쟁점 즉 나사렛 예수가 약속된 메시야인가 아닌가를 놓고 사이가 벌어졌다.

      제1세기에는, 메시야에 관한 쟁점으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이 폭력적인 박해를 당했다. (사도 8:1) 하지만 후에 상황은 반대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유대인을 박해하였다. 그러나 여러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국이 유대인을 개종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유대 민족은 전반적으로 시초의 입장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 유대인 필자는 유대인들이 개인으로서의 예수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예수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그토록 열렬히 기대한 정치적 메시야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고 지적하였다. 랍비 새뮤얼 샌드멀은 보다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당신[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것처럼 믿지 않는다. 그것뿐이다.” (「우리 유대인과 당신네 그리스도인」[We Jews and You Christians]) 이러한 의견 차이로 인해 대다수가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깊게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종교상의 골이 팬 것이다.

      화합의 장애 요소

      한편으로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는 교리상 예수 없이 구원에 이르는 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 14:6; 비교 사도 4:12; 디모데 전 2:3-6.

      다른 한편으로 유대교의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교국에 만연해 있는 우상 숭배 행위를 혐오한다. 삼위일체 교리 역시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본질”—“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주시니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는 일신교적 교리—에 분명히 어긋나는 것으로서 멸시한다. (신명 6:4, 「손시노 후마시」) 학자인 제이커브 조크스는 이렇게 피력하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교회와 회당 사이에 팬 골이 그토록 깊고 의미 심장하게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가르침은 유대교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이다.”—「유대 민족과 예수 그리스도」(The Jewish People and Jesus Christ).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또한 모세의 율법과 그 전통에 대한 견해도 다르다. 랍비 스튜어트 E. 로젠버그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계약이 없었다면 유대 민족도 없었을 것이다. 그 계약이 바로 유대 민족을 형성한 것이며 그들은 결코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시초부터 이스라엘의 계약과 문제가 있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모세의 율법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이]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형주]에 못박으[셨느니라.]”—골로새 2:14, 「신세」 참조.

      모세의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거나 ‘하나님께 이르는 서로 다른 길’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교 교리를 가볍게 다루는 교회 신학자들은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 교회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신약”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신학상의 곡예를 부리다시피 해야 한다. 즉 비평적인 성서 구절을 교묘하게 꾸미거나 왜곡하거나 심지어 없는 것처럼 무시해야 한다. 혹은 일부 신학자들이 하듯이, 문제가 되는 성구들을 본래 확실성이 없는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장하지 않으셨으며, 베드로가 사도 행전 4:12에서 한 말 곧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유일한] 이름”은 예수라고 한 것은 후에 바울 신학의 영향을 받아 조작된 것이라는 등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면서 추종자들의 믿음을 침식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제이커브 조크스는 이러한 말로 문제를 잘 요약하였다. 두 믿음에는 “‘가교[架橋] 신학’의 기초를 형성할 수 있는 공통 요소가 전혀 없다. 오로지 굴종에 의한 타협이 있을 따름이다. 즉 교회가 회당이 되든지 회당이 교회가 되든지 해야 할 것이다.”

      화합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런 타협에 이르는 데도 험난한 장애 요소가 있다. 유대인들의 경우 개종을 제안하는 것만도 혐오할 만한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도교국의 종교들이 유대인들에게 내세울 만한 무슨 일을 했는가? 랍비 새뮤얼 샌드멀은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그리스도교인이 그리스도교인에게 자행한” 역사상의 참상들을 열거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당신네 종교가 우리 종교보다 더 우월하다는 판단에 우리가 동의할 것이라고 이치적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교는 더 나은 사람을 산출해 왔는가?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나라들 가운데서 평화와 전쟁 문제를 해결하고 번영과 평온을 가져왔는가?”

      대학살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종교로서, 문화로서 유대인의 생존 문제를 부각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개종을 단순히 이단 교리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반역 행위로 보는 경향이 있다. 「유대교 예배지」(Journal of Jewish Communal Service)는 이렇게 개탄하였다. “우리는 새로 성인이 된 유대인 세대 중 그 누구도 잃을 수 없다. ·⁠·⁠· 나치가 대학살로도 이루지 못한 것이 [개종 활동]을 통해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랍비 헨리 시그먼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강요된 개종에 대한 기억은 유대 민족의 의식 속에 깊이 사무쳐 있으며 그리스도인-유대인 관계 발전에 가장 심각한 장애 요소가 되어 왔다.”

      실제 쟁점의 직면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국과 유대교 사이의 진정한 화합은 요원하다. 연합하려는 노력은 양립할 수 없는 신학, 상충되는 정치적 이해 관계, 상호 불신에 의해 계속 침식된다. 종교상의 대화에서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불화를 야기한 쟁점 즉 예수가 메시야라는 주장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 문제를 분명하게 처리해야만 두려움과 불신이라는 해묵은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유대인은 예수를 거론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의 거부감은 여러 세기 동안 예수의 이름으로 이어져온 반유대주의가 낳은 어쩔 수 없는 최종 산물이다. 그렇지만 십자군을 일으킨 장본인은 예수가 아니었다. 예수는 종교 재판을 시작하거나 대학살의 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한 극악 무도한 행동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거짓되이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행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 자신의 말씀으로부터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분은 모세의 율법을 인용하시면서 참 그리스도교의 지침이 되는 원칙 중 하나로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였다. (마태 22:39; 레위 19:18) 이 말씀은 그리스도교국을 고발하는 역할을 한다. 분명히 그리스도교국의 특징은 예수께서 실제로 가르치신 것에서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종교라는 것이다.

      기록을 바로잡음

      여호와의 증인은 유대인이 겪은 엄청난 고통의 원인이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임을—그리스도교 자체가 아님을—유대인들이 이해하기를 원한다. 증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와 관련하여 충분한 지식을 근거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예수에 대해 편견 없고 왜곡되지 않은 견해를 가지기를 원한다. 그뿐만 아니라, 증인들은 예언자들이 오래 전에 예언한 메시야 시대가 임박했다는 확신을 유대인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한다! 그러면 유대인이 여호와의 증인의 말에 귀기울이기를 원할 만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는 증인들은 숭배에서 우상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또한 삼위일체 교리—유대교에서 혐오하는 또 다른 신앙—를 믿지 않음으로 유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또한 증인들은 이교적이고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배척한다.a 사실, 증인들은 결코 그리스도교국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므로 증인은 대학살뿐 아니라 반유대주의의 유혈 역사에 있어서도 책임질 일이 없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종교 중에서 여호와의 증인만이 예수께서 요한 복음 17:16에서 ‘세상에 속하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따라왔다. 여기에는 정치적으로 엄정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관련된다. 지식 있는 유대인이라면 제2차 세계 대전중에 독일 증인 1000여 명이, 대학살의 말 없는 공범자가 되느니 희생자가 되는 길을 택하여 히틀러의 수용소에서 사망하였음을 알 것이다.b 그들이 나치주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중립을 고수한 것은 참 그리스도교의 힘에 대한 빛나는 증거다. 그리스도교국이 그렇게 하였더라면 대학살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은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환영을 받는다. 물론 모든 유대인이 증인들의 방문을 고맙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랍비 새뮤얼 샌드멀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낀다는 점을 인정한다. (로마 10:10)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들은 우리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또한 당신들이 중요시하는 이것[전파 사명]을 버렸음을 암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가?”—「우리 유대인과 당신네 그리스도인」.

      여호와의 증인은 바로 그렇게 하고자 노력한다. 증인들은 존경하는 태도로 이웃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을 그토록 오랫동안 갈라놓은 쟁점인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고려해 보도록 권한다. 무엇 때문에 이 희망이 생겨났는가? 그리스도인의 견해와 유대인의 견해는 어떻게 그토록 달라지게 되었는가?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 현재 반유대주의가 증가하는 일로 인해 예수에 관한 문제가 이전 어느 때보다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다음 기사에서 그 대답을 알려 주고자 한다.

      [각주]

      a 사단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삼위일체를 믿어야 하는가?」 참조.

      b 본지 1989년 4월 15일 호에 나오는 “대학살—희생자인가, 순교자인가?” 참조.

      [6면 삽입]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가르침은 유대교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이다”

      [7면 삽화]

      소위 그리스도교인들의 활동은 그리스도교를 결코 사랑의 종교로 추천할 수 없었다

      [자료 제공]

      U.S. Army

      [8면 삽화]

      그리스도교국의 우상 숭배와 삼위일체 교리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등을 돌리게 되었다

  • 유대인, 그리스도인, 메시야에 대한 희망
    깨어라!—1991 | 7월 1일
    • 유대인, 그리스도인, 메시야에 대한 희망

      “나는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온전히 믿는다. 그분이 지체하실지 모르지만 날마다 그분의 오심을 기다릴 것이다.”—모세 마이모니데스 (람밤이라고도 함), (1135-1204년).1

      메시야! 그분이 언젠가는 도래하실 것이라는 신앙은 여러 세기 동안 유대인들 가운데서 자라왔다. 하지만 나사렛 예수께서 오시자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메시야로서 그분을 철저히 배척하였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결코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메시야”라는 말은 “기름부음받은 자”를 의미한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그 용어는 다윗 왕의 후손으로서 영광스러운 다스림을 가져올 자를 뜻하게 되었다. (사무엘 하 7:12, 13) 예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가혹한 이방인 통치자들 밑에서 고통을 당해 왔다. 유대인들은 정치적 구출자를 고대하였다.2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께서 오랫동안 기다린 메시야로서 나타나셨을 때 처음에 상당한 흥분이 일었던 것도 당연하였다. (누가 4:16-22)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대단히 실망스럽게도, 예수는 결코 정치적 영웅이 아니었다. 그와는 달리, 그분은 자신의 왕국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셨다. (요한 18:36) 그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가 미리 내다본 영광스러운 메시야 시대를 그 당시에 가져오시지도 않았다. (이사야 11:4-9) 그리고 예수께서 범죄인처럼 죽임을 당하셨을 때, 유대 민족은 전반적으로 그분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이러한 사태에 동요되지 않고 계속해서 그분을 메시야로 선포하였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주목할 만한 열심을 내게 하였는가? 예수의 죽음이 예언 특히 이사야 52:13-53:12의 예언을 성취시켰다는 믿음이었다. 그 구절의 일부는 이러하다.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리리라]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같았도다] ·⁠·⁠·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졌도다] ·⁠·⁠·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도다.]”

      고통당하는 메시야?

      이사야는 여기서 고통당하고 죽음을 면치 못할 메시야를 예언한 것인가? 현대 유대교 주석자들 대다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부 주석자들은 ‘고통당하는 종’이 바벨론 유배중의 이스라엘 민족 자체라고 말한다. 다른 주석자들은 그 고통을 십자군 전쟁이나 나치 대학살 같은 기간과 연관짓는다.3 그러나 내용을 세밀하게 검토해 볼 때 그러한 설명이 옳은가? 이사야가 일부 문맥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묘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고집세고 죄많은 종으로 묘사한다! (이사야 42:19; 44:21, 22) 그러므로 「유대 백과 사전」(Encyclopaedia Judaica)은 이렇게 대조한다. “실제 이스라엘은 죄가 많으며 [이사야 53장의] 종은 죄에서 벗어나 있다.”4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그 종이 죄많은 유대인들을 위해 고통당한, 이스라엘의 ‘의로운 지도층’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5 그러나 이사야는 결코 그러한 지도층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 그와는 달리 그는 민족 전체에 죄가 있을 것임을 예언하였다! (이사야 1:5, 6; 59:1-4; 비교 다니엘 9:11, 18, 19) 그 외에도 유대인들은 의롭든 의롭지 않든 고통을 당하였다.

      또 다른 문제는 ‘그 종이 누구를 위해 고통을 당하였는가?’하는 점이다. 유대교의 「손시노」 주석은 바빌로니아인들을 위해서라고 지적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 종의 고통당함이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고백한 것은 누구였는가? (이사야 53:5) 바빌로니아인들(혹은 그 외의 여느 이방인들)이—유대인들이 그들을 위해 고통당했다는—매우 놀라운 진술을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합리적인가?6

      흥미롭게도 제1세기의 일부 랍비들은 (그리고 그후 여러 랍비들은) 고통당하는 종이 메시야라고 밝혔다.7 (11면 네모 참조) 많은 유대인들은 고통당하는 종과 나사렛 예수 사이의 부인할 여지 없는 유사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 종처럼 태생이 비천하셨다. 결국 그분은 멸시받고 배척당하셨다. 예수께서는 정치적인 정복을 하신 적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질병을 담당하시고 그들의 병을 기적으로 치료하셨다. 그분은 무죄하셨지만 잘못된 재판 결과로 죽으셨다. 그러한 죽음을 그분은 저항없이 받아들이셨다.

      죽음을 면치 못할 메시야?

      메시야는 왜 죽어야 하였는가? 이사야 53:10은 이렇게 설명한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것은 죄를 속하기 위해 레위인들이 동물 희생을 바치던 관행을 언급한 것이다. 메시야는 수치스러운 죽임을 당할 것이지만 그의 죽음은 희생물처럼 속죄하는 가치를 지닐 것이다.

      하지만 메시야가 죽는다면, 어떻게 자신의 영광스러운 다스림에 관한 예언들을 성취시킬 수 있으며, 더욱이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이 길 것’인가? 논리적으로 볼 때 죽은 자로부터 부활됨으로써이다. (비교 열왕 상 17:17-24) 메시야의 부활은 메시야가 개선하듯이 하늘 구름을 타고 올 것을 예언한 다니엘 7:13과 메시야가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임할 것을 말한 스가랴 9:9의 모순처럼 보이는 표현을 해결하기도 할 것이다. 탈무드는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그 표현을 이러한 주장으로 설명하였다. “만일 그들에게 칭찬할 만한 점이 있다면 그분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비천하게 나귀를 타고 오실 것이다.” (산헤드린 98a)8 이 말대로라면 다니엘 7:13이나 스가랴 9:9의 예언 중 하나는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메시야는 부활됨으로 인해 그 두 예언을 다 성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메시야는 처음에 겸손하게 오셔서 고통당하고 죽으실 것이다. 그분은 부활되신 후 영광 중에 다시 가셔서 하늘 메시야 통치를 가져오실 것이었다.

      유대인 목격자 수백 명은 예수께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셨음을 증언하였다. (고린도 전 15:6) 그러한 주장을 무시할 수 있는가?

      유대교와 예수

      제1세기 유대인 대다수는 메시야로서의 예수를 배척하였다. 그렇지만 그분은 유대교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탈무드에는 예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지만, 약간 언급된 내용도 “예수라는 인물을 사생[私生], 주술,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를 깎아내리”려고 한다.a—「유대인 백과 사전」(The Jewish Encyclopedia).9

      유대인 학자 요세프 클라우스네르는 이러한 이야기가 “마치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들과 반대되는 기술을 하려고 한 것같이 보인다”는 점을 인정한다.11 그리고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을 반유대주의로 더 악화시켰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 자신의 가르침과는 정면으로 반대되게도 예수를 ‘아들 하나님’—이해하기 어려운 삼위일체의 일부—인 양 언명함으로써 유대인으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하였다. 마가 복음 12:29에서 예수께서는 토라를 인용하시면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라]”고 말씀하셨다.—신명 6:4.

      유대교가 개종을 거부하였지만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도교는 랍비들이 강조하는 점을 바꾸게 하였고 일부 경우에는 랍비들의 견해를 수정하게 하였다.”12 초기 세대의 랍비들은 메시야에 대한 희망이 성경에 두루 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창세기 3:15과 49:10 같은 성서 구절들에서 그 희망의 어렴풋한 빛을 보았다. 팔레스타인 타르굼은 전자의 구절의 성취를 “왕 메시야 시대”에 적용시켰다.13 「미드라시 라바」는 후자의 구절에 대해 “이것은 왕으로서의 메시야를 암시한다”고 말하였다.14 탈무드 역시 이사야, 다니엘, 스가랴의 예언을 메시야에 적용시켰다.15 “모든 예언자는 메시야 시대에 대해서만 예언하였다.”—탈무드, 산헤드린 99a.16

      그러나 유대교는 그리스도교국의 개종 압력으로 인해 자체 견해를 재조정하였다. 오랫동안 메시야에 적용시켰던 여러 성경 구절들을 다시 해석하였다.17 현대에 들어서면서 일부 유대교 학자들은 성서에 대한 고등 비평의 영향을 받아 메시야에 대한 희망이 성서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단정하였다!18

      하지만 메시야에 대한 희망은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수립과 더불어 다시 등장하였다. 해럴드 틱틴은 이렇게 기술한다. ‘대다수의 유대교 분파는 이스라엘 국가 출범을 예언상의 대사건으로 여긴다.’19 그렇지만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야가 언제 도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유대인의 생각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탈무드는 이렇게 말한다. “강물처럼 엄습하는 수많은 고난에 억눌린 세대를 볼 때, [메시야를] 기다리라.” (산헤드린 98a)20 하지만 유대인의 메시야는 대학살의 어두운 밤에도 이스라엘 국가의 떠들썩한 탄생시에도 오지 않았다. ‘유대 민족은 메시야가 오기 전에 무슨 고난을 더 겪어야 하는가?’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메시야를 찾는 일

      메시야에 대한 희망은 유대인과 더불어 생겨나 자랐다. 그 희망은 그들 가운데서 희미해졌다. 그 희미한 불빛은 오랜 고통과 실망 속에서 거의 꺼질 지경이 되었다. 엉뚱하게도 수많은 열방 사람들 곧 이방인들이 메시야를 찾았으며 결국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사야가 메시야에 대해 “열방[이방인들]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한 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인가? (이사야 11:10) 유대인들도 스스로 메시야를 찾아야 하지 않는가? 그들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희망을 스스로 저버릴 이유가 무엇인가?

      하지만 미래의 메시야를 찾는 것은 헛된 일이다. 설령 메시야가 온다 하더라도, 자신이 다윗 왕의 법적 후손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족보가 두 번째 성전과 더불어 소멸되지 않았는가? 예수 당시에는 그러한 족보가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다윗의 법적 후손이라는 주장을 아무도 정당하게 논박할 수 없었다.b 앞으로 메시야로 나설 자로서 그러한 신임장을 제시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 온 메시야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는 고정 관념을 버리고 예수를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교회 그림에서 예수를 나약한 고행자로 묘사하는 것은 그분의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복음서 기록—유대인들의 기록—은 예수를 힘 있고 활기찬 남자, 비범한 지혜를 소유한 랍비로 묘사한다. (요한 3:2) 사실상 예수는 유대인들이 정치적 구출자로서 꿈에 그렸던 그 어떤 이상적인 인물보다 탁월한 분이다. 예수는 정복하는 왕으로서 무너지기 쉬운 일개 나라가 아니라 무적의 하늘 왕국을 가져오실 것이다. 그 왕국은 온 땅에 낙원을 회복하여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게 할 것이다.—이사야 11:6; 계시 19:11-16.

      독자는 메시야 시대에 살 것인가? 마이모니데스는 유대인들에게 단지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라’고 조언하였다.22 하지만 우리 시대는 매우 위험한 때이므로 그분의 돌아오심을 깨닫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전 인류는 메시야 곧 이 땅에 재난을 초래하는 온갖 문제들로부터 구출을 가져올 분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분을 열렬히, 적극적으로 찾을 때다. 여호와의 증인은 그렇게 찾는 사람들을 돕기를 열망한다. 메시야를 찾는 것은 결코 유대 민족의 유산을 저버리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메시야에 대한 희망은 유대교의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시야를 찾음으로써 그분이 이미 오셨음을 잘 알게 될 것이다.

      참고 자료

      1. The Book of Jewish Knowledge, by Nathan Ausubel, 1964, page 286; Encyclopaedia Judaica, 1971, Volume 11, page 754.

      2. The Messiah Idea in Jewish History, by Julius H. Greenstone, 1973 (originally published in 1906), page 75.

      3. Encyclopaedia Judaica, 1971, Volume 9, page 65; Soncino Books of the Bible—Isaiah, edited by A. Cohen, 1949, page 260; You Take Jesus, I’ll Take God, by Samuel Levine, 1980, page 25.

      4. Encyclopaedia Judaica, 1971, Volume 9, page 65.

      5. Encyclopaedia Judaica, 1971, Volume 9, page 65; The Suffering Servant in Deutero-Isaiah, by Christopher R. North, First Edition, 1948, pages 9, 202-3.

      6. Soncino Books of the Bible—Isaiah, edited by A. Cohen, 1949, page 261.

      7. The Book of Isaiah, commentary by Amos Chakham, 1984, page 575; The Targum of Isaiah, edited by J. F. Stenning, 1949, page 178; The Suffering Servant in Deutero-Isaiah, by Christopher R. North, First Edition, 1948, pages 11-15; Encyclopaedia Judaica, 1971, Volume 9, page 65.

      8. The Babylonian Talmud, translated by Dr. H. Freedman, 1959, Volume II, page 664.

      9. The Jewish Encyclopedia, 1910, Volume VII, page 170.

      10. Israelis, Jews, and Jesus, by Pinchas Lapide, 1979, pages 73-4.

      11. Jesus of Nazareth—His Life, Times, and Teaching, by Joseph Klausner, 1947 (first published in Great Britain in 1925), page 19.

      12. The Jewish People and Jesus Christ, by Jakób Jocz, 1954 (first published in 1949), page 153.

      13. Neophyti 1, Targum Palestinense, Ms de la Biblioteca Vaticana, Génesis, 1968, Volume I, pages 503-4; The Messiah: An Aramaic Interpretation, by Samson H. Levey, 1974, pages 2-3.

      14. Midrash Rabbah, translated and edited by Dr. H. Freedman and Maurice Simon, 1961 (First Edition 1939), Volume II, page 956; Chumash With Targum Onkelos, Haphtaroth and Rashi’s Commentary, translated by A. M. Silbermann and M. Rosenbaum, 1985, pages 245-6.

      15. The Babylonian Talmud, translated by Dr. H. Freedman, 1959, Volume II, pages 663-5, 670-1 (Sanhedrin 98a, 98b).

      16. New Edition of the Babylonian Talmud, edited and translated by Michael L. Rodkinson, 1903, Part IV, Volume VIII, page 312 (Tract Sanhedrin); The Babylonian Talmud, translated by Dr. H. Freedman, 1959, Volume II, page 670 (Sanhedrin 99a).

      17. The Suffering Servant in Deutero-Isaiah, by Christopher R. North, First Edition, 1948, page 18; The Jewish People and Jesus Christ, by Jakōb Jocz, 1954 (first published in 1949), pages 205-7, 282; The Pentateuch and Haftorahs, edited by Dr. J. H. Hertz, 1929-36, Volume I, page 202; Palestinian Judaism in New Testament Times, by Werner Förster, translated by Gordon E. Harris, 1964, pages 199-200.

      18. Encyclopaedia Judaica, 1971, Volume 11, page 1407; U.S. Catholic, December 1983, page 20.

      19. U.S. Catholic, December 1983, page 21; What Is Judaism?, by Emil L. Fackenheim, 1987, pages 268-9.

      20. The Babylonian Talmud, translated by Dr. H. Freedman, 1959, Volume II, page 663.

      21. The Works of Josephus, translated by William Whiston, 1987, “The Life of Flavius Josephus,” 1:1-6, and “Flavius Josephus Against Apion,” footnote on 7:31, 32.

      22. The Book of Jewish Knowledge, by Nathan Ausubel, 1964, page 286.

      23. The Targum of Isaiah, edited by J. F. Stenning, 1949, pages vii, 178; The Messiah: An Aramaic Interpretation, by Samson H. Levey, 1974, pages 63, 66-7; The Suffering Servant in Deutero-Isaiah, by Christopher R. North, First Edition, 1948, page 11.

      24. The Fifty-Third Chapter of Isaiah—According to the Jewish Interpreters, by S. R. Driver and A. Neubauer, 1969, Volume II, page 7; New Edition of the Babylonian Talmud, edited and translated by Michael L. Rodkinson, 1903, Part IV, Volume VIII, page 310.

      25. The Fifty-Third Chapter of Isaiah—According to the Jewish Interpreters, by S. R. Driver and A. Neubauer, 1969, Volume II, pages 374-5.

      26. The Fifty-Third Chapter of Isaiah—According to the Jewish Interpreters, by S. R. Driver and A. Neubauer, 1969, Volume II, pages x, 99-100.

      [각주]

      a 이스라엘의 학자 핀카스 라피데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에 대한 탈무드 문구는 ·⁠·⁠· 교회 검열관들에 의해 삭제되거나 곡해되거나 말살되었다.” 그러므로 “십중팔구 예수는 원래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단편들에서 증거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랍비 문헌에 미쳤을 것[이다.]”—「이스라엘인, 유대인, 예수」(Israelis, Jews, and Jesus).10

      b 참조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전기」(The Life of Flavius Josephus), 1:1-6.21

      [11면 네모]

      랍비 문헌상의 고통당하는 종

      수세기에 걸쳐, 존경받는 여러 유대교 권위자들은 이사야 52:13-53:12의 예언을 메시야에 적용시켰다.

      요나단 벤 웃시엘(기원 1세기)의 타르굼. 이 타르굼은 이사야 52:13을 이렇게 번역한다. “보라, 내 종, 기름부음받은 자(혹은 메시야)가 성공하리라.”23

      바빌로니아 탈무드(산헤드린 98b) (기원 3세기경): “메시야—그 이름은 무엇인가? ·⁠·⁠· 랍비들은 문둥병자[라고 말하며], 랍비 집의[사람들은][아픈 사람], 말하자면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는 자’라고 말한다.”—비교 이사야 53:4.24

      모세 마이모니데스(람밤)(12세기): “메시야의 강림 방법은 어떠해야 하며, 그분이 처음 나타나시는 곳은 어디일 것인가? ·⁠·⁠· 열왕이 그분의 말에 귀기울이는 방법을 묘사하는 이사야[52:15]의 말에 따르면, 열왕이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할 것이다.”25

      모세 이븐 크리스핀 코헨(14세기): “우리 랍비들의 가르침과 일치하게 왕 메시야에 대해 [이사야 53장을] 해석하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조심스럽게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 고착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아마도 다른 사람들[유대교 주석자들]이 범한, 억지로 무리하게 해석하는 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26

      [10면 삽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고통당하는 메시야”라는 개념을 배척하였다. 그런 생각은 정복하는 왕에 대한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12면 삽화]

      메시야만이 이사야가 예언한 영광스러운 상태를 가져오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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